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창작공감:연출 <소극장판-타지>

리뷰 일렁이는 숨소리로 쓰다듬는 욕망

  • 양근애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2-06-02
  • 조회수384

리뷰

다정하고 부드럽다. 극장 전체를 감싸는 잔잔하고 차분한 음악, 객석 위에 놓인 폭신하고 따듯한 질감의 소도구들, 무대의 상태와 배우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친절한 설명, 관객이 기대거나 누워 쉴 수 있는 자리. <소극장판-타지>가 ‘판타지’를 품고 있다면, 이 다정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그 형식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이 느낌은 서로 다른 몸을 가진 타인들이 서로를 낯설게 여기기보다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가능하면 공감하기로 마음먹은 후에 서서히 다가온다. 대롱 모양의 스펀지 끝에 달린 털장갑이나 총체 모양의 ‘악기’로 자기 몸을 쓰다듬고 다른 관객의 피부에도 닿게 하는 시간은 다른 몸들이 함께 있다는 기분을 공유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객석에 마련된 서로 다른 모양의 의자들처럼,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시공간을 점유하며 보거나 듣거나 피부로 느끼는 동안 개별화된 감각은 각자에게 고유한 상태로 스며든다.

불가능한 판타지

<소극장판-타지>는 강보름 연출의 고민이 녹아든 미스핏(misfit, 불일치)의 감각을 다룬다. 공연의 제목처럼 판타지는 생경해지고 ‘소극장판’이라는 공간을 낯선 곳(他地), 다른 뜻(他志)으로 바꾸어 내는 순간들이 있다.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에 의하면 장애와 장애를 둘러싼 환경의 불일치에서 미스핏이 발생한다(「보통이 아닌 몸」, 2015).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자막이나 수어통역이 없는 방송 등 장애인의 몸에 부합되지 않는 물질적인 배치와 환경은 사회가 특정 유형의 몸에 맞게 설계되고 구성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몸에 잘 맞게 구성된 사회는 익명성으로 숨어들 자유를 허락한다. 이동지원 없이, 소통 언어에 대한 걱정 없이 극장에 오는 사람은 자기 존재의 강제된 전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시각적으로 노출되기 일쑤인 ‘보통이 아닌 몸’은 차별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대에는 네 명의 출연진, 휠체어를 탄 김지우와 시각장애인 이성수, 청각장애인 안정우, 비장애인 고애리와 두 명의 수어통역사 장진석, 신선아가 함께 있다. 지난 몇 년간 이루어진 극장의 접근성 제고 덕분에 어느새 수어통역사가 무대 위에서 배우와 함께 움직이는 장면을 보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극 외부의 보조적 역할이 아니라 공연의 일부이자 의지할 수 있는 소통의 협력자로 그들을 보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소극장판-타지>는 경사로, 이동지원, 수어통역, 자막, 음성해설 등을 통해 물질적 환경의 차별을 무너뜨리면서도 “극장에 끼워 맞춰지지 않는 다양한 몸들의 미스핏”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공연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으로 양분되지 않는 ‘다른 몸들’을 강조하고 다른 몸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극장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를 떠올릴 수 있도록 공통지대를 발견하고자 한다. 사회적 구성물과의 불일치는 자기를 둘러싼 세계와의 불화와 무관하지 않다. 물질적 배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습, 통념, 태도가 그 불화를 현시한다. 그러나 미스핏의 감각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그 감각이 구체적인 차별과 배제의 산물이라면 그것은 사회구조적 문제로 날카롭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보통이 아닌’ ‘다른 몸’들이 극장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은 그 시작에 놓인다.

