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네. 또 한 분은 우리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대한민국을 또 울렸고 가슴을 또 울렸고 선 하나하나
스암을 담아내는 정은 작가님 모셨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우작가입니다. 반갑습니다.
네. 자, 노래에서 음악에서 미술로 또 한 분은 영기에서 그림착가로
함께한 그 여정을 한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강원내 작가님
꿍 싸바라 춤출 때 정말 그림 그릴 때 어느게 더 저 좋으십니까?
춤추는 거하고 그림 그리는 거하고요. 둘 다 좋죠. 둘 다 좋은데 일단은
그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그러면 반응이 오잖아요. 그림을 그릴 때는 별로 반응이
없어요. 그냥 뭘 하나 이게 얼마짜리나 이렇게 궁금하시는 텐데 몇 시간 걸리나는데 춤출 때가 더 신나고
어뭐 기분도 좋고 또 보는 사람들도 함께 그저 제가 그림 그릴 때 함께 그림
그리지 않으니까 춤출 때가 더 좋다하고 느껴지네요. 어, 그런 질문들이니까 좀 약간 뭐 어,
끔찍하기도 하고 좀 뭉클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그러네요. 저는 또 개인적으로
그 클로운 시절 때 제가 팬이었어요. 그래서 그때 아직도 기억이 나는게 그 야광
그리고 초련춤 아, 제가 아직도 따라하지 못했습니다. 아, 정말 열심히 따라해 보려고 그랬는데
절대 따라하지 못했어요. 아직도 그 춤을 제가 그 못 춘게 아직도 한이 돼요. 저는 그래요. 다음에 한번
이렇게 연락 주시면 제가 춤을 010 아 알겠습니다. 네. 이따가 이따가
이렇게 주시면 제가 이제 해가지고 연락한 거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도 팬이다 보니까
클로 시절의 팬들이 우리 이제 강래 작가님이시잖아요. 작가님의 그림을
보면 뭐라고 할 거 같아요? 아, 클론으로 활동할 때의 모습을 기억하던
팬들. 그 저를 잘 아는 팬들은 제가 그림 그리는 걸 보고 왜 이제서야?
왜 이제서야? 그까 사실은 그림을 좀 멀리해서 저는 이제 중학교 때부터
미술반 출신이고 또 고등학교 때도 어, 그림을 그렸었고 심지어는 대학도
미래를 구준여 마산에 있는 경남대 네. 과 수석으로 미대를 갖고 저는
강원도 강릉이 있는 대학교 실기 장학생으로 미술을 대파을 했는데
이제 대학교 다니다가 이제 학교로 반두고 춤을 주면서 그 한 20년 넘게 그림을 그냥 보기만 봤지
그리지는 않았었는데 좀 이렇게 휠처 타게 되고 또 코로나가 와서 혼자 있다 보니까 좀
외롭기도 하고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더니 그때 팬들이 아 빨리 좀 그리지웠다고
그 그림이 그런 말씀 많이 하실 수 있었습니다. 원래 전공이셨군요. 원래요? 네.
제가 어 한지민 친언님이니까
그 저런 마속에는 네. 영이 언니 역할로
했었고 그래서 버스 안에서 주민 언니가 어물
연물 연기로 했었죠. 아 네네 인연이고
네네 포옹이죠. 아 저도 한번 떠 그럼 저 일단 끝나고 저도 좀 포옹
좀 해 주세요. 아 이게 사심은 아니죠. 이게 바로 또 이렇게 네.
네. 아, 이렇게 또 포옹을 해 주시면서 또 이게 또 이게 또 포옹이
또 사람의 온기를 나누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 저는 정말 궁금했던게
어떻게 그림을 그리면서 그 드라마 대사를 그다 외우신
거예요. 그림을 그리시면서 틈틈히 작업을 하시면서. 음. 했죠. 뭐 애어뱅기 수에서도
그림을 그렇고 어 고생한
시행분들을 최세명이나 그런 선물로 들었어요.
