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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장애예술인 인터뷰, 박영필의 외침 “나는 성악가다”

  • 등록일 2023-08-28
  • 조회수42

마냥 즐거웠던 시절

박영필은 1979년 부산 연제구 망미동에서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택시운전을 하셨는데 생활비를 제대로 갖다 주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용호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며 3남매를 키우셨는데 단칸방에 네 식구가 지냈고 누나는 다락방에서 생활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 시절, 활달한 개구쟁이로 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의 고무줄도 끊는 등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유행가를 좋아했는데 당시 박남정의 <널 그리며>를 곧잘 불렀다.

중학교 때 친구가 교회에 가자고 했다.  “교회 가면 뭐하는데?”라고 물으니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른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여 교회에서 손끝에 피가 맺히도록 열심히 기타를 배웠다. 그 무렵 그는 015B의 <이젠 안녕>을 기타를 치면서 즐겨 불렀다.

누나는 여상을 졸업하고 조그만 회사에 경리로 일했는데 어느 날 기타를 사왔다. 부모님이나 누나에게 기타를 사 달라고 조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누나가 어떻게 알고 기타를 사왔는지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대학 갈 형편도 아니었기에 기타 치고 노래 부르면서 중학교 시절을 보내다 졸업이 다가왔다.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도와드리고 싶어서 성지공고 자동차과에 입학을 했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과가 잘나가는 유망 학과였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취업도 바로 된다고 했다. 1996년 고3 때 취업한 선배들 얘기를 들어 보니 월급이 40만 원 정도라고 했다. 맥이 빠졌다. 40만 원 받으려고 공고에 들어왔나 싶어 더 이상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 무렵 영어 선생님이 인문계만 대학을 가는 게 아니라 실업계 학생들도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학생들을 다독여 주셨다. 그 말씀을 듣고 처음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국어를 공부하며 수능시험을 쳤다. 성적이 잘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2년제 대학을 갈 정도는 되었다. 컴퓨터는 중학교 때부터 통신을 했었기에 컴퓨터 관련 과를 찾다가 동명전문대학 전자계산과에 입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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