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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청년단 〈생활의 비용〉

리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비용인가

  • 김지수 극단 애인 단원
  • 등록일 2023-11-01
  • 조회수346

이슈

나의 관극은 주로 SNS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궁금한 창작진, 보고 싶은 배우, 기대되는 시놉시스 등이 연극을 선택하는 우선순위지만 사실 그 어떤 개인적인 취향보다 더 중요한 기준은 바로 접근성이다. 미아리고개예술극장은 2018년부터 휠체어 접근이 가능해졌다. 처음 경사로를 설치하였다는 소식과 공연 관람 초대를 받고 관극하러 가던 날의 기쁨이 지금까지도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되살아나곤 한다. 마침 〈생활의 비용〉(마티나 마이옥 작, 정지수 각색·연출)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 배우가 출연한다는 것은 더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연출은 이 연극을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시놉시스에는 각각의 인물들이 사회적·경제적·정서적·신체적으로 서로 다른 취약성과 특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쓰여있다. 그런데 나는 왠지 취약성과 특권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 인물을 연기하는 방식

〈생활의 비용〉에는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비장애인 에드와 제스, 그리고 장애인 안나와 존. 이 네 인물을 세 명의 비장애인 배우와 한 명의 장애인 배우가 연기한다. 장애 인물 중 ‘안나’는 비장애인 여성 배우가, ‘존’은 뇌병변장애가 있는 황철호 배우가 역할을 맡았다.

에디와의 이혼을 앞두고 별거 중인 안나는 교통사고로 척수장애를 갖게 된 여성이다. 목 아래로 마비가 있는 경추손상 장애로 추측되는 안나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조이스틱을 조작하지 않는 손은 전동휠체어의 팔걸이에 얹어 손가락을 가지런히 펴서 밴드로 고정하고 나온다. 그런데 그 부분이 오히려 비장애 배우의 몸을 움직일 수 없게 하는 효과(?)로 ‘진짜 장애인 같아 보인다, 장애인 연기를 잘한다(?)’고 느껴지게 하는 장치가 된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안나는 골방에 틀어박혀 장애를 맘껏 슬퍼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응축된 에너지가 담긴 목소리와 연기로 마주하는 시련을 표현한다. 만약 척수장애인 배우가 연기했다면 그렇게 큰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을 테고, 괴팍하기보다는 예민하고 날카롭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비장애 배우의 정확하고 큰 목소리와 연기에 관객들은 ‘안나’라는 인물을 훨씬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부유한 명문대 박사과정생이자 뇌성마비 장애인 존 역할을 맡는 황철호 배우는 〈생활의 비용〉에서 다른 작품에 출연했을 때보다 정확한 발음과 빠른 호흡으로 대사를 했다. 말이 빠르고 급한 편인 활동지원 아르바이트생 제스와 호흡이 잘 맞았고, 제스의 호흡 사이에 존의 호흡을 넣고 빼는 게 능수능란해서 놀랐다.

그리고 극 중에서 너무나 잘 어울렸던 것은 황철호 배우의 휠체어였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에게 휠체어는 몸의 일부다. 몸에 잘 맞고, 등받이 조절, 시트의 각도 조절, 엘리베이팅 등 기능이 많고 디자인도 멋진 휠체어를 탔다는 것은 그만큼 휠체어를 자신의 몸으로 생각한다는 것이고, 자기 휠체어에 대한 감각과 센스뿐 아니라 경제적인 면까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평소에도 황철호 배우는 패션과 휠체어에 장착한 액세서리 등에서 늘 맵시꾼이고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배우다. 얼마 전에 새로 산 전동휠체어는 중륜구동 휠체어로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할 수 있고, 좁은 공간에서도 방향 전환이 잘 돼서 빠르면서도 섬세한 움직임 연출에 정말 잘 어울렸다. 극 중 목욕 장면에서 타고 나온 수동휠체어 또한 황철호 배우가 한쪽 발을 바닥에 밀착시키며 움직일 때 훨씬 더 가볍고 탄력적인 느낌을 주어 인물 간의 거리감을 표현하는 데 한몫을 담당했다. 적절한 휠체어의 기능 위에 배우의 숙련된 드라이빙 실력이 어우러져 극 중 존의 대사처럼 ‘쌔끈하게’ 보였다.

