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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뭉치고 떼고 주무르면③

이음광장 비좁은 교집합을 넓히는 품과 품

  • 이희원 문화예술교육사
  • 등록일 2023-08-09
  • 조회수450

이음광장

전국장애인 도예 공모전 수상자들에게 대회 이후에도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품품 프로젝트’에 아들 지성이가 참여했다. 품품 프로젝트는 제품화·상품화 프로젝트로 공예 전공 대학생들과 장애인 창작자가 협업해 작품을 만든다. 공예 전공자와 비전공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대학생과 초등학생. 일상에서는 겹칠 일이 좀처럼 없는 두 집합의 낯선 만남이다. ‘손으로 무언가 만든다’라는 공통의 요소를 포개어 만든 교집합 안에 비좁게 모여 앉았다.

지성이는 숙명여대 공예과 대학원생 2명, 학부생 2명과 ‘꼬물꼬물’이라는 팀명으로 참여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대학원생 둘이 나눠 쓰고 있는 교내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서로의 탐색 과정으로 도예 흙을 조금씩 떼어 각자 만들어보는데, 지성이는 몇 번 흙을 주무르다 말고 손에서 내려놓았다. 팀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지성이가 만지던 점토의 말랑한 촉감과 달라서 그런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팀원들은 책상 위의 도예 흙을 얼른 치우고는 준비해 둔 점토를 꺼냈다. 쳐다보는 시선 때문인지 새로운 환경 탓인지 그 점토에도 반응이 시원찮다. 지성이는 무언가 만들려는 듯했다가 다시 덩어리로 뭉치기를 반복했다. 만들려고 모인 교집합의 영역이 더 좁아졌다.

팀원들은 만남을 거듭할수록 지성이와 같이 할 수 있는 창작 방법, 협업 장치들을 들고 왔다. 지성이가 평소 점토로 만들던 관심 주제를 크게 4개의 카테고리로 구성하고, 각 카테고리의 관련 사진을 붙인 콘셉트 보드를 만들어, 지성이에게 맘에 드는 사진에 스티커를 붙이도록 제안했다. 언어 사용이 제한적인 지성이와의 소통에 시각 자료를 활용한 것이다. 지성이는 사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선택했다. 그렇게 정해진 전시회의 주제는 ‘공룡의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다음으로 팀원들이 제안한 것은 도예 흙을 주무르지 않고 도자기를 만드는 방법이다. 작은 틀에 흙과 색소를 뿌리며 우연의 효과로 미끄러져 섞이는 플루이드 기법을 가져왔다. 팀원들이 완성된 틀을 옮기기가 무섭게 지성이는 뿌리기 무아지경에 빠져 연신 틀을 채워냈다. 건조된 뒤에는 지성이의 공룡 그림을 틀로 만들어 찍어내거나 그림을 새겨 넣어 코스터나 마그넷 소품을 만들었다. 지성이가 점토로 만들었던 공룡의 본을 떠서 팀원들의 작품 속에 각자가 해석한 정지성의 공룡을 오브제로 얹기도 했다. 낯선 두 집합이 만나 협업을 향해 가는 길은 여러 갈래였다.

여름부터 기획한 작품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에 ‘2022 공예 트렌드 페어’에서 전시되었다. 전시장의 규모는 상상했던 것보다 거대했다. 원목으로 만든 스피커부터 현수막을 업사이클링한 가방, 옻칠이나 나전칠기 같은 전통 공예품, 신소재로 만든 가구, 도자기로 만든 식기부터 귀걸이 같은 장신구, 직물을 염색한 스카프와 의류, 금속과 유리공예로 만든 생활소품 등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다양한 정도가 아니라 어느 것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다. 사람의 손을 통과한 것들의 비정형과 무질서에 압도되었다. 예술다웠다. 그 속에 한자리 차지한 품품 프로젝트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장애인이 참여한 전통 공예, 장애인이 만든 유리 공예품, 장애인이 염색한 직물은 왜 없을까?’ 생각했다. 한 해를 마치며 열리는 공예인의 축제 같은 이곳에 장애인 창작자의 자리가 더 많아지기를 소망했다. 그로 인해, 비정형과 무질서가 보태어지고, 더 예술다워지기를 말이다.

