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연극연습 프로젝트 <관객 연습-사람이 하는 일>

리뷰 침묵과 방관을 깨는 용기 있는 연습

  • 남웅 미술평론가
  • 등록일 2022-02-23
  • 조회수1525

리뷰

공연 포스터에는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이라는 문구가 박힌 조끼를 입고 계단 오르막을 향해 오체투지 중인 스님과 계단참에 앉아 그를 지켜보며 ‘공공주택사업 환영’ 피켓을 목에 건 일인 시위자가 있다. 다른 버전의 포스터는 퀴어퍼레이드를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의 집회현장을 담는다.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화면 오른편에 제목이 지나간다.

‘사람이 하는 일’은 상황에 따라 “이게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와 같은 무심하게 던질 수 있는 문장이 되거나, 때론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같은 결의를 머금은 표현이 되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의 일은 하나같지 않다. 신념과 이해관계는 대개 상충하고 경합하며 적대시하기 부지기수다. 문제는 이들의 여건이 대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주어진 상황뿐 아니라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서도 쓰임이 다르다. 일하는 이가 성소수자이거나 장애인, 시설 수감자이거나 가난한 사람일 때 그는 제도와 사회적 문법 아래 단정되기 쉽다. 하지만 말을 삼킬 수밖에 없는 상황 저편에는 스스로 말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 경우 또한 염두에 둬야 한다. 들어주지 않아서, 반대로 너무 들으려고만 해서, 내가 어떤 피해와 수모와 차별 속에 있는가를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말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피로와 별개로 사람들은 듣고 싶은 이야기를 골라 들을 것이고 대개는 알고 있는 이야기라 치부하며 지나칠 것이다. 줄곧 사람의 언저리로 밀려나던 이들은 일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을 갖기 어렵고, 이들이 하는 일은 ‘일’로 인정받지 못한다.

책임을 감각하기

2018년부터 연출, 배우, 작가의 순서로 세 편을 제작한 ‘연극연습 프로젝트’의 네 번째 작업인 〈관객 연습-사람이 하는 일〉(이하 ‘관객 연습’)은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와 함께한 작업으로, 관객이 무대에 직접 개입할 것을 요청한다. 공연은 관객에게 마이크를 쥐여주기 위해 극에 특정한 장치들을 배치한다. 가령 배우와 관객 사이에 진행자로 ‘조커’를 등장시킨다. 그는 시작에 앞서 “관객 여러분에 따라 무대가 25분 만에 마무리될 수 있고, 2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정해진 시나리오 대신 관객의 전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극이 진행될 것이라는 포석을 둔다. 공연은 단편적인 상황들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실시간으로 문제적인 순간들을 찾고 수정할 것을 요청한다. 지하철 환승로를 찾는 상황, 장애인석을 차지한 비장애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상황,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장애인 화장실을 찾는 상황, 공원에서 애인과 데이트하다가 사회복지사와 갈등을 겪는 시설 거주 장애인 퀴어의 상황이 이어진다. 각각의 상황마다 장애인을 대하는 상이한 태도가 부각된다. 호의를 베풀지만 선을 넘지 않고, 때론 호의가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베풀어진다. 더러는 보호라는 명목 아래 사생활을 통제하며 호의 대상을 무시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완결된 서사를 고수했다면 반성과 교훈을 담은 계몽극에 그쳤을 것이지만, 〈관객 연습〉은 관객이 주어진 상황의 일원임을 주지시킨다. 상황이 어떻게 변형되든 극은 관객의 판단에 맡긴다. 그렇다고 관객이 무작정 방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적어도 그들은 무대에 오른 장애인 배우들에게 상처를 반복해서 주지 않기 위해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배우와 관객 사이 암묵적으로 형성된 배려의 한편에는 수십 명의 관객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부담도 한몫한다. 제약이 주어진 이상 관객은 어느 정도 장애인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요청받는다.

