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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장애예술가의 조력자가 되기까지

이음광장 데칼코마니 : 균형 하는 관계

  • 김판수 장애인활동지원사
  • 등록일 2023-12-13
  • 조회수542

이음광장

나는 비장애인이다. 가족이나 친척을 비롯해 중증의 장애를 가진 인물을 내 주변 관계에서 접할 기회 없이 스무 살을 넘겼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중증 지체장애 예술가인 김작가의 활동지원사, 크루, 매니저 역할을 겸하고 있다. 내가 지금에 이르게 된 배경과 과정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활동지원사가 되다

10여 년 전 미술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재수생 김작가와 나는 온라인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죽이 꽤 잘 맞았던지라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얼마 후 그는 자신이 중증 지체장애인임을 밝혔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함께 대화하거나 통화하고 게임을 할 때도 별다른 문제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시간이 더 지난 후에 나는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는 여러 번 고민하더니 이내 수락했고, 그의 룸메이트인 시각장애를 가진 친구와 함께 놀러 왔다. 이 두 친구는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모든 것을 조금 더 어렵게 해내고 있었다. ‘앗, 저것 좀 봐봐!’라고 외쳐도 볼 수 없었고, 혼자 옷을 탈착하는 것은 탈출 마술에 가까운 기교가 필요하며, 일상 모든 것의 난이도가 높았다고 할까. 마음속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물론 당시 고대하던 친구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기쁜 마음이 더 컸지만, 이날을 기점으로 내 머릿속에 존재하던 사회의 세계관은 크게 확장되었다.

이후 각자의 삶을 살며 간간이 연락만 주고받고 이따금 전시 소식이 들리면 참석해서 축하하는 정도의 교류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 사이버불링(사이버 집단 괴롭힘)에 시달리며 사람에 대한 공포가 극심해져 밖에 나가는 것이나 인간을 독대하는 것에 큰 불안증세를 겪게 된 것이다. 이것에서 파생하는 당연한 문제로 사회생활과 금전적인 어려움이 따라오고 나 자신을 잃어가는 악순환에 빠져가던 시기에 김작가가 반가운 연락을 주었다. 활동지원사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해볼 생각이 없냐고 권했고, 직감적으로 나에게 찾아온 큰 기회라고 느꼈다. 진지한 대화를 충분히 거친 후 바로 장애인활동지원사가 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장애인활동지원사가 되기 위해서는 관련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사회복지센터, 대학교, 혹은 전문 교육기관에서 제공하는 장애인활동지원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나는 자격 취득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 대학에서 장애인의 특성과 권리, 장애인 지원 서비스에 대한 이론과 실무에 대한 지식을 배웠다. 교육과정 이외에도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장애인활동지원사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이해하고, 실제로 장애인 이용자와의 상호작용을 경험하며 필요한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지역 사회복지센터나 관련 기관에서 일정 시간 현장 실습을 하고 증명을 제출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장애인활동지원사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필수 자격이 된다.

김작가와 나의 주거지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사할 필요가 있었다. 한집에 사는 연인에게도 새로운 터전에서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설득했고 어렵게 동의를 얻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이사를 마치고 가사와 청소, 이동 보조 등 생활 전반을 보조하며 장애인활동지원사의 본래 업무를 수행한다. 김작가에게 내가 그저 알던 형일 때와는 달라진 것이다. 서로 걱정도 있었지만 다행히 나의 불안증은 친밀한 관계의 인간이 곁에 한 명만 있어도 일시적으로 크게 호전되기에 김작가와 함께 동행하는 예술 관련한 미팅이나 전시를 준비할 때도 그로 인한 문제는 거의 없었다. 활동지원사는 주된 직업으로 삼기엔 보수가 적은 편이고, 경력도 인정되지 않는다. 전문성과 책임감이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기에 부업으로도 부적합하다. 이런 이유로 젊은 나이대의 활동지원사는 찾아보기 힘든 편이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내가 처했던 사회적, 금전적 악순환을 조금씩 타개해 준, 그야말로 기회이자 구원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예술가의 파트너가 되다

작은 체구에 모든 게 나보다 오래 걸리고 어려운 김작가가 하나둘 이뤄내는 것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일종의 존경 혹은 동경이라 부를 만한 마음을 품고 있었기에 이 일을 시작함과 동시 내가 느꼈던 고마움만큼 잘 되게 해주리라 다짐했었다. 휴일엔 가장 절친이고 편한 친구지만 근무 시간엔 마음속 스위치를 켜 ‘이용자’와 ‘제공인력’ 관계의 선을 넘지 않고 무엇이든 허투루 하지 않겠단 경각심을 항시 되새겼다. 내가 하는 일은 단순한 장애인 도우미가 아닌, 장애를 가진 전문예술인의 보좌진이자 맞춤으로 돕는 프로페셔널이란 자각을 항상 하며 지내왔다.

