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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작품 외적인 어려움마저 예술에 포함하여

이음광장 데칼코마니: 균형 하는 관계

  • 김판수 장애인활동지원사
  • 등록일 2024-01-17
  • 조회수364

이음광장

장애인의 직업과 환경은 개인의 수만큼 다양하지만, 장애예술가의 경우 특히나 활동보조인으로서 이용자의 필요를 충족하기 어렵다. 엄연히 근로 활동의 지원제도도 존재하지만,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일을 하지 않는 장애예술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지원제도를 이용하기에 곤란함이 있다. 나는 활동지원사로 근무하는 시간에는 생활 전반과 이동에 관한 보조만 하고, 이외의 모든 스케줄은 근무 시간 종료 후 온전히 나의 자유 시간에 행함으로써 조력하고 있다. 활동지원사의 보편적 업무란 대부분 손과 발 등 이용자의 불편한 점을 대신하는 기초적인 생활 전반의 보조를 개개인의 경중에 따라 부여받은 서비스 이용 시간만큼 제공하고 퇴근하는 형태이다.

지역을 수시로 넘나들며 예술 활동 관련 미팅과 행사에 동행하고 필요하다면 현지의 숙소에서 외박도 불사할 수 있는 것은 근무 시간 종료 후 나의 자유 시간에 자유 의지로 행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스템상 근무는 매월 초에 제출한 일정표에 맞춘 날짜와 시간에 출퇴근관리 단말기로 이용자와 제공인의 카드를 인증해 관리하는데, 김작가와의 스케줄은 그 시간을 가뿐히 초과하는 상황이 수시로 일어난다는 점과 언제 갑작스러운 출장 등의 긴급한 동행이 필요하게 될지 예측 불가이기에 근무가 끝난 자유 시간에 이를 조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함께 활동하며 중증의 지체장애인이 외부 편의시설 이용에서의 곤란함을 매일 나의 일처럼 겪게 된다. 계단이나 턱이 없는 위치에 화장실이 있는가, 휠체어에 탑승한 채 입장 가능한 식당이 주변에 있는가, 식사 후 화장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위장이 제 할 일을 활발히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경험으로 알고 있으리라. 물론 상황이 그렇게까지 흘러가도 씻어내고 새 옷을 입으면 해결은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굴욕감을 최대한 겪지 않도록 하는 루틴이 생겨 김작가는 외부 일정 하루 전날 저녁부터 식음을 전폐한다. 나 역시 장소 이동 전, 교통수단 탑승 전 등 상황 변화의 체크 포인트마다 화장실을 지금 갈 필요가 있는지 먼저 묻는 게 일상에 스며있다. 이렇게 배리어프리가 필요한 순간을 매번 목도하고 나 또한 절반의 당사자로서 착잡한 순간을 자주 겪곤 한다. 중요한 순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거나 애초에 없는 경우도 많고, 함께 먹고 싶었던 메뉴가 있는 식당 앞에서 미리 조사한 사진과 다르게 문턱이 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비장애인인 내가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누리던 시설 대부분은 함께 이용하기 원활하지 못하다.

이것은 장애인의 예술 활동 저변에 관한 이야기다. 예술인 지원사업에 선정되고 면접을 보고 지원서를 쓰고 미팅 장소에 나가 회의를 하는 등 예술의 이면에는 필수적으로 비즈니스적인 면모가 함께 존재한다. 어딜 나가지 않으면 예술도 할 수 없으며, 당연히 밖에서 식사도 하고 화장실도 갈 수밖에 없다. 장애예술가와 함께하며 근무 시간과 그 이후의 내 시간까지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된 파트너인 나는 다양한 일을 겪는다. 때론 배리어프리 같은 것은 우스워지는 머나먼 시골 오지에서 대자연 자체를 돌파해야 할 필요도 있다. 팀 전시를 위한 일정으로 김작가를 태운 차를 운전하고, 수동휠체어를 싣고 내리길 반복하고, 손으로 밀고 끌며 흙과 돌이 가득한 강어귀·기암절벽·폭포·계곡·폐업한 놀이공원 등을 다니며, 이게 예술을 하는 건지 어드벤처 영화를 찍는 건지 헷갈릴 정도의 일도 있었으니 말이다. 무척 더운 여름 고생스러운 일정이었어도, 돌이켜보면 내가 이 사람이 없었으면 언제 오프로드에서 휠체어를 대동한 채 모험을 해볼 수 있을까. 미소가 지어지는 값진 경험이다.

