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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경 성악가

인터뷰 손끝에서 시작하는 노래

  • 박다현 작곡가·예술교육가
  • 등록일 2023-11-01
  • 조회수347

인터뷰

강유경 성악가를 만나기 전 그에 대한 소개 글을 읽어보았다. 성악가로,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점점 시력이 나빠지면서 대학원 시절 중도 실명을 하게 되었다. 이후 잠깐의 공백기를 가진 후 다시 활동하고 있다는 그는 현재 점자 악보를 만들고 음악교육가로 활동하며 합창단원과 성악가로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성악가에서, 이제는 하나의 음악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모두 함께하고 있는 음악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호기심을 품고 강유경 성악가를 만나보았다.

  • 강유경 성악가가 책장을 배경으로 악보를 들고 앉아 있다.

음악가로서 영역 넓혀가기

성악가로 무대에 서는 것 외에도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활동인지 잠깐 소개해 달라.

요즘은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하 실로암복지관)에서 음악교정사 활동을 가장 집중적으로 하고 있고, 그 외에 여러 일도 함께하고 있다. 음악재활아카데미에서 음악에 취미를 갖고 있거나, 음악으로 재활 활동을 하는 시각장애인분들께 성악을 가르치기도 하고, 복지관 직원 합창단으로도 참여해 내부 행사뿐만 아니라 외부 공연도 많이 다닌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시소TV - 시각장애인들의 소소한 이야기’에도 참여하고 있다. 장애인식 개선 활동의 일환으로 시각장애를 갖게 되면서 겪게 된 소소한 이야기나, 시각장애가 생긴 이후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나누고 있다. 내가 무대에 서는 사람이다 보니 아무래도 카메라 앞에서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성격도 활발한 편이라 촬영이 재미있다.

정말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가능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하게 되었나?

처음 실로암복지관에 입사했을 때는 저시력이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업무도, 비장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업무도 잘하지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소리로 컴퓨터를 쓰고, 점자로 일하는 것을 배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역할을 찾아 삶의 가치를 다시 높여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때부터 점자를 익히고 소리로 화면의 텍스트를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다 보니 점점 역할도 많아졌다.

어떻게 보면 실로암복지관에 온 것이 터닝포인트인 것 같다.

맞다. 내 눈이 15년에 걸쳐서 점점 안 보이게 되었는데, 막바지에 시력을 잃을 때쯤엔 무엇이든 다 사진을 찍어서 확대해서 봐야 했다. 이제 진짜 할 수 있는 게 없겠다고 자포자기하고 있을 무렵에 우연히 실로암복지관에 오게 되었다. 복지관에 오기 전까지는 내 주변에 시각장애인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많은 시각장애인을 만났을 때 굉장히 충격받았다. 시각장애인도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었고, 여러 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장애를 처음 맞이하게 되면서 주변 비장애인 친구들도 장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서로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이곳에서 시각장애인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위로도 얻고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에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면 처음 성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극단 배우로도 활동했다고 들었는데 클래식 외에도 다양한 장르에 관심 있는 것 같다.

부모님이 성악을 전공하셨다. 그러다 보니 어릴 적부터 음악회에 자주 따라다녔는데, 클래식 공연을 볼 때면 늘 자다가 박수 소리가 들리면 깨서 따라 치곤 했다. 자장가처럼 편안해서 그랬나 보다. (웃음) 오히려 뮤지컬 같이 활기찬 공연을 보면 궁금증이 생기고 집중도가 높아진다. 성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뮤지컬 〈캣츠〉를 보고 나서다. 뮤지컬 배우를 하려면 노래를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악을 배우기 시작한 건데, 하다 보니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부모님의 영향 덕분인지 타고난 목소리가 소프라노다. 가요는 진짜 못 부른다. 흔히들 말하는 ‘공기 반 소리 반’이 어떻게 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웃음)

성악가로서 곡을 부를 때는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는가? 곡을 해석할 때 어떤 기준이 있는지 궁금하다.

