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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문화 정체성과 예술③

이음광장 아는 만큼 보이는 농문화

  • 노선영 작가
  • 등록일 2022-11-09
  • 조회수694

이슈

누군가가 나에게 ‘삶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틀’에 관해 묻는다면, 태어날 때부터 소리의 간섭없이 온몸으로 삶을 경험해온 그 자체가 내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청각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러한 삶을 살아왔기에 농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농문화(Deaf Culture)는 ‘수어’라는 시각적인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소리에 기반을 두지 않고 모든 생활이나 행동 양식 등으로 축적된 결과다. 영어로 농인을 뜻하는 Deaf(데프)는 왜 첫 문자를 대문자로 쓸까? 한국어를 쓰고 한국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한국인이기에 영문 Korea(코리안)이 대문자 K를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은 불편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라는 말은 농문화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농인들은 농문화를 알게 되면서 일종의 해방감과 내면의 힘을 느낀다. 수어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을 들여다보며 정체성을 찾게 되었고 자신감이 생기는 등 이전과 다른 변화들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들은 청인 문화 속에서 많은 불편을 겪었고 농문화를 접하면서 비로소 자신에게 맞고 편안한 방식으로 세상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랜 역사 동안 오로지 자신들만의 문화를 고수하며 유지하는 경우가 없듯이, 농문화는 끊임없이 청인 집단과 접촉하고 충돌, 갈등, 융화하고 있다. 일례로 나를 포함한 농인은 농문화 속에서 살아가거나 청인 사회와 부대끼면서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처하게 된다. 소수자인 농인은 청인 사회의 지배적 가치와 상이한 입장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농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청인과 함께하기 어려워지게 되고 수어 통역에 대한 인식과 시스템의 부재로 농인 스스로 그 어떠한 입지를 다지기에는 한계나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하지만, 결국 일을 지속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러한 접근은 농인이 처한 현실을 설명해주는데, 그런 까닭에 한국에는 농인 예술가나 농문화를 기반으로 한 직업이 매우 한정적이고 극소수이다.

결국 차선책으로 청인 사회와 동화되어 청인 문화를 받아들이지만 농문화와 농정체성이 뒤섞이게 되면서 오는 혼란을 겪게 된다. 타인의 시선에 따라 내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대로 계속 농인으로서 농문화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렇기에 살기 위해서 혹은 살아가면서 무엇을 선택하여 길들일 것인가에 따라 다양한 문화가 생겨나고 이중문화를 가지고 살아갈 수도 있다. 농인의 언어적 소수자의 위치를 가시화하고 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해방이 필요한 것이다. 농인의 억압적 삶을 해방시키고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는 기존의 권력 관계에 도전하고 변화를 가져올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환으로 나는 현재 예술창작과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예술은 도구나 수단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지만 무엇이든 상상하는 힘을 길러줄 수 있다. 또한, 교육을 통해서는 세상을 만들고 바꿀 수 있다. 더 나은 세상과 존재로의 변화를 위해, 농문화를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청인에게 예술 작업과 교육으로 그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을 담아 교육적인 체험형 전시를 기획하였다. 전시의 콘텐츠와 테마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ICT 융복합 기술을 도입하였고 《고요 속의 대화 Whisper in Silence》 《같은 사람, 다른 감각》 《고요 속의 대화 Dialogue in Silence》 등 미디어아트 체험형 전시에 많은 청인이 참여하며 농문화와 농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게 하였다. 체험하고 미션을 해결하며 내면에 서서히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고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외에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농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수어로 함께 배워나가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문답하고 실제 농문화를 접하면서 근본을 지향하고,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는 교육을 통해 독특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이렇듯 상호존중을 전제한 열린 만남은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교육했을 때 효과적이다. 또한, 예술이나 교육방법이 다양해져 서로 다른 문화를 배워가면서 이를 존중하는 자세를 체화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청인 문화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감정의 깊이나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장이 활발해진다면, 문화의 다양성을 배워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 미디어아트 체험형 전시의 관람객 모습. 가벽으로 만들어진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한쪽 벽면에 배우 오드리햅번이 양쪽 손등으로 옆머리를 짚고 있는 영상이 나오고, 이 모습을 관람객들이 따라서 하고 있다.

    《고요속의 대화 Dialogue in Silence》 중 <표현의 공간> 섹션, 관람객의 체험 모습
    이미지 출처. 필자 유튜브 채널(링크)

노선영

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으로 글을 쓰고 미디어아트 작가로 활동한다. 저서 『보이는 소리 들리는 마음』 『고요 속의 대화』 등을 썼고, 《고요 속의 대화 Whisper in Silence》(2019), 《같은 사람, 다른 감각》(2020), 《고요 속의 대화 Dialogue in Silence》(2021) 등 미디어아트 체험형 전시를 총괄 진행했다. ‘Festival NADA 2021 : 숨겨진 감각의 축제’(2021), 《헬로미디어아트전 프로젝션 맵핑》(2021)에 미디어아트 작가로 참여했다.
souldeaf@naver.com

