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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설 《중간언어》

리뷰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

  • 현시원 큐레이터
  • 등록일 2023-09-20
  • 조회수669

리뷰

김은설의 《중간언어》에는 언어와 언어 사이의 관계를 찾고자 하는 작가의 움직임이 있다. 이때 언어는 말하기, 듣기, 멈추기, 걷기, 바라보기 등 신체를 둘러싼 많은 행위 등을 포함한다. 모국어에 한정된 질서정연한, 맞춤법을 전제로 하는 언어가 아니라, 작은 떨림, 접촉과 부딪힘, 스치듯 느껴지는 소음 등 많은 것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언어’이다. 이 언어들이 가득한 전시장에는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 세계의 소리를 배웠던 작가의 감각을 따라가는 여정이 하나씩 펼쳐진다.

작가 김은설이 다루는 언어의 범위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영상 작업 〈진동하는 몸의 대화〉에서부터 출발한다. 17분 11초의 시간을 지닌 이 영상 작업은 ‘중간언어’라는 전시 제목을 듣고 전시장을 찾았던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으레 어떤 소리가 들리고, 문자가 있고, 그 구술성과 문자성이 충돌하리라 생각했던 단조로운 예상을 빗나가는 것이다. 전시 공간에 놓인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몸이 가볍게 진동한다. 화면에는 소리가 아니라, 이미지가 시각을 꽉 채운다. 눈이 닿는 끝까지 두 사람의 피부, 팔뚝, 등과 목 사이의 근육이 보인다.

작가는 리플릿에서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 부모님의 몸과 맞대면서 목과 몸통의 울림, 입바람을 통해 촉각적으로 소리 언어를 배웠다”고 썼다. 이 경험과 기억에서 출발한 작가의 여정은 주변의 소리와 시각 이미지, 운동 이미지 그리고 수많은 대화의 장면과 틈에 개입한다. 영상 작업 〈진동하는 몸의 대화〉는 몸들이 만나는 사이에 공기의 부피, 질감, 소리를 총체적으로 담아낸다. 두 사람(퍼포머)의 밀착된 신체가 슬로우 모션, 혹은 신체를 담은 정지된 풍경(화), 그리고 ‘배움의 가이드’를 만들어 낸다.

김은설에게 언어는 이렇게 두 사람 사이, 두 존재 사이를 오가는 물질인 듯하다. 전시장의 다른 방으로 이동하면 위치해 있는 〈목소리의 형태〉와 〈수동적 소통〉은 보청기를 사용하며 시각, 촉각, 다른 감각을 통해 소리와 비/소리(소리 아닌 것)를 듣는 작가의 관측이 담겨있다. 오늘날 생산, 이동하는 언어의 엔트로피 사이에서 작가는 약간 늦게 도착한 언어, 그리고 너무 가깝거나 먼 거리를 공간 작업으로 제시했다. 영상 작업인 〈수동적 소통〉과 스마트폰, 레디메이드 얼굴 모형 등이 배치된 〈목소리의 형태〉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함께 보인다. 두 작업에는 스마트폰 화면, 문자 채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문자화된 대화의 목소리들이 한글 자막과 각종 말줄임표, 느낌표, 물음표, 구두점 등으로 ‘오간다’. 관객은 대화의 물질성을 다루는 이 두 작업을 보며 대화에 참여한다는 것과 개입한다는 것, 대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중간언어》의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작가 김은설이 소리를 바깥 세계와의 대화와 배움으로 계속해서 수신호, 송신호를 보낸다는 점이다. 작가는 질문과 가설을 세우고 이를 수집하고 자신의 실행과 퍼포머와의 협력을 통해 구체화한다. 전시장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영상 작업 〈청각장애 AI 학습〉은 인공지능이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 대해 질문한다. 입 모양과 언어습관, 데이터를 사이에 둔 인간과 인공지능의 배움은 어떤 새로운 언어 배우기의 과정을 만들어 낼까.

그 안에는 오류도 오해도 많을 것이다. 언어의 질서를 배우고, 그 어법과 사례를 통해 자신의 입 모양에 익히고 단어들을 배우는 행위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속되는 배움이자 실패의 연속이다. 탈영역우정국 2층 전시장 한쪽에 놓인 작가의 작업 〈소리 없는 소리〉는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발견한 ‘시각적인 소리’를 보여준다. 이 ‘시각적인 소리’라는 말은 필자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리플릿에 쓰여 있던 말이다. 움직이는 물고기들, 무늬들, 빛과 그림자 등이 모두 소리 없는 소리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작가가 알고 있는 언어 세계의 범위가 그야말로 넓고 깊다는 생각을 했다.