예전에는 묵자 악보(점자 악보의 원본이 되는 인쇄 악보)에 적힌 악상이나 음악적인 장치 등을 고려하여 해석했다면, 요즘은 가사 전달이나 표현에 좀 더 집중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곡가가 의도한 대로 표현이 되는 것 같다. 어떤 공연을 볼 때 노래는 정말 잘하는데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가사 전달만 잘 되어도 음악적인 표현과 감정이 전달되어 듣는 사람과 부르는 사람이 같은 감정을 교감한다고 느낀다.

한 곡을 선보이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을 것 같다. 어떤 작업을 거쳐 곡을 준비하나?

이제는 묵자 악보를 보면서 연습하거나 외울 수 없어서, 먼저 주변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악보에 표현된 걸 정확하게 녹음해주면, 그걸 무한 반복해서 들으면서 일단 외운다. 그다음엔 점자 악보를 통해서 정확한 가사, 음정, 박자를 확인한다. 잘못 암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단 정확한 악보를 확인한 후에 다양한 해석을 듣고 나의 해석과 비슷한 것을 접목하거나 새로운 부분을 적용하는 편이다. 옛날에 비해서 한 곡을 새로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몇십 배는 늘어난 것 같다.

평소 여가 시간에는 어떤 것을 즐기는지 궁금하다. 음악가로서 영감을 얻거나 자극을 얻는 취미활동이 있나?

공연을 많이 본다. 원래도 뮤지컬을 하고 싶었던 터라 뮤지컬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공연 보는 데 투자하는 돈은 아깝지 않다. 공연을 볼 때면 이런 음악도 하고 싶다든지 저런 무대에도 서고 싶다는 자극을 받기 때문에 나의 예술 활동을 지속하는 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왼손 검지에서 시작되는 음악

점자 악보를 만드는 음악교정사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처음에는 점자에 손을 딱 얹었을 때 뭐가 느껴지냐는 질문에 그냥 울퉁불퉁하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점자를 읽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내가 점자에 재능이 있었다. 점자를 배운 지 6개월 만에 점역교정사 3급을 취득했다. 이후 2년 만에 1급 점역교정사가 되었다. 점역교정사는 쉽게 말해서 틀린 것을 찾아 고치는 직업이다. 진득하고 꼼꼼한 성격에 잘 맞는다. 사실 나는 이전에는 독서 같은 정적인 취미활동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정하는 일은 재미있었다. 틀린 것을 딱 찾았을 때 희열이 있다. 나에게 굉장히 잘 맞는 직업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또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부터 모든 걸 도움받아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는데, 점자 악보를 만들면서 나와 같은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이 생겼다.

하나의 점자 악보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묵자 악보도 다양한 해석을 가진 여러 버전이 있을 텐데 어떤 기준으로 음악을 점역하고 악보를 만드나?

점자 악보를 제작할 때 비시각장애인 점역사와 시각장애인 교정사, 이렇게 2명이 협업한다. 먼저 점역사가 묵자 악보를 점자로 점역한 후 점역된 파일과 묵자 악보를 동시에 보고 교정사가 점자 파일을 소리 내어 읽으며 교정 작업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묵자 악보에 있는 내용을 최대한 정확하게 모두 점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야 시각장애인도 악보를 정확하고 빠짐없이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출판사마다 묵자 악보가 다르기도 하다. 그럴 땐 여러 출판사의 다양한 악보를 찾아 비교해 본 후에 수많은 논의 끝에 점역한다. 교정사는 그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좀 더 보기 편한 방식을 고민하기도 한다. 교정 작업이 끝나면 최종적으로 검수 작업을 거쳐 악보가 탄생한다.

복지관에서 성악 레슨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하다. 노래를 가르치고 배울 때 다르게 와 닿는 게 있을 것 같다.

