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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웹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에 덧그리는 조현의 세계

이음광장 환상의 전장 속 유일한 용사들

  • 조개인 작가
  • 등록일 2022-09-28
  • 조회수601

조현병. 당사자가 아닌 당신이 이 말을 접했을 때 즉각적으로 드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인간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 외의 영역은 잘 상상하지 못하는 동물이니, 흉악한 범죄사건(병이 성별을 가리는 것도 아닐 텐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대체로 정해져 있는 것은 차치하고)의 스산함 내지는 ‘미친 사람’의 기괴함 같은 것이 당신이 지닌 가치관과는 상관없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런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정보가 없는 편이었다. ‘조현인을 단편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반작용적인 생각만 있을 뿐, 그 자리에 채워 넣을 이미지는 없었다. 정신장애인 주거시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첫 룸메이트는 긴 시간 조현병과 더불어 살고 있었다. 다른 당사자와 매일의 생활에서 부대끼는 것도 조현인을 가까이서 접하는 것도 내게는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낯선 공간 속 낯선 사람의 옆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뭘 하려는 자체가 어쩌면 불필요한 것일지 감을 잡지 못하다가 어느 날 불쑥 조현의 양성증상(망상, 환각 등 비조현인에게는 없지만 조현인에게는 있는 증상)과 마주쳤다. 문득, 흰 가운 자락을 펄럭이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산더미 같은 젤리들을 비장하게 헤치고 나가지만 다른 눈을 가진 사람의 시선을 받으면 허공 속을 홀로 휘저을 뿐인 안은영. 내게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데 대답으로써 욕설을 툭툭 뱉는 룸메이트. 순간, 조그마한 젤리 하나가 내 쪽으로 ‘통’하고 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젤리가 튀어 오르는 때에 조금이라도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다음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의 정신질환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분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공통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환기’였다. 현실보다 환상에 밀착된 감각에 현실의 바람을 훅 불어넣는 것. 이름을 부르고, 어깨를 한 번 툭 두드리는 것. 우리가 현실 속에 함께 있음에 가벼운 방점을 찍는 것.

학교 지하실의 젤리 소굴을 혼자서 악을 쓰며 소탕하던 은영은 ‘홍인표’가 비추는 손전등 불빛에 돌연 ‘외부 세계’로 호출된다. 필사의 전투가 줌바 댄스가 되는 세계에서 은영은 당황하고, 지레 겁을 먹고, 위화감을 느낀다. 이 절로 욕이 나오는 기묘한 괴리의 틈에서도 꾸역꾸역 자신의 몫을 해나가는 은영의 곁으로 차츰, 그와 같은 것을 보든 그렇지 않든 하나둘 사람이 모여든다. 은영은 그들과 한 팀처럼 합심하여 젤리에 맞서기도 하고, 경계하고 갈등하기도 한다. 그러나 은영이 왜 이런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인지,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있는 것인지, 궁지에서 맞닥뜨리는 근본적인 질문에는 그중 누구도 뾰족한 답을 내주지 못한다.

호실에 함께 있으면서 룸메이트가 젤리와 맞서 싸울 때마다 나는 그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행동을 했고, 통하지 않는다 싶으면 시설에 있는 사례관리자 선생님께 슬쩍 연락을 드려 조치가 취해지게끔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증상의 빈도와 강도는 누그러지기는커녕 더해져만 갔다. 내 언행이 어떤 자극이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도 하고 나는 먹지도 않는 고기반찬을 만들어 그에게 주기도 하고 나름 이런저런 노력을 해 봤지만, 끝내 무엇도 먹히지 않았다. 일주일을 연속으로 새벽에 욕설과 고함에 잠을 깼을 때, 나는 결국 호실 교체를 요청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옮기는 동안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타인의 알량한 선의 같은 것에 함부로 구제되지 않는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이 새삼 씁쓸히 곱씹어졌다.

은영이 따돌림받던 중학생 시절에 만난 친구 강선은, 유쾌하게 달리는 모험 만화 캐릭터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살라는 이야기를 은영에게 전한다. 그 말처럼, 지옥의 가장 구석진 동굴의 참상같이 거무죽죽하고 그로테스크한 형체만이 가득하던 은영의 시야에는 어느새 색색의 제법 귀엽기까지 한 젤리들이 통통 굴러다니게 된다. 강선이 약간의 실마리는 주었을지언정, 자신의 세상에 색을 입히고 모양을 가다듬은 것은 누구도 아닌 은영 자신이다. 조현인의 세계 또한 다른 무엇도 아닌 유일한 그 자신의 안에서 비롯되고 재조립되고 스러진다.

당신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저마다의 젤리와 분투하는 이들이 덜 외롭기를, 현실의 햇볕을 조금 더 따스하게 느끼기를.

  • 필자의 그림. 어두운 공간에서 길고 뽀족한 검을 들고 젤리 괴물을 소탕하는 보건교사 안은영.

    학교 지하실의 젤리 소굴을 혼자서 악을 쓰며
    젤리를 소탕하던 보건교사 안은영

  • 필자의 그림. 길고 뽀족한 검을 든 보건교사 안은영이 손전동 불빛이 비추는 곳으로 다가가고 있다.

    안은영은 홍인표가 비추는 손전등 불빛에 돌연
    ‘외부 세계’로 호출된다.

