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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몸과 환경을 위한 미디어 연구

이음광장 서로 다른 소리의 갈래에서

  • 오로민경 미디어 아티스트
  • 등록일 2021-01-29
  • 조회수1262
  • 다양한 몸을 위한 악기개발과 교육프로그램 연구

2020년 11월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의 일환으로 진행된 ‘다양한 몸을 위한 악기개발과 교육프로그램 연구’에 참여했다. 권병준 김성환 신원정 윤수희 이두호 작가와 함께했는데, 모두 소리와 관련된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가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작업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리서치 과정에서의 경험을 나눠보려 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동료들은 음악과 소리에 대한 서로 다른 배경과 저마다의 창작 방식을 갖고 있었다. 대부분 음악과 소리 사이의 무언가에 관심을 두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각자 도달하고 싶은 공명점을 따라 공부하고 놀이와 실험을 해왔다. 우리는 회의 때마다 소리에 대한 서로의 차이에 대해서 나눌 수 있었는데, 다른 접근방식이 모일 때 생기는 풍부함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과정은 나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던 점을 조금씩 다르게 보도록 도왔다. 이 풍성함을 개별적으로 살리면서 연구 과제를 진행할 수 있을까? 늘 그렇듯 우리의 협업이라는 오솔길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이 길을 걷다가 주춤 저 길을 걷다가 주춤하면서도, 서로의 다양성이 소리 낼 자리가 조금씩 잡혀갔다. 돌아보니 그것은 ‘다양한 몸’이라는 주제에서 참 중요한 균형이었다.

  • 신원정·이두호 <수집한 사이들>

  • 김성환 <한 손 신스>

  • 신원정·이두호 <온라인 믹스>

그렇게 해서 〈수집한 사이들〉 〈한 손 신스〉 〈산책하는 몸〉 〈온라인 믹스〉 〈소리 뒤의 소리〉 등 다섯 개의 악기가 개발되었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 악기를 개별적으로 기획했다. 권병준 작가는 전체 프로젝트를 리딩하고 이두호 작가는 코딩 관련한 기술을 지원하며 우리의 연구개발에 힘을 더해주었다. ‘다양한 몸’을 주제로 개발한 장치는 각자 다른 몸에 관한 이야기와 관심사를 담고 있다. 신원정·이두호 작가의 〈수집한 사이들〉은 타격이라는 간단한 요소만으로 일상의 사물에서 소리나 음악을 찾을 수 있는 작업이다. 악기 연주의 평등성을 고려하여 누구나 쉽게 자신만의 수집품으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서, 발달장애인이나 아이들도 쉽고 재미있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이다.

김성환 작가의 〈한 손 신스〉와 신원정·이두호 작가의 〈온라인 믹스〉는 코로나 상황을 염두에 두어 연구된 악기이다. 〈한 손 신스〉는 비접촉 방식의 악기 연주법이 특징으로, 손 제스처를 인식하는 입력 장치를 통해 한 손의 움직임만으로 소리를 낼 수 있는 장치다. 장치에는 두 가지 버전의 소리가 개발되었다. 하나는 화난 고양이 소리처럼 연주되는 ‘화난 고양이 신스’이고, 다른 하나는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는 ‘한 손 아르페지어터’이다. 손가락으로 섬세한 연주를 하기 어려운 몸을 염두에 두었다. 〈온라인 믹스〉는 웹 플랫폼으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온라인에 접속해서 서로가 업로드한 소리를 함께 라이브로 믹스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이다. 간단한 버튼 클릭으로 소리의 빠르기, 반복재생 등을 통해 하나의 소리를 다양한 느낌으로 믹싱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 참여자를 고려해 문자나 이미지로도 소리를 해설하며 다양한 접근법으로 믹싱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고, 이후 우리가 진행한 워크숍에서 시연했다.

