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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강수 배우

인터뷰 자신 있게, 통쾌하게, 웃겨줄 테다!

  • 김소연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19-12-25
  • 조회수406

인터뷰

신강수 배우

자신 있게, 통쾌하게, 웃겨줄 테다!

김소연 연극평론가

지난 10월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된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극장에 들어서면 상그리아와 레모네이드를 판매하는 바가 차려져 있고 객석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 관객이 음료를 직접 가지고 와서 마시면서 공연을 봐도 된다. 이렇게 차려놓으니 무대는 객석 앞 좁은 공간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 공연은 스탠드업 코미디다.

무대 벽에는 금색 반짝이 비닐을 길게 늘여 장식하는 등 공연 콘셉트에 맞추어 클럽을 연출했지만, 공연이 오른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는 연극을 올리는 소극장이다.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은 이 극장을 운영하는 동인들의 가을 페스티벌 프로그램으로 ‘엘리펀트룸’의 공연이다. 클럽이 아닌 소극장이라거나 극장 이름에 붙어 있는 ‘실험’이라는 말에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6명의 코미디언이 각자 자신이 준비한 무대를 진행하는 전형적인(!)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이 공연이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으로는 데뷔 무대라 할 연극배우 3명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공연이든 입문자들은 있게 마련 아닌가.

연극창작자들과 코미디언의 협업이라 할 이 공연에서 양쪽 분야 모두에서 활동해온 창작자는 신강수 배우가 유일하다. 이 문장을 쓰면서 ‘배우’라는 말에서 머뭇거렸다. 요즘 그는 배우, 코미디언, 연출, 작가 그리고 극단 대표까지 무대와 관련된 온갖 일들을 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는 특히 바빴다. 극단 다빈나오 소리극 <옥이>에서 구척장신 저승사자 역으로 분했고, 에세이집 『132cm 사용설명서』를 출간하고 북콘서트를 겸한 혼극을 공연했다.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을 공연하면서 극단 다빈나오 <동충아트빌 쉐어하우스> 공동창작과 연출을 맡았다.

코미디와 연극을 오가고 공연 제작의 여러 역할로 참여하는 등 그의 활동은 경계를 개의치 않고 자신의 작업을 찾아간다. 장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저신장 장애를 가지고 있고, 장애 등급으로는 가장 낮은 6급이다. 그의 희곡 <급이 다르다>는, 자신처럼 저신장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별 혜택도 없는 6급 장애인 김유남이 “높은 장애등급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코미디”이다. 희곡만이 아니다. 에세이집에서도 직접 서는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서도 그는 종종 자신의 장애를 웃음의 소재로 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그걸 보고 들으며 웃는 사람들에게서 통쾌함을 느낀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장애를 잘 써먹을까 매일매일 궁리한다. 신강수, 그의 궁리를 들어본다.

얼마 전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했다. 대학 전공은 ‘코미디학과’이고 희곡 <급이 다르다>는 코미디로 소개하고 있다. 코미디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 같다.

장애가 있다 보니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려웠다. TV에 나오는 코미디언을 흉내 내면서 혼자 놀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소풍 가서 장기자랑을 하는데 친구들 앞에서 그동안 혼자놀이였던 흉내 내기를 했다. 친구들이 너무 좋아했다. 학교에 와서도 더 해보라고 하고. 그때는 코미디라든가 그런 형식을 생각했던 건 아니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친구들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면서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꿈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용기가 없었다.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컴퓨터정보공학과로 대학에 진학했는데, 거기서 애들 모아놓고 웃기고 있는 거다. 결심에도 계기가 있어야 하니까, 전국 일주에 성공하면 코미디로 전공을 바꾸고, 못 하면 원래 전공으로 돌아가자 했다. 성공했다. 수능 다시 보고 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학과 04학번으로 입학했다.

코미디에 대한 애정이 큰데 어떻게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나?

2008년 졸업하고 동기 후배들이랑 있는 돈 다 털어서 전주에서 코미디 공연을 일주일 했다. 공연 끝나고 났더니 빈털터리가 되었다. 이곳저곳 오디션 보고 이력서 쓰고 이벤트 회사에서 삐에로 분장도 하고 풍선도 불고 온몸에 파란색 칠을 하고 행위예술도 하고 그랬는데 개런티를 못 받았다. 그런 일이 많았다. 계약해도 돈을 안 주거나 도망가거나. 형 집에 얹혀살고 있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은 깊어지고 엄마는 내려오라고 하고 전화로 크게 싸우고.

