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예술이라는 바다에서의 항해일지①

이음광장 무모한 도전 아닌 준비된 출항을 위하여

  • 이승규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부단장
  • 등록일 2022-12-14
  • 조회수515

이음광장

예술 활동에 뛰어든 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우연히 접하게 된 연극수업이 한순간에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평소 TV를 즐겨 보는 것도 아니었고, 드라마나 영화를 챙겨 보는 편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천안에 있던 시절, 나는 충남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연극수업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안마사로 근무하던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 때문이었을까, 문득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삶에 서서히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연극수업은 그야말로 흥미로웠고 즐거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평소 익숙하지 않던 ‘표현한다’는 것에 점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일주일에 한 번뿐인 그 시간이 무척 기다려졌다. 수개월의 과정이 순식간에 지나고 눈이 오던 어느 날, 내 생의 첫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정식 공연은 아니었지만, 감정과 움직임들을 고스란히 쏟아내었던 소중한 경험을 통해 나는 연극이 가진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발표회가 끝난 후, 지도해주셨던 강사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혹시 연극 계속해볼 생각 없으세요?” 어쩌면 이 말을 기다렸던 걸까? 앞으로 펼쳐질 고난(?)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바로 “예스!”를 날렸다. 그렇게 나는 예술이라는 바다로 출항하게 된 것이다.

발표회를 한 번 경험했을 뿐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장애예술인은 그렇게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이하 휠)을 만나게 되었다. 그로부터 두어 달 후, ‘제10회 서울창작공간연극축제’에서 참가작인 <숲속 작은 집>(원제 <리투아니아>)이라는 낭독극으로 휠에서의 첫 공연을 하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온 데뷔 무대여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 후 같은 해 9월에 두 개의 작품과 12월 정기공연에 출연하면서 나름 화려한(?) 극단 1년차를 보냈고, 다음 해에도 몇 개의 작품에 출연하며 나는 연극을 선택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하였다.

당시 나는 늦은 나이에 연극을 시작했다는 조바심과 빨리 성과를 내고 싶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지금도 그렇긴 하다). 그래서 뭐든지 배우고 싶었고 열심히 하려고 했다. 저시력의 시각장애가 있지만, 무대를 설치할 때나 극단의 업무, 기획에도 참여하며 전반적인 것을 어느 정도 익힐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을 높이 샀는지, 몇 년 안 된 신출내기에게 부단장이라는 직책이 주어졌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기회…. 2019년에 휠은 전문 극작 교육 단기강좌로 ‘장애인 극작가 발굴&교육 프로그램>을 열었다. 당시 욕심껏 기획에도 참여하고 프로그램도 수강해 30분짜리 초단막극 〈bien(비엔)〉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작품의 배우뿐 아니라 연출도 맡았는데 예상 밖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기에 힘입어 이듬해인 2020년에는 60분짜리로 각색하여 휠의 정기공연으로 정식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30분짜리 공연을 60분짜리로 만드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각색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연출이었다. 연출 경험이 없던 나를 지원하기 위해 협력연출이 투입되었는데 순탄할 것 같던 예상과는 달리,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나의 고집과 협력연출의 의견이 충돌하자 배우들은 그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갈팡질팡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하고 섬세한 부분까지 잡아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시각장애가 있는 나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그림과 방향성을 잃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나는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을 아우르지 못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함을 느끼게 하였다. 공연일이 다가오자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있었다. 연출 경험도 없거니와 조명을 어떻게 써야 할지, 무대의 구도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든 것에 확신이 서지 않았고 우왕좌왕했다. 진행이 원활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했고, 나의 무지에 대한 변명거리만을 찾았던 것 같다. 어찌어찌 공연을 마쳤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협력연출은 뒤풀이 자리에서 입봉을 축하한다며 나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그렇다. 연출에 관한 공부는 해본 적도 없는 미자격자가 좋든 싫든 입봉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미자격자임이 분명했다. 만약 내가 진짜 선장이었다면 우리의 배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에 침몰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으리라. 그 이후 장애인을 위한 전문 예술교육 기관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히 느껴졌다. 장애가 있는 예술인들이 동일한 환경에서 비장애 예술인과 경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처럼 실전에서 경험을 쌓는 것 역시 무척 중요하고 필요한 과정이지만, 경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초’다. 나는 그 역할을 해줄 전문 예술교육 기관의 필요성을 말하고 싶다.

예술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장애라는 암초는 피해갈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철저히 준비한다면 악조건을 이겨내고 무사히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바라며, 나의 첫 번째 항해일지를 마무리한다.