윤수희 작가의 〈산책하는 몸〉은 움직임을 인지하는 센서를 이용해 몸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가 변형되는 악기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양한 박자의 움직임을 갖고 있는데, 자신만의 몸의 속도와 움직임에 집중해볼 수 있다. 뇌병변 장애인과 휠체어를 타는 신체가 고려 대상이었고, 산책할 때 들을 수 있는 소리나 환경음으로 구성되어 야외로 쉽게 떠나지 못하는 몸이 실내에서 간단한 움직임만으로 산책의 소리를 느껴보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소리 뒤의 소리〉는 내가 연구 개발한 듣기 장치이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다 만들게 되었다. 개조한 칼림바 악기로 소리를 내면 시험관 안의 나비가 움직이고, 수조 속 물방울과 빛이 움직이고, 바람이 불고, 작은 그릇에 알알이 담긴 구슬과 깃털이 진동한다. 하나의 소리가 발생한 이후에 그 소리를 상상할 수 있는 다른 움직임이 다시 펼쳐진다는 의도를 담아 이름 지었다.

  • 윤수희 <산책하는 몸>

  • 오로민경 <소리 뒤의 소리>

프로젝트를 위해 리서치를 하던 초기에 인상 깊게 본 자료가 청각장애인 작가 크리스틴 선 킴(Christine Sun Kim)의 테드 강연 ‘매혹적인 수어의 음악’이었다. 강연에서 작가는 자신과 무관할 줄 알았던 소리가 어떻게 자신과 가깝게 존재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청인의 언어는 선형적이지만 미국 수어는 공간적이어서 마치 화음 같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후 영상이나 공연, 다큐멘터리를 보며 미국 수어뿐 아니라 한국 수어도 굉장히 공간적이고 음악적으로 다가왔다.

리서치 기간 중 대화를 나눠준 두 명의 청각장애인 작가를 통해, 우리가 꼭 같은 방식으로 소리의 파동을 감각하지 않더라도 각자 경험하는 소리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두 명 다 인공와우 수술을 했는데, 한 사람은 수어를 하고 한 사람은 수어를 하지 못했다. 청각장애인 안에서도 서로 다른 소리 컨디션과 태도, 문화가 존재한다. 인공와우는 달팽이관의 기능을 대신 해주는 장치인데, 농인은 이것을 통해 소리를 청인의 감각으로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가끔 잡음이 생기기도 하고, 거리에 따른 소리 크기의 조율이 필요해서 완전히 청인과 비슷한 상태가 되긴 어렵다고 한다. 인공와우는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사이를 오가는 정체성을 만들어준다고 한다. 덕분에 때로는 오해가 생겨서 더욱 외로울 때도 혹은 새롭게 탐구할 거리가 생기는 듯도 해 보였다.

두 작가는 개별적으로 만났는데,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듣기 컨디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마스크 때문에 길에서 대화를 인지할 수 없는 상황, 인공와우 착용의 상태,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의 크기 등. 흥미롭게도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소리를 듣는 원리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소리라는 파동이 귀에 들어와 뇌에 전기신호를 보내준다.’ 매번 잊어버려 사전을 찾아야 했던 개념이,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몸을 통하니 이해가 되었다. 크린스틴 선 킴의 강연처럼, 내가 만난 두 사람은 소리를 굉장히 가깝게 의식하고, 또 잘 알고 있었다.

이 만남으로 우리가 꼭 같은 방식으로 소리를 느끼고 경험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소리나 음악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소리의 파동이 존재할 때 보이지 않아도 나에게 들리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들리지 않아도 눈으로 볼 수 있거나 진동으로 느낄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 곁에 흐르는 어떤 파동이 들리거나 보이지 않더라도 사람의 몸과 마음에 내재한 다양한 방식의 물결로 흐르고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움직이는 몸의 리듬을 보면 그런 상상을 자주 한다. 하지만 이 상상을 만드는 문장이 청인인 나의 감각의 기준 속에만 머무른다면, 그저 비장애인의 무례한 낭만일지도 모르겠다.