44명의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그 표정을 그렇게 담아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참 이게 감명깊고 뭔가 그
기억에 남는 일하일 거 같아요. 어떻게 그 그림을 보면서 진짜 한재민
씨가 직접 보고 원래는 드라마가 끝날 때 눈물을 흘리는게 대본대로 돼 있었는데 그 그림을 보자마자 바로
눈물이 터졌다 그래요. 어떻게 좀 감동이었겠어요? 우리 정은혜 작가님께도
그때는 뭐 긴장이 안 됐어요. 아 긴장이 안 됐다. 긴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네. 미리 예상을 했다는 뜻이. 네. 방 작가님은 뭐 정말 클로노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을 자
춤추했었던 정말 파티스트신데요. 2000년도에 불행하게 그런 사고를 겪고 나서
이제 힐처에 앉아서 이제 음악에서 그림으로 전향하셨단 말이에요. 춤출 때는 온 몸을 정말 쓰셨잖아요. 근데
이제 그림 그릴 때는 오직 이제 부스로만 이렇게 터치하니까 그때 자꾸 춤추는 본인의 어떤 그 활동 범위에서
갑자기 이제 분만 선으로만 할 때 좀 어떠셨어요? 첫 그림 그리실 때 첫
그림 그릴 때 글쎄요. 뭐 별 생각 아무 생각 없었어요. 그냥 그때는 너무 심심했고 할 거 없고 늦게 없고
심심해서 글쎄요. 제가 휠처 타고 사실 벌써 25년 전입니다.
교통사고가 나 가지고 평생 휠처 타야 된다고 얘기 들었을 때 야 내가 저거 휠처 타야 되나 말아야
되나 나 그냥 걸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졌는데 한 달 두 달 되고 몇 개월 지나다
보니까 너무 심심한 거예요. 나가고 싶어. 그러니까 휠처를 타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휠처 지금도
아마 저랑 가장 친한 친구는 제 아내도
있고 뭐 우리 아들도 있고 친구 준여비도 있지만 가장 친한
글쎄요. 휠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 그 휠 타게돼서 밖에 나왔고 또 이렇게 움직이다 보니까 또
심심하게 되고 또 어 그러다 보니까 다시 무대 오르게 됐고 또 라디오 DJ 진행도 하게 되고 지금도 이제
뭔가 또 하고 싶은게 있다 보니까 예전에 어렸을 때 가졌던 그 화가가 되는 꿈을 또 이루고 싶어서 그림은
그리게 됐는데 뭐 할 수 없이 했다기보다도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렸고 지금도
그림 그리면서 뭐 답답하다라는 마음보다는 그 그림 속에서
뭐 하늘을 날 수도 있고 그렇죠 뭐 뛸 수도 있고 아 이쁜 색깔로도 나를
또 포장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막 슬픔의 아픔의 막 그런 그림들을 그릴 수 있다라는게 굉장히 너무 좀 그림을
좋아한다라는 거 자체가 복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 그림으로 나의 어떤 것들, 내가
소망하는 것들, 내가 바라는 것들 이런 것들을 정말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거 같은데 그러면 전 궁금한게
아까 그 그림을 첫 그림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렸다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그 첫 작품은 뭘 그리셨나요? 첫 작품은요?
네. 어, 제 아들 그때 우리 아들이 여섯 살이었나? 그 미술 숙제를 갖고
왔어요. 오. 그래가지고 까맣게 이렇게 막 이렇게 그려져 있고 바탕 그림은 거의 색깔을
칠하는 거였거든요. 그 색깔 제가 칠하는게 첫 그림이었어요. 그리고
그때 사실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제 사인팬 그림을 좋아했었는데 당근에서
사인팬이 팔더라고요. 당근. 예. 그래서 그거를 어 좀 저렴하게
구입을 해 가지고 첫 만졌는데 그동안 우리가 글쎄 뭐 저만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문자고 키보드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까요 글씨를 쓰는 거하고 그림을 그리는요
필력이라고 하나요? 너무 떨어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 좀 잘 그려야겠다 해야겠다. 자꾸 자꾸 연습하다 보니까 이제 조금은 좀
나아진 거 같은데 그때 처음 그림 그렸을 때 뭘 그린게 중요한게 아니라 되게 못 그렸던게 고등학교 때
실력보다도 더 안 됐다라는게 조금 약간 어, 좀 아쉬웠어요. 아, 벌써 25년 전이 됐어요.
네. 25년 됐어요. 나 사고 났을 때만 하더라도 와 원래도 1년 있다. 걸을 수 있다. 뭐
10년 있으면 뭐 의료가 발전해서 뭐 아니, 벅차 오르신 거예요, 지금?
