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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스피크 정정윤 대표, 김지연 아티스트

인터뷰 맹렬하면서도 유쾌하고 우아한 수어 예술 창작

  • 조용신 뮤지컬 작가, 연출가
  • 등록일 2020-10-28
  • 조회수1266

인터뷰

핸드스피크 정정윤 대표, 김지연 아티스트

맹렬하면서도 유쾌하고 우아한 수어 예술 창작

조용신 뮤지컬 작가, 연출가

핸드스피크는 대한민국에서 수어를 사용한 다양한 예술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작집단이다. 이들의 활동은 수어를 사용하는 데 익숙한 청각장애·농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도 수어가 가진 예술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엮어주는 소통을 지향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 영역은 수어 랩, 수어 뮤지컬, 문학, 영화, 전시, 춤 등 전방위적인 장르에 걸쳐있으며 평소 온·오프라인을 통해 꾸준히 활동을 알려왔다. 작년 연희예술극장에서 제1회 농아트쇼케이스를 개최하였고 3년 차를 맞으면서 묵묵한 실천과 새로운 도약을 향해 노력하고 있다.

인터뷰는 핸드스피크 창립 멤버로서 같은 길을 서로 이끌어주고 있는 정정윤 대표와 수어 래퍼이자 배우, 뮤지컬 연출가로 다양하게 활동 중인 김지연 아티스트와 함께했다. 핸드스피크가 장애 예술 중에서도 수어를 활용하면서 시도하고 있는 그간의 활동과 예술 언어로서의 수어의 의미, 그리고 향후 계획과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인터뷰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나의 질문과 두 사람의 답변 사이에는 수어통역사의 손과 말이 있었다. 네 사람의 궁금함과 열정적인 답변이 인터뷰 공간을 가득 메우며 때로는 다중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더욱 정확한 ‘저의’를 찾기 위한 한편의 ‘제의’가 펼쳐졌다. 진지함 너머로 수다스럽게 펼쳐지다가도 다시 핵심으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특히 김지연 아티스트의 수어 인터뷰는 맹렬하면서도 코믹하고 우아했다. 같은 상황과 서로 통하는 내용이 정정윤 대표와 어떻게 다르게 현장에서 수어로 표현되는지 궁금하다면 지면뿐 아니라 동영상 인터뷰를 함께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핸드스피크 활동을 온라인으로만 보다가 작년에 농아트쇼케이스 관람을 통해 오프라인 활동을 처음 접했었다.
최근 작업한 수어 뮤지컬 <영웅>의 뮤직비디오 <누가 죄인인가?>를 유튜브에서 보았다. 뮤지컬 OST 음원을 활용하고
‘립’ 싱크가 아닌 ‘수어’ 싱크의 방식으로 도전하였는데 어떤 아이디어와 기획 의도로 시작하였나?

김지연역사에 관심이 많은 핸드스피크 배우 한 명이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영웅>을 직접 가서 보고 많이 감동했다며 함께 보면 좋겠다고 해서 단체 관람을 했다. 감동적인 장면이 많았는데 자막이 없어서 아쉬웠다. 그래서 우리가 감동받은 그 부분을 내용과 함께 수어로 표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도전이 실제로 수어 영상으로 제작되어 기쁘다. 평소 많이 받는 질문이 ‘농인의 특성이 뭐야?’라는 것이다. 이번 작업을 통해서 농인이 농인으로서 수어의 특성을 살린 예술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뮤직비디오 연출 과정도 궁금하다.

김지연연출에 있어서 안중근의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얼굴 표정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어서 장면을 드라마 형식으로 구성했다. 또 영상 촬영이다 보니 화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구역을 정하고 그 공간(spacing) 안에서 촬영될 수 있도록 했다. 박자와 비트감 등을 몸으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안무를 짜서 활용했다. 제 입장에서는 안중근이 밧줄에 묶여있는 모습이 언어 능력을 뺏긴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까지 재구성해서 표현했다. 영상 아이디어와 편집의 흐름까지는 내가 담당하고, 이후 후반 작업은 영상 전문가가 담당해주었다.

정정윤핸드스피크는 어떤 작품을 처음 기획하고 제작할 때 오랫동안 함께 얘기하고 시작한다. <영웅>은 재밌게 본 작품이었고, 많은 농인과 함께 즐기고 싶어서 제작하게 되었다. 공연으로 무대에 올리면 좋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공연은 불가능해서 일단 영상으로 먼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웅>의 코러스 부분에서 각각 목소리가 오디오로는 구별이 되는데, 수어로는 불가능해서 그 부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래서 화면분할방식이 되었다. 스태프 구성은 농인, 청인이 모여서 각자 할 수 있는 부분을 담당하고 김지연 아티스트가 연출을 맡았다.

