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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랜선 즉흥연극 ‘나의 이야기극장’

리뷰 참여연극, 즉흥연극, 그리고 치유의 연극

  • 김일송 이안재 대표 
  • 등록일 2021-06-30
  • 조회수1741

리뷰

실시간 랜선 즉흥연극 ‘나의 이야기극장’

참여연극, 즉흥연극, 그리고 치유의 연극

김일송 이안재 대표

“보청기가 없으면 아이 목소리를 못 들을까 봐 항상 보청기를 끼고 잠을 자곤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한 살 정도 되었을 땐데, 어느 날 자다 깨어 깜짝 놀랐어요! 아이가 막 울고 있는 거예요. 보청기 배터리가 없어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거예요. 깊은 잠에 빠져들어 소리를 못 들은 거죠. ‘아, 어떻게 하지?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기억나는 대로 복기하면 이렇다. 청각장애가 있는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져 마침내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실로 아이를 품게 되었다. 부모와 같은 장애를 갖고 태어나지 않을까, 그런 걱정보다는 기대가 컸다.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이후로도 아이를 키우며 크고 작은 사건이 없었겠느냐만, 저 때의 기억만큼 선명한 기억은 없었다고 한다. 회상하는 동안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듯했다.

위는 실시간 랜선 즉흥연극 ‘나의 이야기극장’의 관객 이미경 님의 사연이다. 아이는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 이제는 자신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 청년이 되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는 말에 그는 “아이를 낳아 키우며 지금까지 한 번도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라고 했다. 그의 표정에서 아들을 향한 애정과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동시에 느껴지는 듯했다.

환기하면, 그는 청각장애인이며, 이 모든 이야기는 입말이 아닌 손말(수어)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가 반쯤 구부린 오른손 손끝을 왼손바닥에 대자, 배우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저 손동작은 수어로 ‘끝’을 의미한다. 한 배우가 일어나 “여보, 여보, 우리 아이 생겼대!”라고 말하고 다른 배우가 이에 “진짜야?”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막 뒤로 들어간 또 다른 배우가 마치 태중의 아이와 같은 몸짓을 시작한다. 대사와 행동, 심지어 역할 배정 등 이 모든 것은 현장에서 즉흥으로 이루어졌다.

‘나의 이야기극장’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공간 해(解)(이하 ‘연극공간 해’)와 사단법인 행복공장이 함께하는 프로젝트다. 연극공간 해는 토론연극(forum theatre)과 플레이백 시어터(playback theatre), 크게 두 방향의 관객참여형 연극을 제작하는 단체이다. 토론연극이란 아우구스또 보알(Augusto Boal)이 1973년 페루에서 시작한 연극 형식으로, 관객이 배우와 같은 비중으로 극에 참여하는 방식의 연극을 일컫는다. 주목할 부분은 관객이 언제든지 극에 개입하여 이야기의 결론을 마음껏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방향인 플레이백 시어터는, 조나단 폭스(Jonathan Fox)가 1975년 미국에서 시작한 연극 형식을 일컫는다. 플레이백 시어터는 관객이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면, 배우가 그 이야기를 즉흥으로 무대화하는 연극을 의미한다. 이번 공연은 바로 이 플레이백 시어터의 하나로, 연극공간 해와 행복공장이 2015년부터 운영해온 프로젝트다. 연극공간 해는 그동안 장애인을 비롯해 보육원생, 입양인, 다문화가정 등을 대상으로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왔고, 이번 공연에서는 앞선 사연을 비롯하여 청각장애인 4명의 사연이 즉흥으로 무대화되었다.

특수학교에 가기 전 일반 학교에서 느꼈던 외로움을 그린 <꼬마 때의 외로움>(최경주)을 시작으로, 앞서 소개한 <엄마>(이미경), 그리고 서른 살 넘어 배운 수어를 통해 새로운 일을 찾게 된 <수어로 세상을 열다>(정무교), 마지막으로 스무 살 시절 아슬하면서도 유쾌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던 <군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한휘)가 그것이다.

