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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정책 관점의 변화

이슈 비장애 중심주의라는 거대한 산을 넘기 위하여

  • 변재원 작가·인권활동가 
  • 등록일 2024-02-28
  • 조회수766

이슈

최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표현할 때 ‘장애인 복지정책’보다 ‘장애인 정책’이라고 부르는 추세다. 뉴스 빅데이터 검색 서비스업체 빅카인즈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장애인 복지정책’이 언급된 기사는 110여 건인 반면, ‘장애인 정책’이 언급된 기사는 그 5배인 550여 건가량 조회된다. 정치인 또한 장애인을 더 이상 수동적인 복지 수혜자가 아닌, 능동적인 권리 주창자로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일상화된 지금, ‘장애인 정책’의 어휘 확산은 장애인 관련 정책의 다각화를 이끌고 있다.

1981년 전두환 정부에서 최초의 장애인복지 법안인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할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는 예방과 근절의 대상이었다. 법의 목적을 언급하는 제1조에서도, 국가의 책임을 논하는 제5조에서도, 국가는 “장애 발생의 예방”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반복했다. 이후 40여 년간,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하며 함께 성장한 장애인 인권운동은 ‘복지에서 권리로’ ‘수혜자에서 당사자로’ ‘보호에서 자립으로’ 가치관의 변화를 이끌었고, 양적으로 팽창한 장애인 정책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제는 더 이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복지관 등 서비스 제공기관의 책임에 국한된 전달 방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을 위한 정책’의 개념을 넘어 ‘장애인에 의한 정책’이라 여겨진다. 오랜 시간 제공자와 수혜자가 일방적으로 상정되던 ‘복지’와 ‘보호’ 중심의 국가적 통제에서 벗어나, 권리 실현을 목표로 하는 장애인 정책 시대에 이른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이 시기는 과거 그 어떤 때보다 더 인권 지향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녹록지 않다. 팬데믹 시기 장애인 집단거주시설에서의 집단 사망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코호트 격리가 남발되고, 중증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하는 법정과 지방자치 실무 현장에서 장애인은 상당한 재원을 요구하는 존재처럼 여겨진다.

장애시민을 둘러싼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만연한 비장애 중심주의로부터 비롯한다. 장애인은 고유한 시민으로 인정되지 않고, 언제나 비장애인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 ‘나머지’ 존재처럼 여겨진다. 정책 대상으로서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비교적’ 적당하고, ‘효율적인’ 통제 범위 내에서 관리되기 일쑤다. 이동권 문제만 하더라도, 장애인 당사자들은 이동할 수 없는 현실에 관한 절박한 문제 해결을 요구하지만, 정책 담당자에게 이동권은 하나의 정책일 뿐이어서, 언제나 다른 교통 정책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중요한지 평가하고, 공공 재원의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개선될 수밖에 없는 사안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의사결정이 만연하다면, 개별 장애인 정책 프로그램이 아무리 늘어나더라도, 비장애 중심주의에 기반한 소극적 개선 아래 이 땅의 장애시민은 결국 요란한 풍요 속 빈곤밖에 맛볼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장애인 정책 관련 사업의 수가 늘어나더라도 근본적으로 장애인 인권이 번번이 타협의 대상처럼 여겨지고 마는 현실에서, 비장애 중심주의라는 평가 기준을 넘어 적극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인식 전환의 매개로서 장애예술이 더없이 중요하다. 장애예술은 장애인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할 수 있고, 그 문제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2020년 서울시 시범사업으로 도입되어 중증장애인이 생산 능력을 증명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했던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는 문화예술의 정책적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손발이 마비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말았던 중증장애인은 매체와 방식에 제약을 두지 않는 예술을 매개로 고유한 창작물을 만들 수 있었다. 중증장애인이 춤추고 노래하며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알리는 것이 노동임을 인정받게끔 하는 계기로서 예술이 기능했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에서 해당 일자리 프로그램의 내용을 생산성을 증명하는 비장애 중심적 문법으로 바꾸며, 중증장애인의 주체적이고 심미적인 일의 형태가 제한되었다. 하지만 최초로 권리중심 일자리가 도입되면서 한국 사회에 남겼던 ‘일’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과 ‘새로운 노동’에 관한 신선한 충격은 여전히 유효하다.

