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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A의 특별한 손님① 김미소 시인

인터뷰 나는, 가장 선명해진 사람

  • 노지영 문학평론가
  • 등록일 2023-07-26
  • 조회수1069

인터뷰

장애 감수성을 기르는 본격 문학방송 〈A의 모든 것〉에서는 초대 손님과 함께 작가의 작품 세계에 관해 깊이 있고 생생한 이야기를 나눈다. 올해는 웹진 이음을 통해서도 만나보자. 2020년부터 다녀간 특별한 손님들은 팟빵과 팟캐스트에서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

김미소 시인은 자신의 별칭을 ‘소소(小小)’라고 불러 달라 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의 행위에도 행복감을 느끼며 매우 소소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리 불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소’라는 기표는 소소(小笑)에도 가닿으며, ‘미소’라 불리는 시인의 이름도 떠오르게 만든다. 고통을 서늘하게 절제하면서 희망의 기미들을 포착해내는 시인의 시와도 제법 어울리는 이름이다.

세상의 감각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던 열네 살 청소년기에, 김미소(金媄昭) 시인에게는 망막박리라는 질병이 찾아왔다. 사시와 혼탁이 오는 것들을 보완하려고 20대 중반까지 눈을 위한 시술과 수술을 여러 번 거듭했으나 왼쪽 눈을 완전히 실명하고 말았다. 한때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양안(兩眼)을 쓰던 시절로 돌아가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쪽 눈이 완전히 안 보이게 되는 절망의 순간, 시인은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남은 한쪽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때 그 빛깔이 다르게 보였고, 주변의 모든 풍경이 흔들리는 것마저도 아름다워 보였다. 마치 어둠 속 영사기 앞에 있는 것처럼 빛 앞에서 모든 것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런 감각을 못 보고 못 느끼는 사람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생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렇게 장애를 인정하는 순간, 시가 다가왔다.

노지영(이하 노평) 『가장 희미해진 사람』은 시인의 첫 시집이다. 처음으로 책을 엮는 마음이 어땠나?

김미소(이하 소소) 알을 깨고 세상 위에 나온 것 같았다. 그전에는 좀 고립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첫 시집에서는 거의 유년 시절 얘기와 내 신체적인 아픔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확실히 첫 시집을 내고 나니까 내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냈다, 모든 아픔을 다 털어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첫 번째 시집이 매우 슬펐다고 하는 분이 꽤 많았다. 너무 자기 세계에 몰입해 있는 것 같다는 평도 들었다. 그래도 첫 시집을 내면서 내 이야기를 해낸 것은 무조건 잘했구나, 생각했다.

노평 나와 직면하는 것이 1순위였겠다. 처음에는 시인 자신의 얘기를 시집에서 하지 않으려고 했다던데, 시를 쓰면서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소소 물론 한편에서는 뭔가 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버지는 스님이었고, 동생들이나 엄마나 아빠랑 헤어져서 살아야 했던 그런 시절이 힘들었다. 어린 시절의 고된 삶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출판사 대표인 김성규 시인을 만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하시는 거다. 자기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그래서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내 첫 시집은 미리 써놓은 시들을 모아서 엮어낸 게 아니라, 시집을 내겠다고 계약하고 나서부터 다시 쓴 것들이다. 시집에 실린 시 대부분을 새로 썼다.

노평 시집 해설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가장 희미해진 사람」이라는 시의 제목을 시집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개인적으로도 이 시가 정말 맘에 들어서, 표제가 된 것이 참 반가웠다. 시집의 제목도 정말 잘 고른 것 같다. 제목은 누가 골랐나?

소소 제목 후보가 여러 가지 있었고, 출판사와도 많이 상의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내가 정한 제목이다. 아무래도 시집에서 나의 이야기, ‘나’라는 사람의 과거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까, 시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까 싶었다. 시집을 내면서 ‘가장 희미해진 사람’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되었다. 시집을 내기 전의 나와, 아니 시를 쓰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다르다. 혹은 내가 장애를 인정하고 난 이후와 이전의 모습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너무 아플 때는 그 기억이 선명했었는데 그 아픔을 조금씩 털어내고 나니까 그 아픔이라는 것이 확실히 희미해지더라. 그래서 적절히 거리도 두게 되었다. 사실은 점점 기억이 안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노평 그럼 역으로 자신에게 ‘가장 선명해진 사람’도 자기 자신일 것 같다. 시를 쓰면서 또 점점 선명해지는 세계가 있을 테니.