페인팅 작업을 할 때면 김작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마스킹테이프 붙이는 걸 돕고, 전시를 위해 작품을 옮기고, 물감통을 씻어 오는 등 장애예술가의 활동지원사만이 겪게 되는 일은 자연스럽게 늘어갔다. 업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그의 예술 세계를 가장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는 VIP 혜택을 누리며 모든 미팅과 일정에 동행하고 많은 의견도 나누며 예술에 문외한이었던 나의 일상에도 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곁에 항상 있는 것이 되어갔다. 활동지원사의 근로 규정에 따른 근무 시간에는 생활 전반과 이동 보조 등을 돕는 것을 원칙적으로 수행하고, 주어진 시간을 초과하는 범위의 예술 파트너 활동은 퇴근 후 오롯이 나의 개인적인 자유시간에 이뤄진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전시회의 의미는 크고 나도 이제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가장 바쁜 기간에는 살인적이기까지 한 예술 활동 스케줄엔 대충도 후퇴도 없다. 큰 금액이 오가는 전시장 대관 일은 딱딱한 계약으로 고정되어 있고, 거리가 멀고 손발이 불편한 것은 서류 앞에서 개인 사정일 뿐, 약속한 기일을 지키는 것은 프로페셔널의 기본이다. 우린 서로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이 같았기에 전시를 앞둔 때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바빠서 완성도에 신경을 못 썼다는 핑계는 남길 수 없다. 내가 나의 영역에서 뭔가를 더 도울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해 김작가의 예술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아쉬움을 남길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우린 각자의 파트에서 사소한 것도 완성도에 집착하며 영혼을 담아 전시회 하나를 오픈한다. 그렇게 한결같이 그의 예술에 나 또한 진심으로 임한다.

나는 장애예술가의 생활을 돕는 활동지원사이자,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며, 그의 예술을 관찰하고 보조하며 실현해 나가는 크루이고, 그의 모든 일정에 동행하며 신변을 수행하는 매니저 역할도 겸한다. 또한 많은 예술가의 작품을 보고, 직접 행하는 사람의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예술이 일상에 스며든 비예술가다. ‘비장애인-비예술가’와 ‘장애인-예술가’의 데칼코마니 같은 대칭적 관계의 우리는 영향을 주고받고 균형을 이루며 앞으로 나아간다.

  • 김작가의 작업실에서 작품에 마스킹테이프를 붙이고 있는 필자

  • 필자가 만든 데칼코마니 그림. 두 사람이 서고 마주 보고 있다.

김판수

예술이 삶에 스며들어버린, 장애예술가의 파트너인 비장애인 비예술가다. 중증 지체장애인 작가와 함께 모든 스케줄을 함께 하며 활동지원사, 친구, 크루, 매니저를 겸하고 있다.
rlatjstod5@gmail.com
▸ 인스타그램 @sup3rcub

사진 제공. 필자

김판수

김판수 

예술이 삶에 스며들어버린, 장애예술가의 파트너인 비장애인 비예술가다. 중증 지체장애인 작가와 함께 모든 스케줄을 함께 하며 활동지원사, 친구, 크루, 매니저를 겸하고 있다.
rlatjstod5@gmail.com

상세내용

이음광장

나는 비장애인이다. 가족이나 친척을 비롯해 중증의 장애를 가진 인물을 내 주변 관계에서 접할 기회 없이 스무 살을 넘겼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중증 지체장애 예술가인 김작가의 활동지원사, 크루, 매니저 역할을 겸하고 있다. 내가 지금에 이르게 된 배경과 과정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활동지원사가 되다

