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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극장 <노랑의 보색은 검정이다>

리뷰 폭력에 지친 서로를 보듬는 따뜻한 포옹

  • 이성수 배우
  • 등록일 2022-08-24
  • 조회수791

리뷰

  • 노랑의 보색은 검정이다의 한 장면. 벽에 계란판이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공간에 한 여성은 정면을 보며 서 있고, 잠옷을 입은 한 청소년은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에 놓인 상자를 보고 있다.

폭력에 관해

우리는 폭력과 얼마나 가까이 혹은 멀리 살고 있을까. 자신의 주변에 늘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것이 사실이든 착각이든 불안함과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의 일상은 어떻게 지속되고 있을까. 지인이나 전문가에게 심경을 털어놓고 도움받고 있을까, 아니면 혼자 고독하게 안고 있을까.

고백하자면 나는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언제 어떻게 어떠한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꽤 오래되었다. 때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니 남녀퀴어노소를 불문하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가해자 혹은 잠재적 가해자로 여겨질 때도 있다. 공황장애라도 있는 것일까. 나는 왜 늘 아플까. 원인도 시작도 모르겠다. 나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 연극이 얼마만큼 효과를 보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깔끔하고 시원하게 해결하고 싶지만, 좀처럼 모르겠다. 그저 사는 것이 어렵고, 복잡하고, 막막하고, 두렵다.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사람들은 또 어떻게 볼까. 못난 소리 한다고 못나게만 보려나, 나약한 소리 한다고 한심하게만 보려나. 잘난 사람들의 내려다보는 시선은 역시나 폭력으로만 다가온다. 나는 그날도 도처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폭력으로부터 위협을 느끼며 긴장한 채 극장으로 향했다. 연극의 주제는 ‘폭력’이었다. ‘아픔은 아픔으로 치유한다, 공감은 최고의 약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얼마큼 공감하며 얼마큼 치유할 수 있을지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극장으로 갔다.

모두에게 이로운 배리어프리

공연의 주제에 앞서 배리어프리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연극의 제목은 청소년극 <노랑의 보색은 검정이다>이다. 나는 여기에 한마디 추가하여 ‘배리어프리’ 청소년극 <노랑의 보색은 검정이다>로 바꾸고 싶다. 이 작품은 창작 과정에서부터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만들어졌다. 사전 해설 및 음성해설, 공연 후 터치투어 같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장치가 처음부터 충분히 논의되었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과 자막도 준비돼 있었다.

요즘 배리어프리 공연이 많지만, 장애 배우가 나오거나 장애를 다룬 연극이 아닌데도 이렇게 제작 초반부터 일찌감치 배리어프리를 바탕에 두고 창작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초반엔 배리어프리를 고려하지 않다가 작품이 거의 만들어진 후반부에, 넣어도 그만 안 넣어도 그만인 향신료를 추가하듯이 배리어프리 작업을 하는데, 이 작품은 초반부터 묵직하게 배리어프리를 전제로 잡고 갔다. 물론 배리어프리라는 것이 완벽할 수가 없고, 각각 전달하려는 목표가 다르기에, 따지기 시작하면 많은 이견이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이 연극이야말로 배리어프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었다.

특히 매우 감탄스러운 부분이 하나 있었다. 요즘 사전 해설을 진행하는 공연이 늘고 있고 그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이 연극은 본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두 명의 배우가 무대에서 개방형으로 직접 발화하는 형식이었다. 박아린 역의 김현재 배우가 이런 대사를 한다.

“이 이야기는 박아린의 D-15일부터 디데이(D-day)까지, 총 15일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무슨 디데이인지는, 공연이 시작되면 아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중 사전 음성해설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 말로 인해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극장 안에 있는 모든 관객은 ‘디데이’에 대한 궁금증이 배가되었다. 나는 요즘 음성해설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은 맞지만,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모두에게 이로운 효과를 낳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김현재 배우의 대사는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모든 관객은 디데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을 것이며, 공연에 더 집중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시작한 배리어프리가 모두를 위한 배리어프리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진짜 배리어프리다.