내가 시각장애를 겪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이렇게 해보세요”라는 말이었다. ‘이렇게’가 어떤 것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수업에서는 ‘이렇게’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한다. 참여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잘 상상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서 함께 손을 잡고 움직이면서 몸으로 알려 드리기도 하고, 말로 자세히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비유를 자주 든다. 예를 들면 “피자의 모차렐라 치즈가 늘어나는데 끊어지지 않는 것처럼 해보세요.” “스쿼트 하는 자세처럼 호흡해볼까요?” 이런 식이다. 이 과정에서 나 역시 이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한 음악적 표현을 다양하게 떠올리게 된다. 수업하다 보면 이 시간이 단순히 노래를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각장애인으로서 함께 마음을 나누고, 동료로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보행도 어려운 분이 음악수업을 위해 1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오시면서,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며 감사하다는 말씀을 해주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 수업하면서 음악이 삶에 활기를 가져오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는 것을 나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지속 가능한 무대를 꿈꾸다

이렇게 음악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취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사실 가장 큰 성취라고 하면 나 스스로 독립하고 자립하게 된 것이다. 눈이 꾸준히 나빠지는데, 어느 시기부터는 나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공연하는 무대와 일상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가 계속 이어졌다. 주변 사람들도 나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그 시간을 함께 겪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눈이 안 보여도 노래는 계속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엔 내가 음악을 하고 성악을 해 온 것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다잡고 음악을 나의 무기로 다시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예술인으로 다시 활동하게 된 것이 내 음악 생활에서 가장 큰 성취다. 더 나아가 지금 하고 있는 활동들을 통해 나처럼 음악으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지는 것이 그다음 성취다.

이 많은 일을 하게 된 원동력을 알 것 같다.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사회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을까?

사실 나는 아직 독립 보행을 못 한다. 젊은 여자로서 혼자 흰지팡이를 짚고 다니다가 도와줘야겠다기보다 공격해도 모를 거라는 위험한 상황을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변에 노출하는 게 아직 무섭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온화하고 서로 공존하는 분위기가 되어 편하게 도움을 요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충격적인 일도 있었다. 나는 대학원에 다니던 도중 실명하게 되어 휴학했는데, 그때 만났던 분들 모두가 내가 복지관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마사로 일하는 줄 알았던 거다. 나는 성악 수업을 하고, 공연도 하고,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런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이전에는 잘 몰랐다. 방식이 다를 뿐이지 시각장애인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직업의 세계도 다양하고 비장애인과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음악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나는 한 가지 일만 했을 때 몰두할 수는 있지만, 조금 지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노래하고, 점자를 가르치고, 점자 악보를 만드는 일들이 모두 연결되어 서로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 나 자신도 에너지를 얻는다. 거창한 꿈이라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무대에서 가장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던 것 같다. 그때의 성취감과 행복했던 기억 덕분에 노래를 시작한 것이기에 앞으로도 오래오래 크고 작은 무대에 서고 싶다. 쭉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다.

  •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노래하는 강유경 성악가

  • 강유경 〈I could have danced all night〉(뮤지컬 ‘My fair lady’ 중)
    영상 출처. 효명아트홀 유튜브 채널

강유경

성악가(소프라노), 음악교정사.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음악교정사로 일하며 점자 악보를 만들고 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합창단, 중창단 활동으로 장애인식개선 무대에도 참여한다. 또한 극단 오디의 주연 배우로 활동하며 한국오디에이션 음악교육연구소의 어린이 음악교육 활동 중 하나인 ‘악으로 읽는 그림책’에 참여했다. 2023년 포스코1%나눔재단 ‘만남이 예술이 되다’ 시즌4 예술가로 선정되었다.