미팅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전시 계획이 세워졌다면 작품 제작을 준비할 차례다. 그의 예술 세계를 확장하는 시험적 도약을 위해 김작가가 가진 계획에 나의 신체를 입력 인터페이스로 활용한 도전적인 설치작품으로 채운 개인전을 열었던 적이 있다. 아이디어는 만족스러웠으나 실현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는 이전까지 회화를 주된 작업으로 해왔기 때문에, 이 개인전을 기점으로 입체적인 설치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경험과 노하우도 물론 없었고 그의 몸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나의 역할이 굉장히 커진 것이다. 작품 계획은 ‘페인팅 된 캔버스를 덧댄 박스형의 창문틀 안에 리모트 컨트롤이 가능한 다색 조명이 들어간 설치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문과 출신이고, 목공 기술도 전기 기술도 없다. 전구나 바꿔 끼워 본 게 전부인 나와 전구도 바꿔 끼워본 적 없는 김작가가 작품에 대한 미지의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어떤 조명이 필요한 기능을 충족하는가, 어떤 목재가 적합한가, 콘셉트에 맞는 여러 종류의 창문틀을 구할 곳은 어디인가, 어떤 공구가 필요한가, 필요한 공구는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가, 박스 안에 조명을 어떻게 접착해야 하는가, 조명이 페인팅된 원단 밑에서 빛을 투과할 때 의도한 이미지가 나올 수 있는가, 우드박스와 창문틀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나사는 어떤 것을 써야 하는가…. 어떤 일도 처음이 있지만, 예술가의 작품 전시회는 미숙한 뒷사정 같은 건 용납되어선 안 된다. 이에 필요한 기술과 공정, 재료, 완성 모습까지 매일 토론하고 비교하고 실행 가능한 구현 영역을 심상에 새기며 하나씩 완성해간다. 다양한 원단에 테스트 페인팅을 한 후 리모트 라이트에 비춰보고 색과 명도를 조절한다. 주문 제작한 우드박스에 작품별로 선정한 원단을 터질 듯 팽팽히 고정해 캔버스를 짠다. 그 위에 창틀 프레임을 올려 경첩에 나사를 고정한다. 그의 예술 도구로서 할 수 있는 한 반듯하게, 튼튼하게. 한계까지 짜낸 미숙함을 반짝거리며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 필자가 커다란 화분 옆에서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작업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빛이 몸과 공간에 투사되고 있다.

    김작가의 전시에서 공간기획자로서 장소를 연출하는 필자

  • 흑백사진. 필자가 장비를 이용해 창문틀을 만들고 있다.

    김작가의 작업실에서 원고에 표현한 작품을 만드는 필자

김판수

예술이 삶에 스며들어버린, 장애예술가의 파트너인 비장애인 비예술가다. 중증 지체장애인 작가와 함께 모든 스케줄을 함께 하며 활동지원사, 친구, 크루, 매니저를 겸하고 있다.
rlatjstod5@gmail.com
▸ 인스타그램 @sup3rcub

사진 제공. 필자

김판수

김판수 

예술이 삶에 스며들어버린, 장애예술가의 파트너인 비장애인 비예술가다. 중증 지체장애인 작가와 함께 모든 스케줄을 함께 하며 활동지원사, 친구, 크루, 매니저를 겸하고 있다.
rlatjstod5@gmail.com

상세내용

이음광장

장애인의 직업과 환경은 개인의 수만큼 다양하지만, 장애예술가의 경우 특히나 활동보조인으로서 이용자의 필요를 충족하기 어렵다. 엄연히 근로 활동의 지원제도도 존재하지만,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일을 하지 않는 장애예술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지원제도를 이용하기에 곤란함이 있다. 나는 활동지원사로 근무하는 시간에는 생활 전반과 이동에 관한 보조만 하고, 이외의 모든 스케줄은 근무 시간 종료 후 온전히 나의 자유 시간에 행함으로써 조력하고 있다. 활동지원사의 보편적 업무란 대부분 손과 발 등 이용자의 불편한 점을 대신하는 기초적인 생활 전반의 보조를 개개인의 경중에 따라 부여받은 서비스 이용 시간만큼 제공하고 퇴근하는 형태이다.

지역을 수시로 넘나들며 예술 활동 관련 미팅과 행사에 동행하고 필요하다면 현지의 숙소에서 외박도 불사할 수 있는 것은 근무 시간 종료 후 나의 자유 시간에 자유 의지로 행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스템상 근무는 매월 초에 제출한 일정표에 맞춘 날짜와 시간에 출퇴근관리 단말기로 이용자와 제공인의 카드를 인증해 관리하는데, 김작가와의 스케줄은 그 시간을 가뿐히 초과하는 상황이 수시로 일어난다는 점과 언제 갑작스러운 출장 등의 긴급한 동행이 필요하게 될지 예측 불가이기에 근무가 끝난 자유 시간에 이를 조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함께 활동하며 중증의 지체장애인이 외부 편의시설 이용에서의 곤란함을 매일 나의 일처럼 겪게 된다. 계단이나 턱이 없는 위치에 화장실이 있는가, 휠체어에 탑승한 채 입장 가능한 식당이 주변에 있는가, 식사 후 화장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위장이 제 할 일을 활발히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경험으로 알고 있으리라. 물론 상황이 그렇게까지 흘러가도 씻어내고 새 옷을 입으면 해결은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굴욕감을 최대한 겪지 않도록 하는 루틴이 생겨 김작가는 외부 일정 하루 전날 저녁부터 식음을 전폐한다. 나 역시 장소 이동 전, 교통수단 탑승 전 등 상황 변화의 체크 포인트마다 화장실을 지금 갈 필요가 있는지 먼저 묻는 게 일상에 스며있다. 이렇게 배리어프리가 필요한 순간을 매번 목도하고 나 또한 절반의 당사자로서 착잡한 순간을 자주 겪곤 한다. 중요한 순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거나 애초에 없는 경우도 많고, 함께 먹고 싶었던 메뉴가 있는 식당 앞에서 미리 조사한 사진과 다르게 문턱이 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비장애인인 내가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누리던 시설 대부분은 함께 이용하기 원활하지 못하다.

