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내 얘기 좀 들어봐3〉워크숍 참관기①

이음광장 다름,사이

  • 장기영 공연예술평론가
  • 등록일 2023-09-13
  • 조회수891

이음광장

“모두 다르지만,”
이다음의 말은 매번 바뀌었다. “유후” “감사” “뿌뿌뿌” “야호” “화이팅” “함께 즐겨보~아~요~ 짜릿하다!”
다음의 말은 실은 무엇이든 괜찮았다. ‘모두가 다르다’라는 앞 문장과 그 연결어미인 ‘-지만’을 이어받지 않는, 역접이 성립하지 않는 말이어도 괜찮았다. 문법을 파괴해도 괜찮다는 말이다. 다만, 절대 지울 수 없는 말, 두고두고 상기해야 하는 말, 모두 다른 몸을 이해하기 위하여 갖은 타협과 교섭이 일어나는 곳임에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것.

플랜Q와 극단 북새통이 기획하여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한 〈내 얘기 좀 들어봐〉는 발달장애가 있는 성인 참여자를 모집하여 진행하는 ‘연극 만들기’ 워크숍이다. 7월 10일부터 매주 월요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부근에서 함께 만나 다름을 이야기하던 이곳에서, 나는 기록자를 자처하며 여름을 함께 보냈다.

원래 이 글은 기존의 서사들을 의심하게 하는 대안적 서사로서의 ‘자기 서사’를 탐색하는 글로 기획되었다. 기존 서사 작법 행위에서는 곧잘 배제되었던 이들이 어떻게 ‘자기의’ 이야기를 개발해나갈 수 있을까를 발견해냄으로써, 기존의 연극 제작 및 수행에서의 작가-서사-배우의 영역을 의심해보자는 거창하고 그럴듯한 목표를 세웠었다. 그러나 이 워크숍에 8회차까지 참여한 지금, 내가 무엇을 ‘알아냈다’라고 부풀려 서술하기보다, 그것을 학술·비평 언어로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일보다, 내 옹색한 눈꺼풀을 까뒤집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래서 이 글은 내가 ‘다름’을 정말로 어떻게 경험해왔는지를, ‘다름을 이해하자’라고 말했던 그 말속에 ‘이해 가능성(intelligibility)’을 실제 어떻게 체화해왔는지 혹은 하고 있는지를 ‘진행형’으로 술회하는 글이 될 것 같다.

워크숍은 매주 다른 내용으로 진행됐다. 프로그램은 참여자가 자신의 몸과 감각, 그리고 생각에 각자의 언어를 부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간단한 게임과 퀴즈, 혹은 움직임으로 구성되었다. 매주 모임 콘셉트가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거의 빠뜨리지 않는 순서는 ‘자신의 근황 이야기하기’와 ‘몸풀기 체조’였다. 근황은 새롭지 않아도 괜찮았고, 몸풀기 체조는 꼭 지난 시간의 동작들을 기억해내지 않아도 괜찮았다. 매번 달라져도, 같은 것이어도 괜찮았다. 나의 일관성을 지켜도, 지키지 못해도 괜찮았다. 아니, ‘지키다’ 자체를 헝클어뜨려 ‘일관성’의 관행을 돌파하는 듯했다.

기록자로 처음 이 모임에 합류한 날, 적잖이 당황했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이 생경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 공간에 자리한 이들은 모두 알아듣는 것처럼 보이는 말이 내게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 7년의 인터뷰 경력이 있었기에, 각기 다른 발성과 언어 습관을 지닌 이들의 입말을 글말로 바꾸는 일에는 꽤 자신 있었다. 최대한 이 모임에 걸리적거리지 않게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던 탓도 있지만, 누군가의 발음과 발성이 내게는 더러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발화 양식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용어였다.

“피플퍼스트, 자조 모임, 인권발바닥행동, 파스, 스트롤…”
둥그렇게 모여 앉아 각자의 근황을 나누는 시간, 단란하고도 긴장 어린 이 시간에서 나는 얼마간 소외감을 느꼈다. 모두가 도란도란 주고받는 단어 중 내가 캐치할 수 있는 단어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음이라도 정확하면 비슷한 표현들을 마구 검색해보며 어떻게든 추론해볼 텐데…. 이런 변명을 개발하며 집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이 용어들은 몇 회차가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참여자들의 활동 지역이나 단체, 혹은 관심사 등을 ‘조금이라도 알고 난’ 다음이다.