농인을 중심으로 구성된 문화예술단체 ‘핸드스피크’의 공연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뚜렷한 멜로디를 인식할 수 없는 이들의 고유한 몸짓과 가사를 재해석하고 수어로 표현하는 손짓은 장애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했다. 장애인치고 비장애인만큼 잘 춘다는 상대적 평가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고유한 농문화와 언어, 체현된 삶의 감각을 풀어냄으로써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안무를 창조했다. 〈무용수-되기〉를 공연한 김원영의 작품 또한 비장애 무용수와 함께 무대에 올라 독립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장애-비장애의 얽힌 관계를 예술적으로 담아냈다. 이들이 보여주는 장애예술은 비장애인 ‘못지않은’ 장애인을 재현하기보다, ‘장애인-다움’을 바로 보게끔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정책의 논리에 만연한 비장애 중심주의 속, 장애인의 고유한 역량을 인정받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몸과 능력을 부정하지 않고 담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애예술의 가치다. 그 어느 때보다 창작에서 비롯된 재해석의 힘이 필요한 때이다.

변재원

지체장애인, 작가, 인권활동가, 소수자 정책 연구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했다. 팬데믹과 불평등을 고찰한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공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정책국장으로 활동한 이야기를 담은 『장애시민불복종』을 썼다. 경향신문과 비마이너 등에 장애인, 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칼럼을 연재한다.
jaewonb@snu.ac.kr

썸네일 이미지.‘어라운드 마로니에’에서 공연하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들에스쁘와 팀(사진 정택용, 사진제공 노들장애인야학)

2024년 3월 (51호)

상세내용

이슈

최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표현할 때 ‘장애인 복지정책’보다 ‘장애인 정책’이라고 부르는 추세다. 뉴스 빅데이터 검색 서비스업체 빅카인즈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장애인 복지정책’이 언급된 기사는 110여 건인 반면, ‘장애인 정책’이 언급된 기사는 그 5배인 550여 건가량 조회된다. 정치인 또한 장애인을 더 이상 수동적인 복지 수혜자가 아닌, 능동적인 권리 주창자로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일상화된 지금, ‘장애인 정책’의 어휘 확산은 장애인 관련 정책의 다각화를 이끌고 있다.

1981년 전두환 정부에서 최초의 장애인복지 법안인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할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는 예방과 근절의 대상이었다. 법의 목적을 언급하는 제1조에서도, 국가의 책임을 논하는 제5조에서도, 국가는 “장애 발생의 예방”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반복했다. 이후 40여 년간,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하며 함께 성장한 장애인 인권운동은 ‘복지에서 권리로’ ‘수혜자에서 당사자로’ ‘보호에서 자립으로’ 가치관의 변화를 이끌었고, 양적으로 팽창한 장애인 정책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제는 더 이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복지관 등 서비스 제공기관의 책임에 국한된 전달 방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을 위한 정책’의 개념을 넘어 ‘장애인에 의한 정책’이라 여겨진다. 오랜 시간 제공자와 수혜자가 일방적으로 상정되던 ‘복지’와 ‘보호’ 중심의 국가적 통제에서 벗어나, 권리 실현을 목표로 하는 장애인 정책 시대에 이른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이 시기는 과거 그 어떤 때보다 더 인권 지향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녹록지 않다. 팬데믹 시기 장애인 집단거주시설에서의 집단 사망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코호트 격리가 남발되고, 중증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하는 법정과 지방자치 실무 현장에서 장애인은 상당한 재원을 요구하는 존재처럼 여겨진다.

장애시민을 둘러싼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만연한 비장애 중심주의로부터 비롯한다. 장애인은 고유한 시민으로 인정되지 않고, 언제나 비장애인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 ‘나머지’ 존재처럼 여겨진다. 정책 대상으로서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비교적’ 적당하고, ‘효율적인’ 통제 범위 내에서 관리되기 일쑤다. 이동권 문제만 하더라도, 장애인 당사자들은 이동할 수 없는 현실에 관한 절박한 문제 해결을 요구하지만, 정책 담당자에게 이동권은 하나의 정책일 뿐이어서, 언제나 다른 교통 정책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중요한지 평가하고, 공공 재원의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개선될 수밖에 없는 사안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의사결정이 만연하다면, 개별 장애인 정책 프로그램이 아무리 늘어나더라도, 비장애 중심주의에 기반한 소극적 개선 아래 이 땅의 장애시민은 결국 요란한 풍요 속 빈곤밖에 맛볼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장애인 정책 관련 사업의 수가 늘어나더라도 근본적으로 장애인 인권이 번번이 타협의 대상처럼 여겨지고 마는 현실에서, 비장애 중심주의라는 평가 기준을 넘어 적극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인식 전환의 매개로서 장애예술이 더없이 중요하다. 장애예술은 장애인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할 수 있고, 그 문제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2020년 서울시 시범사업으로 도입되어 중증장애인이 생산 능력을 증명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했던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는 문화예술의 정책적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손발이 마비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말았던 중증장애인은 매체와 방식에 제약을 두지 않는 예술을 매개로 고유한 창작물을 만들 수 있었다. 중증장애인이 춤추고 노래하며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알리는 것이 노동임을 인정받게끔 하는 계기로서 예술이 기능했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에서 해당 일자리 프로그램의 내용을 생산성을 증명하는 비장애 중심적 문법으로 바꾸며, 중증장애인의 주체적이고 심미적인 일의 형태가 제한되었다. 하지만 최초로 권리중심 일자리가 도입되면서 한국 사회에 남겼던 ‘일’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과 ‘새로운 노동’에 관한 신선한 충격은 여전히 유효하다.