김지연 아티스트의 수어 랩을 비롯해 단체의 많은 활동을 유튜브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평소 SNS를 포함한 온라인 미디어를 잘 활용하고 있는데 ‘소통’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나?

김지연우리나라 사람들과 우선적으로 소통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춤을 배우기 위해 미국에 두 달간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이 내가 농인인걸 알자 기본적인 수어를 해주었다(미국수화). 미국은 학교에서 농인을 대하는 법과 수어를 기본적으로 배운다.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농인임을 알려주면 오히려 청각적인 방법으로 대체해서 큰 소리로 말해주거나 입 모양을 크게 해준다.(외국인이 한국어를 잘 모른다고 하자 한국말을 크게 하듯이) 수어를 잘 모르더라도 충분히 필담을 해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우선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될 수 있도록 소통에 노력하고 싶다. 소통 철학? 우리 모두에게 소통이란 당연한 게 아닐까.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정윤홈페이지나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일본에 한국 대표팀으로 초청을 받아 네 명이 배낭을 메고 갔는데, 넓은 세계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홍보영상, 공연 촬영 환경도 좋았고 농인 청년들이 의지만 있으면 예술에 대한 꿈을 시도하고 이룰 수 있는 여건이 너무나 잘 되어 있었다. 우리는 아직 사회 인식과 문화예술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계속 노력 중이었는데 말이다. 홍콩에 초청받았을 때는 대형 공연장의 굉장히 멋진 무대장치에서 장애 예술인들이 비장애 예술인과 함께 콜라보를 했었다. 세계로 눈을 돌릴수록 너무 새로웠다. 분명히 우리나라도 역량이 있으니 우리 콘텐츠를 만들고 개발하면 전 세계적으로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농인 청년, 예술가들과 연결될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해외 시스템과 아티스트에게 받은 자극들로 인해 우리 아티스트에게도 각자의 색이 조금 더 뚜렷해졌고 각자 하고 싶은 것들을 얘기해보니 다양하더라. 아티스트마다 각자 하고 싶은 예술과 그들만의 방식으로 푸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농문화 콘텐츠를 우리가 만들고 우리끼리만 즐기면 자기만족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익숙해져야 농인 후배 아티스트들이나 다른 장애 예술인들의 기회 또한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더 넓게 세계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그래서 늘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오랜 기간 우리의 일상 속에 침투해있다.
이로 인해 달라진 환경에 대처하는 나름의 대응 방안을 가지고 있나?

정정윤카카오임팩트에서 진행하는 ‘카카오프로젝트100’ 이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온라인으로 100일 동안 프로젝트에 참여한 멤버들에게 노래와 랩을 수화로 알려주고 구간을 나눠서 같이 불러보는 ‘수어라차차’ 프로젝트를 했고 현재 시즌2가 진행중이다. 콘텐츠 기획은 하나씩 만들어서 올리면 그다음이 늘 고민이다. 우리가 시작할 때는 새로운 형식의 수어공연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는데, 지금은 뉴미디어, 융복합기술 등 또 다른 기술과 환경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교육과 이해를 바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며 이제 막 따라왔는데, 새로운 기술까지 접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언택트에 맞추어 콘텐츠를 연구하고 개발하긴 하지만, 새로운 환경 속에서 수어 사용자나 농인 아티스트가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아직도 고민이 많다.

김지연다양한 방법으로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올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창작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을 비대면 온라인 스트리밍 방식으로 공연했다. ‘수어라차차’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아서 시즌2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노래 세 곡을 했고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이런 아이디어가 코로나 상황과 나름 맞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온라인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데프웨스트 극단의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수어 버전이 만들어져 예술성과 상업성까지도
성취해낸 사례를 본 적이 있다. 핸드스피크 역시 한국 수어로 그런 활동을 하고 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처럼 기존의 작품을 수어 버전으로 재창작하는 장편 프로젝트도 혹시 계획하고 있나?

정정윤계획은 물론 있다. 농인 아티스트가 수어를 사용하면서 연기 등 각 요소와 어떻게 접목할지 늘 고민하고 있다. 김지연 아티스트도 좋다고 한 작품이 있어서, 저작권 협의와 연습만 하면 된다. 코로나가 끝나면 극장에서 빨리 관객을 만나면 좋을 것 같다.

김지연정말 원하는 일이다. 새로운 창작도 좋지만 대중성 있는 유명한 작품을 수어 버전으로 만들어 예술성을 표현하고 싶다. 그 작품의 주제와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재밌을 것 같다.

(왼쪽)김지연 아티스트
(오른쪽)정정윤 대표

첫 뮤지컬 공연이었던 <미세먼지>에서 농인과 청인 배우의 협업이 이루어졌다. 무대 위의 농인이 연기하고,
무대 아래의 청인이 리딩하는 이원화된 방식이었다. 농인과 청인의 협업은 어떠했나?