박다현

작곡가이자 예술교육가. 무심코 지나쳤던 소리에 귀 기울여보며, 그 안에서 발견되는 이야기에 관심 갖고 있다. 〈남의연애〉, 〈몸둘바〉 등의 공연에 음악감독과 사운드 작업으로 참여하였고, 소리를 매개로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해오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bornfre9@naver.com

사진.이재범 POV스튜디오 실장 andy45@naver.com
장소 및 자료사진 제공.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2023년 11월 (47호)

상세내용

인터뷰

강유경 성악가를 만나기 전 그에 대한 소개 글을 읽어보았다. 성악가로,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점점 시력이 나빠지면서 대학원 시절 중도 실명을 하게 되었다. 이후 잠깐의 공백기를 가진 후 다시 활동하고 있다는 그는 현재 점자 악보를 만들고 음악교육가로 활동하며 합창단원과 성악가로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성악가에서, 이제는 하나의 음악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모두 함께하고 있는 음악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호기심을 품고 강유경 성악가를 만나보았다.

  • 강유경 성악가가 책장을 배경으로 악보를 들고 앉아 있다.

음악가로서 영역 넓혀가기

성악가로 무대에 서는 것 외에도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활동인지 잠깐 소개해 달라.

요즘은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하 실로암복지관)에서 음악교정사 활동을 가장 집중적으로 하고 있고, 그 외에 여러 일도 함께하고 있다. 음악재활아카데미에서 음악에 취미를 갖고 있거나, 음악으로 재활 활동을 하는 시각장애인분들께 성악을 가르치기도 하고, 복지관 직원 합창단으로도 참여해 내부 행사뿐만 아니라 외부 공연도 많이 다닌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시소TV - 시각장애인들의 소소한 이야기’에도 참여하고 있다. 장애인식 개선 활동의 일환으로 시각장애를 갖게 되면서 겪게 된 소소한 이야기나, 시각장애가 생긴 이후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나누고 있다. 내가 무대에 서는 사람이다 보니 아무래도 카메라 앞에서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성격도 활발한 편이라 촬영이 재미있다.

정말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가능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하게 되었나?

처음 실로암복지관에 입사했을 때는 저시력이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업무도, 비장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업무도 잘하지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소리로 컴퓨터를 쓰고, 점자로 일하는 것을 배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역할을 찾아 삶의 가치를 다시 높여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때부터 점자를 익히고 소리로 화면의 텍스트를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다 보니 점점 역할도 많아졌다.

어떻게 보면 실로암복지관에 온 것이 터닝포인트인 것 같다.

맞다. 내 눈이 15년에 걸쳐서 점점 안 보이게 되었는데, 막바지에 시력을 잃을 때쯤엔 무엇이든 다 사진을 찍어서 확대해서 봐야 했다. 이제 진짜 할 수 있는 게 없겠다고 자포자기하고 있을 무렵에 우연히 실로암복지관에 오게 되었다. 복지관에 오기 전까지는 내 주변에 시각장애인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많은 시각장애인을 만났을 때 굉장히 충격받았다. 시각장애인도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었고, 여러 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장애를 처음 맞이하게 되면서 주변 비장애인 친구들도 장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서로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이곳에서 시각장애인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위로도 얻고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에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면 처음 성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극단 배우로도 활동했다고 들었는데 클래식 외에도 다양한 장르에 관심 있는 것 같다.

부모님이 성악을 전공하셨다. 그러다 보니 어릴 적부터 음악회에 자주 따라다녔는데, 클래식 공연을 볼 때면 늘 자다가 박수 소리가 들리면 깨서 따라 치곤 했다. 자장가처럼 편안해서 그랬나 보다. (웃음) 오히려 뮤지컬 같이 활기찬 공연을 보면 궁금증이 생기고 집중도가 높아진다. 성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뮤지컬 〈캣츠〉를 보고 나서다. 뮤지컬 배우를 하려면 노래를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악을 배우기 시작한 건데, 하다 보니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부모님의 영향 덕분인지 타고난 목소리가 소프라노다. 가요는 진짜 못 부른다. 흔히들 말하는 ‘공기 반 소리 반’이 어떻게 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웃음)

성악가로서 곡을 부를 때는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는가? 곡을 해석할 때 어떤 기준이 있는지 궁금하다.

