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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소통의 장벽을 없애는 특별한 멈춤

연극 〈브레이크:BREAK〉

  • 현수정 공연평론가
  • 등록일 2021-03-01
  • 조회수69

리뷰

연극 〈브레이크:BREAK〉

소통의 장벽을 없애는 특별한 멈춤

글. 현수정 공연평론가

달리던 지하철이 갑자기 덜컹거리더니 멈춰 선다. 그 안에는 시각장애인 남자(이동우 분)와 농인 여자(이소별 분)가 단둘이 타고 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논쟁까지 벌인다. 마치 외부와의 통신이 끊기고 시계마저 멈추자 두 사람의 새로운 시간이 열리기 시작한 것처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온라인 공연 〈브레이크:BREAK〉(안경모 작·연출)에서는 이러한 마술적인 상황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현실의 문제를 날카롭게 반영한 대사

지하철이 멈춘 40여 분 동안 인물들의 갈등과 감정 변화가 섬세하게 펼쳐진다. 처음에 이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해 대조적으로 반응하며 첨예하게 대립한다. 여자는 외부와 통신을 시도하는 등 어떻게든 해결하려 노력하는 반면, 남자는 그러한 여자의 행동에 냉소로 일관하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으로서 맞닥뜨린 장벽에 대한 서로 다른 경험과 연관된다.

관련하여 두 사람이 소환하는 기억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태도와 무관심을 성찰케 한다. 여자는 농학교에서 만난 교생선생님의 영향으로 도전정신을 갖게 되었다. 청인이지만 장벽을 허물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희망을 느낀 것이다. 여자는 교생선생님을 인용하며 이야기한다. 이렇게 태어나고 자랐는데 불편하다면 세상이 이상한 것이며, 그 이상한 세상에 나를 맞추지 말고 세상이 내게 맞추도록 해야 한다고. 반면에 남자는 “세상이 바뀌겠습니까”라고 반문한다.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게 된 그는 세상이 완전히 둘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을 나누는 장벽은 한쪽에서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 모임에 나가는 등 노력도 해봤지만, ‘무인도’ 같은 고립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만 느끼게 된 것이다.

이들은 나란히 앉아 적잖은 일화들을 풀어 놓는다. 농학교 다닐 때 ‘높은 사람들’의 행사성 방문이 있으면 억지로 연주하고 안겨야 했던 여자의 기억, 시각장애인에 대한 응원의 말에서 오히려 모멸감을 느꼈던 남자의 기억 등은 우리 사회에 결핍된 장애 감수성에 대해 생각게 한다. 그렇게 짧지만 밀도 높은 대화 끝에, 두 사람은 연대감을 느끼고 새로운 비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남자는 부정적인 태도를 바꾸어 여자가 고민하는 인공와우 수술에 대한 확신을 주고, 여자는 남자가 과거에 묶인 삶에서 벗어나 낯선 정거장에 내릴 수 있도록 응원한다.

온라인 배리어프리 공연의 새로운 가능성

시각장애인과 농인의 마술적인 소통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은 단지 두 사람의 소통이 아닌, 배리어프리 자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목할 것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배리어프리를 중심에 둔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소통에는 세 명의 코러스(도희경, 송윤, 김명연 분)가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데, 남자가 말하면 그 옆의 코러스가 수어로 통역하고, 그것을 읽은 여자가 수어로 답하면 그녀 옆의 코러스가 음성언어로 통역하는 식이다. 이러한 과정이 시간차 없이 이루어지며 극을 속도감 있게 전개한다. 즉, 이 작품에서 수어는 부가적인 수단이 아닌, 중심 언어이자 움직임이다.

이러한 독창성은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의 ‘ⓔ메이킹’ 과정에서 시도된 첫 실험 결과이다. 당사자성도 잘 보여주는데, 실화에 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대본 작업을 하고, 장애 예술가인 배우들과의 조율을 통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표준수어가 아닌 농수어를 활용하는 등 캐릭터를 엄밀하게 표현했다는 점도 남다르다. 또한, 극 중 인물처럼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게 된 이동우 배우와 어릴 때부터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온 이소별 배우의 경험이 녹아들어 더욱 진정성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이 온라인 연극으로서 보여준 새로운 가능성에도 주목할 수 있다. 코러스의 활용뿐 아니라 촬영 방식과 무대 콘셉트에서도 그러하다. 영화는 편집과 카메라 워킹을 통해 의도를 전달하지만 연극은 그렇지 않다. 공연장에서 관객은 무대 전체를 바라보며 능동적으로 관극한다. 그런 만큼, 이 연극은 원테이크로 촬영되었다. 그리고 긴 의자 하나만 놓여 있는 미니멀한 디자인과 절제된 조명을 통해, 배우의 호흡과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이때 코러스들이 지하철 문, 통신기 등의 사물로 변신하며 극적 재미를 더했다. 음악(윤현종 음악감독) 역시 기타, 퍼커션, 윈드차임 등이 무대 한쪽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며 다양한 공감각적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연극 무대가 일상과는 다른 법칙이 통용되는 세계로서 상상력을 통해 무한정 변신하고 확장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전환’을 가져오는 ‘멈춤’