정정윤뮤지컬 <미세먼지>는 분리된 방식을 취하다 보니 농인 배우를 위해 청인 배우가 도와주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연습할 때도 농인 배우들 연습이 거의 완료되면 청인 배우들이 연습에 들어왔다. 보통 공연 콜라보 라고 하면 비장애인들이 하루 이틀, 혹은 당일에 와서 장애인들과 함께하고 이를 협업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예술로 하나가 되었지만, 우리는 그 과정 역시 하나 되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에서는 처음 기획단계부터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가 함께 무대 위에서 각자 다른 캐릭터로 어우러져 공연할 수 있도록 했다. 인원수도 동일하게 맞추었다. 청인은 음성으로, 농인은 수어 연기를 보여주면서, 상대방의 음성과 수어도 마치 더빙하듯이 전달한다.

김지연<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는 농인과 청인이 2인 1역으로 같은 캐릭터를 함께 맡으면서, 청인이 수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 방식이 농인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서 우리에게는 조금 어색했다. 반면 <사라지는 사람들>에는 농인과 청인이 가령 왕자와 공주처럼 서로 상대가 되어 각자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 농인은 자신의 언어로 수어를 사용하고 청인은 청인 나름대로 말로 소통하는 방식이다. 다른 방식이어서 재미있는 것 같다.

<미세먼지> 제작 당시에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 사이에서 소통의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해결해 나갔나?

정정윤보통 청인들의 마음속에는 ‘도움을 주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실 연습 진행이 빨라지고 대본이 바뀌면 다시 숙지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농인들은 수어로 번역해야 하니 속도가 느려지면서 시간차가 생긴다. 두 번째는 연기 부분이다. 농인 배우들은 수어공연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고 청인 배우들은 연기 경험이 많다. 생각과 경험의 차이가 있는 상태로 동시에 무대에 올랐을 때 정리해야 할 게 많았다. 처음에는 그 차이를 몰랐다가 대화를 통해 알게 되고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장애 예술인에 맞추어진 공연장이 거의 없다. 공연장 안에서 장애인이 어느 위치에 있건 정보를 알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열정이 서로 섞이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 그 방법을 찾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춰야 했고 조명, 음악 등 많은 스태프의 눈빛 하나 손짓 하나가 더해져야만 했다. 사실 팀워크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노하우를 쌓은 것 같다.

한국 수어가 미국 같은 외국 수어들과 구별되는 차이점과 특징이 있는가?

김지연음성언어가 나라마다 다르듯이 수어도 특성이 다르다. 예를 들면 미국 수어는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농인의 문화가 접목되어 나타난다. 미국인 특유의 제스처나 느낌이 있다. 그리고 미국 수어는 음성언어의 단어가 수어로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알파벳으로 지화하는데 한국은 거의 그렇지 않다. 전달에 있어서 표정은 전 세계가 같다. 시각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수어 문법도 거의 같다. 그래서 ‘국제 수화’라는 것도 있다.

해외 아티스트와의 교류를 통해 느낀 아쉬운 점과 좋은 점은 무엇이었나?

김지연작년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농축제(Festival Clin d’Oeil, 페스티벌 끌랑 되이)에 갔을 때 너무나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다루는 주제에도 한계가 없었다. 젠더,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 등등. 장애 예술에 대한 사고가 열려있는 그들에 비해 아직 한계가 많은 우리나라이지만 그들과 문화교류를 통해서 가져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정윤조금 보태자면, 사실 농인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김지연 연출이 말한 해외 농인 예술가들과 그 팀이 표현한 주제가 다양하고 굉장히 개방적이었다.

김지연우리나라도 점차 인식 개선이 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핸드스피크를 통해서 농청년들에게 예술활동의 가능성을 느끼고 관심이 생겨나고 있다. 이제 첫걸음을 뗀 단계라고 생각하기에 언젠가는 프랑스에서 만난 예술가들처럼 되길 바란다. (웃음)

극단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젊은 농인 예술가들이 많을 텐데 처음 모집했을 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환경이 있나?

김지연매년 상반기에 모집 공고를 내고 오디션을 통해서 단원을 선발한다. 올해 2기까지 선발했다. 처음 1기 때는 같이 활동하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핸드스피크를 ‘아카데미’라는 생각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많았고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한 단계씩 발전해나갔다. 2기 때 오디션을 보니 1기 활동을 통해 배우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연기에 대해 진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사실 연기를 배우고 싶으면 연기학원에 가야 하지만 농인의 입장에서는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래서 활동하면서 진짜 배우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 열정을 본 것이다.