10여 년 전 미술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재수생 김작가와 나는 온라인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죽이 꽤 잘 맞았던지라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얼마 후 그는 자신이 중증 지체장애인임을 밝혔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함께 대화하거나 통화하고 게임을 할 때도 별다른 문제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시간이 더 지난 후에 나는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는 여러 번 고민하더니 이내 수락했고, 그의 룸메이트인 시각장애를 가진 친구와 함께 놀러 왔다. 이 두 친구는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모든 것을 조금 더 어렵게 해내고 있었다. ‘앗, 저것 좀 봐봐!’라고 외쳐도 볼 수 없었고, 혼자 옷을 탈착하는 것은 탈출 마술에 가까운 기교가 필요하며, 일상 모든 것의 난이도가 높았다고 할까. 마음속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물론 당시 고대하던 친구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기쁜 마음이 더 컸지만, 이날을 기점으로 내 머릿속에 존재하던 사회의 세계관은 크게 확장되었다.

이후 각자의 삶을 살며 간간이 연락만 주고받고 이따금 전시 소식이 들리면 참석해서 축하하는 정도의 교류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 사이버불링(사이버 집단 괴롭힘)에 시달리며 사람에 대한 공포가 극심해져 밖에 나가는 것이나 인간을 독대하는 것에 큰 불안증세를 겪게 된 것이다. 이것에서 파생하는 당연한 문제로 사회생활과 금전적인 어려움이 따라오고 나 자신을 잃어가는 악순환에 빠져가던 시기에 김작가가 반가운 연락을 주었다. 활동지원사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해볼 생각이 없냐고 권했고, 직감적으로 나에게 찾아온 큰 기회라고 느꼈다. 진지한 대화를 충분히 거친 후 바로 장애인활동지원사가 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장애인활동지원사가 되기 위해서는 관련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사회복지센터, 대학교, 혹은 전문 교육기관에서 제공하는 장애인활동지원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나는 자격 취득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 대학에서 장애인의 특성과 권리, 장애인 지원 서비스에 대한 이론과 실무에 대한 지식을 배웠다. 교육과정 이외에도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장애인활동지원사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이해하고, 실제로 장애인 이용자와의 상호작용을 경험하며 필요한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지역 사회복지센터나 관련 기관에서 일정 시간 현장 실습을 하고 증명을 제출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장애인활동지원사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필수 자격이 된다.

김작가와 나의 주거지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사할 필요가 있었다. 한집에 사는 연인에게도 새로운 터전에서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설득했고 어렵게 동의를 얻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이사를 마치고 가사와 청소, 이동 보조 등 생활 전반을 보조하며 장애인활동지원사의 본래 업무를 수행한다. 김작가에게 내가 그저 알던 형일 때와는 달라진 것이다. 서로 걱정도 있었지만 다행히 나의 불안증은 친밀한 관계의 인간이 곁에 한 명만 있어도 일시적으로 크게 호전되기에 김작가와 함께 동행하는 예술 관련한 미팅이나 전시를 준비할 때도 그로 인한 문제는 거의 없었다. 활동지원사는 주된 직업으로 삼기엔 보수가 적은 편이고, 경력도 인정되지 않는다. 전문성과 책임감이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기에 부업으로도 부적합하다. 이런 이유로 젊은 나이대의 활동지원사는 찾아보기 힘든 편이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내가 처했던 사회적, 금전적 악순환을 조금씩 타개해 준, 그야말로 기회이자 구원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예술가의 파트너가 되다

작은 체구에 모든 게 나보다 오래 걸리고 어려운 김작가가 하나둘 이뤄내는 것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일종의 존경 혹은 동경이라 부를 만한 마음을 품고 있었기에 이 일을 시작함과 동시 내가 느꼈던 고마움만큼 잘 되게 해주리라 다짐했었다. 휴일엔 가장 절친이고 편한 친구지만 근무 시간엔 마음속 스위치를 켜 ‘이용자’와 ‘제공인력’ 관계의 선을 넘지 않고 무엇이든 허투루 하지 않겠단 경각심을 항시 되새겼다. 내가 하는 일은 단순한 장애인 도우미가 아닌, 장애를 가진 전문예술인의 보좌진이자 맞춤으로 돕는 프로페셔널이란 자각을 항상 하며 지내왔다.