 

  • 음악극 <언제나 맑음>(2019~2021)

  • <bien(비엔)>(2020) 연습하는 모습

이승규

선천성 저시력 장애인. 2016년 장애인문화예술극회휠에 입단했고 현재 부단장을 맡고 있다.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극 〈옥상 위를 부탁해〉〈언제나 맑음〉〈내 친구 상훈이〉〈Bien(비엔)〉〈귀를 기울이면〉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연극〈덜어내기〉를 썼고,〈Bien〉을 쓰고 연출했다.
coca5201@naver.com

사진제공. 필자

이승규

이승규 

선천성 저시력 장애인. 2016년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에 입단했고 현재 부단장을 맡고 있다.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극 <옥상 위를 부탁해> <언제나 맑음> <내 친구 상훈이> <귀를 기울이면>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연극 <덜어내기>를 썼고, 을 쓰고 연출했다.
coca5201@naver.com

상세내용

이음광장

예술 활동에 뛰어든 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우연히 접하게 된 연극수업이 한순간에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평소 TV를 즐겨 보는 것도 아니었고, 드라마나 영화를 챙겨 보는 편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천안에 있던 시절, 나는 충남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연극수업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안마사로 근무하던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 때문이었을까, 문득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삶에 서서히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연극수업은 그야말로 흥미로웠고 즐거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평소 익숙하지 않던 ‘표현한다’는 것에 점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일주일에 한 번뿐인 그 시간이 무척 기다려졌다. 수개월의 과정이 순식간에 지나고 눈이 오던 어느 날, 내 생의 첫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정식 공연은 아니었지만, 감정과 움직임들을 고스란히 쏟아내었던 소중한 경험을 통해 나는 연극이 가진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발표회가 끝난 후, 지도해주셨던 강사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혹시 연극 계속해볼 생각 없으세요?” 어쩌면 이 말을 기다렸던 걸까? 앞으로 펼쳐질 고난(?)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바로 “예스!”를 날렸다. 그렇게 나는 예술이라는 바다로 출항하게 된 것이다.

발표회를 한 번 경험했을 뿐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장애예술인은 그렇게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이하 휠)을 만나게 되었다. 그로부터 두어 달 후, ‘제10회 서울창작공간연극축제’에서 참가작인 <숲속 작은 집>(원제 <리투아니아>)이라는 낭독극으로 휠에서의 첫 공연을 하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온 데뷔 무대여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 후 같은 해 9월에 두 개의 작품과 12월 정기공연에 출연하면서 나름 화려한(?) 극단 1년차를 보냈고, 다음 해에도 몇 개의 작품에 출연하며 나는 연극을 선택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하였다.

당시 나는 늦은 나이에 연극을 시작했다는 조바심과 빨리 성과를 내고 싶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지금도 그렇긴 하다). 그래서 뭐든지 배우고 싶었고 열심히 하려고 했다. 저시력의 시각장애가 있지만, 무대를 설치할 때나 극단의 업무, 기획에도 참여하며 전반적인 것을 어느 정도 익힐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을 높이 샀는지, 몇 년 안 된 신출내기에게 부단장이라는 직책이 주어졌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기회…. 2019년에 휠은 전문 극작 교육 단기강좌로 ‘장애인 극작가 발굴&교육 프로그램>을 열었다. 당시 욕심껏 기획에도 참여하고 프로그램도 수강해 30분짜리 초단막극 〈bien(비엔)〉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작품의 배우뿐 아니라 연출도 맡았는데 예상 밖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기에 힘입어 이듬해인 2020년에는 60분짜리로 각색하여 휠의 정기공연으로 정식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30분짜리 공연을 60분짜리로 만드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각색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연출이었다. 연출 경험이 없던 나를 지원하기 위해 협력연출이 투입되었는데 순탄할 것 같던 예상과는 달리,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나의 고집과 협력연출의 의견이 충돌하자 배우들은 그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갈팡질팡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하고 섬세한 부분까지 잡아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시각장애가 있는 나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그림과 방향성을 잃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나는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을 아우르지 못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함을 느끼게 하였다. 공연일이 다가오자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있었다. 연출 경험도 없거니와 조명을 어떻게 써야 할지, 무대의 구도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든 것에 확신이 서지 않았고 우왕좌왕했다. 진행이 원활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했고, 나의 무지에 대한 변명거리만을 찾았던 것 같다. 어찌어찌 공연을 마쳤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협력연출은 뒤풀이 자리에서 입봉을 축하한다며 나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그렇다. 연출에 관한 공부는 해본 적도 없는 미자격자가 좋든 싫든 입봉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미자격자임이 분명했다. 만약 내가 진짜 선장이었다면 우리의 배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에 침몰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으리라. 그 이후 장애인을 위한 전문 예술교육 기관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히 느껴졌다. 장애가 있는 예술인들이 동일한 환경에서 비장애 예술인과 경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처럼 실전에서 경험을 쌓는 것 역시 무척 중요하고 필요한 과정이지만, 경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초’다. 나는 그 역할을 해줄 전문 예술교육 기관의 필요성을 말하고 싶다.

예술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장애라는 암초는 피해갈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철저히 준비한다면 악조건을 이겨내고 무사히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바라며, 나의 첫 번째 항해일지를 마무리한다.

 

  • 음악극 <언제나 맑음>(2019~2021)

  • <bien(비엔)>(2020) 연습하는 모습

이승규

선천성 저시력 장애인. 2016년 장애인문화예술극회휠에 입단했고 현재 부단장을 맡고 있다.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극 〈옥상 위를 부탁해〉〈언제나 맑음〉〈내 친구 상훈이〉〈Bien(비엔)〉〈귀를 기울이면〉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연극〈덜어내기〉를 썼고,〈Bien〉을 쓰고 연출했다.
coca5201@naver.com

사진제공. 필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