극 중 지하철의 급정차는 단순한 ‘멈춤’이 아니다. 제목이기도 한 ‘브레이크’는 극의 초반에 코러스가 대사에서 언급하듯 ‘멈춤’ 이외에도 ‘파괴’ ‘휴식’ ‘전환’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인물들이 소통의 장벽을 없애며 연대할 수 있는, 그리고 관객이 인식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코로나19의 상황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재를 떠올리게도 한다. 일상이 멈춘 상태에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지 않은가. 모두가 고립되어 있는 요즘, 타인과의 관계와 공존은 중요한 이슈이다. 관련하여, 이 연극은 지금껏 우리가 폭주하는 경쟁 사회 속에서 불합리한 ‘타자화’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었는지 성찰케 한다. 그리고 배리어프리를 통해 ‘전환’의 비전을 보여준다.

이 시의적절한 연극은 지난 1월 27일에 유튜브에 공개되었고, 이후 창작진과 배우들의 실시간 코멘터리 영상을 통해 관객과 소통했다. 공연 자막이 있는 버전과 없는 버전, 스케치 영상 등을 포함하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유튜브 채널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다.

브레이크: Break

작·연출 안경모 | 출연 이동우, 이소별, 송윤(수어 등), 도희경(음성해설 등), 김명연(몸짓 등) | 온라인 상영

기존의 배리어프리 공연과는 다르게 수어와 음성해설을 작품 속으로 가지고 들어와 두 캐릭터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며,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중심 소재로 사용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마술과도 같은 이 둘의 대화는 이 작품만이 가지는 힘이자 관찰자가 생각을 전환하는 기회가 된다.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 – ⓔ메이킹 온라인 실험과정(Remake for Barrier-Free)의 일환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현수정

공연평론가, 중앙대 연극학과 겸임교수
lizhyun74@gmail.com

2021. 03월호

이보람 

현재 남호주대학교에서 문화 예술 경영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관객개발, 문화 다양성, 축제 경영에 대해 강의 하고 있다. 장애인 예술 접근성 향상, 장애인 예술가 전문성 개발, 장애 예술 국제 교류 프로그램 유치 및 연구 중이다.
boram.Lee@unisa.edu.au

상세내용

리뷰

연극 〈브레이크:BREAK〉

소통의 장벽을 없애는 특별한 멈춤

글. 현수정 공연평론가

달리던 지하철이 갑자기 덜컹거리더니 멈춰 선다. 그 안에는 시각장애인 남자(이동우 분)와 농인 여자(이소별 분)가 단둘이 타고 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논쟁까지 벌인다. 마치 외부와의 통신이 끊기고 시계마저 멈추자 두 사람의 새로운 시간이 열리기 시작한 것처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온라인 공연 〈브레이크:BREAK〉(안경모 작·연출)에서는 이러한 마술적인 상황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현실의 문제를 날카롭게 반영한 대사

지하철이 멈춘 40여 분 동안 인물들의 갈등과 감정 변화가 섬세하게 펼쳐진다. 처음에 이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해 대조적으로 반응하며 첨예하게 대립한다. 여자는 외부와 통신을 시도하는 등 어떻게든 해결하려 노력하는 반면, 남자는 그러한 여자의 행동에 냉소로 일관하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으로서 맞닥뜨린 장벽에 대한 서로 다른 경험과 연관된다.

관련하여 두 사람이 소환하는 기억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태도와 무관심을 성찰케 한다. 여자는 농학교에서 만난 교생선생님의 영향으로 도전정신을 갖게 되었다. 청인이지만 장벽을 허물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희망을 느낀 것이다. 여자는 교생선생님을 인용하며 이야기한다. 이렇게 태어나고 자랐는데 불편하다면 세상이 이상한 것이며, 그 이상한 세상에 나를 맞추지 말고 세상이 내게 맞추도록 해야 한다고. 반면에 남자는 “세상이 바뀌겠습니까”라고 반문한다.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게 된 그는 세상이 완전히 둘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을 나누는 장벽은 한쪽에서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 모임에 나가는 등 노력도 해봤지만, ‘무인도’ 같은 고립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만 느끼게 된 것이다.