그러고 보니, 품품 프로젝트가 물건을 뜻하는 ‘품(品)’인 동시에 어떤 일에 드는 힘이나 수고를 말하는 ‘품’이구나 싶었다. 장애인 창작자 4명의 품과 4개 대학 대학생 16명의 품, 이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전시까지를 기획하고 지원한 서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 사회복지사의 품, 프로젝트를 자문한 대학 담당 교수님의 품, 작품을 전시장으로 실어 나른 누군가의 품, 전시장에 방문하여 작품을 구매해 가는 품, 보이지 않게 움직였을 누군가의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품. 나 또한 관찰자로 이 프로젝트를 지켜본 경험을 글품으로 풀어 여기 광장에서 떠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품까지. 장애인 창작자의 손에서 나온 ‘무엇’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이 모든 품이 있었다.

  • 꼬물꼬물 팀원이 작업실 한 벽면에 카테고리별 관련 사진을 붙인 4개의 콘셉트 보드를 붙이고 있다.
  • 지성이가 책상 위에 놓인 콘셉트 보드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콘셉트 보드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에 스티커 붙이기

  • 전시벽에 사각박스 5개가 나란히 붙어 있고 박스 안과 위에 작은 도예 소품이 놓여 있다. 빈 벽면에는 지성이의 커다란 공룡 그림이 있다.
  • ‘공룡의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도예 소품이 놓여 있다. 빨간 산타 모자를 쓴 초록색 공룡 모양의 인센스 홀더, 크리스마스트리 등이다.

‘2022 공예 트렌드 페어’ 작품 전시

이희원

결혼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가 10년간 거주한 후 한국에 돌아와 8년째 살고 있다. 세 자녀 중 둘째의 발달장애를 알게 되면서 ‘인간의 다양성’이라는 광활함의 면면을 관찰 중이다.
hiwoni12@gmail.com
▸ 인스타그램

사진 제공. 필자

이희원

이희원 

결혼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가 10년간 거주한 후 한국에 돌아와 8년째 살고 있다. 세 자녀 중 둘째의 발달장애를 알게 되면서 ‘인간의 다양성’이라는 광활함의 면면을 관찰 중이다.
hiwoni12@gmail.com

상세내용

이음광장

전국장애인 도예 공모전 수상자들에게 대회 이후에도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품품 프로젝트’에 아들 지성이가 참여했다. 품품 프로젝트는 제품화·상품화 프로젝트로 공예 전공 대학생들과 장애인 창작자가 협업해 작품을 만든다. 공예 전공자와 비전공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대학생과 초등학생. 일상에서는 겹칠 일이 좀처럼 없는 두 집합의 낯선 만남이다. ‘손으로 무언가 만든다’라는 공통의 요소를 포개어 만든 교집합 안에 비좁게 모여 앉았다.

지성이는 숙명여대 공예과 대학원생 2명, 학부생 2명과 ‘꼬물꼬물’이라는 팀명으로 참여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대학원생 둘이 나눠 쓰고 있는 교내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서로의 탐색 과정으로 도예 흙을 조금씩 떼어 각자 만들어보는데, 지성이는 몇 번 흙을 주무르다 말고 손에서 내려놓았다. 팀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지성이가 만지던 점토의 말랑한 촉감과 달라서 그런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팀원들은 책상 위의 도예 흙을 얼른 치우고는 준비해 둔 점토를 꺼냈다. 쳐다보는 시선 때문인지 새로운 환경 탓인지 그 점토에도 반응이 시원찮다. 지성이는 무언가 만들려는 듯했다가 다시 덩어리로 뭉치기를 반복했다. 만들려고 모인 교집합의 영역이 더 좁아졌다.

