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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만나러 가는 길④ 대안학교에서

이슈 정체성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통로

  • 김주희 대표·노지원 농교사(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 등록일 2023-06-28
  • 조회수390

이슈

진정한 의미로 예술을 누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예술 정보를 접하고, 각자의 관심과 취향에 따라 작품과 활동을 선택하고, 편리한 이동 경로와 교통편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즐겁게 관람과 활동을 마친 후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모든 과정이 보장되어야 한다. 예술을 만나러 가는 길에는 어떤 다양한 경로가 있을까. 그 길에 걸림돌이 있다면 무엇일까. 예술을 향한 여정이 더욱 풍성한 의미와 즐거움으로 채워지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들어보았다.

① 혼자서

      

② 친구와 함께

      

③ 자녀와 함께

      

④ 대안학교에서

      

⑤ 복지관에서

사단법인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하 소보사)은 농인을 ‘잘 보고 수어로 말하는 사람’으로 정의하며, 농아동과 농청소년이 수어로 놀며 배우며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함께하는 배움공동체다. 모든 사람은 인생에서 긴 겨울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 겨울을 보내는 나름의 방법들이 있을 텐데, 소보사 역시 농인이 청인 중심의 사회에서 맞이하는 긴 겨울을 어떻게 지나가야 하나 고민이 있었고, 인권운동·교육·인식개선사업 등 많은 것을 해보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는 일’은 문화예술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농인이 청인을 알아가고 청인이 농인을 알아가는 방법 중 가장 큰 울림을 주는 것이 문화예술 활동이라 생각한다. 특히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생기는 문화적인 차이와 존재론적인 차이를 무겁지 않으면서도 강력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하여, 소보사 구성원들이 예술과 예술가를 가까이하는 기회를 계속 만들었다. 그러면서 예술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했다. 다르게 보고 새롭게 보며 발견하는 나를 또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채널 역시 예술에서 찾고 있다.

다르게 보고 새롭게 느끼기

소보사는 농아동과 농청소년이 함께 수어로 배우는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초기에는 무성 공연에 참여하고 함께 수어로 책을 읽는 형태로 문화예술 활동을 했다면, 최근 5년간은 직접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창작 작업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형태로 변화되었다. 농학생의 경우 프로젝트 활동과 수업에서 예술인과 함께 다양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고, 농인 교사들도 함께 워크숍을 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매주 1회 이상은 정규 교과과정 안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그 외에도 비정기적인 활동들을 지속하고 있다. 작년에는 수어 문학을 선보이는 영상물과 그림을 수어로 읽는 영상물 등 농문화를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수어 플립북(flip book)이나 수어 생태도감 작업도 했다. 음악극 대본의 수어 번역에 참여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비하이브(Beehive)라는 해외 아티스트 그룹의 워크숍에도 함께 참여했다. 그밖에 수어 통역이 있는 연극과 뮤지컬, 탈춤 등을 관람했고 관계 예술인들과의 협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화하는 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대부분 농인은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참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보사는 10년 전부터 농청소년과 농청년을 중심으로 문화예술 활동에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려고 시도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소보사 안과 바깥 농사회의 모습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아무래도 문화예술에 기본적으로 거리가 있고 ‘계기’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여러 환경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소보사는 농 정체성의 확립을 기치로 삼는 단체이다 보니, 농아동과 농청소년이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청인의 언어와 문화를 탐구하도록 함께 교육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계기가 되어 문화예술 활동에도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농인에게는 이러한 접근이 불가능하다. 농인이 청인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불편함을 겪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문화의 시스템 혹은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수어 통역이 없는 공연장 등을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 곁에 있는 무형의 문화예술로부터도 배제되는 데는 그것들 대부분이 ‘음성언어’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농인을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면 문자로 된 정보를 제공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혹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다른 감각을 통해 느끼도록 해주면 만족스럽겠지 하고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농인을,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한글은 청인의 언어를 문자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어가 귀에 들린다고 해서 그 언어를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한글로 된 정보가 눈에 보여도 농인에게 그것은 제2언어에 불과하다. 또 시각 문화가 주를 이루는 농문화를 향유하는 농인에게 청인의 문화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예술은 낯설 수 있다. 더욱이 여전히 농인의 언어권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에서 때로는 청인의 문화는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기억해야 할 것은, 농인에게 있어 다른 장애인들 역시 청인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소리를 듣고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이들은 ‘청인’이다. 그래서 청인 중심의 문화예술은 접근 자체가 어렵다. 이는 무관심을 만들기도 하고 무지를 만들기도 한다.