조개인

‘다들 그렇다니까 그런 것’을 가장 경계하는 햇병아리 정신장애인 당사자. 아무리 못해도 자신을 속이지는 말자는, 유일하게 다짐한 바에 따라 어찌어찌 살고 있다.
milosaya@naver.com
인스타그램 바로가기(링크)

그림.필자

조개인

조개인 

‘다들 그렇다니까 그런 것’을 가장 경계하는 햇병아리 정신장애인 당사자. 아무리 못해도 자신을 속이지는 말자는, 유일하게 다짐한 바에 따라 어찌어찌 살고 있다.
milosaya@naver.com

상세내용

조현병. 당사자가 아닌 당신이 이 말을 접했을 때 즉각적으로 드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인간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 외의 영역은 잘 상상하지 못하는 동물이니, 흉악한 범죄사건(병이 성별을 가리는 것도 아닐 텐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대체로 정해져 있는 것은 차치하고)의 스산함 내지는 ‘미친 사람’의 기괴함 같은 것이 당신이 지닌 가치관과는 상관없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런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정보가 없는 편이었다. ‘조현인을 단편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반작용적인 생각만 있을 뿐, 그 자리에 채워 넣을 이미지는 없었다. 정신장애인 주거시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첫 룸메이트는 긴 시간 조현병과 더불어 살고 있었다. 다른 당사자와 매일의 생활에서 부대끼는 것도 조현인을 가까이서 접하는 것도 내게는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낯선 공간 속 낯선 사람의 옆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뭘 하려는 자체가 어쩌면 불필요한 것일지 감을 잡지 못하다가 어느 날 불쑥 조현의 양성증상(망상, 환각 등 비조현인에게는 없지만 조현인에게는 있는 증상)과 마주쳤다. 문득, 흰 가운 자락을 펄럭이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산더미 같은 젤리들을 비장하게 헤치고 나가지만 다른 눈을 가진 사람의 시선을 받으면 허공 속을 홀로 휘저을 뿐인 안은영. 내게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데 대답으로써 욕설을 툭툭 뱉는 룸메이트. 순간, 조그마한 젤리 하나가 내 쪽으로 ‘통’하고 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젤리가 튀어 오르는 때에 조금이라도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다음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의 정신질환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분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공통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환기’였다. 현실보다 환상에 밀착된 감각에 현실의 바람을 훅 불어넣는 것. 이름을 부르고, 어깨를 한 번 툭 두드리는 것. 우리가 현실 속에 함께 있음에 가벼운 방점을 찍는 것.

학교 지하실의 젤리 소굴을 혼자서 악을 쓰며 소탕하던 은영은 ‘홍인표’가 비추는 손전등 불빛에 돌연 ‘외부 세계’로 호출된다. 필사의 전투가 줌바 댄스가 되는 세계에서 은영은 당황하고, 지레 겁을 먹고, 위화감을 느낀다. 이 절로 욕이 나오는 기묘한 괴리의 틈에서도 꾸역꾸역 자신의 몫을 해나가는 은영의 곁으로 차츰, 그와 같은 것을 보든 그렇지 않든 하나둘 사람이 모여든다. 은영은 그들과 한 팀처럼 합심하여 젤리에 맞서기도 하고, 경계하고 갈등하기도 한다. 그러나 은영이 왜 이런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인지,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있는 것인지, 궁지에서 맞닥뜨리는 근본적인 질문에는 그중 누구도 뾰족한 답을 내주지 못한다.

호실에 함께 있으면서 룸메이트가 젤리와 맞서 싸울 때마다 나는 그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행동을 했고, 통하지 않는다 싶으면 시설에 있는 사례관리자 선생님께 슬쩍 연락을 드려 조치가 취해지게끔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증상의 빈도와 강도는 누그러지기는커녕 더해져만 갔다. 내 언행이 어떤 자극이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도 하고 나는 먹지도 않는 고기반찬을 만들어 그에게 주기도 하고 나름 이런저런 노력을 해 봤지만, 끝내 무엇도 먹히지 않았다. 일주일을 연속으로 새벽에 욕설과 고함에 잠을 깼을 때, 나는 결국 호실 교체를 요청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옮기는 동안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타인의 알량한 선의 같은 것에 함부로 구제되지 않는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이 새삼 씁쓸히 곱씹어졌다.

은영이 따돌림받던 중학생 시절에 만난 친구 강선은, 유쾌하게 달리는 모험 만화 캐릭터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살라는 이야기를 은영에게 전한다. 그 말처럼, 지옥의 가장 구석진 동굴의 참상같이 거무죽죽하고 그로테스크한 형체만이 가득하던 은영의 시야에는 어느새 색색의 제법 귀엽기까지 한 젤리들이 통통 굴러다니게 된다. 강선이 약간의 실마리는 주었을지언정, 자신의 세상에 색을 입히고 모양을 가다듬은 것은 누구도 아닌 은영 자신이다. 조현인의 세계 또한 다른 무엇도 아닌 유일한 그 자신의 안에서 비롯되고 재조립되고 스러진다.

당신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저마다의 젤리와 분투하는 이들이 덜 외롭기를, 현실의 햇볕을 조금 더 따스하게 느끼기를.

  • 필자의 그림. 어두운 공간에서 길고 뽀족한 검을 들고 젤리 괴물을 소탕하는 보건교사 안은영.

    학교 지하실의 젤리 소굴을 혼자서 악을 쓰며
    젤리를 소탕하던 보건교사 안은영

  • 필자의 그림. 길고 뽀족한 검을 든 보건교사 안은영이 손전동 불빛이 비추는 곳으로 다가가고 있다.

    안은영은 홍인표가 비추는 손전등 불빛에 돌연
    ‘외부 세계’로 호출된다.

조개인

‘다들 그렇다니까 그런 것’을 가장 경계하는 햇병아리 정신장애인 당사자. 아무리 못해도 자신을 속이지는 말자는, 유일하게 다짐한 바에 따라 어찌어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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