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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사람들의 까끌까끌 분투기①

이슈 빛나는 일상을 치열하게 꾸준하게 사랑스럽게

  • 고나영·백승호·진리 
  • 등록일 2023-02-01
  • 조회수1338

이슈

새해를 맞아 예술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작점과 까끌까끌한 분투기를 들어본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예술가의 정체성을 오가며 두려운 만큼 설렘을 안고 미지의 가능성을 향해 길을 찾아 나서는 청년 예술가들의 새해에 부치는 기대와 도전을 담아본다.

① 고나영·백승호·진리

   |   

② 김슬온·이유정·이준민

왼쪽부터 고나영, 백승호, 진리

활동가와 예술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나영 배우

1. 처음으로 예술가라고 느낀 때

장애여성운동 활동가로서 발표나 발언할 때가 많은데, 어떤 모습으로 발표할지도 생각하지만 어떤 말을 할지를 더 중요하게 고민합니다. 이때 ‘예술가도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고민하지 않을까? 활동가와 예술가가 닮았구나’, 예술가와 활동가의 경계가 모호함을 느꼈어요. 극단 춤추는허리(춤허리)에게 무대는 ‘특정 공간이 아니라 우리 얘기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고, ‘우리는 무대 안팎을 넘나든다’라고 소개합니다. 춤추는허리에서 예술 활동을 시작하면서 무대의 정의와 제 정체성을 같이 고민하게 됩니다. 예술 활동으로 춤추는허리를 표현할 때 무엇을 어떻게 가장 춤허리답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순간, 춤허리의 무대처럼 제 정체성이 활동가와 예술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본캐와 부캐

제 본캐는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이고, 부캐는 극단 춤추는허리 배우입니다. 본캐-부캐가 넘나들며 섞이면서 운동-창작이 어우러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본캐 부캐의 특징이 강조되는 순간이 있지만, 그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각각의 역할을 경직되게 하는 것 같아요. 제 본캐와 부캐 모두 자유, 평등, 인간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고 확장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이 지향을 큰 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3. 기억에 남는 순간

공연 연습을 하면서 동료들이 제 배역인 지영이에 대한 감정선과 디테일을 잡아주던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이걸 다 연기하기엔 연습 시간이 부족해요”라고 말했더니, 한 동료가 제 어깨에 손을 얹으며 “걱정하지 마. 이건 연기가 아니라 네 인생이야. 평생을 연습한 거야”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때 ‘맞아. 누구에게 연기력을 인정받으려고 연기하는 것이 아니지’라는 생각이 번뜩 든 거예요. 춤추는허리는 정형화된 연기를 잘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에요. 예술을 통해서 관객에게 장애여성의 삶을 보여주고 인권을 말하는 우리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무대에 올라요. 그 방향성을 잃을 뻔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아찔함을 느꼈죠. 그 후로는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장면의 목표에 관해 동료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을 더 많이 가졌어요. 저도 지영이의 감정선을 표현하기 위해 더 집중했고요. 재미있는 건, <빛나는> 공연을 마치고 나서 관객분들이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다는 피드백을 남겨주셨어요. 연기를 잘한다는 피드백에 아이러니함을 느끼면서도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더 확실히 깨달았던 것 같아요.

4. 나를 한 문장으로 말하면

‘장애여성운동 활동가’라고 말하고 싶어요. 앞으로 많은 사람과 현장을 만나고 연대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요. 기존의 틀을 깨고 도전받는 활동가의 정체성을 확장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요. 그리고 활동가와 예술가들이 그렇듯, 매일 꾸준히 하루하루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정의예요.