저는요 그때 당시 그렇게 활발하게 활동하던 사람이 갑자기 누워야 아니 사회자님도 솔직히 저 이러다
걸을 거 같죠. 그렇죠. 지금 말 얘기 하지 마세요. 아니요. 아니요. 그근데 제가 알기는
굉장히 절망해서 생을 마감할 정도로 아픔 쓰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걸 일으켜 준 분이요. 정말 저는 우리
김성 가수님 존경합니다. 그 수많은 좋은 사람 놔두고 어 평생 장애인을
데리고 아니 나는 제가 얼마나 잘해줬으면 참고로 김장 김님께서
안 오셨어요. 지금이 자리 안 계십니다. 아 제가 데리고 같이 왔냐고 했어요. 감사장을 제가 드리고
싶어서 사실은. 아, 사회자분은 안내분 데고 오셨어요? 예. 오늘 뭐 저보고 나가면서 열심히
갔다 오라 그냥 왔습니다. 결론은 두 분도 안 오셨다는 거. 네. 그 의외로 이제 정말 그 활짝
이제 작가로서 이제 정말 강원내 작가로서 이렇게 작품 활동하시니까 너무너무 기쁩니다. 그때 만약에요.
지금 이것도 행복해요. 자, 우리 정은혜 작가님께서는
사실 그 정혜선 작가님요 옆에 그림 있잖아요. 선이 굉장히 좀 따스하세요. 근데 드라마 촬력을
하면서도 그림을 그리셨다고 하더라고요. 네. 그때 느낌이 어땠습니까? 제가 이탈리아를음
가기 전에 오빠하고 결혼하고 이탈리아를 갔어요.
아, 네. 그 그림이 어 버틀리
틀리하고음 여신이랑 네. 네.
뭐 베너스 탕생이나
있었어요. 아, 네. 그래서 다녀와서 그 그림도 그랬었어요.
그 영감을 그대로 네.이어서 이어서 드라마 하면서도 그랬다는 얘기군요. 자, 보니까 선이 따스한 느낌을 저도
이제 받았는데 선이 따스하면 또 그 사람의 마음도 따뜻한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또 얼마 전에 이제 TV도 계속 나오시고 남편분과의 또 이런 애정 표현이 굉장히 네. 아,
거충없고 대단하신데 남편분 어디 계세요? 함께 오셨는데. 네. 안녕하세요. 네.
두 분의 그 연애 일대기를 보면 아우리 은혜 씨가 굉장히 주도적이에요. 그래서 남편분은 또
그러면서도 그 마음을 어떻게 전달을 하시냐를 보니까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이러시더라고요. 근데 아네 또 여기서 강원 작가님은 스타일 좋네. 또 이러시고 저는 방금
또 이렇게 어메이징 아웃사이더이 정은혜 작가님이 저한테 콕콕 찔러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뭘 주시려나
이러면서 뭐 사탄을 주시려나 이랬는데 명암을 이렇게 어 그럼 개인적으로
전화해도 되는 거예요? 네. 개인적으로 이렇게 연락 드려도 되는 거예요.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대로 하세요. 네. 마음대로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네. 명함은 소중하게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전 우리 강원회 작가님은 원래 이제 춤을 추실 때 정말 360도로
회전을 하셨어요. 스포츠 매니이셨어요. 그 윈드밀이라고죠. 브레이크 용어로.
헤드스핀 뭐 윈드밀 그렇게 뭐 360 하던 분이 이제 앉아서 캠퍼스 앞에서 이제 앉아야 될 어떤 이제 제한된 그
공간에서 자꾸 저는 그래요. 그림을 그리면서도 본인이 그 춤을 춘다는 그런 거.
그런 세계 속에는 지금도 계시는 거죠? 아, 그렇지 않아요. 이제 뭐 25년 됐더니 조금 그만 물어보세요. 그런
얘기하시고. 그래 저는 항상 글쎄 뭐 많은 분들의 관심이겠지만
그런 질문도 많이 받기도 하고 또이 아내가 천사다라는 얘기도 많이 듣고 또 구준은 한국에 언제 오냐라는
얘기도 많이 듣고 있고 선이가 몇 살이냐 지금 이제 5학년 됐어요.
그런 질문들 많이 봤지만 아 저는 그 시카고 뮤지컬에 그런
대사가 있습니다. 네가 꿈꾸는 삶을 살던가 아니면네
삶을 좋아하던가. 그 네가 좋아하는 삶을 살던가 아니면 뭐 여러 가지 얘기가 있는데 저는 꿈꾸는 삶도 살고
싶고 제 삶도 좋아하면서 재밌게 신나게 옛말에 이런 말 있잖아요.
마음이 요쪽하고 답답할 때 짜증내지 말고 꿍이 잡아 잊지면서 재밌게 살라고 해서 앞으로 더 재밌게 신나게
힘든 일이 있더라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 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박수 한번 때려 주세요. 네.