제대로 된 수어 통역이 필수

문화예술 활동은 보통 혼자, 혹은 소보사에서 단체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이동에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어떤 활동에 참여할지 결정할 때는 일단 누구에게나 ‘마음이 동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요소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곳에 수어통역사가 있는지, 어떤 수어통역사가 통역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소보사의 경우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활동은 소보사 내부의 청인이 직접 통역하는 식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진행한다. 그 기준은 주로 ‘이 활동이 나와 우리에 대해 고민할 거리를 제공하는가?’ ‘새로운 관점을 제안해줄 만한 활동인가?’ 등이다.

소보사에서 예술인들과 관계를 이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들에게 직접 문화예술 정보를 얻거나, 우리와 연대하며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러 단체를 통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농인은 SNS에서 정보를 얻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마저도 젊은 농인에 국한되어 있어 대다수 농인에게는 정보 자체가 제한적이다. 특히 문화예술 관련해서는 연결된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소문으로조차 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게다가 좋은 공연이라면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수어 통역이 있다고 해도 통역을 알아보기 힘든 공연이 많아서 자비를 사용하기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프로젝트 형식으로 단체와 연계해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이것은 다르게 보면, 그만큼 농인이 편하게 문화예술을 접할 만한 경로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공연과 전시, 행사에는 통역이 없어서 원하는 공연은 개인적으로 수어통역사를 섭외해서 가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통역비용이 워낙 높고 수어통역센터를 활용하기에도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플러스 80점에서 마이너스 10점까지, 좁은 길을 더 넓혀야

예술을 만나러 가는 길에 점수를 매기면 80점 정도다. 소보사 사람들은 예술인과의 관계를 통해 수동적인 참여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예술을 만나러 가는 길이 조금은 넓어지고 즐거워졌다고 평가한다. 반면에 일반 농인 입장에서 평가한다면 마이너스 10점이다. 0점도 줄 수 없는 것은, 청인과 비교하면 노출되는 정보의 양이 훨씬 적고,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환경에서도 이미 차이를 가지고 시작했다는 점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전달되지 않고서는, 농인 중에는 예술을 만나러 가는 길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쉽게 그렇지만 깊게, 예술을 경험하는 장이 펼쳐져야 한다. 예술 속에서 또 다른 장애에 대한 편견을 마주하면 ‘아, 여기도 어쩔 수 없구나’ 하고 편견이 커진다. 무엇보다 예술은 나와 무관하고 재미없는 것이 되고, 소수의 놀이나 이벤트성 체험 프로그램 같은 것은 오히려 예술의 가치를 낮춘다. 대부분의 농인은 문화예술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가본 경험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배리어프리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에 맞춰져 있다. 아동부터 전 연령을 아우르는 활동이 별로 없다.

최근 수어를 활용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시도하는 농인·청인이 있다. 새로운 발걸음 자체에 대해서는 응원하는 바이지만, 때로는 신선하고 새로워 보이는 것 자체에만 주목해 수어가 이용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언어는 그 자체보다는 도구로서 지니는 의미가 더 중요한 법이지만, 여전히 농인의 언어권이 확보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농인이 알아볼 수 없는 형태의 수어가 예술로 이용되는 것을 보면 당사자로서는 마음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청각장애인을 위한 예술의 형태가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잘 듣게 도움을 주는’ 형태로 가는 것도 불편한 지점이다. 예술의 힘은 무엇이든 그것을 자세히, 잘, 다양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농인도 그러한 예술의 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많은 장이 열리기를 바란다.

  • 파란 하늘이 보이는 야외. 농청년 셋과 사진작가가 카메라 뷰파인더를 같이 살펴보고 있다.

    소보사 농청년 예술활동 중 작가님과 중간점검

  • 한가지 톤으로 돼있어 마치 흑백으로 보이는 커다란 걸개그림이 두 벽면을 덮고 있다. 15명 가량이 바닥에 앉거나 선 채, 그림 곁에 서서 설명하는 세 사람에게 주목하고 있다.

    비하이브(beehive) 디자인 콜렉티브와의 워크숍

김주희

사단법인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대표. 30년 가까이 수어를 하며 농인들의 벗으로 지내고 있다. 현재 강북구 인수동에서 소보사 대안학교를 운영하며, 농인과 청인이 이웃 되어 함께 살아가는 것을 꿈꾸고 있다.
sobosa_school@naver.com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페이스북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유튜브 채널

노지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대안학교 농교사. 농인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며 그 삶을 민들레 홀씨처럼 많은 이들에게 나누고 싶은 소망이 있다.
sobosa_school@naver.com

서면 인터뷰 정리.프로젝트 궁리
사진 제공.필자

2023년 7월 (43호)

상세내용

이슈

진정한 의미로 예술을 누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예술 정보를 접하고, 각자의 관심과 취향에 따라 작품과 활동을 선택하고, 편리한 이동 경로와 교통편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즐겁게 관람과 활동을 마친 후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모든 과정이 보장되어야 한다. 예술을 만나러 가는 길에는 어떤 다양한 경로가 있을까. 그 길에 걸림돌이 있다면 무엇일까. 예술을 향한 여정이 더욱 풍성한 의미와 즐거움으로 채워지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들어보았다.