<급이 다르다>에 나오는 장면인 것 같다.

<급이 다르다>에는 내 이야기가 많다. 그렇게 막막할 때 극단 휠에서 조연출을 뽑는다는 공지를 보고 찾아갔다. 그런데 조연출은 비장애인을 뽑는다는 거다. 거기서 또 멘붕이 왔다. ‘여기서도 받아주지 않는구나’ 했는데 배우를 하면 어떻겠냐고 연락이 왔다. 고민하다가 들어갔다. 그때가 서른이었는데, 극단 휠에서 장애인을 처음 만났다. 나는 나의 장애에 대한 인식도 거의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장애인으로 봤지만 내 친구들은 나를 장애인으로 보지 않았다. 장난도 막 치고 그랬다. 나도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장애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극단 활동하면서 선입견이 많이 깨졌다.

어떤 선입견이 있었나?

나는 장애가 있지만 견뎌야 하고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위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나도 ‘그래, 이겨내야 해’ 그랬다. 그런데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똑같은 사람이고, 삶이구나, 이겨내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장애 특성에 대해서 공부하고, 장애라고 뭉뚱그려서 말하지만 다 다르다. 그런 배움들, 함께 하는 작업이 재미있었다.

연극에 입문한 것보다 ‘장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더 큰 변화인 것 같다.

장애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니까 나의 장애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장애를 어떻게 팔까 생각했던 것 같다. 내 묘비에 한 구절을 넣는다면 ‘나의 장애를 잘 써먹었다, 너희들이 놀린 만큼 이렇게 잘 써먹었다’라고 쓰고 싶다. 나는 나의 장애를 잘 팔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매일 매일 고민한다. TV를 보면 키가 작다고 놀리고 난쟁이라는 말도 스스럼 없이 내뱉는다. 저신장장애인 비하인데, 달리 생각하면 작은 키에 대한 공감대가 넓다고 생각한다.

『132cm 사용설명서』 읽으면서 의자에 앉으면 발이 닿지 않아 불편하다는 에피소드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나도 종종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불편할 때가 있다. (웃음)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스탠드업 코미디를 클럽이 아닌 소극장에서 코미디언 연극배우들과 함께 극단 제작으로 올렸다. 서로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던 창작자들의 협업인데 작업 과정은 어땠나.

연극배우 3명, 코미디언 3명이 참여했다. 각자 특징이 있다. 코미디언들은 웃음의 포인트를 잡는 펀치라인 구성이 좋다. 연극배우들은 펀치라인이 약해도 연기로 살린다. 경지은 배우가 연기로 이야기를 살리는 느낌이 좋았다. 서로 다른데, 그 다른 점이 재밌다. 6명이 각자 자신의 무대를 구성해오면 서로 피드백해주고 그랬다. 그런데 연극의 공동작업과는 좀 다르다. 각자 편한 호흡이 있다. 그걸 건드리면 코미디언들은 어려워한다. 코미디에서 중요한 것이 자신감이다. 적절한 피드백이 중요하다. 자기 호흡을 놓치거나 자신감을 잃으면 안 된다.

클럽 공연과는 관객층이 달랐을 것 같다. 관객 반응은 어땠나?

연극배우들은 팔짱 끼고 보는 느낌? 아 저런 게 코미디구나, 아 웃기네, 그런 반응이었다. 공연을 제작한 엘리펀트룸은 그렇게 좀 낯설게 보는 걸 원했던 것 같다. 연극을 보는 것처럼 코미디를 보았으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냥 코미디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도 있었다. 온라인에 올라오는 관객 반응을 보면, 재미있다, 재미없다, 어떤 부분은 불편했다 등등 코미디 공연에 대한 반응이다.

동료들과 함께 하는 코미디 공연은 오랜만이었다. 어땠나?