여기서 내 당황스러움을 추려내는 이유는 참여자들의 발성과 발음, 혹은 표현 체계가 얼마나 다른지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름의 교차 장소에서 펼쳐지는, 내가 겪은 무지의 상태들을 드러내고, 동시에 이 무지함에 쉬이 매겨지는 의미값이 무엇인지를 들춰내고 싶은 것이다. 이 생경함은, 내가 ‘그’와 ‘처음’ 마주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었기에 비롯된 것이 자명하다. ‘그’가 ‘누구라서’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은 나는 첫 워크숍을 마치고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섣부른 판단을 내렸었다. 여기서 잠시, ‘그’라는 단수형 대명사 대신 복수형인 ‘그들’을 쓰고 싶었던 욕망을 자백한다. 내게 들리지 않는 말을 묘사해내는 과정에서 그 발화자를 복수형으로 만들려던 내 작문 관습은, 이 들리지 않는 이유와 원인을 자꾸만 장애와 연관 지으려는 게으른 사유와 맞물려 있다. 들리지 않는 단어, 검색되지 않는 단어, 그래서 글말로 옮길 수 없는 단어. 며칠간 이런 열패감 때문에 나는 스스로 이 일에 적격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었다. 그리고 그 다름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서둘러 이 다름에 이름을 붙이려 애썼다.

‘나는 장애 당사자, 장애 활동가가 아니라서 이런가 봐.’
기실 우리는 처음 마주하는 이의 사전 정보를 대개 충분히 알 수가 없다. ‘그’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와 나 사이에 연결된 다른 이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나는 ‘그’를 알아갈 수 있다. 완료형으로서의 앎을 경계하고, 진행형으로서의 앎을 집요하게 말해야 하는 이유이다. 앎이 만나는 즉시 일어나는 것, 혹은 완료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의식했던 일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A는 B와 다름’을 차차 알아가는 일이, ‘B는 A가 아니라서’로 서둘러 해명하는 의식의 흐름이었다.

내가 위의 단어들을 알게 된 것은 ‘이후’의 시간이었다. 곱씹음의 시간, 반추의 방향성이 이 단어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후 다시 용어를 확인했을 때, 그 발음이 무엇을 지시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알지 못할 것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알지 못하던 그 공백을 ‘중단’의 간극이 아니라 ‘유보’의 흐름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 사이(pause)의 시간에, 나는 그를 ‘알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유보 또한 내 계획이나 의도에는 없던 것이었다.

잘 꿰어내기를 포기하는 일, 이다음 말에는 무슨 말이 와야 올바른 문법을 수행하는 것일까를 지독하게 의식하는 일은, 결국 이 ‘다름들(복수형)’을 깎고 벼려서 반듯한 ‘다름(단수형)’으로 명사화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명사는 간명해서 좋다. 그러나 많은 잔여를 놓친다. ‘다르다’라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들만으로는 판단하거나 예측할 수 없음을 말하는 일이 아닐까. 다름을 인식한 뒤 유보는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서둘러 종결짓지도, 의미값을 매기지도 않는 일. 판단을 무화하고 분석이 무력해지는 이 유보의 순간, 내가 할 일은 나의 다름과 그의 다름을 서로 교환하는 일일 뿐일 테다.

이 글에서는 ‘다름’에 대한 나의 위태로운 이해부터 끌러야 해서, 나와 다름을 주고받았던 이들과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많이 생략되었다. 다음 글에는, 무슨 말이 이어질 수 있을까. 예측도 예고도 서두르지 않겠다. 우리 모두의 다름에는 ‘사이’가 필요하니까.

  • 거울에 ‘우리들의 약속’을 쓴 큰 종이 한 장과 작은 종이 여러 장이 붙어 있다.
  • 사람들이 원 모양으로 둥글게 둘러앉아 있다.
  • 다섯여섯 명씩 그룹을 지어 원으로 둘러앉아 있다.
  • 글을 쓴 종이들이 바닥에 펼쳐져 있다.

장기영

읽고 쓴다. 공연·영화·소설·시 등을 보고, ‘봄’을 ‘읽음’으로 꿰어, 이내 ‘씀’으로까지 전개시킨다. 이 행위가 평론 혹은 연구라고는 불리지만, 실은 ‘보고 읽고 쓰는 사람’으로 불릴 때가 제일 마음 편하다.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쓰고-읽고-말하고-듣기를 가르치고 있다.
kalce7@naver.com

사진 제공. 극단 북새통×플랜Q

장기영

장기영 

읽고 쓴다. 공연·영화·소설·시 등을 보고, ‘봄’을 ‘읽음’으로 꿰어, 이내 ‘씀’으로까지 전개시킨다. 이 행위가 평론 혹은 연구라고는 불리지만, 실은 ‘보고 읽고 쓰는 사람’으로 불릴 때가 제일 마음 편하다.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쓰고-읽고-말하고-듣기를 가르치고 있다.
kalce7@naver.com

상세내용

이음광장

“모두 다르지만,”
이다음의 말은 매번 바뀌었다. “유후” “감사” “뿌뿌뿌” “야호” “화이팅” “함께 즐겨보~아~요~ 짜릿하다!”
다음의 말은 실은 무엇이든 괜찮았다. ‘모두가 다르다’라는 앞 문장과 그 연결어미인 ‘-지만’을 이어받지 않는, 역접이 성립하지 않는 말이어도 괜찮았다. 문법을 파괴해도 괜찮다는 말이다. 다만, 절대 지울 수 없는 말, 두고두고 상기해야 하는 말, 모두 다른 몸을 이해하기 위하여 갖은 타협과 교섭이 일어나는 곳임에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것.