① 혼자서

      

② 친구와 함께

      

③ 자녀와 함께

      

④ 대안학교에서

      

⑤ 복지관에서

사단법인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하 소보사)은 농인을 ‘잘 보고 수어로 말하는 사람’으로 정의하며, 농아동과 농청소년이 수어로 놀며 배우며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함께하는 배움공동체다. 모든 사람은 인생에서 긴 겨울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 겨울을 보내는 나름의 방법들이 있을 텐데, 소보사 역시 농인이 청인 중심의 사회에서 맞이하는 긴 겨울을 어떻게 지나가야 하나 고민이 있었고, 인권운동·교육·인식개선사업 등 많은 것을 해보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는 일’은 문화예술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농인이 청인을 알아가고 청인이 농인을 알아가는 방법 중 가장 큰 울림을 주는 것이 문화예술 활동이라 생각한다. 특히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생기는 문화적인 차이와 존재론적인 차이를 무겁지 않으면서도 강력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하여, 소보사 구성원들이 예술과 예술가를 가까이하는 기회를 계속 만들었다. 그러면서 예술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했다. 다르게 보고 새롭게 보며 발견하는 나를 또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채널 역시 예술에서 찾고 있다.

다르게 보고 새롭게 느끼기

소보사는 농아동과 농청소년이 함께 수어로 배우는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초기에는 무성 공연에 참여하고 함께 수어로 책을 읽는 형태로 문화예술 활동을 했다면, 최근 5년간은 직접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창작 작업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형태로 변화되었다. 농학생의 경우 프로젝트 활동과 수업에서 예술인과 함께 다양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고, 농인 교사들도 함께 워크숍을 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매주 1회 이상은 정규 교과과정 안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그 외에도 비정기적인 활동들을 지속하고 있다. 작년에는 수어 문학을 선보이는 영상물과 그림을 수어로 읽는 영상물 등 농문화를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수어 플립북(flip book)이나 수어 생태도감 작업도 했다. 음악극 대본의 수어 번역에 참여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비하이브(Beehive)라는 해외 아티스트 그룹의 워크숍에도 함께 참여했다. 그밖에 수어 통역이 있는 연극과 뮤지컬, 탈춤 등을 관람했고 관계 예술인들과의 협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화하는 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대부분 농인은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참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보사는 10년 전부터 농청소년과 농청년을 중심으로 문화예술 활동에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려고 시도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소보사 안과 바깥 농사회의 모습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아무래도 문화예술에 기본적으로 거리가 있고 ‘계기’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여러 환경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소보사는 농 정체성의 확립을 기치로 삼는 단체이다 보니, 농아동과 농청소년이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청인의 언어와 문화를 탐구하도록 함께 교육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계기가 되어 문화예술 활동에도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농인에게는 이러한 접근이 불가능하다. 농인이 청인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불편함을 겪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문화의 시스템 혹은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수어 통역이 없는 공연장 등을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 곁에 있는 무형의 문화예술로부터도 배제되는 데는 그것들 대부분이 ‘음성언어’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농인을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면 문자로 된 정보를 제공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혹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다른 감각을 통해 느끼도록 해주면 만족스럽겠지 하고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농인을,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한글은 청인의 언어를 문자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어가 귀에 들린다고 해서 그 언어를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한글로 된 정보가 눈에 보여도 농인에게 그것은 제2언어에 불과하다. 또 시각 문화가 주를 이루는 농문화를 향유하는 농인에게 청인의 문화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예술은 낯설 수 있다. 더욱이 여전히 농인의 언어권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에서 때로는 청인의 문화는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기억해야 할 것은, 농인에게 있어 다른 장애인들 역시 청인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소리를 듣고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이들은 ‘청인’이다. 그래서 청인 중심의 문화예술은 접근 자체가 어렵다. 이는 무관심을 만들기도 하고 무지를 만들기도 한다.