묵은 상처를 보듬기 위해

이제 작품 내용을 이야기해보자. 무대에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열여덟 살 박아린과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여덟 살 꼬마다. 두 사람은 같은 아파트 옆집에 살고 있다. 쌍둥이처럼 똑같은 구조의 방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다. 두 사람은 유일한 소통 창구이자 매우 위험한 창문을 통해 교감하기 시작한다. 감히 내 나름대로 이 연극의 핵심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동병상련’과 ‘공감’이다. 디데이를 세며 150일이나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아린과, 부모에게 사랑 대신 학대를 받는 자신을 투영해 이미 죽고 없는 병아리 ‘노랑’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꼬마. 꼬마가 먼저 아린의 방으로 건너왔을 때, 그저 이상한 아이라고만 생각했던 아린은 화를 내고 신경질적으로 꼬마를 쫓아냈다. 아린이 나중에 꼬마의 방으로 건너갔을 때 비로소 꼬마가 자신과 같은 폭력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고 왈칵 눈물을 쏟는다. 그 순간, 어느 관객의 뺨에도 공감이 흘렀다. 그들은 서로를 보듬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관계였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내가 받은 폭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왜 아플까. 나는 누구에게 어떠한 폭력을 당했을까. 따지고 보면 갑과 을로 구분되지 않는 관계가 없다. 심지어 차별을 없애자고 모인 사람들도, 위계질서를 없애자고 모인 사람들도, 약자를 위한다며 모인 사람들도 그 사이에 모두 갑을관계가 있다. 장애인들끼리 모여도, 소수자와 약자들끼리 모여도, 그 안에서 강자와 약자가 나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권력을 향한다. 본인이 권력자가 되거나 하다못해 권력자와 가까운 관계라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늘 약자였다. 손톱만한 권력이라도 잡아본 적이 없고, 누군가가 친한 척하고 싶을 만큼 영향력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그런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이따금 누군가로부터 어떠한 강요를 받으며 사는 것이기도 하다. 평생 갑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을로 사는 것이다. 인자한 척하는 갑질, 노골적인 갑질, 갑이 아닌 척하는 갑질, 갑인 줄 착각하는 갑질, 온갖 갑질이 다 있었다.

세상은 하나의 커다란 폭력 덩어리 같았다. 그 덩어리에 치여 점점 더 예민해지는 나에게 이 연극은 작은 손길이었다. 다정한 악수였고 따뜻한 포옹이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자신을 정확하고 정직하게 바라보고자 할 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습성이 있다. 묻어 두고 회피하기만 했던 묵은 상처들을 다시 꺼내고 복기하는 것이 쓰리고 아프더라도, 나 자신을 조금 더 정직하게 바라보기 위해 애쓰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흔들리는 지하철 꼭 그만큼 내 마음도 덜컹거렸다.

  • 노랑의 보색은 검정이다의 한 장면. 계란판이 다닥다닥 붙은 벽을 배경으로 한 공간에서 한 여성과 상자를 두 손에 든 청소년이 큰 몸짓을 하며 정면을 향하고 있다.
  • 노랑의 보색은 검정이다의 문자해설 스크린. 이 슬픔도 비참함도 그리고 가끔의 행복도 모두 내 모습인데 라고 써 있다.

노랑의 보색은 검정이다

임시극장 | 2022.7.15.~7.17. | 나온씨어터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 아동과 여성 청소년의 이야기로, 각각 사회와 구조적 폭력의 희생자로서의 개인을 다룬다. 학교폭력으로 인해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을 선택한 18세의 아린과, 가정폭력으로 인해 방 안에서 나오지 못하게 된 8세의 꼬마는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벽 너머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동시대의 소외된 존재들을 수면 위로 올리며 그 현실 너머에 있는 연대와 희망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제5회 페미니즘연극제 참가작.

공연정보 바로가기(링크)

이성수

저시력 시각장애 연극인. 2015년 1월 배리어프리 버전 뮤직드라마 <당신만이>를 통해 연극을 시작했다. 이후 장애인극단 다빈나오와 장애인문화예술 판을 거치며 꾸준히 공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6년 안은미컴퍼니와 함께한 퍼포먼스 공연 <안심댄스>는 이듬해인 2017년 유럽투어 공연을 하기도 했다. 0set 프로젝트, 쿵짝프로젝트, 래빗홀씨어터 등과 협업했다. 2022년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 ‘장애와 예술’ 프로덕션에서 연극 <소극장판-타지>에 출연했다.
hansole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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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페미니즘연극제 사무국 ⓒ이지수

2022년 9월 (34호)

상세내용

리뷰

  • 노랑의 보색은 검정이다의 한 장면. 벽에 계란판이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공간에 한 여성은 정면을 보며 서 있고, 잠옷을 입은 한 청소년은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에 놓인 상자를 보고 있다.