예전에는 묵자 악보(점자 악보의 원본이 되는 인쇄 악보)에 적힌 악상이나 음악적인 장치 등을 고려하여 해석했다면, 요즘은 가사 전달이나 표현에 좀 더 집중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곡가가 의도한 대로 표현이 되는 것 같다. 어떤 공연을 볼 때 노래는 정말 잘하는데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가사 전달만 잘 되어도 음악적인 표현과 감정이 전달되어 듣는 사람과 부르는 사람이 같은 감정을 교감한다고 느낀다.

한 곡을 선보이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을 것 같다. 어떤 작업을 거쳐 곡을 준비하나?

이제는 묵자 악보를 보면서 연습하거나 외울 수 없어서, 먼저 주변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악보에 표현된 걸 정확하게 녹음해주면, 그걸 무한 반복해서 들으면서 일단 외운다. 그다음엔 점자 악보를 통해서 정확한 가사, 음정, 박자를 확인한다. 잘못 암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단 정확한 악보를 확인한 후에 다양한 해석을 듣고 나의 해석과 비슷한 것을 접목하거나 새로운 부분을 적용하는 편이다. 옛날에 비해서 한 곡을 새로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몇십 배는 늘어난 것 같다.

평소 여가 시간에는 어떤 것을 즐기는지 궁금하다. 음악가로서 영감을 얻거나 자극을 얻는 취미활동이 있나?

공연을 많이 본다. 원래도 뮤지컬을 하고 싶었던 터라 뮤지컬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공연 보는 데 투자하는 돈은 아깝지 않다. 공연을 볼 때면 이런 음악도 하고 싶다든지 저런 무대에도 서고 싶다는 자극을 받기 때문에 나의 예술 활동을 지속하는 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왼손 검지에서 시작되는 음악

점자 악보를 만드는 음악교정사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처음에는 점자에 손을 딱 얹었을 때 뭐가 느껴지냐는 질문에 그냥 울퉁불퉁하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점자를 읽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내가 점자에 재능이 있었다. 점자를 배운 지 6개월 만에 점역교정사 3급을 취득했다. 이후 2년 만에 1급 점역교정사가 되었다. 점역교정사는 쉽게 말해서 틀린 것을 찾아 고치는 직업이다. 진득하고 꼼꼼한 성격에 잘 맞는다. 사실 나는 이전에는 독서 같은 정적인 취미활동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정하는 일은 재미있었다. 틀린 것을 딱 찾았을 때 희열이 있다. 나에게 굉장히 잘 맞는 직업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또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부터 모든 걸 도움받아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는데, 점자 악보를 만들면서 나와 같은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이 생겼다.

하나의 점자 악보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묵자 악보도 다양한 해석을 가진 여러 버전이 있을 텐데 어떤 기준으로 음악을 점역하고 악보를 만드나?

점자 악보를 제작할 때 비시각장애인 점역사와 시각장애인 교정사, 이렇게 2명이 협업한다. 먼저 점역사가 묵자 악보를 점자로 점역한 후 점역된 파일과 묵자 악보를 동시에 보고 교정사가 점자 파일을 소리 내어 읽으며 교정 작업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묵자 악보에 있는 내용을 최대한 정확하게 모두 점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야 시각장애인도 악보를 정확하고 빠짐없이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출판사마다 묵자 악보가 다르기도 하다. 그럴 땐 여러 출판사의 다양한 악보를 찾아 비교해 본 후에 수많은 논의 끝에 점역한다. 교정사는 그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좀 더 보기 편한 방식을 고민하기도 한다. 교정 작업이 끝나면 최종적으로 검수 작업을 거쳐 악보가 탄생한다.

복지관에서 성악 레슨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하다. 노래를 가르치고 배울 때 다르게 와 닿는 게 있을 것 같다.