한번은 청각장애인에게 문자통역을 지원하는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의 ‘소통이 흐르는 밤’ 행사에 갔다. 앞서 소리에 대한 고민을 대화로 나눠준 작가 동료가 제안해준 자리다. 그곳에는 코다, 인공와우 수술을 한 농인, 수술하지 않은 농인, 청인 아이를 낳은 농인 부부 등 다양한 정체성의 청각장애인이 있었고, 식사 자리에서 몇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반가운 감정으로 서로를 소개하는 자리였지만, 내가 소리에 관한 작업을 하는 예술가이고 소리에 대해 질문하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하니 대화가 조금은 막연해짐을 느꼈다. 동시에 나 역시 내 질문에 대한 관점이 옳은 것이었는지 자신감이 떨어져, 함께 자리한 이들의 이야기를 더 듣기로 하였다. 한 분은 농인을 위한 심리상담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강의가 비대면으로 바뀌는 바람에 문자통역이 필요한데 비용이 없어 걱정이라고 하였다. 나라면 정말 감당하기에 어려운 상당한 액수였다. 청인 기준의 소리 사회에서 농인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구나 싶었다.

‘나에게는 중요했던 소리의 장이 농인의 입장에서는 그저 불필요한 강요로 작동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날 나는 소리에 대한 나의 인식을 계속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공기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내가 그날 다수의 비청인 사이에서 소수의 청인으로 있었기에 체감할 수 있었던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비장애인이 장애인 중심의 공간에 소수자로 초대되는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렵지 않을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을 관점의 전환이 계속 필요하다. 예술의 몫으로는 소리의 영역이 더 넓은 기준에서 다양하게 해석되어,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아도 함께 공명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생기길. 어설프거나 부침이 있다 하더라도 서로의 경험과 이야기, 몸에 내재된 노래가 풍성하게 공유될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이 생기길. 나의 생각이 여전히 단단한 착각 속에 빠진 것은 아닐지 계속 두들겨봐야겠다.

오로민경

오로민경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소리의 풍경을 마주하고 들어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기억, 흔들리는 잎의 미묘한 떨림 등을 관찰하며 ‘더 작은 힘’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질문해 보고 있습니다.
baahram@gmail.com

[사진 출처] [영상 출처] 필자 제공

오로민경

오로민경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소리의 풍경을 마주하고 들어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기억, 흔들리는 잎의 미묘한 떨림 등을 관찰하며 ‘더 작은 힘’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질문해 보고 있습니다.
baahram@gmail.com

상세내용

  • 다양한 몸을 위한 악기개발과 교육프로그램 연구

2020년 11월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의 일환으로 진행된 ‘다양한 몸을 위한 악기개발과 교육프로그램 연구’에 참여했다. 권병준 김성환 신원정 윤수희 이두호 작가와 함께했는데, 모두 소리와 관련된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가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작업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리서치 과정에서의 경험을 나눠보려 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동료들은 음악과 소리에 대한 서로 다른 배경과 저마다의 창작 방식을 갖고 있었다. 대부분 음악과 소리 사이의 무언가에 관심을 두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각자 도달하고 싶은 공명점을 따라 공부하고 놀이와 실험을 해왔다. 우리는 회의 때마다 소리에 대한 서로의 차이에 대해서 나눌 수 있었는데, 다른 접근방식이 모일 때 생기는 풍부함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과정은 나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던 점을 조금씩 다르게 보도록 도왔다. 이 풍성함을 개별적으로 살리면서 연구 과제를 진행할 수 있을까? 늘 그렇듯 우리의 협업이라는 오솔길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이 길을 걷다가 주춤 저 길을 걷다가 주춤하면서도, 서로의 다양성이 소리 낼 자리가 조금씩 잡혀갔다. 돌아보니 그것은 ‘다양한 몸’이라는 주제에서 참 중요한 균형이었다.