소소 ‘가장 희미해진 사람’과 ‘가장 선명해진 사람’ 모두 나다. 시를 쓰면서 과거의 아픔이 희미해질 수 있었고, 눈을 잃고 나서야 숨어 있던 세계가 선명하게 다가왔으니까. 가족도 마찬가지고, 나의 눈도 마찬가지다. 아마 내게 장애가 없었다면 시를 쓰지 않았을 거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썼고 대학에서도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대학교 가서도 시를 정말 못 썼다. 시에 관심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20대 후반에 신체적으로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진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아토피가 심했고, 그 영향으로 시력에도 문제가 생겼다. 안구 위축이 생겨 안구가 작아지기 시작한 거다. 안구가 쪼그라들기 시작하는 걸 위축이라고 하는데, 외관상의 변화가 굉장히 심했다. 사람들이 보면 눈이 왜 저래,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 시기에 숨어 있었다. 아는 사람이 없는 모텔에 가서 청소 일을 하고 지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는 음지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일을 했었고, 삶이 굉장히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 일까지 그만두고 나서는 심지어 삶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동안의 삶도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더는 앞으로 나아갈 곳이 없겠구나 싶었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순간에 갑자기 시가 쓰고 싶어졌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쓰고 싶어서 그냥 밤새 썼다.

노평 시가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갖는다고 믿나?

소소 그때 정말 강력하게 치유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전에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괜찮아, 좋아질 거야, 이렇게 위로의 말을 해도 솔직히 그런 말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아픔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나의 아픔을 아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혼자 시를 썼다. 그렇게 시를 쓰면서 내 아픔을 좀 덜어내는 느낌이 들었고 뭉쳐진 고통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위로가 많이 됐다. 그때 시를 쓰면서 흘렸던 눈물이 정말 잊히지 않는다. 세상에서 눈물이 그렇게 뜨거운지 처음 알았다.

노평 자신의 경험과 시가 그렇게 관계를 맺었던 것 같다.

소소 당시에는 시를 쓸 때도 내 오래된 이야기들이나 내 아픔에 대한 것이 아니면 사실 쓸 수 있는 게 없었다. 물론 영화 같은 데서 영감을 얻어서 시를 쓸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잘 아는 것을 써야지 어설프게 쓰면 이거 들통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잘 아는 나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쓰고 싶었다. 누군가는 내 시가 체험시에 특화되어 있다고 하더라. 우연히 들었을 때는 기분이 좀 그랬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경험한 것들이 많지는 않다. 사회 경험을 많이 갖지 못했으니.

노평 사회 경험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나. 자신의 아픔을 넘어서 타인의 아픔과 호흡하기 위해 직업적으로도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소 사회 경험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감각을 더 느껴보고 싶어서, 지금은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다. 20대 초반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놓기만 했었는데, 이 일도 김성규 시인이 권해서 얼마 전에 시작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나로서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거다. 여태 5개월 정도 일했다. 물론 일을 마치고 나면 너무 힘이 들어서 글이 바로바로 써지지는 않지만, 일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정말 많다. 아마 두 번째 시집과 에세이를 통해 그곳의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지 않을까 싶다.

노평 시와 삶을 통해 타자의 아픔을 돌보는 것 같다. 장애가 있는 분과도 많이 연결되어 있나?

소소 예전에는 나도 나 외에 주변에서 장애가 있는 분을 만난 적이 없었다. 장애문학을 하는 분은 아예 만나볼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시각장애인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그 모임을 통해서 장애를 가진 분들을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주로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긴 하지만, 그 모임에서도 시를 쓰고 싶어 하는 분도 있었다. 장애가 있는 분 중 시를 쓰고 싶은 분이 내 시를 보고서 ‘나도 쓰고 싶다’, ‘나도 해낼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시가 극한 절망 끝에 온 것 같다. 삶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 되어 시를 맞이했다. 그래서인지 시를 쓸 때, 절망 끝에 항상 빛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그렇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돌아보면 세상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정말 많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요양원에도 손가락이 없는 분, 와상 환자, 온갖 질병으로 인해 걸을 수 없는 환자, 편마비인 분 등 여러 종류의 신체 손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고 싶지만 움직이지 못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도 신체적 불편이 있어서 시야가 좁은 편이고, 그래서 사람들과 부딪칠 수 있어 걱정이지만,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일하면서 어려운 것이 있다면, 내 신체적 불편함보다는 마음속의 불안함이 더 크다. 혹시나 내가 한순간 못 보고 놓치는 문제 때문에 어르신 환자들이 다치지는 않을까 항상 조심조심 일한다. 다른 한쪽 눈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눈 영양제 같은 것도 부지런히 챙겨 먹고 있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일하는 많은 분이 다들 더 섬세해지려고 노력하고, 자기 관리도 열심히 한다.