즉흥 공연은 사전에 모집된 참여자와 현장 관객의 사연으로 구성되었는데, 참여자의 사연 또한 현장에서 처음 공개된 터라, 배우들이 먼저 대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4편의 공연은 모두 현장에서 사연이 끝남과 동시에 시작되었고, 배우들은 공연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누고, 앙상블을 이루어내었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참여자를 제외하고, 다른 세 명의 참여자들은 무대화된 자신의 이야기를 보면서 눈물을 훔쳤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모두에게 웃음을 주는 에피소드였다.)

“어릴 때 제가 외로웠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순간적으로 눈물이 났어요.”
“보고 나니 아들을 위해서 더 많이 잘해주고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아휴…. 너무 느낌이 잘 맞아서, 정말 최고였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여기에는 배우와 연주자뿐만 아니라, 컨덕터(진행자)와 텔러(수어통역사)의 역할이 컸다. 연주자는 에피소드마다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즉흥 음악으로, 컨덕터는 편안하게 관객참여를 유도하는 안정된 진행으로, 그리고 텔러는 말뿐만 아니라 정서마저 옮기는 통역으로 극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한편 이번 공연은 실시간 랜선으로 진행되었고, 온라인 영상팀의 원활한 영상 송출도 기록해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공연의 진정한 주인공은, 역시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낸 참여자일 것이다. ‘나의 이야기극장’은 그들에게 어떤 치유의 순간을 경험케 했으리라. 흥미로운 지점은, 거기 모인 모두가 치유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실시간 랜선 즉흥연극 ‘나의 이야기극장’

연극공간 해·(사)행복공장 | 2021. 6. 9.(수) 오후 3시 | 이음아트홀

‘나의 이야기극장’은 기뻤던 일이나 슬펐던 일, 힘들었던 일 등 다양한 주제의 관객 이야기를 듣고 즉석에서 연극이나 음악으로 표현하는 즉흥연극이다. 시각과 촉각으로 공연 음향을 체험하는 무대장치 사운드 볼을 통해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무대를 마련했다. 전체 공연은 (사)행복공장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하였다.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공연 전문 월간지 [씬플레이빌]의 편집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국제교류 정보 포털 ‘더아프로’ 편집장을 맡고 있다. 공연 전문 출판사인 책공장 이안재를 운영하고 있다.
ilsong75@gmail.com
www.facebook.com/ilsong.r.kim

사진 제공.연극공간 해·(사)행복극장

2021년 7월 (21호)

상세내용

리뷰

실시간 랜선 즉흥연극 ‘나의 이야기극장’

참여연극, 즉흥연극, 그리고 치유의 연극

김일송 이안재 대표

“보청기가 없으면 아이 목소리를 못 들을까 봐 항상 보청기를 끼고 잠을 자곤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한 살 정도 되었을 땐데, 어느 날 자다 깨어 깜짝 놀랐어요! 아이가 막 울고 있는 거예요. 보청기 배터리가 없어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거예요. 깊은 잠에 빠져들어 소리를 못 들은 거죠. ‘아, 어떻게 하지?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기억나는 대로 복기하면 이렇다. 청각장애가 있는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져 마침내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실로 아이를 품게 되었다. 부모와 같은 장애를 갖고 태어나지 않을까, 그런 걱정보다는 기대가 컸다.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이후로도 아이를 키우며 크고 작은 사건이 없었겠느냐만, 저 때의 기억만큼 선명한 기억은 없었다고 한다. 회상하는 동안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듯했다.

위는 실시간 랜선 즉흥연극 ‘나의 이야기극장’의 관객 이미경 님의 사연이다. 아이는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 이제는 자신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 청년이 되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는 말에 그는 “아이를 낳아 키우며 지금까지 한 번도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라고 했다. 그의 표정에서 아들을 향한 애정과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동시에 느껴지는 듯했다.

환기하면, 그는 청각장애인이며, 이 모든 이야기는 입말이 아닌 손말(수어)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가 반쯤 구부린 오른손 손끝을 왼손바닥에 대자, 배우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저 손동작은 수어로 ‘끝’을 의미한다. 한 배우가 일어나 “여보, 여보, 우리 아이 생겼대!”라고 말하고 다른 배우가 이에 “진짜야?”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막 뒤로 들어간 또 다른 배우가 마치 태중의 아이와 같은 몸짓을 시작한다. 대사와 행동, 심지어 역할 배정 등 이 모든 것은 현장에서 즉흥으로 이루어졌다.