돌봄의 장면을 보는 시선

비장애인들은 장애인 ‘돌봄’을 통해 마음의 위안과 돈을 벌고, 육체적·정신적 비용을 지불한다. 그렇다면 장애 인물들의 소득이나 비용은 무엇일까? 안나와 존은 모두 목욕 장면이 나온다. 에드가 욕조에 앉아 있는 안나를 씻겨주고 제스는 존의 샤워를 지원한다. 안나는 척수장애를 갖게 된 자신을 돌보고 싶어 하는 남편을 받아들이고 나서, 존은 활동지원사를 고용할 때부터 자기를 씻겨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욕 장면에서 두 인물 모두 신체를 노출한다.

대부분의 장애인이 활동지원을 받지만, 모두가 목욕 지원을 받지는 않는다.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취약성 외에 목욕할 때조차 타인의, 게다가 이성에게 목욕 지원을 받는 일을 재현해야 했을까? 안나의 경우는 장애를 갖기 전까지 남편이었던 사람에게 마비가 된 몸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런 상황이 아무렇지 않을 수 없을 테고, 극 중의 안나 역시 특유의 괴팍한 농담과 타박으로 상실과 슬픔의 감정을 담아낸다. 그 장면을 척수장애인이 연기했다면 탈의와 이동 등 실제로 많은 지원이 필요했겠지만, 안나가 욕조에 빠지는 순간의 연기는 다른 결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존 역시 낯선 이성에게 자신의 몸을 내보이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몸을 움직인다. 이것이 매일의 일상이라 할지라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인 텐데, 장애인의 수만 가지 일상 중 목욕 지원을 받는 장면을 담았다면 지원을 받는 사람의 입장을 조금 더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입장이 중심인 그림은 현실에서 너무나 자주 보아왔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감정과 기분에는 주목하지 않는 일상을 무대에서까지 반복하는 것은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으면서 생활하는 장애인의 신체 노출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고 타자화하는 재생산이 아닌가 싶었다.

비장애인의 취약성만 남은 결말

공연의 마지막은 제스와 에드의 장면에서 마무리가 된다. 에드는 자신의 작은 부주의로 안나가 세정맥에 혈전이 생겨서 사망했다는 결과만을 알려줄 뿐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존 또한 고대하던 여자친구와의 약속은 어찌 되었는지, 한순간에 활동지원사가 계약을 파기하고 나가 버린 후 그의 일상은 또 얼마나 엉망이 되어버렸는지,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는 데 들여야 할 수고에 대해서도 보여주지 않는다. 제스가 오해의 마음으로 존의 집에 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존은 제스에게 왜 저녁 시간에 자신의 집에 와달라고 하는지를 말하지 않았고, 제스 역시 데이트 신청인지 추가 근무 요청인지 묻지 않았기에 일어난 일인데, 관객들은 대부분 제스의 감정에만 이입하는 것 같았다.

만약 마지막 장면에 존과 에드 혹은 제스와 안나가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활동지원을 받지 못하면 먹고, 자고, 배변을 보고, 사랑하는 일도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있는 장애인이 크고 작은 일로 마음이 상하면 그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갈 수 있는 활동지원사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을까? 고용주와 피고용인으로서 어떻게 대등하면서도 의무를 다하는 관계를 가능하면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평생의 과업인 삶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면, 혹은 부부였던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나 활동지원사와 이용자로 만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달라지고 어떤 감정을 주고받는 관계로 이어지는 것인지,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혹은 장애가 있어도 어떤 부분에서 호감이나 연민 혹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 인물 각자의 취약함과 특권에 대해서 대등하게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제스와 에드, 비장애 인물들의 외로움과 취약성을 나누는 데서 연극은 끝이 난다.

