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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시가 열어준 세계①

이음광장 언어의 모험을 따라가다

  • 김학중 시인
  • 등록일 2023-09-13
  • 조회수345

이음광장

얼마 전 일이다. 나는 활동이 중단되었던, 월간 [문학사상] 출신 작가들의 모임인 ‘문사문학회’를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결실로 [문학사상] 출신 시인들의 등단작을 묶어 기념 시집을 내게 되었다. 『영원한 빛은 어디서 오는가』(작가, 2023)가 그 책이다. 원고 취합 과정에서 내가 쓴 등단 소감도 다시 읽어보아야 했다. 너무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시간의 간극이 느껴졌다. 등단 소감에는 내가 문학을 어떻게 대하고 시를 통해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와 시인으로 첫발을 떼는 신인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이 글은 그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그동안에는 장애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가 최근 안과 전문 병원에서 망막 미성숙에 따른 선천적 저시력이었음이 밝혀졌다. 내 나이 마흔여섯이 되어서야 장애의 원인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원인을 알 수 없는 시각장애를 겪으면서 살아온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청년이 될 때까지 내 삶의 방향을 가늠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이 땅의 평범한 청년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감정을 나도 느꼈다.

게다가 나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겪어야 하는 이중적인 배제의 상황에 놓였고, 종종 다음과 같은 요구들을 마주해야 했다. “잔존시력이 있으니 세상에 나가서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도전해야 하지 않겠어요?” “장애가 있으신데 이 일을 왜 하려고 해요? 하고 싶다면 능력을 좀 보여주셔야 할 거예요”라는 요구들이 그것이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그 언어들이 만들어내는 힘의 장막을 돌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를 만났다. 우연히 초대받아 들어간 문학동아리방 낡은 캐비닛에서 만난 시집들을 통해서였다. 나는 그날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시집을 끼고 읽어 나갔다. 시인들이 문학 공부를 하면서 읽어 나간 책 목록에도 관심이 생겨 찾아보게 되었고, 독서는 점점 영역을 넓혀 나갔다. 책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면서도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문학에 대한 내재적 열정이 일어났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때로는 여러 회사를 전전했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백수로 살았다. 그러면서도 나를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문학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꿈이 생기고부터는 차별의 시선도 나를 크게 상처 입히지 못했다.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저시력이어서 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그런 말들은 내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일부는 사실도 있었다. 실제로 시 창작을 할 때 이미지와 묘사를 다루는 데에 문제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주 무력하고 좌절했다.

하지만 좋은 작품들을 읽으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문장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다시 붙잡게 되었다. 매년 50~60권가량의 시집을 읽고, 울림으로 다가온 시는 노트에 필사했다. 온몸을 웅크린 채 읽고 쓰느라 책상에 맞닿은 갈비뼈 아래쪽이 아파올 때도 있고, 목이 끊어질 듯이 아픈 날이 이어졌지만, 그 시간만은 행복했다. 어느덧 나의 시에도 묘사와 이미지가 생동감 있게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의 문학적 열정을 알아봐 주신 선생님도 만나게 되었다. 열정을 가진 자만이 수난을 감당할 수 있다면서 격려해주신 조정권 시인이 그분이다. 이런 관계가 허락된 것은 시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시인이 되었다. 종종 초대받은 강의에서 ‘시’라는 문학 장르를 소개할 때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고 창조하는 언어적 행위”라고 말하곤 한다. 실제로 시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언어적 모험이었다.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언어로 현재화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에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시라고 생각한다. 시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 힘을 허락한다. 나는 여전히 이 힘을 믿으며 지금 여기의 세계에 도전하는 중이다.