폭력에 관해

우리는 폭력과 얼마나 가까이 혹은 멀리 살고 있을까. 자신의 주변에 늘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것이 사실이든 착각이든 불안함과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의 일상은 어떻게 지속되고 있을까. 지인이나 전문가에게 심경을 털어놓고 도움받고 있을까, 아니면 혼자 고독하게 안고 있을까.

고백하자면 나는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언제 어떻게 어떠한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꽤 오래되었다. 때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니 남녀퀴어노소를 불문하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가해자 혹은 잠재적 가해자로 여겨질 때도 있다. 공황장애라도 있는 것일까. 나는 왜 늘 아플까. 원인도 시작도 모르겠다. 나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 연극이 얼마만큼 효과를 보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깔끔하고 시원하게 해결하고 싶지만, 좀처럼 모르겠다. 그저 사는 것이 어렵고, 복잡하고, 막막하고, 두렵다.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사람들은 또 어떻게 볼까. 못난 소리 한다고 못나게만 보려나, 나약한 소리 한다고 한심하게만 보려나. 잘난 사람들의 내려다보는 시선은 역시나 폭력으로만 다가온다. 나는 그날도 도처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폭력으로부터 위협을 느끼며 긴장한 채 극장으로 향했다. 연극의 주제는 ‘폭력’이었다. ‘아픔은 아픔으로 치유한다, 공감은 최고의 약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얼마큼 공감하며 얼마큼 치유할 수 있을지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극장으로 갔다.

모두에게 이로운 배리어프리

공연의 주제에 앞서 배리어프리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연극의 제목은 청소년극 <노랑의 보색은 검정이다>이다. 나는 여기에 한마디 추가하여 ‘배리어프리’ 청소년극 <노랑의 보색은 검정이다>로 바꾸고 싶다. 이 작품은 창작 과정에서부터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만들어졌다. 사전 해설 및 음성해설, 공연 후 터치투어 같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장치가 처음부터 충분히 논의되었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과 자막도 준비돼 있었다.

요즘 배리어프리 공연이 많지만, 장애 배우가 나오거나 장애를 다룬 연극이 아닌데도 이렇게 제작 초반부터 일찌감치 배리어프리를 바탕에 두고 창작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초반엔 배리어프리를 고려하지 않다가 작품이 거의 만들어진 후반부에, 넣어도 그만 안 넣어도 그만인 향신료를 추가하듯이 배리어프리 작업을 하는데, 이 작품은 초반부터 묵직하게 배리어프리를 전제로 잡고 갔다. 물론 배리어프리라는 것이 완벽할 수가 없고, 각각 전달하려는 목표가 다르기에, 따지기 시작하면 많은 이견이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이 연극이야말로 배리어프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었다.

특히 매우 감탄스러운 부분이 하나 있었다. 요즘 사전 해설을 진행하는 공연이 늘고 있고 그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이 연극은 본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두 명의 배우가 무대에서 개방형으로 직접 발화하는 형식이었다. 박아린 역의 김현재 배우가 이런 대사를 한다.

“이 이야기는 박아린의 D-15일부터 디데이(D-day)까지, 총 15일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무슨 디데이인지는, 공연이 시작되면 아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중 사전 음성해설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 말로 인해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극장 안에 있는 모든 관객은 ‘디데이’에 대한 궁금증이 배가되었다. 나는 요즘 음성해설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은 맞지만,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모두에게 이로운 효과를 낳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김현재 배우의 대사는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모든 관객은 디데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을 것이며, 공연에 더 집중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시작한 배리어프리가 모두를 위한 배리어프리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진짜 배리어프리다.