극단 및 단체 활동과 여러 실천을 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와의 결합이나 많은 비영리 지원이 필요할 텐데
이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나?

정정윤핸드스피크를 처음 설립할 때 고민이 많았다. 장애 예술이라 하면 비상업적 사업군에 속하는데 장애 예술가들이 자립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상업적인 사업군에 속해야 했다. 그래서 영리법인과 비영리단체 투 트랙으로 시작했다. 목표는 농인 아티스트가 하고 싶은 예술활동을 하면서 생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립에 있다. 현재 농인 아티스트로만 구성된 극단, 퍼포먼스팀, 영상팀, 디자인팀이 있다. 두 번째 단편영화를 준비 중이고 농인 디자이너가 만드는 수어가 담긴 굿즈 상품을 준비 중이다. 초기 3년 동안은 지원제도를 잘 활용하면서 지속가능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 자리를 통해 꼭 알리고 싶은 소식이 있다. 작년에 다녀온 프랑스 세계농축제는 격년제로 열리는데 야외무대, 박람회, 청소년 및 유아 프로그램, 게임, 뮤지컬 공연, 춤, 디제잉, 단편영화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국제 페스티벌이다. 작년에 소식을 늦게 알아서 공연에 참여하진 못했고 대신 프레스로 참여해서 그 기간에 모든 프로그램을 참관할 수 있었다. 올해 축제 총괄디렉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핸드스피크를 내년 페스티벌에 초청하고 싶다고! 며칠 뒤에 홈페이지가 오픈되었는데 태극기와 함께 대한민국이 주빈국으로 소개된 것이다. 내년에 코로나가 끝나면 저희가 준비하고 도전하고 싶은 콘텐츠가 너무 많다. 장애와 비장애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고 정말 인정받을 수 있는 활동을 통해 박수를 받고 싶다. 세부 내용을 곧 공개할 예정이니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장애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는 정부 단체, 담당자들 그리고 장애 예술인 선배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김지연농인 예술가들은 모임에서 함께 소통하려면 수어 통역사가 필요하다. 항상 소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개인적인 꿈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래퍼 박재범, 윤미래와 함께 수어 랩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정정윤농인과 수어에 익숙해지고, 친숙해지도록 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데, 어딜 가나 소통의 한계를 느낀다. 수어통역, 문자통역이 있어야 농인 아티스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기에 기본적인 소통에 관련된 부분을 조금 더 신경 써주기 바란다. 우리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비즈니스 잣대로 보자면 더딘 성장일지 몰라도, 농인 예술가들이 하는 도전과 발걸음을 보면 한 걸음 한 걸음이 놀랍고 대단하다. 핸드스피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이 사회에 농인 예술가들이 올바른 예술교육과 활동을 통해 성장하고, 예술가를 넘어 농인 리더가 많이 세워지길 바란다.

편안하고 높은 가을하늘처럼 이상에 대해 단호하게 말하며 자신감에 찬 대한민국 리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마로니에 공원의 공기는 코로나19로 지친 우리의 오랜 일상을 잠시 잊게 해주는 청량함이 느껴졌다. 우리 사회가 장애 예술이 가야 할 방향을 묻는다면 핸드스피크와 함께 한 걸음씩 발걸음을 맞춰나가며 그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이라고 대답하겠다.

  • 뮤지컬 <미세먼지>

  •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

김지연

서울예술종합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안무가, 뮤지컬 연출가, 핸디래퍼로 다양한 수어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2016년 일본 아시아농댄스페스티벌(ASIA DEAF DANCE PRe FESTIVAL) 초청공연, 2017년 홍콩 ‘능력자들의 무대’ 초청공연, 극단 난파 제9회 <난파클럽> 연출, 2018 극단 난파 제10회 <미세먼지> 연출, 2019년 핸드스피크 극단 제1기 정기공연 <미세먼지>를 연출하고 출연했다. 제14회 나눔연극제에서 창작수어뮤지컬 <미세먼지>로 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했다.

정정윤

문화기획사에서 연습생으로 세 명의 아티스트와 만나 10년간 인연을 이오며 이들과 함께 청각장애·농인이 겪는 문화예술 활동 소외와 참여 기회 부족 문제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2018년 핸드스피크를 설립했다. <미세먼지> <사라진 사람들> 등 공연, 전시, 온오프라인 수어 콘텐츠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제작했다.
핸드스피크 유튜브
www.handspeak.kr

조용신

오랫동안 뮤지컬 작가/연출가/예술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뮤지컬 <모비딕> <도리안 그레이>, 연극 <지구를 지켜라> 등에서 대본/연출을 담당했다. 현재 CJ문화재단 아지트 대학로 극장에서 창작뮤지컬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yongshiny@hotmail.com

