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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만나는 영유아·어린이 콘텐츠

트렌드 기성세대의 판타지에서 미래세대의 일상으로

  • 류승연 작가
  • 등록일 2023-11-01
  • 조회수336

리뷰

“우린 이미 늦었어. 먼저 가”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전쟁 영화에서 동료를 향해 외치는 말이 아니다. 기성세대 장애인식 전환에 한계를 느낄 때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걸고자 하는 순간에 나오는 말이다. 기성세대인 난, 장애인식도 낮고 장애 감수성도 없는 상태로 어른이 되었다. 변명해 보자면 나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장애인을 만났다. 그전엔 거리에서 오가며 스친 적도 없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연극을 보러 대학로에 갔는데 그곳에서 휠체어를 탄 신체장애인을 처음으로 만났다.

발달장애인은 더더욱 만날 기회가 없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본 발달장애인이 내 아들이다. 그런 내가 장애인의 가족이 됐으니, 아들이 자폐성 장애라니, 어땠겠는가. 오랜 시간 아들의 장애를 수용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나는 장애인식도 후지고 장애 감수성도 빵점인, 참 별로인 어른이었다. 기성세대의 많은 수가 나와 같은 어른으로 자란 것을 발견할 때마다, 이제 와 ‘아들의 엄마’인 나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면서 희망한다. 우리 세대는 어쩔 수 없었다면 다음 세대라도 우리와는 다르길.

하늘이와 별이의 등장

EBS 유아·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에서 휠체어에 탄 ‘하늘이’가 처음 등장했을 때 환호했다. “오~ 정말이야? 드디어 우리나라도 뭔가 변하고 있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폐성 장애가 있는 ‘별이’가 등장하자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미디어에서 발달장애인 노출 빈도가 늘어나고 있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신드롬을 일으키며 자폐성 장애에 대한 전국적인 이해도를 높였고,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다운증후군 당사자인 정은혜 작가가 등장하며 현실감을 높였다. 〈일타 스캔들〉에서는 전도연 배우의 남동생 역으로 자폐성 장애의 일환인 아스퍼거 증후군 캐릭터가 등장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렇게 미디어 노출이 늘어났지만, 아직 시청 대상은 어른에 한정돼 있었다.

이런 콘텐츠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기성세대인 어른들의 장애인식까지 바꾸기엔 한계가 있었다. 단발적인 데다 그 순간의 감정에 ‘반짝’하고 호소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기초등학교 사건이 터지자 우영우에 열광했던 그 많은 사람이 발달장애인에게서 등을 돌렸다. 중증장애인은 통합교육이 아니라 특수학교에 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딩동댕 유치원〉의 입지는 다르다. 우영우가 반짝 스치고 지난 ‘어른들의 판타지’였다면 하늘이와 별이는 연속해서 이어지는 ‘아이들의 일상’이다. 장애인이 유치원에서 만나는 여러 친구 중 한 명으로 자연스럽게 각인된다는 점에서 프로그램 시청 대상인 다음 세대의 장애인식과 장애 감수성은 기성세대와 다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다음 세대를 위한 기대와 희망

미국에 사는 남동생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조카들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을 보다가 그네의 형태에 눈길이 갔다. 우리나라 놀이터에 있는 그네와 형태가 달랐다. 4개의 그네가 일렬로 있었는데, 2개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그네였고 나머지 두 개는 등받이가 있는 그네였다. 등받이가 있는 그네라면 〈딩동댕 유치원〉의 하늘이(신체장애인)도 탈 수 있을 것이고, 그네 탈 때마다 줄을 야무지게 붙잡지 못해 뒤로 발라당 넘어질 우려가 있는 우리 아들(발달장애인)도 안전하게 탈 수 있었을 터였다.

이미 미국에서는 일상생활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구축돼 있다는 방증이었다. 미국도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친 여러 노력이 있었을 것이고, 아마도 확장성이 넓은 미디어가 장애인식 변화의 선두 주자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1969년부터 방송된 미국의 어린이 대상 TV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에는 그동안 여러 유형의 장애인 캐릭터가 등장해 왔다. 〈세서미 스트리트〉를 보면서 자란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구성원이 되자 장애 관련 제도와 정책이 발전했고 일상의 환경이 변했다. 〈딩동댕 유치원〉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변화가 20년 뒤의 대한민국을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된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는 이유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 앞으로 EBS 프로그램 〈뽀롱뽀롱 뽀로로〉 새 시즌에서, 〈뿡뿡빵빵 부부맨〉 새로운 에피소드에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을 자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그로 인해 지금의 영유아기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땐 ‘장애’가 더 이상 낯선 무엇이 아니길 바란다. 기성세대인 우린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다음 세대는 우리와 다르길 바라본다.

  • 딩동댕 유치원

    EBS 〈딩동댕 유치원〉 출연자

  • EBS 〈딩동댕 유치원〉 별이

류승연

전직 기자, 현직 작가 겸 칼럼니스트.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뉴스토마토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배려의 말들』이 있다.
scaletqueen@hanmail.net

사진 제공.EBS 〈딩동댕 유치원〉

2023년 11월 (47호)

상세내용

리뷰

“우린 이미 늦었어. 먼저 가”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전쟁 영화에서 동료를 향해 외치는 말이 아니다. 기성세대 장애인식 전환에 한계를 느낄 때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걸고자 하는 순간에 나오는 말이다. 기성세대인 난, 장애인식도 낮고 장애 감수성도 없는 상태로 어른이 되었다. 변명해 보자면 나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장애인을 만났다. 그전엔 거리에서 오가며 스친 적도 없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연극을 보러 대학로에 갔는데 그곳에서 휠체어를 탄 신체장애인을 처음으로 만났다.