내가 기다리는 무대는

장애 당사자로서 공연의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아쉬운 점을 이야기했지만, 장애·비장애 배우들의 협업으로 장애 인물이 등장하는 연극이 상연된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앞으로 장애 배우들이 인물, 동물 혹은 무생물로 다양한 배역을 맡을 수 있고 그런 작품이 공연될 테고, 나는 그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극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장애인이 등장하는, 장애인 중심에서의, 장애인의 생활이 담긴 공연을 보고 싶다. 아직 무대에 올려지지 않은 장애인들의 재기발랄하고, 깊이 있고, 분노스럽고, 구질구질하지만 매력적인 삶이 담긴 공연을 기다린다.

  • 문밖에 휠체어를 탄 여자가 있고 문 안의 남자가 손을 뻗어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
  • 여자와 남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 남자는 휠체어를 타고 있다.
  • 머리에 수건을 두른 남자와 손에 목욕타월을 쥔 여자가 앞뒤로 나란히 앉아 있다.
COST OF LIVING 생활의 비용

〈생활의 비용〉

극단 청년단|2023.9.6. ~ 9.10. | 미아리고개예술극장 (서울)

마티나 마이옥 작, 정지수 각색·연출 〈생활의 비용(Cost of Living)〉은 사회적·경제적·정서적·신체적으로 서로 다른 취약성과 특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인물들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극화하면서 그 가운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관계 맺음과 상호돌봄은 온전하고 안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지만, 서로 다른 위치성을 가진 인물들 사이에는 쉽게 건널 수 없는 장벽이 있다. 두 쌍의 인물을 통해 경제와 생존 문제로 바라본 인간의 외로움에 집중한다.

▸[문화소식] 공연정보

김지수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교육,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부터 연극을 시작했고, 2007년 극단 애인을 창단하고 최근까지 대표를 맡았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고도를 기다리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한달이〉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auleala@daum.net

사진 제공.극단 청년단

2023년 11월 (47호)

상세내용

이슈

나의 관극은 주로 SNS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궁금한 창작진, 보고 싶은 배우, 기대되는 시놉시스 등이 연극을 선택하는 우선순위지만 사실 그 어떤 개인적인 취향보다 더 중요한 기준은 바로 접근성이다. 미아리고개예술극장은 2018년부터 휠체어 접근이 가능해졌다. 처음 경사로를 설치하였다는 소식과 공연 관람 초대를 받고 관극하러 가던 날의 기쁨이 지금까지도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되살아나곤 한다. 마침 〈생활의 비용〉(마티나 마이옥 작, 정지수 각색·연출)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 배우가 출연한다는 것은 더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연출은 이 연극을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시놉시스에는 각각의 인물들이 사회적·경제적·정서적·신체적으로 서로 다른 취약성과 특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쓰여있다. 그런데 나는 왠지 취약성과 특권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 인물을 연기하는 방식

〈생활의 비용〉에는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비장애인 에드와 제스, 그리고 장애인 안나와 존. 이 네 인물을 세 명의 비장애인 배우와 한 명의 장애인 배우가 연기한다. 장애 인물 중 ‘안나’는 비장애인 여성 배우가, ‘존’은 뇌병변장애가 있는 황철호 배우가 역할을 맡았다.