영상.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hanmail.net
사진.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수어통역.김홍남 수어통역사 jalham.hong@gmail.com
작품사진 제공.핸드스피크

2020년 10월 (14호)

상세내용

인터뷰

핸드스피크 정정윤 대표, 김지연 아티스트

맹렬하면서도 유쾌하고 우아한 수어 예술 창작

조용신 뮤지컬 작가, 연출가

핸드스피크는 대한민국에서 수어를 사용한 다양한 예술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작집단이다. 이들의 활동은 수어를 사용하는 데 익숙한 청각장애·농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도 수어가 가진 예술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엮어주는 소통을 지향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 영역은 수어 랩, 수어 뮤지컬, 문학, 영화, 전시, 춤 등 전방위적인 장르에 걸쳐있으며 평소 온·오프라인을 통해 꾸준히 활동을 알려왔다. 작년 연희예술극장에서 제1회 농아트쇼케이스를 개최하였고 3년 차를 맞으면서 묵묵한 실천과 새로운 도약을 향해 노력하고 있다.

인터뷰는 핸드스피크 창립 멤버로서 같은 길을 서로 이끌어주고 있는 정정윤 대표와 수어 래퍼이자 배우, 뮤지컬 연출가로 다양하게 활동 중인 김지연 아티스트와 함께했다. 핸드스피크가 장애 예술 중에서도 수어를 활용하면서 시도하고 있는 그간의 활동과 예술 언어로서의 수어의 의미, 그리고 향후 계획과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인터뷰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나의 질문과 두 사람의 답변 사이에는 수어통역사의 손과 말이 있었다. 네 사람의 궁금함과 열정적인 답변이 인터뷰 공간을 가득 메우며 때로는 다중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더욱 정확한 ‘저의’를 찾기 위한 한편의 ‘제의’가 펼쳐졌다. 진지함 너머로 수다스럽게 펼쳐지다가도 다시 핵심으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특히 김지연 아티스트의 수어 인터뷰는 맹렬하면서도 코믹하고 우아했다. 같은 상황과 서로 통하는 내용이 정정윤 대표와 어떻게 다르게 현장에서 수어로 표현되는지 궁금하다면 지면뿐 아니라 동영상 인터뷰를 함께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핸드스피크 활동을 온라인으로만 보다가 작년에 농아트쇼케이스 관람을 통해 오프라인 활동을 처음 접했었다.
최근 작업한 수어 뮤지컬 <영웅>의 뮤직비디오 <누가 죄인인가?>를 유튜브에서 보았다. 뮤지컬 OST 음원을 활용하고
‘립’ 싱크가 아닌 ‘수어’ 싱크의 방식으로 도전하였는데 어떤 아이디어와 기획 의도로 시작하였나?

김지연역사에 관심이 많은 핸드스피크 배우 한 명이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영웅>을 직접 가서 보고 많이 감동했다며 함께 보면 좋겠다고 해서 단체 관람을 했다. 감동적인 장면이 많았는데 자막이 없어서 아쉬웠다. 그래서 우리가 감동받은 그 부분을 내용과 함께 수어로 표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도전이 실제로 수어 영상으로 제작되어 기쁘다. 평소 많이 받는 질문이 ‘농인의 특성이 뭐야?’라는 것이다. 이번 작업을 통해서 농인이 농인으로서 수어의 특성을 살린 예술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뮤직비디오 연출 과정도 궁금하다.

김지연연출에 있어서 안중근의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얼굴 표정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어서 장면을 드라마 형식으로 구성했다. 또 영상 촬영이다 보니 화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구역을 정하고 그 공간(spacing) 안에서 촬영될 수 있도록 했다. 박자와 비트감 등을 몸으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안무를 짜서 활용했다. 제 입장에서는 안중근이 밧줄에 묶여있는 모습이 언어 능력을 뺏긴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까지 재구성해서 표현했다. 영상 아이디어와 편집의 흐름까지는 내가 담당하고, 이후 후반 작업은 영상 전문가가 담당해주었다.

정정윤핸드스피크는 어떤 작품을 처음 기획하고 제작할 때 오랫동안 함께 얘기하고 시작한다. <영웅>은 재밌게 본 작품이었고, 많은 농인과 함께 즐기고 싶어서 제작하게 되었다. 공연으로 무대에 올리면 좋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공연은 불가능해서 일단 영상으로 먼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웅>의 코러스 부분에서 각각 목소리가 오디오로는 구별이 되는데, 수어로는 불가능해서 그 부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래서 화면분할방식이 되었다. 스태프 구성은 농인, 청인이 모여서 각자 할 수 있는 부분을 담당하고 김지연 아티스트가 연출을 맡았다.

김지연 아티스트의 수어 랩을 비롯해 단체의 많은 활동을 유튜브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평소 SNS를 포함한 온라인 미디어를 잘 활용하고 있는데 ‘소통’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나?