  • 신원정·이두호 <수집한 사이들>

  • 김성환 <한 손 신스>

  • 신원정·이두호 <온라인 믹스>

그렇게 해서 〈수집한 사이들〉 〈한 손 신스〉 〈산책하는 몸〉 〈온라인 믹스〉 〈소리 뒤의 소리〉 등 다섯 개의 악기가 개발되었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 악기를 개별적으로 기획했다. 권병준 작가는 전체 프로젝트를 리딩하고 이두호 작가는 코딩 관련한 기술을 지원하며 우리의 연구개발에 힘을 더해주었다. ‘다양한 몸’을 주제로 개발한 장치는 각자 다른 몸에 관한 이야기와 관심사를 담고 있다. 신원정·이두호 작가의 〈수집한 사이들〉은 타격이라는 간단한 요소만으로 일상의 사물에서 소리나 음악을 찾을 수 있는 작업이다. 악기 연주의 평등성을 고려하여 누구나 쉽게 자신만의 수집품으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서, 발달장애인이나 아이들도 쉽고 재미있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이다.

김성환 작가의 〈한 손 신스〉와 신원정·이두호 작가의 〈온라인 믹스〉는 코로나 상황을 염두에 두어 연구된 악기이다. 〈한 손 신스〉는 비접촉 방식의 악기 연주법이 특징으로, 손 제스처를 인식하는 입력 장치를 통해 한 손의 움직임만으로 소리를 낼 수 있는 장치다. 장치에는 두 가지 버전의 소리가 개발되었다. 하나는 화난 고양이 소리처럼 연주되는 ‘화난 고양이 신스’이고, 다른 하나는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는 ‘한 손 아르페지어터’이다. 손가락으로 섬세한 연주를 하기 어려운 몸을 염두에 두었다. 〈온라인 믹스〉는 웹 플랫폼으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온라인에 접속해서 서로가 업로드한 소리를 함께 라이브로 믹스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이다. 간단한 버튼 클릭으로 소리의 빠르기, 반복재생 등을 통해 하나의 소리를 다양한 느낌으로 믹싱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 참여자를 고려해 문자나 이미지로도 소리를 해설하며 다양한 접근법으로 믹싱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고, 이후 우리가 진행한 워크숍에서 시연했다.

윤수희 작가의 〈산책하는 몸〉은 움직임을 인지하는 센서를 이용해 몸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가 변형되는 악기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양한 박자의 움직임을 갖고 있는데, 자신만의 몸의 속도와 움직임에 집중해볼 수 있다. 뇌병변 장애인과 휠체어를 타는 신체가 고려 대상이었고, 산책할 때 들을 수 있는 소리나 환경음으로 구성되어 야외로 쉽게 떠나지 못하는 몸이 실내에서 간단한 움직임만으로 산책의 소리를 느껴보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소리 뒤의 소리〉는 내가 연구 개발한 듣기 장치이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다 만들게 되었다. 개조한 칼림바 악기로 소리를 내면 시험관 안의 나비가 움직이고, 수조 속 물방울과 빛이 움직이고, 바람이 불고, 작은 그릇에 알알이 담긴 구슬과 깃털이 진동한다. 하나의 소리가 발생한 이후에 그 소리를 상상할 수 있는 다른 움직임이 다시 펼쳐진다는 의도를 담아 이름 지었다.

  • 윤수희 <산책하는 몸>

  • 오로민경 <소리 뒤의 소리>

프로젝트를 위해 리서치를 하던 초기에 인상 깊게 본 자료가 청각장애인 작가 크리스틴 선 킴(Christine Sun Kim)의 테드 강연 ‘매혹적인 수어의 음악’이었다. 강연에서 작가는 자신과 무관할 줄 알았던 소리가 어떻게 자신과 가깝게 존재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청인의 언어는 선형적이지만 미국 수어는 공간적이어서 마치 화음 같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후 영상이나 공연, 다큐멘터리를 보며 미국 수어뿐 아니라 한국 수어도 굉장히 공간적이고 음악적으로 다가왔다.