플랜Q와 극단 북새통이 기획하여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한 〈내 얘기 좀 들어봐〉는 발달장애가 있는 성인 참여자를 모집하여 진행하는 ‘연극 만들기’ 워크숍이다. 7월 10일부터 매주 월요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부근에서 함께 만나 다름을 이야기하던 이곳에서, 나는 기록자를 자처하며 여름을 함께 보냈다.

원래 이 글은 기존의 서사들을 의심하게 하는 대안적 서사로서의 ‘자기 서사’를 탐색하는 글로 기획되었다. 기존 서사 작법 행위에서는 곧잘 배제되었던 이들이 어떻게 ‘자기의’ 이야기를 개발해나갈 수 있을까를 발견해냄으로써, 기존의 연극 제작 및 수행에서의 작가-서사-배우의 영역을 의심해보자는 거창하고 그럴듯한 목표를 세웠었다. 그러나 이 워크숍에 8회차까지 참여한 지금, 내가 무엇을 ‘알아냈다’라고 부풀려 서술하기보다, 그것을 학술·비평 언어로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일보다, 내 옹색한 눈꺼풀을 까뒤집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래서 이 글은 내가 ‘다름’을 정말로 어떻게 경험해왔는지를, ‘다름을 이해하자’라고 말했던 그 말속에 ‘이해 가능성(intelligibility)’을 실제 어떻게 체화해왔는지 혹은 하고 있는지를 ‘진행형’으로 술회하는 글이 될 것 같다.

워크숍은 매주 다른 내용으로 진행됐다. 프로그램은 참여자가 자신의 몸과 감각, 그리고 생각에 각자의 언어를 부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간단한 게임과 퀴즈, 혹은 움직임으로 구성되었다. 매주 모임 콘셉트가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거의 빠뜨리지 않는 순서는 ‘자신의 근황 이야기하기’와 ‘몸풀기 체조’였다. 근황은 새롭지 않아도 괜찮았고, 몸풀기 체조는 꼭 지난 시간의 동작들을 기억해내지 않아도 괜찮았다. 매번 달라져도, 같은 것이어도 괜찮았다. 나의 일관성을 지켜도, 지키지 못해도 괜찮았다. 아니, ‘지키다’ 자체를 헝클어뜨려 ‘일관성’의 관행을 돌파하는 듯했다.

기록자로 처음 이 모임에 합류한 날, 적잖이 당황했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이 생경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 공간에 자리한 이들은 모두 알아듣는 것처럼 보이는 말이 내게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 7년의 인터뷰 경력이 있었기에, 각기 다른 발성과 언어 습관을 지닌 이들의 입말을 글말로 바꾸는 일에는 꽤 자신 있었다. 최대한 이 모임에 걸리적거리지 않게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던 탓도 있지만, 누군가의 발음과 발성이 내게는 더러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발화 양식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용어였다.

“피플퍼스트, 자조 모임, 인권발바닥행동, 파스, 스트롤…”
둥그렇게 모여 앉아 각자의 근황을 나누는 시간, 단란하고도 긴장 어린 이 시간에서 나는 얼마간 소외감을 느꼈다. 모두가 도란도란 주고받는 단어 중 내가 캐치할 수 있는 단어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음이라도 정확하면 비슷한 표현들을 마구 검색해보며 어떻게든 추론해볼 텐데…. 이런 변명을 개발하며 집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이 용어들은 몇 회차가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참여자들의 활동 지역이나 단체, 혹은 관심사 등을 ‘조금이라도 알고 난’ 다음이다.

여기서 내 당황스러움을 추려내는 이유는 참여자들의 발성과 발음, 혹은 표현 체계가 얼마나 다른지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름의 교차 장소에서 펼쳐지는, 내가 겪은 무지의 상태들을 드러내고, 동시에 이 무지함에 쉬이 매겨지는 의미값이 무엇인지를 들춰내고 싶은 것이다. 이 생경함은, 내가 ‘그’와 ‘처음’ 마주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었기에 비롯된 것이 자명하다. ‘그’가 ‘누구라서’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은 나는 첫 워크숍을 마치고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섣부른 판단을 내렸었다. 여기서 잠시, ‘그’라는 단수형 대명사 대신 복수형인 ‘그들’을 쓰고 싶었던 욕망을 자백한다. 내게 들리지 않는 말을 묘사해내는 과정에서 그 발화자를 복수형으로 만들려던 내 작문 관습은, 이 들리지 않는 이유와 원인을 자꾸만 장애와 연관 지으려는 게으른 사유와 맞물려 있다. 들리지 않는 단어, 검색되지 않는 단어, 그래서 글말로 옮길 수 없는 단어. 며칠간 이런 열패감 때문에 나는 스스로 이 일에 적격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었다. 그리고 그 다름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서둘러 이 다름에 이름을 붙이려 애썼다.