관객에 따라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방향은 다소간 차이를 보이지만 크게 충돌하는 지점은 없었다.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만큼 침묵의 시간도 짧지 않았는데, 흥미로운 점은 관객의 침묵 역시 개입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었다. 가령 관객 중에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며 “여러분이 침묵을 지키는 이상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발언하는 이가 있었다. 우스갯소리처럼 던진 발언은 의도와 달리 부당한 상황 앞에 관객의 침묵이 부채감을 피할 수 없음을 확인시키면서도, 침묵을 깨는 이가 개입의 명분을 독점할 수 있다는 딜레마 또한 환기한다. 현실에서라면 공공장소를 점거하는 운동과 그 주체를 둘러싸고 토론과 논쟁이 벌어질 수 있겠지만, 관객은 무대 밖 어둠 속에 제 모습을 적당하게 숨기며 개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설령 공연장소가 전형적인 극장과 달리 무대와 관객 사이 턱을 없애고 사방이 통유리로 뚫린 열린 공간을 지향할지라도 말이다. 물론 관객의 입장에서는 공연장을 떠나지 않는 이상 개입의 부담을 완전히 회피할 수 없다. 적어도 이들은 무대에 개입하지 않는 동안의 침묵을 함께 견뎌야 한다. 누구라도 개입하기에 앞서 책임의 빈칸을 채우는 침묵의 무게를 함께 견디도록 하는 것, 그것이 〈관객 연습〉이 제안하는 무대의 미덕은 아닐까 곱씹어보았다.

허구와 실재 사이, 무대의 힘

이들이 감내할 침묵의 무게는 취약한 상황에 응해달라는 장애인/배우들의 절실한 신호에 상응한다. 에피소드는 공통으로 장애인과 시설 거주자, 여성,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불평등을 공통의 키워드로 삼는다. 각각의 호명은 따로 부여되기보다 특정 상황 속에 놓인 인물을 관통하여 상황의 맥락을 구성한다. 관객의 개입과 수정은 배우로 하여금 같은 상황을 여러 번 반복하게 만든다. 장애인과 퀴어, 비장애인과 이성애자를 연기하는 과정은 기실 관객을 연습의 주체로 삼기에 앞서, 배우의 부단한 연습이 필요함을 주지시킨다. 배우는 관객의 의견에 따라 연기를 수행하는 아바타가 되지만, 더러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인/퀴어 배우로서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여기서 무대는 배우로 하여금 ‘장애인’으로서 실전을 대비하는 훈련의 장일 수 있다. 이들은 ‘장애인 배우’로서 무대를 빌어 동료의 가능성을 탐문할 수 있으며, ‘장애인 퀴어’에게 닥친 불안정한 상황을 함께 지지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배우’로서 당사자성에 함몰되지 않은 제 역량을 발견할 수 있으며, 서툴게 의견을 제시하는 관객들에게 신뢰의 시선을 보낼 수 있다. 무대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직접 겪은 현실을 상연하는 동시에 배우로서 자율적인 캐릭터를 창안하는 실천이기도 한 것이다.

현실과 허구가 모호하게 포개어지는 긴장은 극장에 감도는 온기 속에 잔잔한 실수와 애드리브를 튀어나오게 한다. 대사를 잊어버려 개구진 실랑이가 발생하고 극의 흐름이 오리무중일 때 배우 특유의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흐름이 어색해지면 조커가 분위기를 거들고 관객들은 박수와 웃음을 채워 넣는다. 그것이 공동체의 가치를 말하는 극의 또 다른 역량은 아닐지, 혹은 현실을 허구로 가공하며 직접적인 개입의 부담을 덜고 고립으로부터 관계의 틈새를 여는 무대의 또 다른 힘은 아닐지 생각했다. 현실의 고통을 중화시킬 수 있는 거리두기를 가능케 하면서도 실제로 맞닥뜨릴 법한 상황들을 무대 위에 올려 개입의 허들을 낮추고 다른 서사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관객으로 하여금 개입의 문턱을 실감케 하면서도 극을 넘나드는 다른 배려와 관계 가능성을 실험함으로써 이를 함께 넘을 수 있는 용기를 배양하는 무대의 힘 아닌가 말이다.