이들은 나란히 앉아 적잖은 일화들을 풀어 놓는다. 농학교 다닐 때 ‘높은 사람들’의 행사성 방문이 있으면 억지로 연주하고 안겨야 했던 여자의 기억, 시각장애인에 대한 응원의 말에서 오히려 모멸감을 느꼈던 남자의 기억 등은 우리 사회에 결핍된 장애 감수성에 대해 생각게 한다. 그렇게 짧지만 밀도 높은 대화 끝에, 두 사람은 연대감을 느끼고 새로운 비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남자는 부정적인 태도를 바꾸어 여자가 고민하는 인공와우 수술에 대한 확신을 주고, 여자는 남자가 과거에 묶인 삶에서 벗어나 낯선 정거장에 내릴 수 있도록 응원한다.

온라인 배리어프리 공연의 새로운 가능성

시각장애인과 농인의 마술적인 소통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은 단지 두 사람의 소통이 아닌, 배리어프리 자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목할 것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배리어프리를 중심에 둔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소통에는 세 명의 코러스(도희경, 송윤, 김명연 분)가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데, 남자가 말하면 그 옆의 코러스가 수어로 통역하고, 그것을 읽은 여자가 수어로 답하면 그녀 옆의 코러스가 음성언어로 통역하는 식이다. 이러한 과정이 시간차 없이 이루어지며 극을 속도감 있게 전개한다. 즉, 이 작품에서 수어는 부가적인 수단이 아닌, 중심 언어이자 움직임이다.

이러한 독창성은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의 ‘ⓔ메이킹’ 과정에서 시도된 첫 실험 결과이다. 당사자성도 잘 보여주는데, 실화에 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대본 작업을 하고, 장애 예술가인 배우들과의 조율을 통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표준수어가 아닌 농수어를 활용하는 등 캐릭터를 엄밀하게 표현했다는 점도 남다르다. 또한, 극 중 인물처럼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게 된 이동우 배우와 어릴 때부터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온 이소별 배우의 경험이 녹아들어 더욱 진정성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이 온라인 연극으로서 보여준 새로운 가능성에도 주목할 수 있다. 코러스의 활용뿐 아니라 촬영 방식과 무대 콘셉트에서도 그러하다. 영화는 편집과 카메라 워킹을 통해 의도를 전달하지만 연극은 그렇지 않다. 공연장에서 관객은 무대 전체를 바라보며 능동적으로 관극한다. 그런 만큼, 이 연극은 원테이크로 촬영되었다. 그리고 긴 의자 하나만 놓여 있는 미니멀한 디자인과 절제된 조명을 통해, 배우의 호흡과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이때 코러스들이 지하철 문, 통신기 등의 사물로 변신하며 극적 재미를 더했다. 음악(윤현종 음악감독) 역시 기타, 퍼커션, 윈드차임 등이 무대 한쪽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며 다양한 공감각적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연극 무대가 일상과는 다른 법칙이 통용되는 세계로서 상상력을 통해 무한정 변신하고 확장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전환’을 가져오는 ‘멈춤’

극 중 지하철의 급정차는 단순한 ‘멈춤’이 아니다. 제목이기도 한 ‘브레이크’는 극의 초반에 코러스가 대사에서 언급하듯 ‘멈춤’ 이외에도 ‘파괴’ ‘휴식’ ‘전환’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인물들이 소통의 장벽을 없애며 연대할 수 있는, 그리고 관객이 인식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코로나19의 상황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재를 떠올리게도 한다. 일상이 멈춘 상태에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지 않은가. 모두가 고립되어 있는 요즘, 타인과의 관계와 공존은 중요한 이슈이다. 관련하여, 이 연극은 지금껏 우리가 폭주하는 경쟁 사회 속에서 불합리한 ‘타자화’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었는지 성찰케 한다. 그리고 배리어프리를 통해 ‘전환’의 비전을 보여준다.

이 시의적절한 연극은 지난 1월 27일에 유튜브에 공개되었고, 이후 창작진과 배우들의 실시간 코멘터리 영상을 통해 관객과 소통했다. 공연 자막이 있는 버전과 없는 버전, 스케치 영상 등을 포함하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유튜브 채널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다.

브레이크: Break

작·연출 안경모 | 출연 이동우, 이소별, 송윤(수어 등), 도희경(음성해설 등), 김명연(몸짓 등) | 온라인 상영

기존의 배리어프리 공연과는 다르게 수어와 음성해설을 작품 속으로 가지고 들어와 두 캐릭터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며,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중심 소재로 사용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마술과도 같은 이 둘의 대화는 이 작품만이 가지는 힘이자 관찰자가 생각을 전환하는 기회가 된다.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 – ⓔ메이킹 온라인 실험과정(Remake for Barrier-Free)의 일환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현수정

공연평론가, 중앙대 연극학과 겸임교수
lizhyun74@gmail.com

2021.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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