너무 좋았다. 처음 느끼는 것이었는데, 마지막 공연 가기 싫을 정도로 좋았다. 혼극이라고 명칭을 만들어서 연극적인 구성에 코미디를 넣는 그런 작업을 했는데, 동료 코미디언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면서 ‘맞아 이런 것이 스탠드 업 코미디였어’ 하고 감각을 되찾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10년간 연극을 해서 연극적 구성이 강했던 것 같다. 연극적 구성에 펀치라인을 입히는 방식이었달까. 그러다 보니 ‘세바시’나 ‘테드’ 강의 같은 느낌이었다. 어떤 관객은 웃는데, 어떤 관객은 경청하더라. 경청하는 관객들도 웃게 하는 코미디를 만드는 것이 숙제다. 1인 창작도 계속하고 싶고 코미디도 너무 재미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코미디가 왜 그렇게 좋은가?

사람들이 웃는 게 너무너무 좋다. 통쾌하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지만 그건 비웃음이다. 버스 탈 때 많이 느끼는데, 버스에서 앉아 있다는 것은 최고의 권력을 누리는 거다. 그런데 내가 앉아 있으면 옆자리가 비어있는데도 나를 보고는 앉지 않는다. 그럴 때 그 사람을 웃겨주고 싶다. 울리는 거보다 웃기는 것이 좋다.

작가, 배우, 코미디언, 연출, 극단 대표 등등 여러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역할은?

배우와 코미디언. 박수받는 맛을 알아서 그런 것 같다. 작가는 글을 써도 배우처럼 박수 받고 환호 받고 그런 게 없다. 하지만 끝까지 하고 싶은 건 작가다. 장애인이 등장하는 희곡이 없다. 그런 희곡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내 꿈은 추송웅 선생님의 <빨간 피터의 고백> 같은 공연을 만들어 올리는 거다.

최근 장애인 예술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변화를 느끼는가?

그렇다. 이음센터, 잠실창작스튜디오 등 공간도 있고,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생기면서 창작활동 지원도 변화하고 있다. 올해 남산예술센터에서 배리어프리 공연을 시도하고 그런 시도가 주목받는 것도 변화다. 아쉬운 것도 있다. 극단 휠이나 다빈나오는 장애인 배우들이 참여하고 또 그들의 친구들이 관객으로 올 테니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화면해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등을 해왔다. 또 휠체어 장애인을 위해 접근 가능한 공간을 대관한다. 남산예술센터도 배리어프리 공연을 지향한다면 관객 서비스에 머물 것이 아니라 장애인 예술단체가 상주한다거나 장애인 배우들이 참여하는 공연을 제작해야 한다. 이 극장에서 장애인들이 창작활동을 하면 배리어프리는 당연히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장애인 예술가라고 해서 장애인들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경험으로도 극단 휠에서 공연했던 윤영선 선생이 쓰신 <여행>이 기억에 남는 공연이다. 극단 애인은 <고도를 기다리며> <전쟁터 산책> 등을 공연했다. 장애인 배우들도 연구하고 분석하고 열심히 한다. 뇌성마비 햄릿, 이런 캐릭터 보고 싶지 않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132cm 사용설명서』를 낸 것이 계기가 되어서 여러 가지 일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극단에서 한 편, 두 편 공연하는 것 말고는 작업이 없었는데, 올해는 7월 북콘서트 이후 작업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버티다 보면 더 좋고 재밌고 즐거운 일이 생기는 것 같다. 장애인이 자신의 이야기로 책을 내서 화제가 되는 게 아니라 이 책이 예술을 더 풍성하게 했으면 좋겠다. 장애인으로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장애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본보기가 되면 좋겠다.

신강수

연극인. 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 연기학과를 졸업하고 꾸준히 연기와 극작,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7년 1인극 <작은 어른의 고백>(연출, 극작, 배우), 2018년 베리어프리극 <옥이>(저승사자 역), 2019년 스탠드업 코미디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배리어프리 플레이그라운드 ‘132cm 사용설명서’ 전시 공연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공연희곡집 『급이 다르다』(2015), 에세이집 『그래 난, 쟁이다』(2018), 『132cm 사용설명서』(2019)를 냈으며, 2014년 제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경진대회 연극부문 최우수상, 2015년 장애인 고용인식 개선 문화재 산문부문 금상, 어머니 윤경자 여사가 2018 년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을 수상한 바 있다.
페이스북 바로가기(링크)

김소연

연극평론가. [문화정책리뷰] 편집장. ‘커뮤니티와 아트’ ‘삼인삼색 연출노트’ ‘극작가리서치워크숍’ 등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kdoonga@naver.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gomako1983@hanmail.net)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infebruary14@naver.com)

2019년 12월 (11호)

상세내용

인터뷰

신강수 배우

자신 있게, 통쾌하게, 웃겨줄 테다!