김지연우리나라 사람들과 우선적으로 소통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춤을 배우기 위해 미국에 두 달간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이 내가 농인인걸 알자 기본적인 수어를 해주었다(미국수화). 미국은 학교에서 농인을 대하는 법과 수어를 기본적으로 배운다.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농인임을 알려주면 오히려 청각적인 방법으로 대체해서 큰 소리로 말해주거나 입 모양을 크게 해준다.(외국인이 한국어를 잘 모른다고 하자 한국말을 크게 하듯이) 수어를 잘 모르더라도 충분히 필담을 해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우선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될 수 있도록 소통에 노력하고 싶다. 소통 철학? 우리 모두에게 소통이란 당연한 게 아닐까.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정윤홈페이지나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일본에 한국 대표팀으로 초청을 받아 네 명이 배낭을 메고 갔는데, 넓은 세계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홍보영상, 공연 촬영 환경도 좋았고 농인 청년들이 의지만 있으면 예술에 대한 꿈을 시도하고 이룰 수 있는 여건이 너무나 잘 되어 있었다. 우리는 아직 사회 인식과 문화예술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계속 노력 중이었는데 말이다. 홍콩에 초청받았을 때는 대형 공연장의 굉장히 멋진 무대장치에서 장애 예술인들이 비장애 예술인과 함께 콜라보를 했었다. 세계로 눈을 돌릴수록 너무 새로웠다. 분명히 우리나라도 역량이 있으니 우리 콘텐츠를 만들고 개발하면 전 세계적으로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농인 청년, 예술가들과 연결될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해외 시스템과 아티스트에게 받은 자극들로 인해 우리 아티스트에게도 각자의 색이 조금 더 뚜렷해졌고 각자 하고 싶은 것들을 얘기해보니 다양하더라. 아티스트마다 각자 하고 싶은 예술과 그들만의 방식으로 푸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농문화 콘텐츠를 우리가 만들고 우리끼리만 즐기면 자기만족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익숙해져야 농인 후배 아티스트들이나 다른 장애 예술인들의 기회 또한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더 넓게 세계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그래서 늘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오랜 기간 우리의 일상 속에 침투해있다.
이로 인해 달라진 환경에 대처하는 나름의 대응 방안을 가지고 있나?

정정윤카카오임팩트에서 진행하는 ‘카카오프로젝트100’ 이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온라인으로 100일 동안 프로젝트에 참여한 멤버들에게 노래와 랩을 수화로 알려주고 구간을 나눠서 같이 불러보는 ‘수어라차차’ 프로젝트를 했고 현재 시즌2가 진행중이다. 콘텐츠 기획은 하나씩 만들어서 올리면 그다음이 늘 고민이다. 우리가 시작할 때는 새로운 형식의 수어공연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는데, 지금은 뉴미디어, 융복합기술 등 또 다른 기술과 환경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교육과 이해를 바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며 이제 막 따라왔는데, 새로운 기술까지 접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언택트에 맞추어 콘텐츠를 연구하고 개발하긴 하지만, 새로운 환경 속에서 수어 사용자나 농인 아티스트가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아직도 고민이 많다.

김지연다양한 방법으로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올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창작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을 비대면 온라인 스트리밍 방식으로 공연했다. ‘수어라차차’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아서 시즌2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노래 세 곡을 했고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이런 아이디어가 코로나 상황과 나름 맞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온라인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데프웨스트 극단의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수어 버전이 만들어져 예술성과 상업성까지도
성취해낸 사례를 본 적이 있다. 핸드스피크 역시 한국 수어로 그런 활동을 하고 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처럼 기존의 작품을 수어 버전으로 재창작하는 장편 프로젝트도 혹시 계획하고 있나?

정정윤계획은 물론 있다. 농인 아티스트가 수어를 사용하면서 연기 등 각 요소와 어떻게 접목할지 늘 고민하고 있다. 김지연 아티스트도 좋다고 한 작품이 있어서, 저작권 협의와 연습만 하면 된다. 코로나가 끝나면 극장에서 빨리 관객을 만나면 좋을 것 같다.

김지연정말 원하는 일이다. 새로운 창작도 좋지만 대중성 있는 유명한 작품을 수어 버전으로 만들어 예술성을 표현하고 싶다. 그 작품의 주제와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재밌을 것 같다.

(왼쪽)김지연 아티스트
(오른쪽)정정윤 대표

첫 뮤지컬 공연이었던 <미세먼지>에서 농인과 청인 배우의 협업이 이루어졌다. 무대 위의 농인이 연기하고,
무대 아래의 청인이 리딩하는 이원화된 방식이었다. 농인과 청인의 협업은 어떠했나?

