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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②

이음광장 장애인의 탈출 순위는 몇 번째일까?

  •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 등록일 2022-07-13
  • 조회수917

딸은 요즘 학교에서 환경 이슈를 다루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예측하는데, 지구는 2050년이 되면 기온이 너무 올라서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식량이 부족해진대. 물도 부족해지고. 엄마, 지구가 멸망하면 나는 지구 탈출 몇 번째 순위일까. SF소설에 보니까 지구가 환경오염으로 멸망 위기에 놓이면 장애인, 노인들은 갖은 이유를 대서 그냥 지구에 남게 한다는데.”

딸은 휠체어를 탄다. 아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건 때로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함을, 우리 사회는 여기저기에서 무심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년 말부터 시작한 이동권 시위는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고 있다. 예산을 배치해 달라는 요구가 묵살되는 가운데 ‘휠체어로 출근’하는 것 자체를 투쟁이라고 부르는 장애인 활동가들을 향한 욕설은 여전하다. “정상인들의 출근길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부모가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거나 자살 시도를 한 사건이 7건이나 있었다. 발달장애인 가족의 비극은 너무 자주 나와서인지 이젠 크게 보도되지 않는다. 반면 부모가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실종됐다가 사망한 사건은 아이의 이름을 따 ‘○○양 사건’이라 불린다. 모든 목숨은 똑같이 소중한데 발달장애인 살해 사건은 ‘안타깝다’에서 끝나버린다. 장애인 자녀를 둔 수백 명의 부모가 삭발하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호소했지만 요원하다.

이런 현실을 장애인 단체들은 올해 초 넷플릭스에 공개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영화에 빗대고 있다. 이 작품은 독일 나치의 장애인 말살 정책인 ‘T4 작전’을 주제로 한 단편영화다. 1939년 9월부터 1941년까지 독일 나치 정부는 장애인 안락사를 통해 우성 유전자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다양한 유럽 국가에서 약 30만 명의 장애인을 학살했다.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한쪽 손이 없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 페터가 공부하는 교실이다. 선생님은 독일 가정의 하루 생활비와 그것의 두 배가 넘는 유전병 환자의 하루 치료비를 제시하며 “독일 국민이 잃는 가치는 얼마가 될까?”라고 질문한다. 아이들에게 숫자를 보여주며 뺄셈 공부를 가르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 학생은 “그렇게 돈이 많이 들면 죽여야 한다”라고 답한다.

나치의 장애인 학살을 정당화시킨 학문이 바로 우생학이다. 영국의 인류학자 프란시스 갈톤(Francis Galton)이 제시한 이론인 우생학은 ‘우월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열등한 인간이 있다’라는 개념이다. 미국은 우생학을 바탕으로 1864년 우생법을 제정했고, 이는 흑인과 이민자 차별을 정당화하는 법령으로 발전했다. 결국, 우등한 인간이 열등한 인간을 죽여도 된다는 나치 정권의 소위 ‘인종청소’와 장애인 학살을 정당화했다. 나치가 몰락한 것처럼 우생학 또한 비판을 받으며 학계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우생학의 잔재는 사회에 계속 환영처럼 떠돈다. ‘우량아 선발대회’가 성행하고, 한센인의 자녀가 학교에 입학하면 학부모들이 집단 반발했던 1970년대까지 갈 것도 없다.

‘건강한 정상의 몸’을 칭송하는 오늘날의 수많은 광고를 보라. 비장애인에게 생활안전교육을 하면서 ‘사고 예방은 곧 장애 예방’이라고 하거나 이런 메시지가 아직도 일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하는 장애인식교육 내용에 버젓이 포함되어 있는 현실을 보라. 장애인이 식당·약국에 갈 권리, 어디서든 화장실을 갈 권리보다 이들 사업장이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전국 사업장의 90% 이상이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의무에서 면제되는, 경제적 편의가 더 중요시되는 현실을 보라.