제대로 된 수어 통역이 필수

문화예술 활동은 보통 혼자, 혹은 소보사에서 단체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이동에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어떤 활동에 참여할지 결정할 때는 일단 누구에게나 ‘마음이 동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요소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곳에 수어통역사가 있는지, 어떤 수어통역사가 통역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소보사의 경우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활동은 소보사 내부의 청인이 직접 통역하는 식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진행한다. 그 기준은 주로 ‘이 활동이 나와 우리에 대해 고민할 거리를 제공하는가?’ ‘새로운 관점을 제안해줄 만한 활동인가?’ 등이다.

소보사에서 예술인들과 관계를 이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들에게 직접 문화예술 정보를 얻거나, 우리와 연대하며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러 단체를 통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농인은 SNS에서 정보를 얻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마저도 젊은 농인에 국한되어 있어 대다수 농인에게는 정보 자체가 제한적이다. 특히 문화예술 관련해서는 연결된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소문으로조차 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게다가 좋은 공연이라면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수어 통역이 있다고 해도 통역을 알아보기 힘든 공연이 많아서 자비를 사용하기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프로젝트 형식으로 단체와 연계해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이것은 다르게 보면, 그만큼 농인이 편하게 문화예술을 접할 만한 경로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공연과 전시, 행사에는 통역이 없어서 원하는 공연은 개인적으로 수어통역사를 섭외해서 가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통역비용이 워낙 높고 수어통역센터를 활용하기에도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플러스 80점에서 마이너스 10점까지, 좁은 길을 더 넓혀야

예술을 만나러 가는 길에 점수를 매기면 80점 정도다. 소보사 사람들은 예술인과의 관계를 통해 수동적인 참여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예술을 만나러 가는 길이 조금은 넓어지고 즐거워졌다고 평가한다. 반면에 일반 농인 입장에서 평가한다면 마이너스 10점이다. 0점도 줄 수 없는 것은, 청인과 비교하면 노출되는 정보의 양이 훨씬 적고,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환경에서도 이미 차이를 가지고 시작했다는 점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전달되지 않고서는, 농인 중에는 예술을 만나러 가는 길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쉽게 그렇지만 깊게, 예술을 경험하는 장이 펼쳐져야 한다. 예술 속에서 또 다른 장애에 대한 편견을 마주하면 ‘아, 여기도 어쩔 수 없구나’ 하고 편견이 커진다. 무엇보다 예술은 나와 무관하고 재미없는 것이 되고, 소수의 놀이나 이벤트성 체험 프로그램 같은 것은 오히려 예술의 가치를 낮춘다. 대부분의 농인은 문화예술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가본 경험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배리어프리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에 맞춰져 있다. 아동부터 전 연령을 아우르는 활동이 별로 없다.

최근 수어를 활용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시도하는 농인·청인이 있다. 새로운 발걸음 자체에 대해서는 응원하는 바이지만, 때로는 신선하고 새로워 보이는 것 자체에만 주목해 수어가 이용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언어는 그 자체보다는 도구로서 지니는 의미가 더 중요한 법이지만, 여전히 농인의 언어권이 확보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농인이 알아볼 수 없는 형태의 수어가 예술로 이용되는 것을 보면 당사자로서는 마음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청각장애인을 위한 예술의 형태가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잘 듣게 도움을 주는’ 형태로 가는 것도 불편한 지점이다. 예술의 힘은 무엇이든 그것을 자세히, 잘, 다양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농인도 그러한 예술의 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많은 장이 열리기를 바란다.

  • 파란 하늘이 보이는 야외. 농청년 셋과 사진작가가 카메라 뷰파인더를 같이 살펴보고 있다.

    소보사 농청년 예술활동 중 작가님과 중간점검

  • 한가지 톤으로 돼있어 마치 흑백으로 보이는 커다란 걸개그림이 두 벽면을 덮고 있다. 15명 가량이 바닥에 앉거나 선 채, 그림 곁에 서서 설명하는 세 사람에게 주목하고 있다.

    비하이브(beehive) 디자인 콜렉티브와의 워크숍

김주희

사단법인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대표. 30년 가까이 수어를 하며 농인들의 벗으로 지내고 있다. 현재 강북구 인수동에서 소보사 대안학교를 운영하며, 농인과 청인이 이웃 되어 함께 살아가는 것을 꿈꾸고 있다.
sobosa_school@naver.com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페이스북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유튜브 채널

노지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대안학교 농교사. 농인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며 그 삶을 민들레 홀씨처럼 많은 이들에게 나누고 싶은 소망이 있다.
sobosa_school@naver.com

서면 인터뷰 정리.프로젝트 궁리
사진 제공.필자

2023년 7월 (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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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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