노선영

노선영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으로 글을 쓰고 미디어아트 작가로 활동한다. 저서 『보이는 소리 들리는 마음』 『고요 속의 대화』 등을 썼고, 《고요 속의 대화(Whisper in Silence)》(2019), 《같은 사람, 다른 감각》(2020), 《고요 속의 대화(Dialogue in Silence)》(2021) 등 미디어아트 체험형 전시를 총괄 진행했다. ‘Festival NADA 2021 : 숨겨진 감각의 축제’(2021), 《헬로미디어아트전 프로젝션 맵핑》(2021)에 미디어아트 작가로 참여했다.
souldeaf@naver.com

상세내용

이슈

누군가가 나에게 ‘삶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틀’에 관해 묻는다면, 태어날 때부터 소리의 간섭없이 온몸으로 삶을 경험해온 그 자체가 내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청각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러한 삶을 살아왔기에 농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농문화(Deaf Culture)는 ‘수어’라는 시각적인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소리에 기반을 두지 않고 모든 생활이나 행동 양식 등으로 축적된 결과다. 영어로 농인을 뜻하는 Deaf(데프)는 왜 첫 문자를 대문자로 쓸까? 한국어를 쓰고 한국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한국인이기에 영문 Korea(코리안)이 대문자 K를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은 불편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라는 말은 농문화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농인들은 농문화를 알게 되면서 일종의 해방감과 내면의 힘을 느낀다. 수어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을 들여다보며 정체성을 찾게 되었고 자신감이 생기는 등 이전과 다른 변화들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들은 청인 문화 속에서 많은 불편을 겪었고 농문화를 접하면서 비로소 자신에게 맞고 편안한 방식으로 세상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랜 역사 동안 오로지 자신들만의 문화를 고수하며 유지하는 경우가 없듯이, 농문화는 끊임없이 청인 집단과 접촉하고 충돌, 갈등, 융화하고 있다. 일례로 나를 포함한 농인은 농문화 속에서 살아가거나 청인 사회와 부대끼면서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처하게 된다. 소수자인 농인은 청인 사회의 지배적 가치와 상이한 입장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농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청인과 함께하기 어려워지게 되고 수어 통역에 대한 인식과 시스템의 부재로 농인 스스로 그 어떠한 입지를 다지기에는 한계나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하지만, 결국 일을 지속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러한 접근은 농인이 처한 현실을 설명해주는데, 그런 까닭에 한국에는 농인 예술가나 농문화를 기반으로 한 직업이 매우 한정적이고 극소수이다.

결국 차선책으로 청인 사회와 동화되어 청인 문화를 받아들이지만 농문화와 농정체성이 뒤섞이게 되면서 오는 혼란을 겪게 된다. 타인의 시선에 따라 내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대로 계속 농인으로서 농문화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렇기에 살기 위해서 혹은 살아가면서 무엇을 선택하여 길들일 것인가에 따라 다양한 문화가 생겨나고 이중문화를 가지고 살아갈 수도 있다. 농인의 언어적 소수자의 위치를 가시화하고 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해방이 필요한 것이다. 농인의 억압적 삶을 해방시키고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는 기존의 권력 관계에 도전하고 변화를 가져올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환으로 나는 현재 예술창작과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예술은 도구나 수단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지만 무엇이든 상상하는 힘을 길러줄 수 있다. 또한, 교육을 통해서는 세상을 만들고 바꿀 수 있다. 더 나은 세상과 존재로의 변화를 위해, 농문화를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청인에게 예술 작업과 교육으로 그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을 담아 교육적인 체험형 전시를 기획하였다. 전시의 콘텐츠와 테마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ICT 융복합 기술을 도입하였고 《고요 속의 대화 Whisper in Silence》 《같은 사람, 다른 감각》 《고요 속의 대화 Dialogue in Silence》 등 미디어아트 체험형 전시에 많은 청인이 참여하며 농문화와 농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게 하였다. 체험하고 미션을 해결하며 내면에 서서히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고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외에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농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수어로 함께 배워나가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문답하고 실제 농문화를 접하면서 근본을 지향하고,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는 교육을 통해 독특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이렇듯 상호존중을 전제한 열린 만남은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교육했을 때 효과적이다. 또한, 예술이나 교육방법이 다양해져 서로 다른 문화를 배워가면서 이를 존중하는 자세를 체화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청인 문화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감정의 깊이나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장이 활발해진다면, 문화의 다양성을 배워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 미디어아트 체험형 전시의 관람객 모습. 가벽으로 만들어진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한쪽 벽면에 배우 오드리햅번이 양쪽 손등으로 옆머리를 짚고 있는 영상이 나오고, 이 모습을 관람객들이 따라서 하고 있다.

    《고요속의 대화 Dialogue in Silence》 중 <표현의 공간> 섹션, 관람객의 체험 모습
    이미지 출처. 필자 유튜브 채널(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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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으로 글을 쓰고 미디어아트 작가로 활동한다. 저서 『보이는 소리 들리는 마음』 『고요 속의 대화』 등을 썼고, 《고요 속의 대화 Whisper in Silence》(2019), 《같은 사람, 다른 감각》(2020), 《고요 속의 대화 Dialogue in Silence》(2021) 등 미디어아트 체험형 전시를 총괄 진행했다. ‘Festival NADA 2021 : 숨겨진 감각의 축제’(2021), 《헬로미디어아트전 프로젝션 맵핑》(2021)에 미디어아트 작가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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