  • 시문학 강의를 하는 필자

  • 책이 가득 찬 서가 앞에 선 필자

김학중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창세』(문학동네, 2017), 『바닥의 소리로 여기까지』(걷는사람, 2022), 청소년 시집 『포기를 모르는 잠수함』(창비교육, 2020), 소시집 『바탕색은 점점 예뻐진다』(스토리코스모스, 2021)가 있다. 제18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진 제공.필자

김학중

김학중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창세』(문학동네, 2017), 『바닥의 소리로 여기까지』(걷는사람, 2022), 청소년 시집 『포기를 모르는 잠수함』(창비교육, 2020), 소시집 『바탕색은 점점 예뻐진다』(스토리코스모스, 2021)가 있다. 제18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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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이다. 나는 활동이 중단되었던, 월간 [문학사상] 출신 작가들의 모임인 ‘문사문학회’를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결실로 [문학사상] 출신 시인들의 등단작을 묶어 기념 시집을 내게 되었다. 『영원한 빛은 어디서 오는가』(작가, 2023)가 그 책이다. 원고 취합 과정에서 내가 쓴 등단 소감도 다시 읽어보아야 했다. 너무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시간의 간극이 느껴졌다. 등단 소감에는 내가 문학을 어떻게 대하고 시를 통해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와 시인으로 첫발을 떼는 신인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이 글은 그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그동안에는 장애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가 최근 안과 전문 병원에서 망막 미성숙에 따른 선천적 저시력이었음이 밝혀졌다. 내 나이 마흔여섯이 되어서야 장애의 원인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원인을 알 수 없는 시각장애를 겪으면서 살아온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청년이 될 때까지 내 삶의 방향을 가늠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이 땅의 평범한 청년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감정을 나도 느꼈다.

게다가 나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겪어야 하는 이중적인 배제의 상황에 놓였고, 종종 다음과 같은 요구들을 마주해야 했다. “잔존시력이 있으니 세상에 나가서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도전해야 하지 않겠어요?” “장애가 있으신데 이 일을 왜 하려고 해요? 하고 싶다면 능력을 좀 보여주셔야 할 거예요”라는 요구들이 그것이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그 언어들이 만들어내는 힘의 장막을 돌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를 만났다. 우연히 초대받아 들어간 문학동아리방 낡은 캐비닛에서 만난 시집들을 통해서였다. 나는 그날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시집을 끼고 읽어 나갔다. 시인들이 문학 공부를 하면서 읽어 나간 책 목록에도 관심이 생겨 찾아보게 되었고, 독서는 점점 영역을 넓혀 나갔다. 책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면서도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문학에 대한 내재적 열정이 일어났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때로는 여러 회사를 전전했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백수로 살았다. 그러면서도 나를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문학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꿈이 생기고부터는 차별의 시선도 나를 크게 상처 입히지 못했다.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저시력이어서 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그런 말들은 내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일부는 사실도 있었다. 실제로 시 창작을 할 때 이미지와 묘사를 다루는 데에 문제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주 무력하고 좌절했다.

하지만 좋은 작품들을 읽으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문장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다시 붙잡게 되었다. 매년 50~60권가량의 시집을 읽고, 울림으로 다가온 시는 노트에 필사했다. 온몸을 웅크린 채 읽고 쓰느라 책상에 맞닿은 갈비뼈 아래쪽이 아파올 때도 있고, 목이 끊어질 듯이 아픈 날이 이어졌지만, 그 시간만은 행복했다. 어느덧 나의 시에도 묘사와 이미지가 생동감 있게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의 문학적 열정을 알아봐 주신 선생님도 만나게 되었다. 열정을 가진 자만이 수난을 감당할 수 있다면서 격려해주신 조정권 시인이 그분이다. 이런 관계가 허락된 것은 시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시인이 되었다. 종종 초대받은 강의에서 ‘시’라는 문학 장르를 소개할 때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고 창조하는 언어적 행위”라고 말하곤 한다. 실제로 시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언어적 모험이었다.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언어로 현재화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에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시라고 생각한다. 시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 힘을 허락한다. 나는 여전히 이 힘을 믿으며 지금 여기의 세계에 도전하는 중이다.

  • 시문학 강의를 하는 필자

  • 책이 가득 찬 서가 앞에 선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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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창세』(문학동네, 2017), 『바닥의 소리로 여기까지』(걷는사람, 2022), 청소년 시집 『포기를 모르는 잠수함』(창비교육, 2020), 소시집 『바탕색은 점점 예뻐진다』(스토리코스모스, 2021)가 있다. 제18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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