‘나의 이야기극장’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공간 해(解)(이하 ‘연극공간 해’)와 사단법인 행복공장이 함께하는 프로젝트다. 연극공간 해는 토론연극(forum theatre)과 플레이백 시어터(playback theatre), 크게 두 방향의 관객참여형 연극을 제작하는 단체이다. 토론연극이란 아우구스또 보알(Augusto Boal)이 1973년 페루에서 시작한 연극 형식으로, 관객이 배우와 같은 비중으로 극에 참여하는 방식의 연극을 일컫는다. 주목할 부분은 관객이 언제든지 극에 개입하여 이야기의 결론을 마음껏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방향인 플레이백 시어터는, 조나단 폭스(Jonathan Fox)가 1975년 미국에서 시작한 연극 형식을 일컫는다. 플레이백 시어터는 관객이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면, 배우가 그 이야기를 즉흥으로 무대화하는 연극을 의미한다. 이번 공연은 바로 이 플레이백 시어터의 하나로, 연극공간 해와 행복공장이 2015년부터 운영해온 프로젝트다. 연극공간 해는 그동안 장애인을 비롯해 보육원생, 입양인, 다문화가정 등을 대상으로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왔고, 이번 공연에서는 앞선 사연을 비롯하여 청각장애인 4명의 사연이 즉흥으로 무대화되었다.

특수학교에 가기 전 일반 학교에서 느꼈던 외로움을 그린 <꼬마 때의 외로움>(최경주)을 시작으로, 앞서 소개한 <엄마>(이미경), 그리고 서른 살 넘어 배운 수어를 통해 새로운 일을 찾게 된 <수어로 세상을 열다>(정무교), 마지막으로 스무 살 시절 아슬하면서도 유쾌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던 <군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한휘)가 그것이다.

즉흥 공연은 사전에 모집된 참여자와 현장 관객의 사연으로 구성되었는데, 참여자의 사연 또한 현장에서 처음 공개된 터라, 배우들이 먼저 대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4편의 공연은 모두 현장에서 사연이 끝남과 동시에 시작되었고, 배우들은 공연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누고, 앙상블을 이루어내었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참여자를 제외하고, 다른 세 명의 참여자들은 무대화된 자신의 이야기를 보면서 눈물을 훔쳤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모두에게 웃음을 주는 에피소드였다.)

“어릴 때 제가 외로웠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순간적으로 눈물이 났어요.”
“보고 나니 아들을 위해서 더 많이 잘해주고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아휴…. 너무 느낌이 잘 맞아서, 정말 최고였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여기에는 배우와 연주자뿐만 아니라, 컨덕터(진행자)와 텔러(수어통역사)의 역할이 컸다. 연주자는 에피소드마다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즉흥 음악으로, 컨덕터는 편안하게 관객참여를 유도하는 안정된 진행으로, 그리고 텔러는 말뿐만 아니라 정서마저 옮기는 통역으로 극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한편 이번 공연은 실시간 랜선으로 진행되었고, 온라인 영상팀의 원활한 영상 송출도 기록해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공연의 진정한 주인공은, 역시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낸 참여자일 것이다. ‘나의 이야기극장’은 그들에게 어떤 치유의 순간을 경험케 했으리라. 흥미로운 지점은, 거기 모인 모두가 치유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실시간 랜선 즉흥연극 ‘나의 이야기극장’

연극공간 해·(사)행복공장 | 2021. 6. 9.(수) 오후 3시 | 이음아트홀

‘나의 이야기극장’은 기뻤던 일이나 슬펐던 일, 힘들었던 일 등 다양한 주제의 관객 이야기를 듣고 즉석에서 연극이나 음악으로 표현하는 즉흥연극이다. 시각과 촉각으로 공연 음향을 체험하는 무대장치 사운드 볼을 통해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무대를 마련했다. 전체 공연은 (사)행복공장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하였다.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공연 전문 월간지 [씬플레이빌]의 편집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국제교류 정보 포털 ‘더아프로’ 편집장을 맡고 있다. 공연 전문 출판사인 책공장 이안재를 운영하고 있다.
ilsong75@gmail.com
www.facebook.com/ilsong.r.kim

사진 제공.연극공간 해·(사)행복극장

2021년 7월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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