5. 새해 계획과 꿈꾸는 미래

새해에는 춤추는허리와 <빛나는> 공연 작업을 하면서 또 다른 무대에서 자신의 소수성을 만나고, 함께 연결될 소수자들을 만나는 것이에요. 춤허리의 기획자이기도 한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님의 ‘실패하는 연습실’이라는 말처럼,(참고 글(링크)) 예술가로서는 “무대 안팎에서 세상과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실천”이자 동료들과 실패를 연습하는 공간의 의미를 몸에 새기면서 동료들을 믿고 치열하게 관계 맺으며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싶어요. 동료들과 활동 경험을 쌓아가면서 고민과 언어가 구체화될수록 예술가로서의 정체성도 구체화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창작극 <빛나는>(2022)


아직 깨어나지 못한, 그러나 끝내 이루고 마는
백승호 시인

1. 처음으로 예술가라고 느낀 때

어머니가 잠시 템플스테이를 가시고 혼자 있으면서 <삶 1>이라는 시를 썼을 때예요. 시가 시라는 형식에만 갇히지 않고, 제 마음을 잘 드러내는 마음의 창문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어머니를 잃은 갈매기처럼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던 시기였는데요. 그 당시의 제 마음을 잘 살려낸 시 같아 아직도 그 여운이 잊히지 않습니다.

2. 본캐와 부캐

저의 본캐는 주민센터 행정 도우미에요. 주민센터의 업무를 원활히 하는 데 일조한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캐는 감격과 슬픔 그리고 환희와 실망 등을 거듭하며 다양한 고비를 만나지만 끝내 이루고 마는 사람, 일명 시인입니다.

3. 기억에 남는 또는 아찔했던 순간

겉멋만 들어서 번지르르하게 말만 잘하고, 행동하지 않는 나 자신을 마주했을 때가 아닐까 싶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자 아찔했던 순간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코딩 교육을 수료했는데, 전부 잘 마무리하고 집에 갈 무렵 교수님이 제게 해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생각나요. 그분이 시인이신데요, “인문과 과학은 융합되어야만 한다”고 하셨죠. 한마디로 시인이라 해서 시만 써서도 안 되고, 과학자라 해서 너무 과학만 파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어요. 한 가지에 너무 치중하면 안 된달까요? 앞으로 더욱 그 말씀을 잘 이행하려 노력할 겁니다.

4. 나를 한 문장으로 말하면

‘눈 먼 시인’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매일매일 여러 가지 경험을 겪어보니, 제가 정말 한참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앞으로 더더욱 많은 경험으로 지혜를 쌓고 지식을 넓혀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합니다.

5. 새해 계획과 꿈꾸는 미래

올해 제가 29살인데요, 30살 이전에 저의 시집을 갖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지금의 나를 지독히 사랑하겠습니다. 새해 계획은 ‘작년보다 좀 더 성실하게 꾸준히 할 일을 해보자’입니다.

  • 
삶 1
새벽하늘 갈매기 한 마리
백승호
눈에서 보석이 뚝뚝 떨어진다
어미를 잃어 마음에 칼이 박혀 잠이 안 온다
내가 키우는 갈매기 한 마리
이따금 바다에 나가 풀어주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물고기를 물고 나에게 온다
나는 그 갈매기가 예뻐서 쓰다듬다가
가여워 부둥켜안고 운다
울어라 네 보석을 보여봐라
내 안의 혼과 공명하는 그 보석을,
보석이 보일 때 난 또 한 마리의 갈매기가 된다
같이 날아다니자
이 슬프고도 유원한 세상을...
  • 
숨 참기
백승호
마음속으로 숫자 3을 센다.
3, 마음이 인플레이션된다.
2, 마음 중립 상태.
1, 마음이 디플레이션된다.
0, 마음이 수평이 된다. 저 머나멀고도 드나먼 지평으로 가는 길,
마치 고원이 기르는 고아가 된 듯한 기분...
나와 꼭 약속한다.
숨을 참지 말고 꼭 숲으로 돌아가기로... 또한, 숲에서 혼자 숨바꼭질하지 말기로.

사랑하니까 그리는
진리 작가

1. 처음으로 예술가라고 느낀 때

작업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쭉 제가 예술가라고 느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저 스스로 캔버스를 선택하고, 밑그림을 그리는 순간들. 특히 색깔 배합을 할 때 정말 자유로워져요. 캔버스 위에 제가 원하는 것을 완성하는 모든 과정에서 제가 생각하고 선택한 것들이 구현되니까요. 작품을 만드는 전 과정에서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느껴요.