노평 심신의 불편과 장애로 고통받는 분들이 의 청취자이기도 하다. 그중에는 시를 쓰고 싶은 분도 있을 것 같다. 그분들께 어떤 얘기를 전하고 싶은가.

소소 나는 처음에는 외로움 때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를 다시 만났을 때는 나를 치유한다는 목적이 컸다. 그분들한테도 시가 그런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위로라는 것이 외부적으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 아픔을 겪는 이를 주변에서 지원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스스로가 먼저 자기 자신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엔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위로가 자신을 일으켜서 결국 그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다.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괜찮아, 나는 나를 사랑해, 많이 힘들었지, 힘들었을 거야, 이런 말들을 자주 건네곤 했다. 자신과 타인에게 그런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시가 시작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 방송용 마이크가 설치된 사각 테이블에 진행자 호호(김효진)와 노평(노지영), 특별게스트 김미소 시인이 둘러앉아 이야기하고 있다.
  • 김미소 시인이 자료가 가득 꽂힌 큰 책장을 배경으로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팟캐스트 시즌4 첫 번째 특별한 손님 김미소 시인(왼쪽 사진 가운데)

김미소

시인. 2019년 계간 [시인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22년에 첫 시집 『가장 희미해진 사람』을 출간했다. 공저로 『따뜻한 이불을 덮고 주무세요 - 코로나와 함께 한 시절』(걷는사람, 2022)이 있다.
kmiso89@hanmail.net

노지영

문학평론가. 2010년 계간 [내일을여는작가]를 통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몇몇 대학에서 문학과 교양 과목을 강의하고 있으며, 계간 [시와시학] [백조] [영화가 있는 문학의 오늘]에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오장환 전집』 『정본 노작 홍사용 문학 전집』 『한국 전후 문제시인 연구』 『영구혁명의 문학‘들’』 『김춘수의 무의미시』 『서정주 연구』 『서강, 우리 시대 문학을 말하다』 등을 함께 쓰고 엮었다. 현재 [A의 모든 것]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이다.
norae@hanmail.net

장애 감수성을 기르는 본격 문학방송 ‘A(able)의 모든 것 시즌4’

제1회. 김미소 작가 편 바로가기

▸팟빵에서 [전체방송 듣기]
▸팟캐스트에서 [전체방송 듣기]

사진.이효영 사진작가

2023년 8월 (44호)

상세내용

인터뷰

장애 감수성을 기르는 본격 문학방송 〈A의 모든 것〉에서는 초대 손님과 함께 작가의 작품 세계에 관해 깊이 있고 생생한 이야기를 나눈다. 올해는 웹진 이음을 통해서도 만나보자. 2020년부터 다녀간 특별한 손님들은 팟빵과 팟캐스트에서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

김미소 시인은 자신의 별칭을 ‘소소(小小)’라고 불러 달라 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의 행위에도 행복감을 느끼며 매우 소소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리 불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소’라는 기표는 소소(小笑)에도 가닿으며, ‘미소’라 불리는 시인의 이름도 떠오르게 만든다. 고통을 서늘하게 절제하면서 희망의 기미들을 포착해내는 시인의 시와도 제법 어울리는 이름이다.

세상의 감각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던 열네 살 청소년기에, 김미소(金媄昭) 시인에게는 망막박리라는 질병이 찾아왔다. 사시와 혼탁이 오는 것들을 보완하려고 20대 중반까지 눈을 위한 시술과 수술을 여러 번 거듭했으나 왼쪽 눈을 완전히 실명하고 말았다. 한때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양안(兩眼)을 쓰던 시절로 돌아가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쪽 눈이 완전히 안 보이게 되는 절망의 순간, 시인은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남은 한쪽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때 그 빛깔이 다르게 보였고, 주변의 모든 풍경이 흔들리는 것마저도 아름다워 보였다. 마치 어둠 속 영사기 앞에 있는 것처럼 빛 앞에서 모든 것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런 감각을 못 보고 못 느끼는 사람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생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렇게 장애를 인정하는 순간, 시가 다가왔다.

노지영(이하 노평) 『가장 희미해진 사람』은 시인의 첫 시집이다. 처음으로 책을 엮는 마음이 어땠나?

김미소(이하 소소) 알을 깨고 세상 위에 나온 것 같았다. 그전에는 좀 고립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첫 시집에서는 거의 유년 시절 얘기와 내 신체적인 아픔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확실히 첫 시집을 내고 나니까 내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냈다, 모든 아픔을 다 털어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첫 번째 시집이 매우 슬펐다고 하는 분이 꽤 많았다. 너무 자기 세계에 몰입해 있는 것 같다는 평도 들었다. 그래도 첫 시집을 내면서 내 이야기를 해낸 것은 무조건 잘했구나, 생각했다.