팀원들은 만남을 거듭할수록 지성이와 같이 할 수 있는 창작 방법, 협업 장치들을 들고 왔다. 지성이가 평소 점토로 만들던 관심 주제를 크게 4개의 카테고리로 구성하고, 각 카테고리의 관련 사진을 붙인 콘셉트 보드를 만들어, 지성이에게 맘에 드는 사진에 스티커를 붙이도록 제안했다. 언어 사용이 제한적인 지성이와의 소통에 시각 자료를 활용한 것이다. 지성이는 사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선택했다. 그렇게 정해진 전시회의 주제는 ‘공룡의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다음으로 팀원들이 제안한 것은 도예 흙을 주무르지 않고 도자기를 만드는 방법이다. 작은 틀에 흙과 색소를 뿌리며 우연의 효과로 미끄러져 섞이는 플루이드 기법을 가져왔다. 팀원들이 완성된 틀을 옮기기가 무섭게 지성이는 뿌리기 무아지경에 빠져 연신 틀을 채워냈다. 건조된 뒤에는 지성이의 공룡 그림을 틀로 만들어 찍어내거나 그림을 새겨 넣어 코스터나 마그넷 소품을 만들었다. 지성이가 점토로 만들었던 공룡의 본을 떠서 팀원들의 작품 속에 각자가 해석한 정지성의 공룡을 오브제로 얹기도 했다. 낯선 두 집합이 만나 협업을 향해 가는 길은 여러 갈래였다.

여름부터 기획한 작품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에 ‘2022 공예 트렌드 페어’에서 전시되었다. 전시장의 규모는 상상했던 것보다 거대했다. 원목으로 만든 스피커부터 현수막을 업사이클링한 가방, 옻칠이나 나전칠기 같은 전통 공예품, 신소재로 만든 가구, 도자기로 만든 식기부터 귀걸이 같은 장신구, 직물을 염색한 스카프와 의류, 금속과 유리공예로 만든 생활소품 등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다양한 정도가 아니라 어느 것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다. 사람의 손을 통과한 것들의 비정형과 무질서에 압도되었다. 예술다웠다. 그 속에 한자리 차지한 품품 프로젝트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장애인이 참여한 전통 공예, 장애인이 만든 유리 공예품, 장애인이 염색한 직물은 왜 없을까?’ 생각했다. 한 해를 마치며 열리는 공예인의 축제 같은 이곳에 장애인 창작자의 자리가 더 많아지기를 소망했다. 그로 인해, 비정형과 무질서가 보태어지고, 더 예술다워지기를 말이다.

그러고 보니, 품품 프로젝트가 물건을 뜻하는 ‘품(品)’인 동시에 어떤 일에 드는 힘이나 수고를 말하는 ‘품’이구나 싶었다. 장애인 창작자 4명의 품과 4개 대학 대학생 16명의 품, 이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전시까지를 기획하고 지원한 서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 사회복지사의 품, 프로젝트를 자문한 대학 담당 교수님의 품, 작품을 전시장으로 실어 나른 누군가의 품, 전시장에 방문하여 작품을 구매해 가는 품, 보이지 않게 움직였을 누군가의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품. 나 또한 관찰자로 이 프로젝트를 지켜본 경험을 글품으로 풀어 여기 광장에서 떠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품까지. 장애인 창작자의 손에서 나온 ‘무엇’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이 모든 품이 있었다.

  • 꼬물꼬물 팀원이 작업실 한 벽면에 카테고리별 관련 사진을 붙인 4개의 콘셉트 보드를 붙이고 있다.
  • 지성이가 책상 위에 놓인 콘셉트 보드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콘셉트 보드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에 스티커 붙이기

  • 전시벽에 사각박스 5개가 나란히 붙어 있고 박스 안과 위에 작은 도예 소품이 놓여 있다. 빈 벽면에는 지성이의 커다란 공룡 그림이 있다.
  • ‘공룡의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도예 소품이 놓여 있다. 빨간 산타 모자를 쓴 초록색 공룡 모양의 인센스 홀더, 크리스마스트리 등이다.

‘2022 공예 트렌드 페어’ 작품 전시

이희원

결혼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가 10년간 거주한 후 한국에 돌아와 8년째 살고 있다. 세 자녀 중 둘째의 발달장애를 알게 되면서 ‘인간의 다양성’이라는 광활함의 면면을 관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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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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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1 1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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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품 프로젝트가 낯설지만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프로젝트를 하시면서 품품 프로젝트가 물건 품임과 동시에 힘과 수고를 뜻하는 품이라는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멋진 예술활동의 이면에 있는 피땀눈물을 헤아릴 수 있는 성숙한 우리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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