2. 본캐와 부캐

본캐는 예술가이고 부캐는 복지관에 있는 대학의 부회장이에요. 저는 복지관 대학 생활을 정말 즐겁게 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전교 학생회 부회장에 당선되었어요. 제 캐치프레이즈는 ‘긍정의 힘을 전하는 후보’였어요. 매일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할 수 있다, 사랑해, 좋아요, 힘내”라는 말을 전하거든요. 그래서 저의 부캐는 긍정의 힘을 전하는 부학생회장입니다.

3. 기억에 남는 순간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때 제 언니들의 친구이자 지금은 제 친구가 된 분들이 와주셨는데, 제 작품 소개를 듣고 저의 작품 활동을 응원해 주셨어요. 그리고 가족이 함께 오신 관람객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따로 인스타그램으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관람하고 돌아가는 길에도 아이와 함께 작가님 그림 보느라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놓쳤어요. 아이가 본 전시 중에 제일 재미있었다고 했어요. 아이에게 좋은 시간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제가 그린 그림에 담긴 사랑의 메시지를 온전히 느끼고 피드백 주신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찔했던 순간은 저작권 도용을 당했을 때였어요. 한 업체에서 제 그림이 들어간 소품을 팔고 계셨어요. 저희가 주문 제작을 맡긴 업체였는데, 저와 상의하거나 제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저작권이 등록된 그림과 그림을 넣은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어요. 정말 아찔했었어요.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혼자서 해결할 수 있었을까 고민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법적으로 대응하기엔 회사 대 작가 개인의 상황이어서 더 어려움이 있었어요.

4. 나를 한 문장으로 말하면

‘사랑하니까 그리는 진리 작가’입니다. 저는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것들에 대해서 그림을 그리곤 해요. 계절의 변화라든가 나무와 꽃의 움직임, 산책하는 공간 등이요.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소중함을 잊어버리기 쉬운 것들인데, 저는 이런 것들이 너무 소중하고 사랑해요. 동물 중에서는 처음에는 길가에서 만난 고양이와 사랑에 빠졌는데요. 그 다음엔 탄천에서 만난 오리들, 요즘엔 토끼가 제 마음에 들어와서 계속 토끼를 그리고 있어요. 토끼 인형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잠을 자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진심으로 거짓 없이 사랑하는 것들을 그려요. 왜 그걸 그리는지 물으신다면 제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사랑하니까 그려요. 사랑하는 것들을 그림으로 담아내는 저는 진리 작가입니다.

5. 새해 계획과 꿈꾸는 미래

해외에서 열리는 전시에 참여해보고 싶어요. 국제교류전 등에 참여해서 그림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요. 제 그림에 있는 고양이, 오리, 토끼들과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더 많은 친구를 만나고 싶습니다. 새해 계획은 여전히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제 마음의 창인 캔버스에 담아내는 한 해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 글은 진리 작가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언니인 진은총 님이 작성했습니다.

  • 처음 사랑에 빠진 고양이

  • 최근에 사랑에 빠진 오리와 토끼

고나영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활동가이고,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배우다. 웹독백극 <춤추는 혼잣말>(2020)에 조연출로 참여했고, 창작극 <빛나는>(2022)에 출연했다.
intime0116@gmail.com
* 장애여성공감 홈페이지(링크)

백승호

몇 해 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시라는 구들장으로 마음을 덥히기 시작한 청년 장애 예술가다. 시를 매개로 타인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tmdgh9505@naver.com

진리

강남장애인복지관에서 일대일 예술 멘토링을 통해 예술적 교감을 나누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주로 회화 작업을 하다가 최근에는 도예와 회화를 접목시킨 작업을 하고 있다.
* 인스타그램(링크)
* 홈페이지(링크)

정리. 프로젝트 궁리 최순화, 최용휘 projectgr@naver.com
사진.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자료사진 제공. 필자

2023년 2월 (39호)

상세내용

이슈

새해를 맞아 예술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작점과 까끌까끌한 분투기를 들어본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예술가의 정체성을 오가며 두려운 만큼 설렘을 안고 미지의 가능성을 향해 길을 찾아 나서는 청년 예술가들의 새해에 부치는 기대와 도전을 담아본다.