김은설의 《중간언어》는 전시장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수어통역, 한글자막, 음성해설을 진행한다. 전시장의 접근성 안내 자체가 그의 작업 원동력이기도 하고 관객과 만나는 실질적인 접촉 지대이기도 하다. 작가의 개인전은 오늘날 동시대 예술의 전시가 가져야 하는 접근성에 대한 실천을 체화하여 보여준다.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부터 이미 모든 소리를 안다고 착각하기도 하는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이동하며 듣고 나눠야 하는 다른 소리들을 쓰고 보는 세계를, 이 전시는 포괄한다.

  • 왼쪽: 〈소리 없는 소리〉 영상 5분, 2022
    오른쪽: 〈백색시각 - 탈영역우정국〉 드로잉, 2023

  • 〈진동하는 몸의 대화〉 진동스피커,
    영상 17분 11초, 2023(화면 캡처)

  • 위: 〈목소리의 형태〉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3
    아래: 〈수동적 소통〉 2채널 영상 4분 55초, 2023

  • 〈청각장애 AI 학습〉 영상 5분 30초, 2022

《중간언어》(Intermediate Language)

김은설 | 2023.8.18. ~ 9.3. | 탈영역우정국 2층

작가는 소리 들림과 소리 들리지 않음의 세계 사이에 있다. 작가가 구사하고 있는 중간언어는 경계에 걸쳐있으며, 불안정하고 깨진 언어와 같다. 이 언어가 어떤 식으로 되어있을까? 새로운 언어일까? 모두에게도 통하는 언어일까? 엇갈림, 지연된 시간, 웅얼거림, 잔상, 촉각적인 덩어리,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언어, 흐르는 시각풍경을 두 세계에 완전하게 적용할 수 없지만, 재감각, 재해석을 거친 언어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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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원

큐레이터. 전시공간 시청각을 운영한다.

사진 제공.김은설

2023년 10월 (46호)

상세내용

리뷰

김은설의 《중간언어》에는 언어와 언어 사이의 관계를 찾고자 하는 작가의 움직임이 있다. 이때 언어는 말하기, 듣기, 멈추기, 걷기, 바라보기 등 신체를 둘러싼 많은 행위 등을 포함한다. 모국어에 한정된 질서정연한, 맞춤법을 전제로 하는 언어가 아니라, 작은 떨림, 접촉과 부딪힘, 스치듯 느껴지는 소음 등 많은 것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언어’이다. 이 언어들이 가득한 전시장에는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 세계의 소리를 배웠던 작가의 감각을 따라가는 여정이 하나씩 펼쳐진다.

작가 김은설이 다루는 언어의 범위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영상 작업 〈진동하는 몸의 대화〉에서부터 출발한다. 17분 11초의 시간을 지닌 이 영상 작업은 ‘중간언어’라는 전시 제목을 듣고 전시장을 찾았던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으레 어떤 소리가 들리고, 문자가 있고, 그 구술성과 문자성이 충돌하리라 생각했던 단조로운 예상을 빗나가는 것이다. 전시 공간에 놓인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몸이 가볍게 진동한다. 화면에는 소리가 아니라, 이미지가 시각을 꽉 채운다. 눈이 닿는 끝까지 두 사람의 피부, 팔뚝, 등과 목 사이의 근육이 보인다.

작가는 리플릿에서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 부모님의 몸과 맞대면서 목과 몸통의 울림, 입바람을 통해 촉각적으로 소리 언어를 배웠다”고 썼다. 이 경험과 기억에서 출발한 작가의 여정은 주변의 소리와 시각 이미지, 운동 이미지 그리고 수많은 대화의 장면과 틈에 개입한다. 영상 작업 〈진동하는 몸의 대화〉는 몸들이 만나는 사이에 공기의 부피, 질감, 소리를 총체적으로 담아낸다. 두 사람(퍼포머)의 밀착된 신체가 슬로우 모션, 혹은 신체를 담은 정지된 풍경(화), 그리고 ‘배움의 가이드’를 만들어 낸다.