김소연 연극평론가

지난 10월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된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극장에 들어서면 상그리아와 레모네이드를 판매하는 바가 차려져 있고 객석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 관객이 음료를 직접 가지고 와서 마시면서 공연을 봐도 된다. 이렇게 차려놓으니 무대는 객석 앞 좁은 공간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 공연은 스탠드업 코미디다.

무대 벽에는 금색 반짝이 비닐을 길게 늘여 장식하는 등 공연 콘셉트에 맞추어 클럽을 연출했지만, 공연이 오른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는 연극을 올리는 소극장이다.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은 이 극장을 운영하는 동인들의 가을 페스티벌 프로그램으로 ‘엘리펀트룸’의 공연이다. 클럽이 아닌 소극장이라거나 극장 이름에 붙어 있는 ‘실험’이라는 말에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6명의 코미디언이 각자 자신이 준비한 무대를 진행하는 전형적인(!)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이 공연이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으로는 데뷔 무대라 할 연극배우 3명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공연이든 입문자들은 있게 마련 아닌가.

연극창작자들과 코미디언의 협업이라 할 이 공연에서 양쪽 분야 모두에서 활동해온 창작자는 신강수 배우가 유일하다. 이 문장을 쓰면서 ‘배우’라는 말에서 머뭇거렸다. 요즘 그는 배우, 코미디언, 연출, 작가 그리고 극단 대표까지 무대와 관련된 온갖 일들을 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는 특히 바빴다. 극단 다빈나오 소리극 <옥이>에서 구척장신 저승사자 역으로 분했고, 에세이집 『132cm 사용설명서』를 출간하고 북콘서트를 겸한 혼극을 공연했다.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을 공연하면서 극단 다빈나오 <동충아트빌 쉐어하우스> 공동창작과 연출을 맡았다.

코미디와 연극을 오가고 공연 제작의 여러 역할로 참여하는 등 그의 활동은 경계를 개의치 않고 자신의 작업을 찾아간다. 장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저신장 장애를 가지고 있고, 장애 등급으로는 가장 낮은 6급이다. 그의 희곡 <급이 다르다>는, 자신처럼 저신장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별 혜택도 없는 6급 장애인 김유남이 “높은 장애등급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코미디”이다. 희곡만이 아니다. 에세이집에서도 직접 서는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서도 그는 종종 자신의 장애를 웃음의 소재로 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그걸 보고 들으며 웃는 사람들에게서 통쾌함을 느낀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장애를 잘 써먹을까 매일매일 궁리한다. 신강수, 그의 궁리를 들어본다.

얼마 전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했다. 대학 전공은 ‘코미디학과’이고 희곡 <급이 다르다>는 코미디로 소개하고 있다. 코미디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 같다.

장애가 있다 보니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려웠다. TV에 나오는 코미디언을 흉내 내면서 혼자 놀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소풍 가서 장기자랑을 하는데 친구들 앞에서 그동안 혼자놀이였던 흉내 내기를 했다. 친구들이 너무 좋아했다. 학교에 와서도 더 해보라고 하고. 그때는 코미디라든가 그런 형식을 생각했던 건 아니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친구들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면서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꿈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용기가 없었다.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컴퓨터정보공학과로 대학에 진학했는데, 거기서 애들 모아놓고 웃기고 있는 거다. 결심에도 계기가 있어야 하니까, 전국 일주에 성공하면 코미디로 전공을 바꾸고, 못 하면 원래 전공으로 돌아가자 했다. 성공했다. 수능 다시 보고 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학과 04학번으로 입학했다.

코미디에 대한 애정이 큰데 어떻게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나?

2008년 졸업하고 동기 후배들이랑 있는 돈 다 털어서 전주에서 코미디 공연을 일주일 했다. 공연 끝나고 났더니 빈털터리가 되었다. 이곳저곳 오디션 보고 이력서 쓰고 이벤트 회사에서 삐에로 분장도 하고 풍선도 불고 온몸에 파란색 칠을 하고 행위예술도 하고 그랬는데 개런티를 못 받았다. 그런 일이 많았다. 계약해도 돈을 안 주거나 도망가거나. 형 집에 얹혀살고 있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은 깊어지고 엄마는 내려오라고 하고 전화로 크게 싸우고.