에디와의 이혼을 앞두고 별거 중인 안나는 교통사고로 척수장애를 갖게 된 여성이다. 목 아래로 마비가 있는 경추손상 장애로 추측되는 안나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조이스틱을 조작하지 않는 손은 전동휠체어의 팔걸이에 얹어 손가락을 가지런히 펴서 밴드로 고정하고 나온다. 그런데 그 부분이 오히려 비장애 배우의 몸을 움직일 수 없게 하는 효과(?)로 ‘진짜 장애인 같아 보인다, 장애인 연기를 잘한다(?)’고 느껴지게 하는 장치가 된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안나는 골방에 틀어박혀 장애를 맘껏 슬퍼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응축된 에너지가 담긴 목소리와 연기로 마주하는 시련을 표현한다. 만약 척수장애인 배우가 연기했다면 그렇게 큰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을 테고, 괴팍하기보다는 예민하고 날카롭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비장애 배우의 정확하고 큰 목소리와 연기에 관객들은 ‘안나’라는 인물을 훨씬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부유한 명문대 박사과정생이자 뇌성마비 장애인 존 역할을 맡는 황철호 배우는 〈생활의 비용〉에서 다른 작품에 출연했을 때보다 정확한 발음과 빠른 호흡으로 대사를 했다. 말이 빠르고 급한 편인 활동지원 아르바이트생 제스와 호흡이 잘 맞았고, 제스의 호흡 사이에 존의 호흡을 넣고 빼는 게 능수능란해서 놀랐다.

그리고 극 중에서 너무나 잘 어울렸던 것은 황철호 배우의 휠체어였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에게 휠체어는 몸의 일부다. 몸에 잘 맞고, 등받이 조절, 시트의 각도 조절, 엘리베이팅 등 기능이 많고 디자인도 멋진 휠체어를 탔다는 것은 그만큼 휠체어를 자신의 몸으로 생각한다는 것이고, 자기 휠체어에 대한 감각과 센스뿐 아니라 경제적인 면까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평소에도 황철호 배우는 패션과 휠체어에 장착한 액세서리 등에서 늘 맵시꾼이고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배우다. 얼마 전에 새로 산 전동휠체어는 중륜구동 휠체어로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할 수 있고, 좁은 공간에서도 방향 전환이 잘 돼서 빠르면서도 섬세한 움직임 연출에 정말 잘 어울렸다. 극 중 목욕 장면에서 타고 나온 수동휠체어 또한 황철호 배우가 한쪽 발을 바닥에 밀착시키며 움직일 때 훨씬 더 가볍고 탄력적인 느낌을 주어 인물 간의 거리감을 표현하는 데 한몫을 담당했다. 적절한 휠체어의 기능 위에 배우의 숙련된 드라이빙 실력이 어우러져 극 중 존의 대사처럼 ‘쌔끈하게’ 보였다.

돌봄의 장면을 보는 시선

비장애인들은 장애인 ‘돌봄’을 통해 마음의 위안과 돈을 벌고, 육체적·정신적 비용을 지불한다. 그렇다면 장애 인물들의 소득이나 비용은 무엇일까? 안나와 존은 모두 목욕 장면이 나온다. 에드가 욕조에 앉아 있는 안나를 씻겨주고 제스는 존의 샤워를 지원한다. 안나는 척수장애를 갖게 된 자신을 돌보고 싶어 하는 남편을 받아들이고 나서, 존은 활동지원사를 고용할 때부터 자기를 씻겨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욕 장면에서 두 인물 모두 신체를 노출한다.

대부분의 장애인이 활동지원을 받지만, 모두가 목욕 지원을 받지는 않는다.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취약성 외에 목욕할 때조차 타인의, 게다가 이성에게 목욕 지원을 받는 일을 재현해야 했을까? 안나의 경우는 장애를 갖기 전까지 남편이었던 사람에게 마비가 된 몸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런 상황이 아무렇지 않을 수 없을 테고, 극 중의 안나 역시 특유의 괴팍한 농담과 타박으로 상실과 슬픔의 감정을 담아낸다. 그 장면을 척수장애인이 연기했다면 탈의와 이동 등 실제로 많은 지원이 필요했겠지만, 안나가 욕조에 빠지는 순간의 연기는 다른 결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존 역시 낯선 이성에게 자신의 몸을 내보이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몸을 움직인다. 이것이 매일의 일상이라 할지라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인 텐데, 장애인의 수만 가지 일상 중 목욕 지원을 받는 장면을 담았다면 지원을 받는 사람의 입장을 조금 더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입장이 중심인 그림은 현실에서 너무나 자주 보아왔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감정과 기분에는 주목하지 않는 일상을 무대에서까지 반복하는 것은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으면서 생활하는 장애인의 신체 노출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고 타자화하는 재생산이 아닌가 싶었다.