발달장애인은 더더욱 만날 기회가 없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본 발달장애인이 내 아들이다. 그런 내가 장애인의 가족이 됐으니, 아들이 자폐성 장애라니, 어땠겠는가. 오랜 시간 아들의 장애를 수용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나는 장애인식도 후지고 장애 감수성도 빵점인, 참 별로인 어른이었다. 기성세대의 많은 수가 나와 같은 어른으로 자란 것을 발견할 때마다, 이제 와 ‘아들의 엄마’인 나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면서 희망한다. 우리 세대는 어쩔 수 없었다면 다음 세대라도 우리와는 다르길.

하늘이와 별이의 등장

EBS 유아·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에서 휠체어에 탄 ‘하늘이’가 처음 등장했을 때 환호했다. “오~ 정말이야? 드디어 우리나라도 뭔가 변하고 있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폐성 장애가 있는 ‘별이’가 등장하자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미디어에서 발달장애인 노출 빈도가 늘어나고 있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신드롬을 일으키며 자폐성 장애에 대한 전국적인 이해도를 높였고,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다운증후군 당사자인 정은혜 작가가 등장하며 현실감을 높였다. 〈일타 스캔들〉에서는 전도연 배우의 남동생 역으로 자폐성 장애의 일환인 아스퍼거 증후군 캐릭터가 등장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렇게 미디어 노출이 늘어났지만, 아직 시청 대상은 어른에 한정돼 있었다.

이런 콘텐츠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기성세대인 어른들의 장애인식까지 바꾸기엔 한계가 있었다. 단발적인 데다 그 순간의 감정에 ‘반짝’하고 호소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기초등학교 사건이 터지자 우영우에 열광했던 그 많은 사람이 발달장애인에게서 등을 돌렸다. 중증장애인은 통합교육이 아니라 특수학교에 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딩동댕 유치원〉의 입지는 다르다. 우영우가 반짝 스치고 지난 ‘어른들의 판타지’였다면 하늘이와 별이는 연속해서 이어지는 ‘아이들의 일상’이다. 장애인이 유치원에서 만나는 여러 친구 중 한 명으로 자연스럽게 각인된다는 점에서 프로그램 시청 대상인 다음 세대의 장애인식과 장애 감수성은 기성세대와 다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다음 세대를 위한 기대와 희망

미국에 사는 남동생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조카들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을 보다가 그네의 형태에 눈길이 갔다. 우리나라 놀이터에 있는 그네와 형태가 달랐다. 4개의 그네가 일렬로 있었는데, 2개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그네였고 나머지 두 개는 등받이가 있는 그네였다. 등받이가 있는 그네라면 〈딩동댕 유치원〉의 하늘이(신체장애인)도 탈 수 있을 것이고, 그네 탈 때마다 줄을 야무지게 붙잡지 못해 뒤로 발라당 넘어질 우려가 있는 우리 아들(발달장애인)도 안전하게 탈 수 있었을 터였다.

이미 미국에서는 일상생활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구축돼 있다는 방증이었다. 미국도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친 여러 노력이 있었을 것이고, 아마도 확장성이 넓은 미디어가 장애인식 변화의 선두 주자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1969년부터 방송된 미국의 어린이 대상 TV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에는 그동안 여러 유형의 장애인 캐릭터가 등장해 왔다. 〈세서미 스트리트〉를 보면서 자란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구성원이 되자 장애 관련 제도와 정책이 발전했고 일상의 환경이 변했다. 〈딩동댕 유치원〉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변화가 20년 뒤의 대한민국을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된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는 이유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 앞으로 EBS 프로그램 〈뽀롱뽀롱 뽀로로〉 새 시즌에서, 〈뿡뿡빵빵 부부맨〉 새로운 에피소드에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을 자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그로 인해 지금의 영유아기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땐 ‘장애’가 더 이상 낯선 무엇이 아니길 바란다. 기성세대인 우린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다음 세대는 우리와 다르길 바라본다.

  • 딩동댕 유치원

    EBS 〈딩동댕 유치원〉 출연자

  • EBS 〈딩동댕 유치원〉 별이

류승연

전직 기자, 현직 작가 겸 칼럼니스트.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뉴스토마토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배려의 말들』이 있다.
scaletqueen@hanmail.net

사진 제공.EBS 〈딩동댕 유치원〉

2023년 11월 (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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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9 13: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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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해와 비장해가 구분없이 함께 어울리면서 살수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2023-11-12 17: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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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일상이 되는 BARRIER FREE 사회가 잘 조성되기를 희망합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2023-11-05 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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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 드라마와 우리들의 블루스 영화가 장애인식에 대해 분위기를 전환하는데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일반대중에게 큰 역할을 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번에 딩동댕 유치원은 더 한걸음 높이 평가를 내리시니 기대가 됩니다. 장애와 비장애 구분없이 함께 조화롭게 어울러져서 모두가 행복하고 희망 넘치는 우리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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