아직 못한 욕망 이야기가 파도처럼

<소극장판-타지>의 출연진은 자신이 특정 장애를 대표하거나, 몸의 취약성에 관한 이야기가 장애의 문제로 수렴되는 일을 대체로 저어하는 듯했다. 그러나 ‘리처드 3세’를 그려내는 장면에 오면 무대 위의 존재로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일이 한 곳을 향한다. 왜 ‘리처드 3세’일까. ‘굽은 척추’를 강조해왔던 폭군 리처드 3세를 연기하고 싶다는 욕망이 정말 장애 때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성수와 지우와 정우가 모두 리처드 3세 역할을 원할 때, 비장애인인 애리만 클래런스를 하겠다고 하는 장면은 다른 몸들의 불평등한 경계를 도리어 뚜렷하게 만든다. 장애 예술가의 욕망은 장애의 스펙트럼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지우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되짚어 보자. 휠체어를 탄 슬은 ‘좋은 사람’인 현재가 자신에게 희생하지 않고 자신을 더 ‘지저분하게’ 욕망해주길 바란다. 숨어들 수 없는 다른 몸이 배려나 보호가 아니라 자기 몸의 욕망을 말할 수 있는 무대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판타지일까. ‘장애인다움’을 벗어던지고 더 자유롭게 슬의 욕망이 말해질 수 있다면, 장애·비장애의 경계를 가뿐히 넘고 올라선 그 판타지를 기꺼이 응원하고 싶다.

극의 마지막 부분은 다시, 다정하고 부드러운 음악 속이다. 관객은 출연진과 함께 무대 위에 기대거나 누워있다. 서로 다른 몸들로부터 나온 다양한 숨소리가 파도처럼 일렁이며 음악을 만들어낸다. 신기루처럼 ‘모두를 위한 연극’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아직 말해지지 못한 욕망의 이야기가 그 아래 함께 일렁이고 있다. ‘보통이 아닌’ 그 음악을 들을 준비가 필요하다.

소극장 판타지

[창작공감:연출] 강보름 | 2022.4.20.~5.1. | 소극장 판

‘장애와 예술’을 주제로 한 2021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연출]의 세 작품 중 강보름이 연출한 작품이다. 당연함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어내는 강보름 연출은 소극장 판에 다양한 감각들이 모여들게 한다. 수많은 눈과 귀, 손과 입을 가진 몸이 있고, 이 몸이 말을 건네오기 시작한다. 그 말들을 전부 알아채지 않아도 된다. 전부를 이해할 수 없다면, 무심코 놓쳐버려도 괜찮다. 그저 감각 하기만 해도 괜찮은 연극. 바로 우리를 위해 준비된 놀이터, ‘판타지’이다.

관련영상. 강보름 연출가 ‘소극장판-타지’ 본 공연을 앞두고 | 창작공감: 연출 바로가기(링크)

양근애

연극평론가,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rootsfly@hanmail.net

사진 제공. 국립극단

2022년 6월 (31호)

상세내용

리뷰

다정하고 부드럽다. 극장 전체를 감싸는 잔잔하고 차분한 음악, 객석 위에 놓인 폭신하고 따듯한 질감의 소도구들, 무대의 상태와 배우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친절한 설명, 관객이 기대거나 누워 쉴 수 있는 자리. <소극장판-타지>가 ‘판타지’를 품고 있다면, 이 다정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그 형식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이 느낌은 서로 다른 몸을 가진 타인들이 서로를 낯설게 여기기보다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가능하면 공감하기로 마음먹은 후에 서서히 다가온다. 대롱 모양의 스펀지 끝에 달린 털장갑이나 총체 모양의 ‘악기’로 자기 몸을 쓰다듬고 다른 관객의 피부에도 닿게 하는 시간은 다른 몸들이 함께 있다는 기분을 공유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객석에 마련된 서로 다른 모양의 의자들처럼,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시공간을 점유하며 보거나 듣거나 피부로 느끼는 동안 개별화된 감각은 각자에게 고유한 상태로 스며든다.