비장애인의 취약성만 남은 결말

공연의 마지막은 제스와 에드의 장면에서 마무리가 된다. 에드는 자신의 작은 부주의로 안나가 세정맥에 혈전이 생겨서 사망했다는 결과만을 알려줄 뿐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존 또한 고대하던 여자친구와의 약속은 어찌 되었는지, 한순간에 활동지원사가 계약을 파기하고 나가 버린 후 그의 일상은 또 얼마나 엉망이 되어버렸는지,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는 데 들여야 할 수고에 대해서도 보여주지 않는다. 제스가 오해의 마음으로 존의 집에 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존은 제스에게 왜 저녁 시간에 자신의 집에 와달라고 하는지를 말하지 않았고, 제스 역시 데이트 신청인지 추가 근무 요청인지 묻지 않았기에 일어난 일인데, 관객들은 대부분 제스의 감정에만 이입하는 것 같았다.

만약 마지막 장면에 존과 에드 혹은 제스와 안나가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활동지원을 받지 못하면 먹고, 자고, 배변을 보고, 사랑하는 일도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있는 장애인이 크고 작은 일로 마음이 상하면 그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갈 수 있는 활동지원사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을까? 고용주와 피고용인으로서 어떻게 대등하면서도 의무를 다하는 관계를 가능하면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평생의 과업인 삶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면, 혹은 부부였던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나 활동지원사와 이용자로 만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달라지고 어떤 감정을 주고받는 관계로 이어지는 것인지,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혹은 장애가 있어도 어떤 부분에서 호감이나 연민 혹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 인물 각자의 취약함과 특권에 대해서 대등하게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제스와 에드, 비장애 인물들의 외로움과 취약성을 나누는 데서 연극은 끝이 난다.

내가 기다리는 무대는

장애 당사자로서 공연의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아쉬운 점을 이야기했지만, 장애·비장애 배우들의 협업으로 장애 인물이 등장하는 연극이 상연된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앞으로 장애 배우들이 인물, 동물 혹은 무생물로 다양한 배역을 맡을 수 있고 그런 작품이 공연될 테고, 나는 그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극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장애인이 등장하는, 장애인 중심에서의, 장애인의 생활이 담긴 공연을 보고 싶다. 아직 무대에 올려지지 않은 장애인들의 재기발랄하고, 깊이 있고, 분노스럽고, 구질구질하지만 매력적인 삶이 담긴 공연을 기다린다.

  • 문밖에 휠체어를 탄 여자가 있고 문 안의 남자가 손을 뻗어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
  • 여자와 남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 남자는 휠체어를 타고 있다.
  • 머리에 수건을 두른 남자와 손에 목욕타월을 쥔 여자가 앞뒤로 나란히 앉아 있다.
COST OF LIVING 생활의 비용

〈생활의 비용〉

극단 청년단|2023.9.6. ~ 9.10. | 미아리고개예술극장 (서울)

마티나 마이옥 작, 정지수 각색·연출 〈생활의 비용(Cost of Living)〉은 사회적·경제적·정서적·신체적으로 서로 다른 취약성과 특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인물들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극화하면서 그 가운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관계 맺음과 상호돌봄은 온전하고 안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지만, 서로 다른 위치성을 가진 인물들 사이에는 쉽게 건널 수 없는 장벽이 있다. 두 쌍의 인물을 통해 경제와 생존 문제로 바라본 인간의 외로움에 집중한다.

▸[문화소식] 공연정보

김지수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교육,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부터 연극을 시작했고, 2007년 극단 애인을 창단하고 최근까지 대표를 맡았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고도를 기다리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한달이〉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auleala@daum.net

사진 제공.극단 청년단

2023년 11월 (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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