① 고나영·백승호·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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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김슬온·이유정·이준민

왼쪽부터 고나영, 백승호, 진리

활동가와 예술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나영 배우

1. 처음으로 예술가라고 느낀 때

장애여성운동 활동가로서 발표나 발언할 때가 많은데, 어떤 모습으로 발표할지도 생각하지만 어떤 말을 할지를 더 중요하게 고민합니다. 이때 ‘예술가도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고민하지 않을까? 활동가와 예술가가 닮았구나’, 예술가와 활동가의 경계가 모호함을 느꼈어요. 극단 춤추는허리(춤허리)에게 무대는 ‘특정 공간이 아니라 우리 얘기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고, ‘우리는 무대 안팎을 넘나든다’라고 소개합니다. 춤추는허리에서 예술 활동을 시작하면서 무대의 정의와 제 정체성을 같이 고민하게 됩니다. 예술 활동으로 춤추는허리를 표현할 때 무엇을 어떻게 가장 춤허리답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순간, 춤허리의 무대처럼 제 정체성이 활동가와 예술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본캐와 부캐

제 본캐는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이고, 부캐는 극단 춤추는허리 배우입니다. 본캐-부캐가 넘나들며 섞이면서 운동-창작이 어우러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본캐 부캐의 특징이 강조되는 순간이 있지만, 그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각각의 역할을 경직되게 하는 것 같아요. 제 본캐와 부캐 모두 자유, 평등, 인간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고 확장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이 지향을 큰 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3. 기억에 남는 순간

공연 연습을 하면서 동료들이 제 배역인 지영이에 대한 감정선과 디테일을 잡아주던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이걸 다 연기하기엔 연습 시간이 부족해요”라고 말했더니, 한 동료가 제 어깨에 손을 얹으며 “걱정하지 마. 이건 연기가 아니라 네 인생이야. 평생을 연습한 거야”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때 ‘맞아. 누구에게 연기력을 인정받으려고 연기하는 것이 아니지’라는 생각이 번뜩 든 거예요. 춤추는허리는 정형화된 연기를 잘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에요. 예술을 통해서 관객에게 장애여성의 삶을 보여주고 인권을 말하는 우리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무대에 올라요. 그 방향성을 잃을 뻔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아찔함을 느꼈죠. 그 후로는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장면의 목표에 관해 동료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을 더 많이 가졌어요. 저도 지영이의 감정선을 표현하기 위해 더 집중했고요. 재미있는 건, <빛나는> 공연을 마치고 나서 관객분들이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다는 피드백을 남겨주셨어요. 연기를 잘한다는 피드백에 아이러니함을 느끼면서도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더 확실히 깨달았던 것 같아요.

4. 나를 한 문장으로 말하면

‘장애여성운동 활동가’라고 말하고 싶어요. 앞으로 많은 사람과 현장을 만나고 연대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요. 기존의 틀을 깨고 도전받는 활동가의 정체성을 확장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요. 그리고 활동가와 예술가들이 그렇듯, 매일 꾸준히 하루하루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정의예요.