좋습니다. 네. 아, 저는 아까 방금 우리 광월래 작가님이 마음이 울적하고 이럴 때
바로 저는 이제 바로 궁따리자마게 나오게 되더라고요. 그때 정말 그
전국민이 모두 다 함께 따라 불렀던 곡이기도 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희
아버님이 꼭 그 클론의 무대를 보면서 쿵타리샤바라는 꼭 모래방에 가셔서 꼭
그 노래 부르셨어요. 참고로 저희 아빠는 음입니다. 네. 음치신데 꼭 그 노래는 노래 와서 이렇게
부르시더라고요. 그래서 참 저에게도 소중한 추억을 안겨 준 그룹인데 이제
아까 말씀하셨듯이 너의 삶을 사랑하든지 너의 꿈꾸는
삶은 네가 살던지 이건데 말 그대로 수능과 또 도전이 두 가지가 함께 다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현재이 삶을 살고 계시고 또 꿈꾸는 삶을 또 창조를 하시고 싶으신 이런 마음들이
가득한데 참 내가 그래도이 그림 안에서 나를 녹여내면서 내가
그래도 일어서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이런 생각이 드실 때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럴 때는 그런 마음도
그림으로 표현을 하시나요? 아니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제 그림은 어 확창 시절에 제가 어
서해도 좀 했었고 그리고 그림을 좀 그려 가지고 친구들 연애 편지를
대피를 많이 했어요. 그래가지고 친구들이 뭐 스토리를 갖고 오면 제가 그 이름도 쓰고 그림도
그려 가지고 뭐 회스권 몇 장에다가 또는 시권에다가 이렇게 바꿔 했었는데 제 그림은 이따 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긍정적인 단어가 되게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무슨 식탁 앞에 어 고릴라
그림도 좋고 뭐 아까 봤더니 고양이 그림도 좋고 좋지만 전무라도 좋지만
풍경화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름 내가 좋아하는 단어를 항상 보면서
나를 한번 또 새롭게 다잡는 약간 부적 같은 그런 느낌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그림으로 어 앞으로
여러분께 많은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그림을 어 보여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네. 좋습니다. 저 이제 여기 우리 지금 약 한
800점이 전시가 돼 있거든요. 전국에서 왔습니다. KTX를 KTX를
타고도 오고요. 그림을 갖고 보좌가 다섯 시간을 거쳐서 오기도 하고 소중하게. 근데이 모든 작가들의 꿈
우리 강원회 작가님이 앞에서 이끌어 주시길 바라고요. 자, 우리 정은혜 작가님은 사실 다운 중후군이라는게
이제 제가 알기로는이 선을 부슬 획적으로 이렇게 쭉 하지 못하는데요.
이렇게 아까 제가 그림을 보니까 정말 선이 아름답게 떨리지는 않습니까?
이렇게 붓을 잡을 때. 아니에요. 아, 네. 반호합니다. 네.
오. 네. 그래서 어떻게 저렇게 그릴 수 있지라고 한번 생각을 해 봤어요.
제가 스 때는 가장
힘들었어요. 아, 네. 그러면서 어 그림 그러면서
뭐 신성 뭐 조협병 뭐 테 뭐
어 귀신 보내면서 그시기 환청
음 그거를 다 사라지고 그림 그름
그러면서 다 사라졌어요. 환청이 네.
참 그림을 그리면서 그 참 그런 거 같아요.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아픔을 치유하기도 하고 또 위로를 받기도 하고 이제 이러는데요.
제가 보니까 어머님께서 굉장히 옆에서 케어를 많이 해 주셨어요. 그런데 이제 참 계속해서 이제 아까 우리
정현 작가님께서 어 계속해서 이제 뭐 환정도 들리고 조염병도 있었고 틱도
있었고 이랬는데 이런 걸 지켜보시면서 엄마가 그만 그림 그려라 힘들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 이제 슬럼프란게 있습니다. 두분이
그림을 그리면서도 어떤 활동을 하면서 슬럼프가 오거든요. 아무것도 하기실
때가 있어요. 두분은 어떻게 그걸 극복하십니까? 혹시 슬럼프라는게 오면은
네. 슬럼프 모든게 하기 싫고 우울하고 포기하고 싶고 제가 그림
쓸 때는 없었어요. 어 네
슬로프는 없었다. 강원님 그셨어요? 집에서 그림 그리다가 또는 어 좀
강릉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다가 좀 이렇게 그림이 막히면 냉장고 문을 한번 열어 봐요.