노평 나와 직면하는 것이 1순위였겠다. 처음에는 시인 자신의 얘기를 시집에서 하지 않으려고 했다던데, 시를 쓰면서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소소 물론 한편에서는 뭔가 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버지는 스님이었고, 동생들이나 엄마나 아빠랑 헤어져서 살아야 했던 그런 시절이 힘들었다. 어린 시절의 고된 삶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출판사 대표인 김성규 시인을 만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하시는 거다. 자기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그래서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내 첫 시집은 미리 써놓은 시들을 모아서 엮어낸 게 아니라, 시집을 내겠다고 계약하고 나서부터 다시 쓴 것들이다. 시집에 실린 시 대부분을 새로 썼다.

노평 시집 해설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가장 희미해진 사람」이라는 시의 제목을 시집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개인적으로도 이 시가 정말 맘에 들어서, 표제가 된 것이 참 반가웠다. 시집의 제목도 정말 잘 고른 것 같다. 제목은 누가 골랐나?

소소 제목 후보가 여러 가지 있었고, 출판사와도 많이 상의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내가 정한 제목이다. 아무래도 시집에서 나의 이야기, ‘나’라는 사람의 과거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까, 시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까 싶었다. 시집을 내면서 ‘가장 희미해진 사람’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되었다. 시집을 내기 전의 나와, 아니 시를 쓰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다르다. 혹은 내가 장애를 인정하고 난 이후와 이전의 모습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너무 아플 때는 그 기억이 선명했었는데 그 아픔을 조금씩 털어내고 나니까 그 아픔이라는 것이 확실히 희미해지더라. 그래서 적절히 거리도 두게 되었다. 사실은 점점 기억이 안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노평 그럼 역으로 자신에게 ‘가장 선명해진 사람’도 자기 자신일 것 같다. 시를 쓰면서 또 점점 선명해지는 세계가 있을 테니.

소소 ‘가장 희미해진 사람’과 ‘가장 선명해진 사람’ 모두 나다. 시를 쓰면서 과거의 아픔이 희미해질 수 있었고, 눈을 잃고 나서야 숨어 있던 세계가 선명하게 다가왔으니까. 가족도 마찬가지고, 나의 눈도 마찬가지다. 아마 내게 장애가 없었다면 시를 쓰지 않았을 거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썼고 대학에서도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대학교 가서도 시를 정말 못 썼다. 시에 관심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20대 후반에 신체적으로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진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아토피가 심했고, 그 영향으로 시력에도 문제가 생겼다. 안구 위축이 생겨 안구가 작아지기 시작한 거다. 안구가 쪼그라들기 시작하는 걸 위축이라고 하는데, 외관상의 변화가 굉장히 심했다. 사람들이 보면 눈이 왜 저래,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 시기에 숨어 있었다. 아는 사람이 없는 모텔에 가서 청소 일을 하고 지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는 음지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일을 했었고, 삶이 굉장히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 일까지 그만두고 나서는 심지어 삶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동안의 삶도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더는 앞으로 나아갈 곳이 없겠구나 싶었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순간에 갑자기 시가 쓰고 싶어졌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쓰고 싶어서 그냥 밤새 썼다.

노평 시가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갖는다고 믿나?

소소 그때 정말 강력하게 치유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전에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괜찮아, 좋아질 거야, 이렇게 위로의 말을 해도 솔직히 그런 말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아픔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나의 아픔을 아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혼자 시를 썼다. 그렇게 시를 쓰면서 내 아픔을 좀 덜어내는 느낌이 들었고 뭉쳐진 고통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위로가 많이 됐다. 그때 시를 쓰면서 흘렸던 눈물이 정말 잊히지 않는다. 세상에서 눈물이 그렇게 뜨거운지 처음 알았다.

노평 자신의 경험과 시가 그렇게 관계를 맺었던 것 같다.

소소 당시에는 시를 쓸 때도 내 오래된 이야기들이나 내 아픔에 대한 것이 아니면 사실 쓸 수 있는 게 없었다. 물론 영화 같은 데서 영감을 얻어서 시를 쓸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잘 아는 것을 써야지 어설프게 쓰면 이거 들통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잘 아는 나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쓰고 싶었다. 누군가는 내 시가 체험시에 특화되어 있다고 하더라. 우연히 들었을 때는 기분이 좀 그랬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경험한 것들이 많지는 않다. 사회 경험을 많이 갖지 못했으니.