5. 새해 계획과 꿈꾸는 미래

새해에는 춤추는허리와 <빛나는> 공연 작업을 하면서 또 다른 무대에서 자신의 소수성을 만나고, 함께 연결될 소수자들을 만나는 것이에요. 춤허리의 기획자이기도 한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님의 ‘실패하는 연습실’이라는 말처럼,(참고 글(링크)) 예술가로서는 “무대 안팎에서 세상과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실천”이자 동료들과 실패를 연습하는 공간의 의미를 몸에 새기면서 동료들을 믿고 치열하게 관계 맺으며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싶어요. 동료들과 활동 경험을 쌓아가면서 고민과 언어가 구체화될수록 예술가로서의 정체성도 구체화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창작극 <빛나는>(2022)


아직 깨어나지 못한, 그러나 끝내 이루고 마는
백승호 시인

1. 처음으로 예술가라고 느낀 때

어머니가 잠시 템플스테이를 가시고 혼자 있으면서 <삶 1>이라는 시를 썼을 때예요. 시가 시라는 형식에만 갇히지 않고, 제 마음을 잘 드러내는 마음의 창문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어머니를 잃은 갈매기처럼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던 시기였는데요. 그 당시의 제 마음을 잘 살려낸 시 같아 아직도 그 여운이 잊히지 않습니다.

2. 본캐와 부캐

저의 본캐는 주민센터 행정 도우미에요. 주민센터의 업무를 원활히 하는 데 일조한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캐는 감격과 슬픔 그리고 환희와 실망 등을 거듭하며 다양한 고비를 만나지만 끝내 이루고 마는 사람, 일명 시인입니다.

3. 기억에 남는 또는 아찔했던 순간

겉멋만 들어서 번지르르하게 말만 잘하고, 행동하지 않는 나 자신을 마주했을 때가 아닐까 싶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자 아찔했던 순간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코딩 교육을 수료했는데, 전부 잘 마무리하고 집에 갈 무렵 교수님이 제게 해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생각나요. 그분이 시인이신데요, “인문과 과학은 융합되어야만 한다”고 하셨죠. 한마디로 시인이라 해서 시만 써서도 안 되고, 과학자라 해서 너무 과학만 파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어요. 한 가지에 너무 치중하면 안 된달까요? 앞으로 더욱 그 말씀을 잘 이행하려 노력할 겁니다.

4. 나를 한 문장으로 말하면

‘눈 먼 시인’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매일매일 여러 가지 경험을 겪어보니, 제가 정말 한참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앞으로 더더욱 많은 경험으로 지혜를 쌓고 지식을 넓혀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합니다.

5. 새해 계획과 꿈꾸는 미래

올해 제가 29살인데요, 30살 이전에 저의 시집을 갖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지금의 나를 지독히 사랑하겠습니다. 새해 계획은 ‘작년보다 좀 더 성실하게 꾸준히 할 일을 해보자’입니다.

  • 
삶 1
새벽하늘 갈매기 한 마리
백승호
눈에서 보석이 뚝뚝 떨어진다
어미를 잃어 마음에 칼이 박혀 잠이 안 온다
내가 키우는 갈매기 한 마리
이따금 바다에 나가 풀어주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물고기를 물고 나에게 온다
나는 그 갈매기가 예뻐서 쓰다듬다가
가여워 부둥켜안고 운다
울어라 네 보석을 보여봐라
내 안의 혼과 공명하는 그 보석을,
보석이 보일 때 난 또 한 마리의 갈매기가 된다
같이 날아다니자
이 슬프고도 유원한 세상을...
  • 
숨 참기
백승호
마음속으로 숫자 3을 센다.
3, 마음이 인플레이션된다.
2, 마음 중립 상태.
1, 마음이 디플레이션된다.
0, 마음이 수평이 된다. 저 머나멀고도 드나먼 지평으로 가는 길,
마치 고원이 기르는 고아가 된 듯한 기분...
나와 꼭 약속한다.
숨을 참지 말고 꼭 숲으로 돌아가기로... 또한, 숲에서 혼자 숨바꼭질하지 말기로.

사랑하니까 그리는
진리 작가

1. 처음으로 예술가라고 느낀 때

작업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쭉 제가 예술가라고 느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저 스스로 캔버스를 선택하고, 밑그림을 그리는 순간들. 특히 색깔 배합을 할 때 정말 자유로워져요. 캔버스 위에 제가 원하는 것을 완성하는 모든 과정에서 제가 생각하고 선택한 것들이 구현되니까요. 작품을 만드는 전 과정에서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느껴요.