정정윤뮤지컬 <미세먼지>는 분리된 방식을 취하다 보니 농인 배우를 위해 청인 배우가 도와주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연습할 때도 농인 배우들 연습이 거의 완료되면 청인 배우들이 연습에 들어왔다. 보통 공연 콜라보 라고 하면 비장애인들이 하루 이틀, 혹은 당일에 와서 장애인들과 함께하고 이를 협업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예술로 하나가 되었지만, 우리는 그 과정 역시 하나 되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에서는 처음 기획단계부터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가 함께 무대 위에서 각자 다른 캐릭터로 어우러져 공연할 수 있도록 했다. 인원수도 동일하게 맞추었다. 청인은 음성으로, 농인은 수어 연기를 보여주면서, 상대방의 음성과 수어도 마치 더빙하듯이 전달한다.

김지연<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는 농인과 청인이 2인 1역으로 같은 캐릭터를 함께 맡으면서, 청인이 수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 방식이 농인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서 우리에게는 조금 어색했다. 반면 <사라지는 사람들>에는 농인과 청인이 가령 왕자와 공주처럼 서로 상대가 되어 각자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 농인은 자신의 언어로 수어를 사용하고 청인은 청인 나름대로 말로 소통하는 방식이다. 다른 방식이어서 재미있는 것 같다.

<미세먼지> 제작 당시에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 사이에서 소통의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해결해 나갔나?

정정윤보통 청인들의 마음속에는 ‘도움을 주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실 연습 진행이 빨라지고 대본이 바뀌면 다시 숙지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농인들은 수어로 번역해야 하니 속도가 느려지면서 시간차가 생긴다. 두 번째는 연기 부분이다. 농인 배우들은 수어공연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고 청인 배우들은 연기 경험이 많다. 생각과 경험의 차이가 있는 상태로 동시에 무대에 올랐을 때 정리해야 할 게 많았다. 처음에는 그 차이를 몰랐다가 대화를 통해 알게 되고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장애 예술인에 맞추어진 공연장이 거의 없다. 공연장 안에서 장애인이 어느 위치에 있건 정보를 알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열정이 서로 섞이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 그 방법을 찾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춰야 했고 조명, 음악 등 많은 스태프의 눈빛 하나 손짓 하나가 더해져야만 했다. 사실 팀워크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노하우를 쌓은 것 같다.

한국 수어가 미국 같은 외국 수어들과 구별되는 차이점과 특징이 있는가?

김지연음성언어가 나라마다 다르듯이 수어도 특성이 다르다. 예를 들면 미국 수어는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농인의 문화가 접목되어 나타난다. 미국인 특유의 제스처나 느낌이 있다. 그리고 미국 수어는 음성언어의 단어가 수어로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알파벳으로 지화하는데 한국은 거의 그렇지 않다. 전달에 있어서 표정은 전 세계가 같다. 시각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수어 문법도 거의 같다. 그래서 ‘국제 수화’라는 것도 있다.

해외 아티스트와의 교류를 통해 느낀 아쉬운 점과 좋은 점은 무엇이었나?

김지연작년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농축제(Festival Clin d’Oeil, 페스티벌 끌랑 되이)에 갔을 때 너무나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다루는 주제에도 한계가 없었다. 젠더,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 등등. 장애 예술에 대한 사고가 열려있는 그들에 비해 아직 한계가 많은 우리나라이지만 그들과 문화교류를 통해서 가져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정윤조금 보태자면, 사실 농인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김지연 연출이 말한 해외 농인 예술가들과 그 팀이 표현한 주제가 다양하고 굉장히 개방적이었다.

김지연우리나라도 점차 인식 개선이 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핸드스피크를 통해서 농청년들에게 예술활동의 가능성을 느끼고 관심이 생겨나고 있다. 이제 첫걸음을 뗀 단계라고 생각하기에 언젠가는 프랑스에서 만난 예술가들처럼 되길 바란다. (웃음)

극단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젊은 농인 예술가들이 많을 텐데 처음 모집했을 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환경이 있나?

김지연매년 상반기에 모집 공고를 내고 오디션을 통해서 단원을 선발한다. 올해 2기까지 선발했다. 처음 1기 때는 같이 활동하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핸드스피크를 ‘아카데미’라는 생각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많았고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한 단계씩 발전해나갔다. 2기 때 오디션을 보니 1기 활동을 통해 배우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연기에 대해 진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사실 연기를 배우고 싶으면 연기학원에 가야 하지만 농인의 입장에서는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래서 활동하면서 진짜 배우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 열정을 본 것이다.

극단 및 단체 활동과 여러 실천을 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와의 결합이나 많은 비영리 지원이 필요할 텐데
이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나?