추신: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시설 거주 장애인이 외출을 나와 애인과 데이트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장애인 퀴어 커플인 이들은 밖에서 데이트하다가 시설을 관리하는 사회복지사에게 들켜 곧장 비난받는다. 하지만 극 중 활동가와 무대에 개입한 관객이 상황에 대응하고 싸우면서 시설 거주 장애인에게 예기치 않은 외박이 주어진다. 관객의 개입으로 그가 탈시설을 결심하는 새로운 국면이 열린 것이다. 시설 거주 장애인은 자기 파트너에게 하룻밤 재워달라고 요청한다. 이 또한 즉흥적인 대사였을 것이다. 상대는 수락도 거절도 하지 못한 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결국 외박이 주어진 이는 활동가의 집에서 하루 묵기로 하고 파트너만 무대에 둔 채 다른 인물들과 퇴장한다. 공연은 웃음으로 마무리되었지만, 파트너가 당황하는 모습은 어쩐지 계속 기억에 남는다. 계산된 연기인지 실제 상황인지 짐작할 수 없지만, 그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면 집에 들어갈 때 가족이나 동거인에게 어떻게 파트너를 소개할지, 장애인인 그가 장애인 파트너를 데려와 하룻밤 재워주는 것이 과연 환대받을 수 있을지, 혹여 그 또한 허락의 영역에 있는 문제는 아닌지, 그 속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이 들키지는 않을지, 설령 자신이 독립했을지라도 타인의 방문을 환대하고 책임질 수 있을지 순간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을지 모른다. 바로 여기, 웃음으로 희석된 잠깐의 당황과 불투명한 망설임으로부터 우리는 다시금 사람이 하는 일을, 공존을 위한 이야기를 꺼내야 하지 않을까.

관객 연습-사람이 하는 일

연극연습 프로젝트 ∣ 2021.12.15. ∣ 헤이그라운드 성수 시작점 스카이라운지

기획 연작 ‘연극연습 프로젝트’의 네 번째 작업이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와 함께 공연의 주체 자리를 관객에게 돌려주는 토론연극 형식으로 구성했다. 장애여성의 일상을 묘사하며 사회적·정치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관객의 참여로 이끌어나간다.

공연정보 바로가기(링크)
연극연습 프로젝트 페이스북 바로가기(링크)

남웅

미술과 시각문화 평론을 인권운동과 더불어 한다. 냉소를 삼키면서도 끝까지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몸과 관계, 삶의 양식을 살피고 엮어내는 데 관심 있다. 현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 적을 두고 있다.
0123tem@hanmail.net

사진. ⓒ연극연습 프로젝트(촬영. 원준혁)

2022년 3월 (29호)

상세내용

리뷰

공연 포스터에는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이라는 문구가 박힌 조끼를 입고 계단 오르막을 향해 오체투지 중인 스님과 계단참에 앉아 그를 지켜보며 ‘공공주택사업 환영’ 피켓을 목에 건 일인 시위자가 있다. 다른 버전의 포스터는 퀴어퍼레이드를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의 집회현장을 담는다.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화면 오른편에 제목이 지나간다.

‘사람이 하는 일’은 상황에 따라 “이게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와 같은 무심하게 던질 수 있는 문장이 되거나, 때론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같은 결의를 머금은 표현이 되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의 일은 하나같지 않다. 신념과 이해관계는 대개 상충하고 경합하며 적대시하기 부지기수다. 문제는 이들의 여건이 대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주어진 상황뿐 아니라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서도 쓰임이 다르다. 일하는 이가 성소수자이거나 장애인, 시설 수감자이거나 가난한 사람일 때 그는 제도와 사회적 문법 아래 단정되기 쉽다. 하지만 말을 삼킬 수밖에 없는 상황 저편에는 스스로 말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 경우 또한 염두에 둬야 한다. 들어주지 않아서, 반대로 너무 들으려고만 해서, 내가 어떤 피해와 수모와 차별 속에 있는가를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말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피로와 별개로 사람들은 듣고 싶은 이야기를 골라 들을 것이고 대개는 알고 있는 이야기라 치부하며 지나칠 것이다. 줄곧 사람의 언저리로 밀려나던 이들은 일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을 갖기 어렵고, 이들이 하는 일은 ‘일’로 인정받지 못한다.