노평 사회 경험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나. 자신의 아픔을 넘어서 타인의 아픔과 호흡하기 위해 직업적으로도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소 사회 경험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감각을 더 느껴보고 싶어서, 지금은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다. 20대 초반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놓기만 했었는데, 이 일도 김성규 시인이 권해서 얼마 전에 시작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나로서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거다. 여태 5개월 정도 일했다. 물론 일을 마치고 나면 너무 힘이 들어서 글이 바로바로 써지지는 않지만, 일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정말 많다. 아마 두 번째 시집과 에세이를 통해 그곳의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지 않을까 싶다.

노평 시와 삶을 통해 타자의 아픔을 돌보는 것 같다. 장애가 있는 분과도 많이 연결되어 있나?

소소 예전에는 나도 나 외에 주변에서 장애가 있는 분을 만난 적이 없었다. 장애문학을 하는 분은 아예 만나볼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시각장애인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그 모임을 통해서 장애를 가진 분들을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주로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긴 하지만, 그 모임에서도 시를 쓰고 싶어 하는 분도 있었다. 장애가 있는 분 중 시를 쓰고 싶은 분이 내 시를 보고서 ‘나도 쓰고 싶다’, ‘나도 해낼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시가 극한 절망 끝에 온 것 같다. 삶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 되어 시를 맞이했다. 그래서인지 시를 쓸 때, 절망 끝에 항상 빛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그렇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돌아보면 세상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정말 많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요양원에도 손가락이 없는 분, 와상 환자, 온갖 질병으로 인해 걸을 수 없는 환자, 편마비인 분 등 여러 종류의 신체 손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고 싶지만 움직이지 못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도 신체적 불편이 있어서 시야가 좁은 편이고, 그래서 사람들과 부딪칠 수 있어 걱정이지만,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일하면서 어려운 것이 있다면, 내 신체적 불편함보다는 마음속의 불안함이 더 크다. 혹시나 내가 한순간 못 보고 놓치는 문제 때문에 어르신 환자들이 다치지는 않을까 항상 조심조심 일한다. 다른 한쪽 눈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눈 영양제 같은 것도 부지런히 챙겨 먹고 있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일하는 많은 분이 다들 더 섬세해지려고 노력하고, 자기 관리도 열심히 한다.

노평 심신의 불편과 장애로 고통받는 분들이 의 청취자이기도 하다. 그중에는 시를 쓰고 싶은 분도 있을 것 같다. 그분들께 어떤 얘기를 전하고 싶은가.

소소 나는 처음에는 외로움 때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를 다시 만났을 때는 나를 치유한다는 목적이 컸다. 그분들한테도 시가 그런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위로라는 것이 외부적으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 아픔을 겪는 이를 주변에서 지원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스스로가 먼저 자기 자신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엔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위로가 자신을 일으켜서 결국 그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다.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괜찮아, 나는 나를 사랑해, 많이 힘들었지, 힘들었을 거야, 이런 말들을 자주 건네곤 했다. 자신과 타인에게 그런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시가 시작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 방송용 마이크가 설치된 사각 테이블에 진행자 호호(김효진)와 노평(노지영), 특별게스트 김미소 시인이 둘러앉아 이야기하고 있다.
  • 김미소 시인이 자료가 가득 꽂힌 큰 책장을 배경으로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팟캐스트 시즌4 첫 번째 특별한 손님 김미소 시인(왼쪽 사진 가운데)

김미소

시인. 2019년 계간 [시인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22년에 첫 시집 『가장 희미해진 사람』을 출간했다. 공저로 『따뜻한 이불을 덮고 주무세요 - 코로나와 함께 한 시절』(걷는사람, 2022)이 있다.
kmiso89@hanmail.net

노지영

문학평론가. 2010년 계간 [내일을여는작가]를 통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몇몇 대학에서 문학과 교양 과목을 강의하고 있으며, 계간 [시와시학] [백조] [영화가 있는 문학의 오늘]에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오장환 전집』 『정본 노작 홍사용 문학 전집』 『한국 전후 문제시인 연구』 『영구혁명의 문학‘들’』 『김춘수의 무의미시』 『서정주 연구』 『서강, 우리 시대 문학을 말하다』 등을 함께 쓰고 엮었다. 현재 [A의 모든 것]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이다.
norae@hanmail.net

장애 감수성을 기르는 본격 문학방송 ‘A(able)의 모든 것 시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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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효영 사진작가

2023년 8월 (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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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0 11: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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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또렷해진 삶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김미소 시인의 새로워진 나날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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