‘나는 장애 당사자, 장애 활동가가 아니라서 이런가 봐.’
기실 우리는 처음 마주하는 이의 사전 정보를 대개 충분히 알 수가 없다. ‘그’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와 나 사이에 연결된 다른 이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나는 ‘그’를 알아갈 수 있다. 완료형으로서의 앎을 경계하고, 진행형으로서의 앎을 집요하게 말해야 하는 이유이다. 앎이 만나는 즉시 일어나는 것, 혹은 완료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의식했던 일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A는 B와 다름’을 차차 알아가는 일이, ‘B는 A가 아니라서’로 서둘러 해명하는 의식의 흐름이었다.

내가 위의 단어들을 알게 된 것은 ‘이후’의 시간이었다. 곱씹음의 시간, 반추의 방향성이 이 단어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후 다시 용어를 확인했을 때, 그 발음이 무엇을 지시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알지 못할 것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알지 못하던 그 공백을 ‘중단’의 간극이 아니라 ‘유보’의 흐름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 사이(pause)의 시간에, 나는 그를 ‘알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유보 또한 내 계획이나 의도에는 없던 것이었다.

잘 꿰어내기를 포기하는 일, 이다음 말에는 무슨 말이 와야 올바른 문법을 수행하는 것일까를 지독하게 의식하는 일은, 결국 이 ‘다름들(복수형)’을 깎고 벼려서 반듯한 ‘다름(단수형)’으로 명사화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명사는 간명해서 좋다. 그러나 많은 잔여를 놓친다. ‘다르다’라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들만으로는 판단하거나 예측할 수 없음을 말하는 일이 아닐까. 다름을 인식한 뒤 유보는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서둘러 종결짓지도, 의미값을 매기지도 않는 일. 판단을 무화하고 분석이 무력해지는 이 유보의 순간, 내가 할 일은 나의 다름과 그의 다름을 서로 교환하는 일일 뿐일 테다.

이 글에서는 ‘다름’에 대한 나의 위태로운 이해부터 끌러야 해서, 나와 다름을 주고받았던 이들과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많이 생략되었다. 다음 글에는, 무슨 말이 이어질 수 있을까. 예측도 예고도 서두르지 않겠다. 우리 모두의 다름에는 ‘사이’가 필요하니까.

  • 거울에 ‘우리들의 약속’을 쓴 큰 종이 한 장과 작은 종이 여러 장이 붙어 있다.
  • 사람들이 원 모양으로 둥글게 둘러앉아 있다.
  • 다섯여섯 명씩 그룹을 지어 원으로 둘러앉아 있다.
  • 글을 쓴 종이들이 바닥에 펼쳐져 있다.

장기영

읽고 쓴다. 공연·영화·소설·시 등을 보고, ‘봄’을 ‘읽음’으로 꿰어, 이내 ‘씀’으로까지 전개시킨다. 이 행위가 평론 혹은 연구라고는 불리지만, 실은 ‘보고 읽고 쓰는 사람’으로 불릴 때가 제일 마음 편하다.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쓰고-읽고-말하고-듣기를 가르치고 있다.
kalce7@naver.com

사진 제공. 극단 북새통×플랜Q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2023-09-21 09:42:58

비밀번호

작성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처음의 생경함과 낯선 경험이 이해와 성숙으로 바뀌어져 나가는 것 같아요.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 유보의 사이(pause)에서 고민하시는 필자님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따뜻한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3-09-14 20:34:49

비밀번호

작성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낯선 이들 가운데서 느꼈을 언어불통 표현 방식의 차이에서 느꼈을 당호감을 진솔하게 소개한 부분을 읽으며ㅈ깊은ㅈ공감을 갖게 되었죠! 아울러 시간이 흐르며 그분들의 언어, 소통 방식들을 이해하며 쓰게될 평론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게 되네요.

2023-09-14 20:01:32

비밀번호

작성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필자의 '다름'이라는 이해를 독자들, 특히 장애우(비장애인들이 통상 쓰는 말)들에게는 좀더 세심하게 다가오면서 또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간격(사이)를 더 가깝게 하고자하는 마음을 읽으며 따뜻함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필자의 그 따스함이 이 사회에도 많이 전해져 꼭 장애인들에게만이 아니라, 나보다 못하다 생각하는 타인들에게 좀더 배려하는 운동으로까지 퍼져 나갔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