2. 본캐와 부캐

본캐는 예술가이고 부캐는 복지관에 있는 대학의 부회장이에요. 저는 복지관 대학 생활을 정말 즐겁게 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전교 학생회 부회장에 당선되었어요. 제 캐치프레이즈는 ‘긍정의 힘을 전하는 후보’였어요. 매일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할 수 있다, 사랑해, 좋아요, 힘내”라는 말을 전하거든요. 그래서 저의 부캐는 긍정의 힘을 전하는 부학생회장입니다.

3. 기억에 남는 순간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때 제 언니들의 친구이자 지금은 제 친구가 된 분들이 와주셨는데, 제 작품 소개를 듣고 저의 작품 활동을 응원해 주셨어요. 그리고 가족이 함께 오신 관람객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따로 인스타그램으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관람하고 돌아가는 길에도 아이와 함께 작가님 그림 보느라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놓쳤어요. 아이가 본 전시 중에 제일 재미있었다고 했어요. 아이에게 좋은 시간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제가 그린 그림에 담긴 사랑의 메시지를 온전히 느끼고 피드백 주신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찔했던 순간은 저작권 도용을 당했을 때였어요. 한 업체에서 제 그림이 들어간 소품을 팔고 계셨어요. 저희가 주문 제작을 맡긴 업체였는데, 저와 상의하거나 제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저작권이 등록된 그림과 그림을 넣은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어요. 정말 아찔했었어요.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혼자서 해결할 수 있었을까 고민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법적으로 대응하기엔 회사 대 작가 개인의 상황이어서 더 어려움이 있었어요.

4. 나를 한 문장으로 말하면

‘사랑하니까 그리는 진리 작가’입니다. 저는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것들에 대해서 그림을 그리곤 해요. 계절의 변화라든가 나무와 꽃의 움직임, 산책하는 공간 등이요.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소중함을 잊어버리기 쉬운 것들인데, 저는 이런 것들이 너무 소중하고 사랑해요. 동물 중에서는 처음에는 길가에서 만난 고양이와 사랑에 빠졌는데요. 그 다음엔 탄천에서 만난 오리들, 요즘엔 토끼가 제 마음에 들어와서 계속 토끼를 그리고 있어요. 토끼 인형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잠을 자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진심으로 거짓 없이 사랑하는 것들을 그려요. 왜 그걸 그리는지 물으신다면 제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사랑하니까 그려요. 사랑하는 것들을 그림으로 담아내는 저는 진리 작가입니다.

5. 새해 계획과 꿈꾸는 미래

해외에서 열리는 전시에 참여해보고 싶어요. 국제교류전 등에 참여해서 그림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요. 제 그림에 있는 고양이, 오리, 토끼들과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더 많은 친구를 만나고 싶습니다. 새해 계획은 여전히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제 마음의 창인 캔버스에 담아내는 한 해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 글은 진리 작가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언니인 진은총 님이 작성했습니다.

  • 처음 사랑에 빠진 고양이

  • 최근에 사랑에 빠진 오리와 토끼

고나영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활동가이고,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배우다. 웹독백극 <춤추는 혼잣말>(2020)에 조연출로 참여했고, 창작극 <빛나는>(2022)에 출연했다.
intime0116@gmail.com
* 장애여성공감 홈페이지(링크)

백승호

몇 해 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시라는 구들장으로 마음을 덥히기 시작한 청년 장애 예술가다. 시를 매개로 타인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tmdgh9505@naver.com

진리

강남장애인복지관에서 일대일 예술 멘토링을 통해 예술적 교감을 나누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주로 회화 작업을 하다가 최근에는 도예와 회화를 접목시킨 작업을 하고 있다.
* 인스타그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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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프로젝트 궁리 최순화, 최용휘 projectgr@naver.com
사진.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자료사진 제공. 필자

2023년 2월 (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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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3 09: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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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젊은 예술가들을 소개해주시니 정말 좋네요. 갓생예술가분들 응원합니다!!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