정정윤핸드스피크를 처음 설립할 때 고민이 많았다. 장애 예술이라 하면 비상업적 사업군에 속하는데 장애 예술가들이 자립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상업적인 사업군에 속해야 했다. 그래서 영리법인과 비영리단체 투 트랙으로 시작했다. 목표는 농인 아티스트가 하고 싶은 예술활동을 하면서 생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립에 있다. 현재 농인 아티스트로만 구성된 극단, 퍼포먼스팀, 영상팀, 디자인팀이 있다. 두 번째 단편영화를 준비 중이고 농인 디자이너가 만드는 수어가 담긴 굿즈 상품을 준비 중이다. 초기 3년 동안은 지원제도를 잘 활용하면서 지속가능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 자리를 통해 꼭 알리고 싶은 소식이 있다. 작년에 다녀온 프랑스 세계농축제는 격년제로 열리는데 야외무대, 박람회, 청소년 및 유아 프로그램, 게임, 뮤지컬 공연, 춤, 디제잉, 단편영화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국제 페스티벌이다. 작년에 소식을 늦게 알아서 공연에 참여하진 못했고 대신 프레스로 참여해서 그 기간에 모든 프로그램을 참관할 수 있었다. 올해 축제 총괄디렉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핸드스피크를 내년 페스티벌에 초청하고 싶다고! 며칠 뒤에 홈페이지가 오픈되었는데 태극기와 함께 대한민국이 주빈국으로 소개된 것이다. 내년에 코로나가 끝나면 저희가 준비하고 도전하고 싶은 콘텐츠가 너무 많다. 장애와 비장애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고 정말 인정받을 수 있는 활동을 통해 박수를 받고 싶다. 세부 내용을 곧 공개할 예정이니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장애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는 정부 단체, 담당자들 그리고 장애 예술인 선배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김지연농인 예술가들은 모임에서 함께 소통하려면 수어 통역사가 필요하다. 항상 소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개인적인 꿈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래퍼 박재범, 윤미래와 함께 수어 랩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정정윤농인과 수어에 익숙해지고, 친숙해지도록 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데, 어딜 가나 소통의 한계를 느낀다. 수어통역, 문자통역이 있어야 농인 아티스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기에 기본적인 소통에 관련된 부분을 조금 더 신경 써주기 바란다. 우리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비즈니스 잣대로 보자면 더딘 성장일지 몰라도, 농인 예술가들이 하는 도전과 발걸음을 보면 한 걸음 한 걸음이 놀랍고 대단하다. 핸드스피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이 사회에 농인 예술가들이 올바른 예술교육과 활동을 통해 성장하고, 예술가를 넘어 농인 리더가 많이 세워지길 바란다.

편안하고 높은 가을하늘처럼 이상에 대해 단호하게 말하며 자신감에 찬 대한민국 리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마로니에 공원의 공기는 코로나19로 지친 우리의 오랜 일상을 잠시 잊게 해주는 청량함이 느껴졌다. 우리 사회가 장애 예술이 가야 할 방향을 묻는다면 핸드스피크와 함께 한 걸음씩 발걸음을 맞춰나가며 그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이라고 대답하겠다.

  • 뮤지컬 <미세먼지>

  •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

김지연

서울예술종합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안무가, 뮤지컬 연출가, 핸디래퍼로 다양한 수어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2016년 일본 아시아농댄스페스티벌(ASIA DEAF DANCE PRe FESTIVAL) 초청공연, 2017년 홍콩 ‘능력자들의 무대’ 초청공연, 극단 난파 제9회 <난파클럽> 연출, 2018 극단 난파 제10회 <미세먼지> 연출, 2019년 핸드스피크 극단 제1기 정기공연 <미세먼지>를 연출하고 출연했다. 제14회 나눔연극제에서 창작수어뮤지컬 <미세먼지>로 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했다.

정정윤

문화기획사에서 연습생으로 세 명의 아티스트와 만나 10년간 인연을 이오며 이들과 함께 청각장애·농인이 겪는 문화예술 활동 소외와 참여 기회 부족 문제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2018년 핸드스피크를 설립했다. <미세먼지> <사라진 사람들> 등 공연, 전시, 온오프라인 수어 콘텐츠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제작했다.
핸드스피크 유튜브
www.handspeak.kr

조용신

오랫동안 뮤지컬 작가/연출가/예술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뮤지컬 <모비딕> <도리안 그레이>, 연극 <지구를 지켜라> 등에서 대본/연출을 담당했다. 현재 CJ문화재단 아지트 대학로 극장에서 창작뮤지컬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yongshiny@hotmail.com

영상.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hanmail.net
사진.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수어통역.김홍남 수어통역사 jalham.hong@gmail.com
작품사진 제공.핸드스피크

2020년 10월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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