이것은 장애인의 예술 활동 저변에 관한 이야기다. 예술인 지원사업에 선정되고 면접을 보고 지원서를 쓰고 미팅 장소에 나가 회의를 하는 등 예술의 이면에는 필수적으로 비즈니스적인 면모가 함께 존재한다. 어딜 나가지 않으면 예술도 할 수 없으며, 당연히 밖에서 식사도 하고 화장실도 갈 수밖에 없다. 장애예술가와 함께하며 근무 시간과 그 이후의 내 시간까지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된 파트너인 나는 다양한 일을 겪는다. 때론 배리어프리 같은 것은 우스워지는 머나먼 시골 오지에서 대자연 자체를 돌파해야 할 필요도 있다. 팀 전시를 위한 일정으로 김작가를 태운 차를 운전하고, 수동휠체어를 싣고 내리길 반복하고, 손으로 밀고 끌며 흙과 돌이 가득한 강어귀·기암절벽·폭포·계곡·폐업한 놀이공원 등을 다니며, 이게 예술을 하는 건지 어드벤처 영화를 찍는 건지 헷갈릴 정도의 일도 있었으니 말이다. 무척 더운 여름 고생스러운 일정이었어도, 돌이켜보면 내가 이 사람이 없었으면 언제 오프로드에서 휠체어를 대동한 채 모험을 해볼 수 있을까. 미소가 지어지는 값진 경험이다.

미팅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전시 계획이 세워졌다면 작품 제작을 준비할 차례다. 그의 예술 세계를 확장하는 시험적 도약을 위해 김작가가 가진 계획에 나의 신체를 입력 인터페이스로 활용한 도전적인 설치작품으로 채운 개인전을 열었던 적이 있다. 아이디어는 만족스러웠으나 실현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는 이전까지 회화를 주된 작업으로 해왔기 때문에, 이 개인전을 기점으로 입체적인 설치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경험과 노하우도 물론 없었고 그의 몸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나의 역할이 굉장히 커진 것이다. 작품 계획은 ‘페인팅 된 캔버스를 덧댄 박스형의 창문틀 안에 리모트 컨트롤이 가능한 다색 조명이 들어간 설치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문과 출신이고, 목공 기술도 전기 기술도 없다. 전구나 바꿔 끼워 본 게 전부인 나와 전구도 바꿔 끼워본 적 없는 김작가가 작품에 대한 미지의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어떤 조명이 필요한 기능을 충족하는가, 어떤 목재가 적합한가, 콘셉트에 맞는 여러 종류의 창문틀을 구할 곳은 어디인가, 어떤 공구가 필요한가, 필요한 공구는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가, 박스 안에 조명을 어떻게 접착해야 하는가, 조명이 페인팅된 원단 밑에서 빛을 투과할 때 의도한 이미지가 나올 수 있는가, 우드박스와 창문틀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나사는 어떤 것을 써야 하는가…. 어떤 일도 처음이 있지만, 예술가의 작품 전시회는 미숙한 뒷사정 같은 건 용납되어선 안 된다. 이에 필요한 기술과 공정, 재료, 완성 모습까지 매일 토론하고 비교하고 실행 가능한 구현 영역을 심상에 새기며 하나씩 완성해간다. 다양한 원단에 테스트 페인팅을 한 후 리모트 라이트에 비춰보고 색과 명도를 조절한다. 주문 제작한 우드박스에 작품별로 선정한 원단을 터질 듯 팽팽히 고정해 캔버스를 짠다. 그 위에 창틀 프레임을 올려 경첩에 나사를 고정한다. 그의 예술 도구로서 할 수 있는 한 반듯하게, 튼튼하게. 한계까지 짜낸 미숙함을 반짝거리며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 필자가 커다란 화분 옆에서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작업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빛이 몸과 공간에 투사되고 있다.

    김작가의 전시에서 공간기획자로서 장소를 연출하는 필자

  • 흑백사진. 필자가 장비를 이용해 창문틀을 만들고 있다.

    김작가의 작업실에서 원고에 표현한 작품을 만드는 필자

김판수

예술이 삶에 스며들어버린, 장애예술가의 파트너인 비장애인 비예술가다. 중증 지체장애인 작가와 함께 모든 스케줄을 함께 하며 활동지원사, 친구, 크루, 매니저를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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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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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30 10: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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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이들의 데칼코마니 작품 세계를 봤었는데 정말 장애인작가의 곁에서 혼자서는 닿기 어려운 경지까지 이르게 해준 김 판수 작가님, 너무 멋지세요!

2024-01-18 19: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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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인복이 있으시네요^^ 진심이 느껴지고 대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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