장애인 권리가 명목상으로는 존재하나 무시되는 이유는 실질적으로는 비장애인에 비해 ‘비생산적인 몸’이라는 우생학적 이유다. 21세기엔 장애인이란 이유로 죽이지는 않지만, 발달장애인 가족의 잇따른 비극에서 알 수 있듯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뻔히 노출되어 있는 불행의 요소를 방치하고 극단적인 경우 죽음에 이르게 한다.

얼마 전 집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오작동이었지만 아이는 매우 무서웠나 보다. 집에 엄마가 있었으니 좀 덜 무서웠겠지만, 학교나 바깥에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사고가 생겼을 때 자신이 쉽게 구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사고 나면 엘리베이터 타지 말라고 하잖아. 누군가를 무조건 기다려야 하는 거잖아.”

아이의 이런 공포는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장애인을 후순위에 두는 걸 너무 많이 봐서다. 학교에서 장애학생 지원 예산을 받아오면 ‘그 예산을 일반 학생들한테 쓰면 얼마나 더 효과적이겠냐’고 말하는 교사들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명시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장애인 관련 예산을 아까워하며 그 돈을 ‘정상인’에게 쓰면 더 효과적이니 장애인 예산은 미루거나 외면하는 정책입안자들이 없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딸에게 말했다.

“딸, 만약 지구가 멸망하는데 너보고 남으라고 하면 엄마도 같이 남을게.”
“왜 같이 남는다고 해? 어떻게 해서든 같이 탈출해야지!”

우울하던 마음이 조금 밝아졌다. 그래. 사람의 가치를 신체 능력과 비용으로 치환하려고 하면 당연히 저항해야지. 딸, 부디 포기하지 말아 주기를.

홍윤희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15년 ‘무의’를 결성하고, 2016년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와 이동권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yhhong7309@gmail.com

홍윤희

홍윤희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15년 ‘무의’를 결성하고, 2016년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와 이동권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yhhong7309@gmail.com

상세내용

딸은 요즘 학교에서 환경 이슈를 다루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예측하는데, 지구는 2050년이 되면 기온이 너무 올라서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식량이 부족해진대. 물도 부족해지고. 엄마, 지구가 멸망하면 나는 지구 탈출 몇 번째 순위일까. SF소설에 보니까 지구가 환경오염으로 멸망 위기에 놓이면 장애인, 노인들은 갖은 이유를 대서 그냥 지구에 남게 한다는데.”

딸은 휠체어를 탄다. 아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건 때로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함을, 우리 사회는 여기저기에서 무심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년 말부터 시작한 이동권 시위는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고 있다. 예산을 배치해 달라는 요구가 묵살되는 가운데 ‘휠체어로 출근’하는 것 자체를 투쟁이라고 부르는 장애인 활동가들을 향한 욕설은 여전하다. “정상인들의 출근길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부모가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거나 자살 시도를 한 사건이 7건이나 있었다. 발달장애인 가족의 비극은 너무 자주 나와서인지 이젠 크게 보도되지 않는다. 반면 부모가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실종됐다가 사망한 사건은 아이의 이름을 따 ‘○○양 사건’이라 불린다. 모든 목숨은 똑같이 소중한데 발달장애인 살해 사건은 ‘안타깝다’에서 끝나버린다. 장애인 자녀를 둔 수백 명의 부모가 삭발하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호소했지만 요원하다.

이런 현실을 장애인 단체들은 올해 초 넷플릭스에 공개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영화에 빗대고 있다. 이 작품은 독일 나치의 장애인 말살 정책인 ‘T4 작전’을 주제로 한 단편영화다. 1939년 9월부터 1941년까지 독일 나치 정부는 장애인 안락사를 통해 우성 유전자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다양한 유럽 국가에서 약 30만 명의 장애인을 학살했다.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한쪽 손이 없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 페터가 공부하는 교실이다. 선생님은 독일 가정의 하루 생활비와 그것의 두 배가 넘는 유전병 환자의 하루 치료비를 제시하며 “독일 국민이 잃는 가치는 얼마가 될까?”라고 질문한다. 아이들에게 숫자를 보여주며 뺄셈 공부를 가르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 학생은 “그렇게 돈이 많이 들면 죽여야 한다”라고 답한다.