뭐 먹을 거 있나? 아, 내일 저녁에 뭐 먹을까? 뭐 그 어머니와 고등어 그 얘기처럼
엄마가 내일은 고등어를 해 주겠지. 송이가 내일은 김치 볶음밥을 해 주겠지. 저녁에 뭐 먹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또 냉장고 닫고 들어오면 이렇게 좀 마음이 좀 편해지고 근데 그림 그리다 답답해서 막 팍
찢어버리고 막 뭐 이런 거는 솔직히 좀 영화 속에나 나온 얘기지. 오. 전혀 뭐 그런 거 없어. 그냥 재밌고
신나고 또 어떻게 해야 될까? 네. 뭐공을들도 마찬가지고 노래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고이 노래를 들으면
어떻게 신이 날까 사람들이 좋아할까 그런 생각을 하지 뭐 짜증나고 막
그런 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이게 프로라서 가능한 거예요. 왜냐면 제가 아까 제 소개를 잠깐 드렸을 때
저는 플루을 원래 연주하는 플루티스트입니다. 그런데 어 음악을 하면서도 또 역시 슬럼프가 오는데이
슬럼프가 어떻게 보면 저희가 예술인들이 꼭 한 번씩은 거치는 이제 그런
과정인데 냉장고 아 굉장히 저도 좋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나 왜 왜 그때
그걸 몰랐을까 냉장고를 아네 이제 저도 이렇게 딱 우리 강훈혜
작가님 딱 보면요. 그냥 뭐 작가락하기 포다는 그냥 음악인 가수
그렇게 이미지가 이제 굳혀 있어요, 사실은. 그러니까 뭐 이렇게 이제 작가도 되고 가수도 되었지만 많은
분들이 처음 뵐 때 작가라기보다는 가수 이미지가 훨씬 크고요. 아, 고맙습니다.
네. 지금도 저는 솔직히 그 가수 강원내 클론 강원내로 막 99% 이렇게 보여지거든요.
어느 뭐라고 부를 때가 행복합니까? 아, 작가님 아니면 아, 예. 클론
가수님 할 때 어떤게 행복하세요? 글쎄요. 저는 그냥 뭐 그런 명칭보다는 그냥 아 강래 씨
어 그냥 어 강원래다 뭐 어 원래 원래대로 살자 원래 원래
그래서 저는 그 항상 저를 소개할 때도 안녕하세요 원래 원래 강원래입니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뭐 이렇게 특별한
명심보다는 저는 어 그림도 잘 그리고 뭐 잘 그린다기보다도 좀 관심이 많고 또
음악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서 어 우리 엄마가 피아노 치셔 가지고 이름을 도래미로 주었어요. 우리 형제
이름을. 아 우리 아버지가 강시고 우리 형제 돌림자가 원자예요. 그럼 우리 형
이름이 뭘까요? 강원도 강원도예요. 강원도 강원도 강원내 강원미
음악도 잘하고 또 운동도 못 하는게 없어. 저는 신나요?
그 말씀하시면서 얼굴에 위소가 떠나질 않으세요. 그런 그러면서 은근한 자화
자찬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네. 사실 오늘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뭐 작가분도 계시고 뭐
공경하러 오신 관객도 계시겠지만 저는 어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된 계기 중에
하나가 뭐 자패성 장애라든가 뭐 특정 장애는 아니겠지만 뭐 지적 장애라든가이 친구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읽기 때문에 그림이
약간 숙제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작품회를 한다 그러면 아, 어떤 걸 해야지 또 칭찬을 받을까, 어떤 걸
해야지 꾸짐을 만들까 이게 좀 스트레스였는데 아니이 친구는 야 이거
막 뛰어다니면서 막 그림 그리고 막 신나 가지고 그림 그리고 야 이렇게 재밌게 그림을 그릴 수 있구나라는 걸
보고 좀 놀래 가지고 저도 반성이 많이 되고 여러분도 뭐 장인들에게 힘내라 힘내라
하지 말고 그분들을 보고 여러분도 힘을 받아야 될 것 같아요. 더 세상을 좀 재밌게
어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 갖고 좀 신나게 그렇게 좀 살았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습니다. 우리 정은혜 작가님은 드라마 속에서 이제 정말 그때
영이였죠. 이름이 영이었습니까? 은영이었습니까?
이영이라고. 예. 영이라는 역을 정말 잘하셨잖아요. 그래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정말
우리들의 불수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제주도라는 환경 속에서 서로 유하며
살아가는 소소한 얘기거든요.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죠. 길에 가시면 어때요? 많이 알아보시나요?