농인을 중심으로 구성된 문화예술단체 ‘핸드스피크’의 공연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뚜렷한 멜로디를 인식할 수 없는 이들의 고유한 몸짓과 가사를 재해석하고 수어로 표현하는 손짓은 장애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했다. 장애인치고 비장애인만큼 잘 춘다는 상대적 평가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고유한 농문화와 언어, 체현된 삶의 감각을 풀어냄으로써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안무를 창조했다. 〈무용수-되기〉를 공연한 김원영의 작품 또한 비장애 무용수와 함께 무대에 올라 독립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장애-비장애의 얽힌 관계를 예술적으로 담아냈다. 이들이 보여주는 장애예술은 비장애인 ‘못지않은’ 장애인을 재현하기보다, ‘장애인-다움’을 바로 보게끔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정책의 논리에 만연한 비장애 중심주의 속, 장애인의 고유한 역량을 인정받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몸과 능력을 부정하지 않고 담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애예술의 가치다. 그 어느 때보다 창작에서 비롯된 재해석의 힘이 필요한 때이다.

변재원

지체장애인, 작가, 인권활동가, 소수자 정책 연구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했다. 팬데믹과 불평등을 고찰한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공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정책국장으로 활동한 이야기를 담은 『장애시민불복종』을 썼다. 경향신문과 비마이너 등에 장애인, 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칼럼을 연재한다.
jaewonb@snu.ac.kr

썸네일 이미지.‘어라운드 마로니에’에서 공연하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들에스쁘와 팀(사진 정택용, 사진제공 노들장애인야학)

2024년 3월 (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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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4 20: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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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 중심적인 기준과 틀을 깨뜨리는 데 장애예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시는 좋은 칼럼이었습니다. 장애인으로서 적극적으로 예술이라는 영역을 통해 우리사회에 스스로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는 사실에 새로운 힘이 생겨났어요 감사합니다!

2024-02-29 09: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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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참여> 지체장애인이자 인권활동가, 소수자 정책 연구자로서 새로운 세대의 장애운동 가능성을 보여주는 활동가인 변재원 작가님의 글 잘 읽으며 감동했어요.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을 위한 정책’의 개념을 넘어 ‘장애인에 의한 정책’이라 여겨진다”는 작가님 말씀에 진심으로 공감해요. 비장애 중심주의라는 거대한 산을 넘기 위하여 장애인의 고유한 역량을 인정받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장애인의 강점과 역량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장애를 부족함이 아닌 독특한 역량으로 재정의하는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장애 유형과 개인의 차이를 존중하며, 개인의 강점과 잠재력에 초점을 맞춘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장애인들의 역사와 경험을 공유하여 사회 전반에 긍정적 인식을 확산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우리 사회가 정책적으로 해야 할 일은 사회 활동, 경제 활동 등 모든 분야에 장애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하고, 장애인의 참여를 위한 접근성을 확보하고, 의사소통 장벽을 제거하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도 필요해요. 더불어 장애인이 사회의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리더십 교육과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일도 하면 좋겠어요. 장애인의 자립 지원도 필요해요. 장애인의 역량 개발을 위한 교육, 훈련과 자격증 취득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장애인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자리 창출, 창업 지원과 경제적 자립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장애인의 독립적인 생활을 위한 주거, 이동, 의료, 복지 서비스를 강화되기를 소망합니다. kms4112323@hanmail.net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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