<급이 다르다>에 나오는 장면인 것 같다.

<급이 다르다>에는 내 이야기가 많다. 그렇게 막막할 때 극단 휠에서 조연출을 뽑는다는 공지를 보고 찾아갔다. 그런데 조연출은 비장애인을 뽑는다는 거다. 거기서 또 멘붕이 왔다. ‘여기서도 받아주지 않는구나’ 했는데 배우를 하면 어떻겠냐고 연락이 왔다. 고민하다가 들어갔다. 그때가 서른이었는데, 극단 휠에서 장애인을 처음 만났다. 나는 나의 장애에 대한 인식도 거의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장애인으로 봤지만 내 친구들은 나를 장애인으로 보지 않았다. 장난도 막 치고 그랬다. 나도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장애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극단 활동하면서 선입견이 많이 깨졌다.

어떤 선입견이 있었나?

나는 장애가 있지만 견뎌야 하고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위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나도 ‘그래, 이겨내야 해’ 그랬다. 그런데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똑같은 사람이고, 삶이구나, 이겨내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장애 특성에 대해서 공부하고, 장애라고 뭉뚱그려서 말하지만 다 다르다. 그런 배움들, 함께 하는 작업이 재미있었다.

연극에 입문한 것보다 ‘장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더 큰 변화인 것 같다.

장애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니까 나의 장애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장애를 어떻게 팔까 생각했던 것 같다. 내 묘비에 한 구절을 넣는다면 ‘나의 장애를 잘 써먹었다, 너희들이 놀린 만큼 이렇게 잘 써먹었다’라고 쓰고 싶다. 나는 나의 장애를 잘 팔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매일 매일 고민한다. TV를 보면 키가 작다고 놀리고 난쟁이라는 말도 스스럼 없이 내뱉는다. 저신장장애인 비하인데, 달리 생각하면 작은 키에 대한 공감대가 넓다고 생각한다.

『132cm 사용설명서』 읽으면서 의자에 앉으면 발이 닿지 않아 불편하다는 에피소드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나도 종종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불편할 때가 있다. (웃음)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스탠드업 코미디를 클럽이 아닌 소극장에서 코미디언 연극배우들과 함께 극단 제작으로 올렸다. 서로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던 창작자들의 협업인데 작업 과정은 어땠나.

연극배우 3명, 코미디언 3명이 참여했다. 각자 특징이 있다. 코미디언들은 웃음의 포인트를 잡는 펀치라인 구성이 좋다. 연극배우들은 펀치라인이 약해도 연기로 살린다. 경지은 배우가 연기로 이야기를 살리는 느낌이 좋았다. 서로 다른데, 그 다른 점이 재밌다. 6명이 각자 자신의 무대를 구성해오면 서로 피드백해주고 그랬다. 그런데 연극의 공동작업과는 좀 다르다. 각자 편한 호흡이 있다. 그걸 건드리면 코미디언들은 어려워한다. 코미디에서 중요한 것이 자신감이다. 적절한 피드백이 중요하다. 자기 호흡을 놓치거나 자신감을 잃으면 안 된다.

클럽 공연과는 관객층이 달랐을 것 같다. 관객 반응은 어땠나?

연극배우들은 팔짱 끼고 보는 느낌? 아 저런 게 코미디구나, 아 웃기네, 그런 반응이었다. 공연을 제작한 엘리펀트룸은 그렇게 좀 낯설게 보는 걸 원했던 것 같다. 연극을 보는 것처럼 코미디를 보았으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냥 코미디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도 있었다. 온라인에 올라오는 관객 반응을 보면, 재미있다, 재미없다, 어떤 부분은 불편했다 등등 코미디 공연에 대한 반응이다.

동료들과 함께 하는 코미디 공연은 오랜만이었다. 어땠나?