그럼요. 오. 네. 예. 정말 우리 비슷한 환경에 있는 분들이
꿈을 가지실 것 같아요. 나도 연기자도 될 수 있다. 꿈은요. 제가 처음부터
김봉준 선배님께서 그 수원지에 은혜 씨 화가 되세요.
그걸 그 수원지를 써 주셨고 네. 그분 토분에 제가 작가로 된
거예요. 작가도 그리고 이제는 연기까지 아,
정말 우리 못 하는게 없는 정의 작가신데 그 전시에 오신 분들이 어
정의 작가님 이렇게 말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영이야 이렇게 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어 그럼 그때 어떻게 반응을 어떻게 반응을 하세요?
그냥 그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는 팬이고 저를 불러 주시고 어
되게 많아요. 그럼 제가 용이야 이러면 저도 한번 안아 주시는 건가요? 저도 한번 안아
주시는 건가요? 여자니까 안 알아줄 거야 이거?
좋습니다. 네. 저기 이제 막 저희가 질문 했는데요. 사실 두 분도 오늘 처음 만남이시죠?
네. 그래서 두 분이 이제 궁금한게 있을 것 같아요. 강원님. 제가
편에는 그 미스터리 아까
아 네네리 그 급장을 보면서 네 많이 떠요.
어 네 제가 무성을 좋아해요. 어 네 뭐 그냥 차다보기도 하고음
우리 가운적 한번 물어보시고 싶으면 한번 물어보세요.네 두 분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서로
배우 이병원 씨 실제로 본 적 있어요? 어떻던가요? 잘생겼어요?
실제로 많아서 응 좀 맛있죠?
안아줬어요. 안아주셨어요? 이병원 씨 안아 주셨어요? 아니야. 아 그근데 이원 선배도
짝이 있어요. 아 짝이 있기 때문에 나의 온기를 나눠줄 순 없다.
그게 궁금했어요. 우리 궁금하 그리고 궁금한 거는 미술을 특별히
누구한테 배운 적이 있어요? 그림 그리는 걸. 제가 배우지 않았어요.
아, 어떻게 배우게 되? 좀 그냥 한 번에 영감이 딱 오셔 가지고 나는 이제 캐릭터처를 그릴
거야. 이렇게 저는 그 사람들을 제가 어 사람들을 만나겠다.
그래서 그 북한강에 그 문놀이
설종 들어가는 문놀이 레바 마켓 나가서 사람들을
어 만나고 사진 찍고 그러을 어 그랬어요.
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오랫동안 아빠가 카마나에
찍으면서도음
했었어요. 그러면서 한 여름에 어 종기가 아물고 터지고
어 손도 트면서 또 추운 바람에
눈이 왔을 때도 음 손도 트면서도 계속 그렇죠.
네. 개곳에 가면서 좋습니다. 자, 이제 저희가 궁금한 걸
물어봤는데요. 우리 관객분들께서 어, 궁금한 거 있으면 마이크 한번
우리 감독님 전달해 주시겠습니까? 손 한번 들어 보세요. 자, 마이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편하게 질문하실 수 있는 시간이니까 편하게 질문하시면 됩니다. 어, 아까처럼 뭐 이병옷이 잘생겼냐,
한진비씨 예쁘냐, 뭐 이런 것도 괜찮고. 네. 여러분께서 편하게 한번 질문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네. 그리고 우리 뒤에 우리 권능경 통역사님이 수화로 이렇게 통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통역을 해서도
설명해 드릴 테니깐요. 손 한번 들어 보세요. 궁금한 거 있다. 네. 좋습니다. 마이크 좀 전달해 주시죠.
자. 음. 네. 자, 궁금한 거.
어 다음주군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다원군이 대체 그 어떤 병인가요?
네. 시각정이라 제가
1990년 10 11월 18일 날 태어나서이
세상이 태어나서 어
당성군 상급이었어요.
그러다가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보이면서
어 저는 개혁이 못 해요.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그 재원 그 병원에서 다시 하는데 발달이
이급이에요. 네. 네. 말씀하세요.
음. 그래서 오빠랑 결혼하면서
달라쳤어요. 음. 오빠가 저를 사랑하니까.
음. 그래서 이뻐진 거예요.