책임을 감각하기

2018년부터 연출, 배우, 작가의 순서로 세 편을 제작한 ‘연극연습 프로젝트’의 네 번째 작업인 〈관객 연습-사람이 하는 일〉(이하 ‘관객 연습’)은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와 함께한 작업으로, 관객이 무대에 직접 개입할 것을 요청한다. 공연은 관객에게 마이크를 쥐여주기 위해 극에 특정한 장치들을 배치한다. 가령 배우와 관객 사이에 진행자로 ‘조커’를 등장시킨다. 그는 시작에 앞서 “관객 여러분에 따라 무대가 25분 만에 마무리될 수 있고, 2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정해진 시나리오 대신 관객의 전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극이 진행될 것이라는 포석을 둔다. 공연은 단편적인 상황들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실시간으로 문제적인 순간들을 찾고 수정할 것을 요청한다. 지하철 환승로를 찾는 상황, 장애인석을 차지한 비장애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상황,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장애인 화장실을 찾는 상황, 공원에서 애인과 데이트하다가 사회복지사와 갈등을 겪는 시설 거주 장애인 퀴어의 상황이 이어진다. 각각의 상황마다 장애인을 대하는 상이한 태도가 부각된다. 호의를 베풀지만 선을 넘지 않고, 때론 호의가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베풀어진다. 더러는 보호라는 명목 아래 사생활을 통제하며 호의 대상을 무시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완결된 서사를 고수했다면 반성과 교훈을 담은 계몽극에 그쳤을 것이지만, 〈관객 연습〉은 관객이 주어진 상황의 일원임을 주지시킨다. 상황이 어떻게 변형되든 극은 관객의 판단에 맡긴다. 그렇다고 관객이 무작정 방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적어도 그들은 무대에 오른 장애인 배우들에게 상처를 반복해서 주지 않기 위해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배우와 관객 사이 암묵적으로 형성된 배려의 한편에는 수십 명의 관객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부담도 한몫한다. 제약이 주어진 이상 관객은 어느 정도 장애인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요청받는다.

관객에 따라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방향은 다소간 차이를 보이지만 크게 충돌하는 지점은 없었다.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만큼 침묵의 시간도 짧지 않았는데, 흥미로운 점은 관객의 침묵 역시 개입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었다. 가령 관객 중에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며 “여러분이 침묵을 지키는 이상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발언하는 이가 있었다. 우스갯소리처럼 던진 발언은 의도와 달리 부당한 상황 앞에 관객의 침묵이 부채감을 피할 수 없음을 확인시키면서도, 침묵을 깨는 이가 개입의 명분을 독점할 수 있다는 딜레마 또한 환기한다. 현실에서라면 공공장소를 점거하는 운동과 그 주체를 둘러싸고 토론과 논쟁이 벌어질 수 있겠지만, 관객은 무대 밖 어둠 속에 제 모습을 적당하게 숨기며 개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설령 공연장소가 전형적인 극장과 달리 무대와 관객 사이 턱을 없애고 사방이 통유리로 뚫린 열린 공간을 지향할지라도 말이다. 물론 관객의 입장에서는 공연장을 떠나지 않는 이상 개입의 부담을 완전히 회피할 수 없다. 적어도 이들은 무대에 개입하지 않는 동안의 침묵을 함께 견뎌야 한다. 누구라도 개입하기에 앞서 책임의 빈칸을 채우는 침묵의 무게를 함께 견디도록 하는 것, 그것이 〈관객 연습〉이 제안하는 무대의 미덕은 아닐까 곱씹어보았다.

허구와 실재 사이, 무대의 힘

이들이 감내할 침묵의 무게는 취약한 상황에 응해달라는 장애인/배우들의 절실한 신호에 상응한다. 에피소드는 공통으로 장애인과 시설 거주자, 여성,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불평등을 공통의 키워드로 삼는다. 각각의 호명은 따로 부여되기보다 특정 상황 속에 놓인 인물을 관통하여 상황의 맥락을 구성한다. 관객의 개입과 수정은 배우로 하여금 같은 상황을 여러 번 반복하게 만든다. 장애인과 퀴어, 비장애인과 이성애자를 연기하는 과정은 기실 관객을 연습의 주체로 삼기에 앞서, 배우의 부단한 연습이 필요함을 주지시킨다. 배우는 관객의 의견에 따라 연기를 수행하는 아바타가 되지만, 더러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인/퀴어 배우로서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여기서 무대는 배우로 하여금 ‘장애인’으로서 실전을 대비하는 훈련의 장일 수 있다. 이들은 ‘장애인 배우’로서 무대를 빌어 동료의 가능성을 탐문할 수 있으며, ‘장애인 퀴어’에게 닥친 불안정한 상황을 함께 지지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배우’로서 당사자성에 함몰되지 않은 제 역량을 발견할 수 있으며, 서툴게 의견을 제시하는 관객들에게 신뢰의 시선을 보낼 수 있다. 무대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직접 겪은 현실을 상연하는 동시에 배우로서 자율적인 캐릭터를 창안하는 실천이기도 한 것이다.