너무 좋았다. 처음 느끼는 것이었는데, 마지막 공연 가기 싫을 정도로 좋았다. 혼극이라고 명칭을 만들어서 연극적인 구성에 코미디를 넣는 그런 작업을 했는데, 동료 코미디언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면서 ‘맞아 이런 것이 스탠드 업 코미디였어’ 하고 감각을 되찾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10년간 연극을 해서 연극적 구성이 강했던 것 같다. 연극적 구성에 펀치라인을 입히는 방식이었달까. 그러다 보니 ‘세바시’나 ‘테드’ 강의 같은 느낌이었다. 어떤 관객은 웃는데, 어떤 관객은 경청하더라. 경청하는 관객들도 웃게 하는 코미디를 만드는 것이 숙제다. 1인 창작도 계속하고 싶고 코미디도 너무 재미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코미디가 왜 그렇게 좋은가?

사람들이 웃는 게 너무너무 좋다. 통쾌하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지만 그건 비웃음이다. 버스 탈 때 많이 느끼는데, 버스에서 앉아 있다는 것은 최고의 권력을 누리는 거다. 그런데 내가 앉아 있으면 옆자리가 비어있는데도 나를 보고는 앉지 않는다. 그럴 때 그 사람을 웃겨주고 싶다. 울리는 거보다 웃기는 것이 좋다.

작가, 배우, 코미디언, 연출, 극단 대표 등등 여러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역할은?

배우와 코미디언. 박수받는 맛을 알아서 그런 것 같다. 작가는 글을 써도 배우처럼 박수 받고 환호 받고 그런 게 없다. 하지만 끝까지 하고 싶은 건 작가다. 장애인이 등장하는 희곡이 없다. 그런 희곡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내 꿈은 추송웅 선생님의 <빨간 피터의 고백> 같은 공연을 만들어 올리는 거다.

최근 장애인 예술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변화를 느끼는가?

그렇다. 이음센터, 잠실창작스튜디오 등 공간도 있고,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생기면서 창작활동 지원도 변화하고 있다. 올해 남산예술센터에서 배리어프리 공연을 시도하고 그런 시도가 주목받는 것도 변화다. 아쉬운 것도 있다. 극단 휠이나 다빈나오는 장애인 배우들이 참여하고 또 그들의 친구들이 관객으로 올 테니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화면해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등을 해왔다. 또 휠체어 장애인을 위해 접근 가능한 공간을 대관한다. 남산예술센터도 배리어프리 공연을 지향한다면 관객 서비스에 머물 것이 아니라 장애인 예술단체가 상주한다거나 장애인 배우들이 참여하는 공연을 제작해야 한다. 이 극장에서 장애인들이 창작활동을 하면 배리어프리는 당연히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장애인 예술가라고 해서 장애인들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경험으로도 극단 휠에서 공연했던 윤영선 선생이 쓰신 <여행>이 기억에 남는 공연이다. 극단 애인은 <고도를 기다리며> <전쟁터 산책> 등을 공연했다. 장애인 배우들도 연구하고 분석하고 열심히 한다. 뇌성마비 햄릿, 이런 캐릭터 보고 싶지 않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132cm 사용설명서』를 낸 것이 계기가 되어서 여러 가지 일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극단에서 한 편, 두 편 공연하는 것 말고는 작업이 없었는데, 올해는 7월 북콘서트 이후 작업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버티다 보면 더 좋고 재밌고 즐거운 일이 생기는 것 같다. 장애인이 자신의 이야기로 책을 내서 화제가 되는 게 아니라 이 책이 예술을 더 풍성하게 했으면 좋겠다. 장애인으로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장애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본보기가 되면 좋겠다.

신강수

연극인. 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 연기학과를 졸업하고 꾸준히 연기와 극작,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7년 1인극 <작은 어른의 고백>(연출, 극작, 배우), 2018년 베리어프리극 <옥이>(저승사자 역), 2019년 스탠드업 코미디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배리어프리 플레이그라운드 ‘132cm 사용설명서’ 전시 공연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공연희곡집 『급이 다르다』(2015), 에세이집 『그래 난, 쟁이다』(2018), 『132cm 사용설명서』(2019)를 냈으며, 2014년 제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경진대회 연극부문 최우수상, 2015년 장애인 고용인식 개선 문화재 산문부문 금상, 어머니 윤경자 여사가 2018 년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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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연극평론가. [문화정책리뷰] 편집장. ‘커뮤니티와 아트’ ‘삼인삼색 연출노트’ ‘극작가리서치워크숍’ 등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kdoonga@naver.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gomako1983@hanmail.net)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infebruary14@naver.com)

2019년 12월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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