알겠습니다. 네. 제가 검색을 해 보니깐요. 어 21번 염색체가
원래는 두 개야 되는데 세 개가 돼서 그니까 염색체가 하나가 더 많아져서
어 다운후군이라는 장애가 생긴다고 합니다. 아 답변됐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 네. 강원 의학 박사님께서 다운군에 관해서 말씀
질문자 마크 드리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 정은혜 작가의
엄마예요. 네네. 네. 어, 은혜 작가는 이제 발달 장애가
있으신 분이고 근데 사실 처음의 시작은 그리고서 작가로
성장이라기보다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요. 아. 예, 발달 장애인들이 성인인데의
문제는 그 고립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장애 이외에도 어떤 우울강, 고리감, 우울주 이런 것들이
정신병적인 것들을 또 만들어 주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성인이대 은혜 씨가
사람을 그리는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을 그리는 거보다
사람을 만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던 거거든요. 그래서 은혜 씨는 아직도 여전히 사람을 그려요. 예.
지금까지 몇 명 그렸죠? 5,700명. 네.
700. 예. 지금 만 명을 향해서 달려가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네. 네. 그래서 뭐 우리 강원리 작가님도 여러이 삶의 과정이
있으셨을 것 같고 그 지금 그림을 만났다는게 너무 행복하실 것 같아요.
근데 이제 제가 궁금한 거는 은혜에 있어서의 그림의 주제는 사람인데 우리
작가님은 주로 어떤 주제로 다가가시는지 그게 좀 궁금했어요.
네. 저는 어 제가 그림 그리는 거는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친구들의 그 사랑 이야기를 대피해 주면서 어 그리고 또 제가 여러분 잘
아시지 모르겠습니다만 군대 생활할 때 제가 제 아내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받았어요. 저를 좋아한다고. 근데 저는 제가 그 김성이 누군지 몰랐어요. 전혀 몰랐고
나를 짝상한다라는 얘기만 들었지. 그 제가 바로 답장을 했죠. 나도 사실 널 좋아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돼가지고 제가 제안에게 군대에서 보낸 편지가
한 통당 열 페이지씩 500통을 보냈어요. 와
그통 안에 모든게 다 그림이었고 또 시였고 제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 중에 하나가 저푸른 초원이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남진 선배님의 님과 함께를 제가 쓴 씨로 알고 있는데
예 그래서 저는 글씨로서 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뭐 한문이 될 수도
있고 나중에 아랍의 숫자가 될 수 있고 영화가 될 수 있겠지만 글씨로서 그 사람들에게 추억을 을 살릴 수
있고 어 또 미래를 어 설계할 수 있는 그런 단어들을 만들어 단어들로
이쁘게 어 그리고 싶습니다네. 우리 정은혜 작가님 방금 말씀하셨는데요. 정말 사람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러셨잖아요. 정말 대단하세요. 만약에 여러분 우리 행복하기 위해서요. 돈 많아야
됩니다. 자 그다음에 수명 건강이야하죠. 한 150살게 해 드릴까요? 여기 제가 그렇게 감히
드릴게요. 어 앞에 계신 분 돈 얼마 필요하세요? 제가 1천억 드리겠습니다. 수명은 130세로요.
어 다 됐네요. 그럼 우리 행복할까요? 단 조건이 저 산 속에서 혼자 사세요. 아니면 무인도에서 결코
행복할 수가 없죠. 정말 사람 관계에서 이렇게 사람 만나고 지금
우리 이렇게 토크쇼 하는 것도 행복이거든요. 그걸 저 어머님께서 말씀해 주신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 정은혜 작가님이 엄마한테 감사하다고 한번 말씀해 봐요. 엄마 감사합니다.
어 저는 늘 엄마한테는 늘 감사하죠.
저를 더하게. 아, 근데 참 그런 거 같아요. 그
아까 말씀하셨을 그 질문을 저는 SNS에서 본 적이 있는데 저도 한번 고민을 해 봤거든요. 과연
나에게 1천억을 주고 수많은 오래 살 수 있는 수명을 준다. 그런데 혼자 살아야 된다. 이게 가능한 거예요.
네. 사람과 네. 음
그 중요성을 알아서 우리 정원 작가가 이렇게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자 여기 주인공들은 여기 계십니다만은 우리 정은혜 착가님 어머님께 여러분 큰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네
다음 우리 최대 장애 예술인들에게 지금 어디선가 우리는 또 사고가 나고
있고요. 후천송으로 장애를 누가 앓고 싶어서 한게 아닙니다. 이러면서 또 예수라는 우리 장애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우리 강원회 작가님 뭐 그림도 좋고 글씨도 좋고 또 문학
뭐 예술 음악 막 모든게 좋습니다. 일단 하고 싶으면 하면 돼요. 안
해서 못 하는 거지 하면 뭐가 돼도 되니깐요. 일단 도전하시고 또 계속
하다 보면 그 어렸을 때도 뭐 춤을 추고 싶다 그랬는데 아이 너 춤을 추니까 고만해라는데 계속 오는
거예요. 계속 오는 거예요. 하고 싶다고 하고 싶다고. 근데 그 노력이 결국에는 또 성공하게 되니깐요. 물론
성공을 위해서 하는 것도 좋지만 하고 싶은 거 계속 하기 원하겠습니다. 네. 네. 저는
아트페어 이제 행사를 찾고 옵니다. 와서 그림을 이렇게 심히 보면요. 저도 그림에 대해서 일이지만은 어
그분들이 저렇게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저렇게 예술적인 표현을 할까 굉장히 감동을 많이 받거든요. 온
힘을 다해서 정말 그래서 우리는 장애라는 거 언제나 올 수가 있는 거거든요.