묵은 상처를 보듬기 위해

이제 작품 내용을 이야기해보자. 무대에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열여덟 살 박아린과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여덟 살 꼬마다. 두 사람은 같은 아파트 옆집에 살고 있다. 쌍둥이처럼 똑같은 구조의 방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다. 두 사람은 유일한 소통 창구이자 매우 위험한 창문을 통해 교감하기 시작한다. 감히 내 나름대로 이 연극의 핵심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동병상련’과 ‘공감’이다. 디데이를 세며 150일이나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아린과, 부모에게 사랑 대신 학대를 받는 자신을 투영해 이미 죽고 없는 병아리 ‘노랑’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꼬마. 꼬마가 먼저 아린의 방으로 건너왔을 때, 그저 이상한 아이라고만 생각했던 아린은 화를 내고 신경질적으로 꼬마를 쫓아냈다. 아린이 나중에 꼬마의 방으로 건너갔을 때 비로소 꼬마가 자신과 같은 폭력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고 왈칵 눈물을 쏟는다. 그 순간, 어느 관객의 뺨에도 공감이 흘렀다. 그들은 서로를 보듬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관계였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내가 받은 폭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왜 아플까. 나는 누구에게 어떠한 폭력을 당했을까. 따지고 보면 갑과 을로 구분되지 않는 관계가 없다. 심지어 차별을 없애자고 모인 사람들도, 위계질서를 없애자고 모인 사람들도, 약자를 위한다며 모인 사람들도 그 사이에 모두 갑을관계가 있다. 장애인들끼리 모여도, 소수자와 약자들끼리 모여도, 그 안에서 강자와 약자가 나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권력을 향한다. 본인이 권력자가 되거나 하다못해 권력자와 가까운 관계라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늘 약자였다. 손톱만한 권력이라도 잡아본 적이 없고, 누군가가 친한 척하고 싶을 만큼 영향력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그런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이따금 누군가로부터 어떠한 강요를 받으며 사는 것이기도 하다. 평생 갑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을로 사는 것이다. 인자한 척하는 갑질, 노골적인 갑질, 갑이 아닌 척하는 갑질, 갑인 줄 착각하는 갑질, 온갖 갑질이 다 있었다.

세상은 하나의 커다란 폭력 덩어리 같았다. 그 덩어리에 치여 점점 더 예민해지는 나에게 이 연극은 작은 손길이었다. 다정한 악수였고 따뜻한 포옹이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자신을 정확하고 정직하게 바라보고자 할 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습성이 있다. 묻어 두고 회피하기만 했던 묵은 상처들을 다시 꺼내고 복기하는 것이 쓰리고 아프더라도, 나 자신을 조금 더 정직하게 바라보기 위해 애쓰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흔들리는 지하철 꼭 그만큼 내 마음도 덜컹거렸다.

  • 노랑의 보색은 검정이다의 한 장면. 계란판이 다닥다닥 붙은 벽을 배경으로 한 공간에서 한 여성과 상자를 두 손에 든 청소년이 큰 몸짓을 하며 정면을 향하고 있다.
  • 노랑의 보색은 검정이다의 문자해설 스크린. 이 슬픔도 비참함도 그리고 가끔의 행복도 모두 내 모습인데 라고 써 있다.

노랑의 보색은 검정이다

임시극장 | 2022.7.15.~7.17. | 나온씨어터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 아동과 여성 청소년의 이야기로, 각각 사회와 구조적 폭력의 희생자로서의 개인을 다룬다. 학교폭력으로 인해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을 선택한 18세의 아린과, 가정폭력으로 인해 방 안에서 나오지 못하게 된 8세의 꼬마는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벽 너머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동시대의 소외된 존재들을 수면 위로 올리며 그 현실 너머에 있는 연대와 희망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제5회 페미니즘연극제 참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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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

저시력 시각장애 연극인. 2015년 1월 배리어프리 버전 뮤직드라마 <당신만이>를 통해 연극을 시작했다. 이후 장애인극단 다빈나오와 장애인문화예술 판을 거치며 꾸준히 공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6년 안은미컴퍼니와 함께한 퍼포먼스 공연 <안심댄스>는 이듬해인 2017년 유럽투어 공연을 하기도 했다. 0set 프로젝트, 쿵짝프로젝트, 래빗홀씨어터 등과 협업했다. 2022년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 ‘장애와 예술’ 프로덕션에서 연극 <소극장판-타지>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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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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