현실과 허구가 모호하게 포개어지는 긴장은 극장에 감도는 온기 속에 잔잔한 실수와 애드리브를 튀어나오게 한다. 대사를 잊어버려 개구진 실랑이가 발생하고 극의 흐름이 오리무중일 때 배우 특유의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흐름이 어색해지면 조커가 분위기를 거들고 관객들은 박수와 웃음을 채워 넣는다. 그것이 공동체의 가치를 말하는 극의 또 다른 역량은 아닐지, 혹은 현실을 허구로 가공하며 직접적인 개입의 부담을 덜고 고립으로부터 관계의 틈새를 여는 무대의 또 다른 힘은 아닐지 생각했다. 현실의 고통을 중화시킬 수 있는 거리두기를 가능케 하면서도 실제로 맞닥뜨릴 법한 상황들을 무대 위에 올려 개입의 허들을 낮추고 다른 서사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관객으로 하여금 개입의 문턱을 실감케 하면서도 극을 넘나드는 다른 배려와 관계 가능성을 실험함으로써 이를 함께 넘을 수 있는 용기를 배양하는 무대의 힘 아닌가 말이다.

추신: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시설 거주 장애인이 외출을 나와 애인과 데이트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장애인 퀴어 커플인 이들은 밖에서 데이트하다가 시설을 관리하는 사회복지사에게 들켜 곧장 비난받는다. 하지만 극 중 활동가와 무대에 개입한 관객이 상황에 대응하고 싸우면서 시설 거주 장애인에게 예기치 않은 외박이 주어진다. 관객의 개입으로 그가 탈시설을 결심하는 새로운 국면이 열린 것이다. 시설 거주 장애인은 자기 파트너에게 하룻밤 재워달라고 요청한다. 이 또한 즉흥적인 대사였을 것이다. 상대는 수락도 거절도 하지 못한 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결국 외박이 주어진 이는 활동가의 집에서 하루 묵기로 하고 파트너만 무대에 둔 채 다른 인물들과 퇴장한다. 공연은 웃음으로 마무리되었지만, 파트너가 당황하는 모습은 어쩐지 계속 기억에 남는다. 계산된 연기인지 실제 상황인지 짐작할 수 없지만, 그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면 집에 들어갈 때 가족이나 동거인에게 어떻게 파트너를 소개할지, 장애인인 그가 장애인 파트너를 데려와 하룻밤 재워주는 것이 과연 환대받을 수 있을지, 혹여 그 또한 허락의 영역에 있는 문제는 아닌지, 그 속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이 들키지는 않을지, 설령 자신이 독립했을지라도 타인의 방문을 환대하고 책임질 수 있을지 순간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을지 모른다. 바로 여기, 웃음으로 희석된 잠깐의 당황과 불투명한 망설임으로부터 우리는 다시금 사람이 하는 일을, 공존을 위한 이야기를 꺼내야 하지 않을까.

관객 연습-사람이 하는 일

연극연습 프로젝트 ∣ 2021.12.15. ∣ 헤이그라운드 성수 시작점 스카이라운지

기획 연작 ‘연극연습 프로젝트’의 네 번째 작업이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와 함께 공연의 주체 자리를 관객에게 돌려주는 토론연극 형식으로 구성했다. 장애여성의 일상을 묘사하며 사회적·정치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관객의 참여로 이끌어나간다.

공연정보 바로가기(링크)
연극연습 프로젝트 페이스북 바로가기(링크)

남웅

미술과 시각문화 평론을 인권운동과 더불어 한다. 냉소를 삼키면서도 끝까지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몸과 관계, 삶의 양식을 살피고 엮어내는 데 관심 있다. 현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 적을 두고 있다.
0123tem@hanmail.net

사진. ⓒ연극연습 프로젝트(촬영. 원준혁)

2022년 3월 (29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