내가 시각장애를 겪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이렇게 해보세요”라는 말이었다. ‘이렇게’가 어떤 것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수업에서는 ‘이렇게’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한다. 참여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잘 상상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서 함께 손을 잡고 움직이면서 몸으로 알려 드리기도 하고, 말로 자세히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비유를 자주 든다. 예를 들면 “피자의 모차렐라 치즈가 늘어나는데 끊어지지 않는 것처럼 해보세요.” “스쿼트 하는 자세처럼 호흡해볼까요?” 이런 식이다. 이 과정에서 나 역시 이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한 음악적 표현을 다양하게 떠올리게 된다. 수업하다 보면 이 시간이 단순히 노래를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각장애인으로서 함께 마음을 나누고, 동료로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보행도 어려운 분이 음악수업을 위해 1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오시면서,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며 감사하다는 말씀을 해주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 수업하면서 음악이 삶에 활기를 가져오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는 것을 나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지속 가능한 무대를 꿈꾸다

이렇게 음악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취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사실 가장 큰 성취라고 하면 나 스스로 독립하고 자립하게 된 것이다. 눈이 꾸준히 나빠지는데, 어느 시기부터는 나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공연하는 무대와 일상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가 계속 이어졌다. 주변 사람들도 나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그 시간을 함께 겪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눈이 안 보여도 노래는 계속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엔 내가 음악을 하고 성악을 해 온 것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다잡고 음악을 나의 무기로 다시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예술인으로 다시 활동하게 된 것이 내 음악 생활에서 가장 큰 성취다. 더 나아가 지금 하고 있는 활동들을 통해 나처럼 음악으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지는 것이 그다음 성취다.

이 많은 일을 하게 된 원동력을 알 것 같다.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사회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을까?

사실 나는 아직 독립 보행을 못 한다. 젊은 여자로서 혼자 흰지팡이를 짚고 다니다가 도와줘야겠다기보다 공격해도 모를 거라는 위험한 상황을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변에 노출하는 게 아직 무섭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온화하고 서로 공존하는 분위기가 되어 편하게 도움을 요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충격적인 일도 있었다. 나는 대학원에 다니던 도중 실명하게 되어 휴학했는데, 그때 만났던 분들 모두가 내가 복지관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마사로 일하는 줄 알았던 거다. 나는 성악 수업을 하고, 공연도 하고,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런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이전에는 잘 몰랐다. 방식이 다를 뿐이지 시각장애인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직업의 세계도 다양하고 비장애인과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음악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나는 한 가지 일만 했을 때 몰두할 수는 있지만, 조금 지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노래하고, 점자를 가르치고, 점자 악보를 만드는 일들이 모두 연결되어 서로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 나 자신도 에너지를 얻는다. 거창한 꿈이라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무대에서 가장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던 것 같다. 그때의 성취감과 행복했던 기억 덕분에 노래를 시작한 것이기에 앞으로도 오래오래 크고 작은 무대에 서고 싶다. 쭉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다.

  •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노래하는 강유경 성악가

  • 강유경 〈I could have danced all night〉(뮤지컬 ‘My fair lady’ 중)
    영상 출처. 효명아트홀 유튜브 채널

강유경

성악가(소프라노), 음악교정사.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음악교정사로 일하며 점자 악보를 만들고 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합창단, 중창단 활동으로 장애인식개선 무대에도 참여한다. 또한 극단 오디의 주연 배우로 활동하며 한국오디에이션 음악교육연구소의 어린이 음악교육 활동 중 하나인 ‘악으로 읽는 그림책’에 참여했다. 2023년 포스코1%나눔재단 ‘만남이 예술이 되다’ 시즌4 예술가로 선정되었다.

박다현

작곡가이자 예술교육가. 무심코 지나쳤던 소리에 귀 기울여보며, 그 안에서 발견되는 이야기에 관심 갖고 있다. 〈남의연애〉, 〈몸둘바〉 등의 공연에 음악감독과 사운드 작업으로 참여하였고, 소리를 매개로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해오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bornfre9@naver.com

사진.이재범 POV스튜디오 실장 andy45@naver.com
장소 및 자료사진 제공.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2023년 11월 (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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