오늘은 그 모든 분들의 800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여러분 구경도 하시고요. 우리 정은혜
작가님께 질문 한번 해 보세요. 자. 어, 저는 이제 정우의 작가님이 현재 지금
화거로서 활동 중이시잖아요.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내가 되고 싶은
화가는 어떤 화가가 되고 싶으세요? 어떤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으세요?
어 지금 은혜로운 양화전
어 전시할 전신할
예정이에요. 어 그래서 명화선으로
그러고 있어요. 더 다양한 이제 작품들이 이제 또 전시가 될 예정인데 여러분께서도
많은이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참 음악이나 미술이나
관객들이 함께 봐주고 공감해 주고 이렇게 작가들의 노력을 알아준다면
그것만큼이 작가들에게 정말 가슴 따뜻하고 좋은 일이 정말 그게
최고거든요. 그래서 여러분께서 우리 광월래 작가님이나 우리 정은회 작가님께서 앞으로 계속 이제 전시의
출품 예정인 작품들에 대해서 관심 많이 가져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 우리 두 분 우리 2025년
우리 광주 에이브라트교에 오신 많은 우리 관광객들에게 우리 관객들에게 자, 한 말씀
부탁합니다. 네. 먼저 하시죠. 정리 작가님네. 제 그림도 오신 분들도
감사하고요. 사랑합니다. 네. 좋습니다. 네. 자, 빨리
강원의 작가님. 네. 그래요? 어, 그 우리 가수들은 그런 얘기 많이
해요. 가수들은 자기 노래 제목 따라간다고 그래서 우리가 또 예전에
지금 이제 11월 달이잖아요. 그 스토리를 만들어 낸 분 중에 한 분이 이제 차중 낚시 낙엽 따라간 사람
불러가지고 또 따라가 낙엽 따라갔다 그거요. 예. 제가
많이 들어요.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그래요. 예. 예. 저는 어 꽁다리 샤바라를
불러서 그런지 좀 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할 거니까 뭐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여러분 지금
조금 힘들다 힘들다 하지 마시고요. 어 마음이 웃쩌하고 답답할 때 꿈잡을
한번 더 듣고 신나게 재밌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어 재밌게 사는 여러분
되시길 응원하겠습니다.네 네. 정말 두 분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떤 우리 정말 예술이 정말 삶의
힘을 또 일으키는 정말 온천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강은 작가님은
무대 화폭으로 또 우리 정은혜 작가님은네 카메라 앞에서 화폭으로 두
분이 이렇게 오셨습니다. 어 예술은 어떤 형태로 변질이 되더라도 그
본질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 예수를 표현한 우리의 마음 정말 두 분을
모시게 돼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두 분에게 여러분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릴까요?
아 잠시에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이렇게 돌다 보면 제 그림이 있거든요. 거기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깐요. 혹시라도 혹시라도 오셔서 사진 좀 찍어 주시면 저랑 같이 사진
좀 찍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다릴게요. 네. 이렇게 마음까지 넓으시고요.
그럼요. 우리 전재광 회장님이 어디 자리 안 보이시는데요. 사실 우리 예수님들 작품을 어떻게 이제 유통을
하고 실제로 생활에 도움이 될까 그 어 거기에 대해서 토크도 했고 수없이
심포지엄 했거든요. 그래서 800점이 와 있는데요. 정말 좋은 그림도
구경하고 그림도 여러분 딱 낙찰하십시오. 우리 강원작가님 그림이
어 2억 정도 하는데요. 제가 사정을 해서 어 저렴하게 한
오늘 약간 DC를 해주시다고. 네. 정말 오늘 이렇게 두 분을 모신
건음 정말 예술로서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승화시킨 그분의 멋진 삶 이게 모든 분들에게 감동과 또 지표가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토크쇼를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