김은설에게 언어는 이렇게 두 사람 사이, 두 존재 사이를 오가는 물질인 듯하다. 전시장의 다른 방으로 이동하면 위치해 있는 〈목소리의 형태〉와 〈수동적 소통〉은 보청기를 사용하며 시각, 촉각, 다른 감각을 통해 소리와 비/소리(소리 아닌 것)를 듣는 작가의 관측이 담겨있다. 오늘날 생산, 이동하는 언어의 엔트로피 사이에서 작가는 약간 늦게 도착한 언어, 그리고 너무 가깝거나 먼 거리를 공간 작업으로 제시했다. 영상 작업인 〈수동적 소통〉과 스마트폰, 레디메이드 얼굴 모형 등이 배치된 〈목소리의 형태〉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함께 보인다. 두 작업에는 스마트폰 화면, 문자 채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문자화된 대화의 목소리들이 한글 자막과 각종 말줄임표, 느낌표, 물음표, 구두점 등으로 ‘오간다’. 관객은 대화의 물질성을 다루는 이 두 작업을 보며 대화에 참여한다는 것과 개입한다는 것, 대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중간언어》의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작가 김은설이 소리를 바깥 세계와의 대화와 배움으로 계속해서 수신호, 송신호를 보낸다는 점이다. 작가는 질문과 가설을 세우고 이를 수집하고 자신의 실행과 퍼포머와의 협력을 통해 구체화한다. 전시장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영상 작업 〈청각장애 AI 학습〉은 인공지능이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 대해 질문한다. 입 모양과 언어습관, 데이터를 사이에 둔 인간과 인공지능의 배움은 어떤 새로운 언어 배우기의 과정을 만들어 낼까.

그 안에는 오류도 오해도 많을 것이다. 언어의 질서를 배우고, 그 어법과 사례를 통해 자신의 입 모양에 익히고 단어들을 배우는 행위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속되는 배움이자 실패의 연속이다. 탈영역우정국 2층 전시장 한쪽에 놓인 작가의 작업 〈소리 없는 소리〉는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발견한 ‘시각적인 소리’를 보여준다. 이 ‘시각적인 소리’라는 말은 필자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리플릿에 쓰여 있던 말이다. 움직이는 물고기들, 무늬들, 빛과 그림자 등이 모두 소리 없는 소리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작가가 알고 있는 언어 세계의 범위가 그야말로 넓고 깊다는 생각을 했다.

김은설의 《중간언어》는 전시장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수어통역, 한글자막, 음성해설을 진행한다. 전시장의 접근성 안내 자체가 그의 작업 원동력이기도 하고 관객과 만나는 실질적인 접촉 지대이기도 하다. 작가의 개인전은 오늘날 동시대 예술의 전시가 가져야 하는 접근성에 대한 실천을 체화하여 보여준다.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부터 이미 모든 소리를 안다고 착각하기도 하는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이동하며 듣고 나눠야 하는 다른 소리들을 쓰고 보는 세계를, 이 전시는 포괄한다.

  • 왼쪽: 〈소리 없는 소리〉 영상 5분, 2022
    오른쪽: 〈백색시각 - 탈영역우정국〉 드로잉, 2023

  • 〈진동하는 몸의 대화〉 진동스피커,
    영상 17분 11초, 2023(화면 캡처)

  • 위: 〈목소리의 형태〉 복합매체, 가변크기, 2023
    아래: 〈수동적 소통〉 2채널 영상 4분 55초, 2023

  • 〈청각장애 AI 학습〉 영상 5분 30초, 2022

《중간언어》(Intermediate Language)

김은설 | 2023.8.18. ~ 9.3. | 탈영역우정국 2층

작가는 소리 들림과 소리 들리지 않음의 세계 사이에 있다. 작가가 구사하고 있는 중간언어는 경계에 걸쳐있으며, 불안정하고 깨진 언어와 같다. 이 언어가 어떤 식으로 되어있을까? 새로운 언어일까? 모두에게도 통하는 언어일까? 엇갈림, 지연된 시간, 웅얼거림, 잔상, 촉각적인 덩어리,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언어, 흐르는 시각풍경을 두 세계에 완전하게 적용할 수 없지만, 재감각, 재해석을 거친 언어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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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원

큐레이터. 전시공간 시청각을 운영한다.

사진 제공.김은설

2023년 10월 (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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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1 14: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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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언어 개념 자체가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언어와 언어 사이에서 고민하시면서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 세계의 소리를 표현하시는 작가님의 전시를 꼭 한번 보고 싶어집니다.

2023-10-01 14: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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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궁금해지는 전시네요!! 계속 관람할수 있게 다른 곳에서도 전시해주세요~~~~

2023-09-21 19:5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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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초록빛 풀잎이 창밖을 가득 메운 잠깐 마법의 장소에 있는 듯한 전시였습니다.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사이의 무수한 파동들을 직간접적으로 느끼며 '감각'이란 무엇인가 질문하고 생각해 보는 전시였어요. 테이블에 놓여 스케치할 수 있게 해놓은 여백도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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