페인팅 작업을 할 때면 김작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마스킹테이프 붙이는 걸 돕고, 전시를 위해 작품을 옮기고, 물감통을 씻어 오는 등 장애예술가의 활동지원사만이 겪게 되는 일은 자연스럽게 늘어갔다. 업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그의 예술 세계를 가장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는 VIP 혜택을 누리며 모든 미팅과 일정에 동행하고 많은 의견도 나누며 예술에 문외한이었던 나의 일상에도 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곁에 항상 있는 것이 되어갔다. 활동지원사의 근로 규정에 따른 근무 시간에는 생활 전반과 이동 보조 등을 돕는 것을 원칙적으로 수행하고, 주어진 시간을 초과하는 범위의 예술 파트너 활동은 퇴근 후 오롯이 나의 개인적인 자유시간에 이뤄진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전시회의 의미는 크고 나도 이제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가장 바쁜 기간에는 살인적이기까지 한 예술 활동 스케줄엔 대충도 후퇴도 없다. 큰 금액이 오가는 전시장 대관 일은 딱딱한 계약으로 고정되어 있고, 거리가 멀고 손발이 불편한 것은 서류 앞에서 개인 사정일 뿐, 약속한 기일을 지키는 것은 프로페셔널의 기본이다. 우린 서로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이 같았기에 전시를 앞둔 때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바빠서 완성도에 신경을 못 썼다는 핑계는 남길 수 없다. 내가 나의 영역에서 뭔가를 더 도울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해 김작가의 예술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아쉬움을 남길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우린 각자의 파트에서 사소한 것도 완성도에 집착하며 영혼을 담아 전시회 하나를 오픈한다. 그렇게 한결같이 그의 예술에 나 또한 진심으로 임한다.

나는 장애예술가의 생활을 돕는 활동지원사이자,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며, 그의 예술을 관찰하고 보조하며 실현해 나가는 크루이고, 그의 모든 일정에 동행하며 신변을 수행하는 매니저 역할도 겸한다. 또한 많은 예술가의 작품을 보고, 직접 행하는 사람의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예술이 일상에 스며든 비예술가다. ‘비장애인-비예술가’와 ‘장애인-예술가’의 데칼코마니 같은 대칭적 관계의 우리는 영향을 주고받고 균형을 이루며 앞으로 나아간다.

  • 김작가의 작업실에서 작품에 마스킹테이프를 붙이고 있는 필자

  • 필자가 만든 데칼코마니 그림. 두 사람이 서고 마주 보고 있다.

김판수

예술이 삶에 스며들어버린, 장애예술가의 파트너인 비장애인 비예술가다. 중증 지체장애인 작가와 함께 모든 스케줄을 함께 하며 활동지원사, 친구, 크루, 매니저를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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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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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5 20: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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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머나~~ 역시 너무 멋진 분. 글도 이리 멋지게 쓰시네요~ 글로 읽으니 더 좋으네요~ ^^

2023-12-15 16: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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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응원합니다!!!

2023-12-15 16: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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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의 우정과 열정이 느껴지는 멋진 글이네요. 서로 의지하고 의견을 나누고 서로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글을 통해서 이미지화 되어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올라올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2023-12-14 11: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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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합니다-두 분이 그림 작업하시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벅차네요- 그리고 글도 참 담백하게 잘 쓰시구요, 기회닿으면 전시 꼭 찾아볼게요-

2023-12-14 11: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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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활동지원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알게 되었어요. 1. 거동이 불편한 예술인에게 이동과 장비 운반을 지원하여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발달장애인의 경우 의사소통과 집중력을 지원하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2. 예술인의 예술 활동 참여도 지원할 수 있는데 예술인의 공연이나 전시 관람을 지원하여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서 예술인의 예술 수업을 지원하여 예술적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3. 구체적인 지원 사례로는 가. 시각장애인 예술가의 경우, 작품 제작에 필요한 도구나 재료를 준비하고, 작품을 촬영하거나 녹음하여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습니다. 나. 지체장애인 예술가의 경우, 이동과 장비 운반을 지원하고, 공연이나 전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습니다. 다. 발달장애인 예술가의 경우, 의사소통과 집중력을 지원하고, 예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습니다. kms4112323@hanmail.net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