나치의 장애인 학살을 정당화시킨 학문이 바로 우생학이다. 영국의 인류학자 프란시스 갈톤(Francis Galton)이 제시한 이론인 우생학은 ‘우월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열등한 인간이 있다’라는 개념이다. 미국은 우생학을 바탕으로 1864년 우생법을 제정했고, 이는 흑인과 이민자 차별을 정당화하는 법령으로 발전했다. 결국, 우등한 인간이 열등한 인간을 죽여도 된다는 나치 정권의 소위 ‘인종청소’와 장애인 학살을 정당화했다. 나치가 몰락한 것처럼 우생학 또한 비판을 받으며 학계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우생학의 잔재는 사회에 계속 환영처럼 떠돈다. ‘우량아 선발대회’가 성행하고, 한센인의 자녀가 학교에 입학하면 학부모들이 집단 반발했던 1970년대까지 갈 것도 없다.

‘건강한 정상의 몸’을 칭송하는 오늘날의 수많은 광고를 보라. 비장애인에게 생활안전교육을 하면서 ‘사고 예방은 곧 장애 예방’이라고 하거나 이런 메시지가 아직도 일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하는 장애인식교육 내용에 버젓이 포함되어 있는 현실을 보라. 장애인이 식당·약국에 갈 권리, 어디서든 화장실을 갈 권리보다 이들 사업장이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전국 사업장의 90% 이상이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의무에서 면제되는, 경제적 편의가 더 중요시되는 현실을 보라.

장애인 권리가 명목상으로는 존재하나 무시되는 이유는 실질적으로는 비장애인에 비해 ‘비생산적인 몸’이라는 우생학적 이유다. 21세기엔 장애인이란 이유로 죽이지는 않지만, 발달장애인 가족의 잇따른 비극에서 알 수 있듯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뻔히 노출되어 있는 불행의 요소를 방치하고 극단적인 경우 죽음에 이르게 한다.

얼마 전 집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오작동이었지만 아이는 매우 무서웠나 보다. 집에 엄마가 있었으니 좀 덜 무서웠겠지만, 학교나 바깥에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사고가 생겼을 때 자신이 쉽게 구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사고 나면 엘리베이터 타지 말라고 하잖아. 누군가를 무조건 기다려야 하는 거잖아.”

아이의 이런 공포는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장애인을 후순위에 두는 걸 너무 많이 봐서다. 학교에서 장애학생 지원 예산을 받아오면 ‘그 예산을 일반 학생들한테 쓰면 얼마나 더 효과적이겠냐’고 말하는 교사들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명시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장애인 관련 예산을 아까워하며 그 돈을 ‘정상인’에게 쓰면 더 효과적이니 장애인 예산은 미루거나 외면하는 정책입안자들이 없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딸에게 말했다.

“딸, 만약 지구가 멸망하는데 너보고 남으라고 하면 엄마도 같이 남을게.”
“왜 같이 남는다고 해? 어떻게 해서든 같이 탈출해야지!”

우울하던 마음이 조금 밝아졌다. 그래. 사람의 가치를 신체 능력과 비용으로 치환하려고 하면 당연히 저항해야지. 딸, 부디 포기하지 말아 주기를.

홍윤희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15년 ‘무의’를 결성하고, 2016년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와 이동권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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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2 1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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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읽으며 얼마나 우리사회 밑바닥에서부터 장애에 대한 편견이 깔려있는지 공감하였습니다. 우생학에 기초한 이러한 폭력적인 인식이 하루속히 사라지길... 좋은 칼럼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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