불가능한 판타지

<소극장판-타지>는 강보름 연출의 고민이 녹아든 미스핏(misfit, 불일치)의 감각을 다룬다. 공연의 제목처럼 판타지는 생경해지고 ‘소극장판’이라는 공간을 낯선 곳(他地), 다른 뜻(他志)으로 바꾸어 내는 순간들이 있다.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에 의하면 장애와 장애를 둘러싼 환경의 불일치에서 미스핏이 발생한다(「보통이 아닌 몸」, 2015).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자막이나 수어통역이 없는 방송 등 장애인의 몸에 부합되지 않는 물질적인 배치와 환경은 사회가 특정 유형의 몸에 맞게 설계되고 구성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몸에 잘 맞게 구성된 사회는 익명성으로 숨어들 자유를 허락한다. 이동지원 없이, 소통 언어에 대한 걱정 없이 극장에 오는 사람은 자기 존재의 강제된 전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시각적으로 노출되기 일쑤인 ‘보통이 아닌 몸’은 차별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대에는 네 명의 출연진, 휠체어를 탄 김지우와 시각장애인 이성수, 청각장애인 안정우, 비장애인 고애리와 두 명의 수어통역사 장진석, 신선아가 함께 있다. 지난 몇 년간 이루어진 극장의 접근성 제고 덕분에 어느새 수어통역사가 무대 위에서 배우와 함께 움직이는 장면을 보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극 외부의 보조적 역할이 아니라 공연의 일부이자 의지할 수 있는 소통의 협력자로 그들을 보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소극장판-타지>는 경사로, 이동지원, 수어통역, 자막, 음성해설 등을 통해 물질적 환경의 차별을 무너뜨리면서도 “극장에 끼워 맞춰지지 않는 다양한 몸들의 미스핏”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공연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으로 양분되지 않는 ‘다른 몸들’을 강조하고 다른 몸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극장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를 떠올릴 수 있도록 공통지대를 발견하고자 한다. 사회적 구성물과의 불일치는 자기를 둘러싼 세계와의 불화와 무관하지 않다. 물질적 배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습, 통념, 태도가 그 불화를 현시한다. 그러나 미스핏의 감각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그 감각이 구체적인 차별과 배제의 산물이라면 그것은 사회구조적 문제로 날카롭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보통이 아닌’ ‘다른 몸’들이 극장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은 그 시작에 놓인다.

아직 못한 욕망 이야기가 파도처럼

<소극장판-타지>의 출연진은 자신이 특정 장애를 대표하거나, 몸의 취약성에 관한 이야기가 장애의 문제로 수렴되는 일을 대체로 저어하는 듯했다. 그러나 ‘리처드 3세’를 그려내는 장면에 오면 무대 위의 존재로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일이 한 곳을 향한다. 왜 ‘리처드 3세’일까. ‘굽은 척추’를 강조해왔던 폭군 리처드 3세를 연기하고 싶다는 욕망이 정말 장애 때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성수와 지우와 정우가 모두 리처드 3세 역할을 원할 때, 비장애인인 애리만 클래런스를 하겠다고 하는 장면은 다른 몸들의 불평등한 경계를 도리어 뚜렷하게 만든다. 장애 예술가의 욕망은 장애의 스펙트럼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지우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되짚어 보자. 휠체어를 탄 슬은 ‘좋은 사람’인 현재가 자신에게 희생하지 않고 자신을 더 ‘지저분하게’ 욕망해주길 바란다. 숨어들 수 없는 다른 몸이 배려나 보호가 아니라 자기 몸의 욕망을 말할 수 있는 무대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판타지일까. ‘장애인다움’을 벗어던지고 더 자유롭게 슬의 욕망이 말해질 수 있다면, 장애·비장애의 경계를 가뿐히 넘고 올라선 그 판타지를 기꺼이 응원하고 싶다.

극의 마지막 부분은 다시, 다정하고 부드러운 음악 속이다. 관객은 출연진과 함께 무대 위에 기대거나 누워있다. 서로 다른 몸들로부터 나온 다양한 숨소리가 파도처럼 일렁이며 음악을 만들어낸다. 신기루처럼 ‘모두를 위한 연극’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아직 말해지지 못한 욕망의 이야기가 그 아래 함께 일렁이고 있다. ‘보통이 아닌’ 그 음악을 들을 준비가 필요하다.

소극장 판타지

[창작공감:연출] 강보름 | 2022.4.20.~5.1. | 소극장 판

‘장애와 예술’을 주제로 한 2021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연출]의 세 작품 중 강보름이 연출한 작품이다. 당연함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어내는 강보름 연출은 소극장 판에 다양한 감각들이 모여들게 한다. 수많은 눈과 귀, 손과 입을 가진 몸이 있고, 이 몸이 말을 건네오기 시작한다. 그 말들을 전부 알아채지 않아도 된다. 전부를 이해할 수 없다면, 무심코 놓쳐버려도 괜찮다. 그저 감각 하기만 해도 괜찮은 연극. 바로 우리를 위해 준비된 놀이터, ‘판타지’이다.

관련영상. 강보름 연출가 ‘소극장판-타지’ 본 공연을 앞두고 | 창작공감: 연출 바로가기(링크)

양근애

연극평론가,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rootsfly@hanmail.net

사진 제공. 국립극단

2022년 6월 (31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