리서치 기간 중 대화를 나눠준 두 명의 청각장애인 작가를 통해, 우리가 꼭 같은 방식으로 소리의 파동을 감각하지 않더라도 각자 경험하는 소리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두 명 다 인공와우 수술을 했는데, 한 사람은 수어를 하고 한 사람은 수어를 하지 못했다. 청각장애인 안에서도 서로 다른 소리 컨디션과 태도, 문화가 존재한다. 인공와우는 달팽이관의 기능을 대신 해주는 장치인데, 농인은 이것을 통해 소리를 청인의 감각으로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가끔 잡음이 생기기도 하고, 거리에 따른 소리 크기의 조율이 필요해서 완전히 청인과 비슷한 상태가 되긴 어렵다고 한다. 인공와우는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사이를 오가는 정체성을 만들어준다고 한다. 덕분에 때로는 오해가 생겨서 더욱 외로울 때도 혹은 새롭게 탐구할 거리가 생기는 듯도 해 보였다.

두 작가는 개별적으로 만났는데,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듣기 컨디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마스크 때문에 길에서 대화를 인지할 수 없는 상황, 인공와우 착용의 상태,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의 크기 등. 흥미롭게도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소리를 듣는 원리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소리라는 파동이 귀에 들어와 뇌에 전기신호를 보내준다.’ 매번 잊어버려 사전을 찾아야 했던 개념이,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몸을 통하니 이해가 되었다. 크린스틴 선 킴의 강연처럼, 내가 만난 두 사람은 소리를 굉장히 가깝게 의식하고, 또 잘 알고 있었다.

이 만남으로 우리가 꼭 같은 방식으로 소리를 느끼고 경험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소리나 음악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소리의 파동이 존재할 때 보이지 않아도 나에게 들리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들리지 않아도 눈으로 볼 수 있거나 진동으로 느낄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 곁에 흐르는 어떤 파동이 들리거나 보이지 않더라도 사람의 몸과 마음에 내재한 다양한 방식의 물결로 흐르고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움직이는 몸의 리듬을 보면 그런 상상을 자주 한다. 하지만 이 상상을 만드는 문장이 청인인 나의 감각의 기준 속에만 머무른다면, 그저 비장애인의 무례한 낭만일지도 모르겠다.

한번은 청각장애인에게 문자통역을 지원하는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의 ‘소통이 흐르는 밤’ 행사에 갔다. 앞서 소리에 대한 고민을 대화로 나눠준 작가 동료가 제안해준 자리다. 그곳에는 코다, 인공와우 수술을 한 농인, 수술하지 않은 농인, 청인 아이를 낳은 농인 부부 등 다양한 정체성의 청각장애인이 있었고, 식사 자리에서 몇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반가운 감정으로 서로를 소개하는 자리였지만, 내가 소리에 관한 작업을 하는 예술가이고 소리에 대해 질문하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하니 대화가 조금은 막연해짐을 느꼈다. 동시에 나 역시 내 질문에 대한 관점이 옳은 것이었는지 자신감이 떨어져, 함께 자리한 이들의 이야기를 더 듣기로 하였다. 한 분은 농인을 위한 심리상담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강의가 비대면으로 바뀌는 바람에 문자통역이 필요한데 비용이 없어 걱정이라고 하였다. 나라면 정말 감당하기에 어려운 상당한 액수였다. 청인 기준의 소리 사회에서 농인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구나 싶었다.

‘나에게는 중요했던 소리의 장이 농인의 입장에서는 그저 불필요한 강요로 작동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날 나는 소리에 대한 나의 인식을 계속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공기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내가 그날 다수의 비청인 사이에서 소수의 청인으로 있었기에 체감할 수 있었던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비장애인이 장애인 중심의 공간에 소수자로 초대되는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렵지 않을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을 관점의 전환이 계속 필요하다. 예술의 몫으로는 소리의 영역이 더 넓은 기준에서 다양하게 해석되어,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아도 함께 공명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생기길. 어설프거나 부침이 있다 하더라도 서로의 경험과 이야기, 몸에 내재된 노래가 풍성하게 공유될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이 생기길. 나의 생각이 여전히 단단한 착각 속에 빠진 것은 아닐지 계속 두들겨봐야겠다.

오로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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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소리의 풍경을 마주하고 들어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기억, 흔들리는 잎의 미묘한 떨림 등을 관찰하며 ‘더 작은 힘’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질문해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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