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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배우 × 이재은 안무가

인터뷰 숨 고르기, 오래 함께하기

  • 박진명 생각하는 바다 대표
  • 등록일 2022-09-28
  • 조회수5136

인터뷰

  • (왼쪽부터) 이재은 안무가, 김선영 배우

부산에서 장애를 가진 예술인이 창작하는 과정에서 일원이 되고, 연습이나 준비를 거쳐 무대에 서는 것은 아직도 귀한 일이다. 2021년 귀한 발표의 자리가 있다고 해서 보고 왔던 <안녕>도 그중 하나다. 부산문화재단 ‘2021 장애예술 쇼케이스-올과 결’에서 선보인 그 무대에 섰던 뇌병변장애를 가진 김선영 예술가와그 공연을 안무한 이재은 안무가를 인터뷰했다. 비슷한 질문에 대한 두 사람의 응답을 교차해서 읽어보면서, 척박한 지역 여건 속에서 장애를 수용하며 예술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떤 의미라도 읽히기를 기대하며 정리했다.

두 분의 예술관이 궁금하다. 예술을 하는 동기 중에 표현의 기쁨도 있고, 과정이나 결과물을 통해 인정받는 것일 수도 있다. 예술가나 기획자로 활동을 하게 되는 동기는 무엇인가?

김선영학창시절에 소외를 당했다. 긍정적이고 당당한 모습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 보니 집에서 할머니한테나 학교에서 끼를 드러내려고 했던 것 같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사람은 누구나 주인공이고 싶고 자기 가치와 존재를 인정받고 행복해지고 싶어 하지 않나. 사회로 나오면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학교 다닐 때와 달리 장애와 비장애를 특별히 구분 짓지 않아서 더 냉혹했다.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상처가 반복되는 것 같고, 그때마다 발버둥 치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자꾸 예술을 통해서 토해내려고 하는 것 같다. 상처를 주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이나 나처럼 상처를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며 마음을 어루만지는 예술을 하고 싶었다.

이재은20대까지는 무용을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여 신체표현을 해왔다. 그런데 30대로 넘어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몸의 움직임조차도 인간관계 안에서 더 성숙하고 변화하는 것 같아서 조금 더 인문학적으로 무용과 예술을 보려고 했던 것 같다. 무용을 직접 하는 나의 언어로 기획해야 전달력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직접 기획까지 나서게 되었다. 사실 기획자가 되겠다기보다는 ‘춤을 어떻게 나누지?’ ‘어떻게 해야 몸을 가진 누구나 다 무용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스스로 기획까지 하게 된 거다. 그냥 창작만 열심히 하는 것에 한계 같은 걸 느꼈다. 예술교육이나 워크숍 등을 통해서 전문가가 아니어도 함께하는 기회를 만들고, 무용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내 작업도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경로를 따라 예술활동을 해오고 있는지 궁금하다. 장르나 역할을 넓혀온 배경은 어떻게 되나?

김선영연극을 먼저 시작했고, 그다음에 무용과 퍼포먼스를 했다. 음반 준비도 하고 있고 그림도 그리고 있다. 욕심도 많고 열정도 많아 무엇이든 도전해보면서 한계를 계속 뛰어넘어 보고 싶다. 연극과 무용, 그림과 노래, 각각의 장르나 형식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의 느낌이 다 다르다. 그중에서도 연극은 대사와 동선이 정해져 있는 규칙이 있다면, 퍼포먼스는 즉흥적인 이끌림에 의지할 수 있어서 다른 것 같다. 자유롭고 틀에 갇히지 않아서 퍼포먼스가 조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재은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활동했을 때, 지금은 장애예술의 최전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케인앤무브먼트가 트러스트무용단에서 분화되기 전인 당시에도 이미 장애인들과 협업 공연이 있었고 나도 함께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워서 보조를 맞추는 정도였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장애인을 만날 기회도 없었고, 장애와 함께하는 것에 관해 교육받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멋모르고 따라 하다 보니 무용은 이런 일을 해야 하는구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것 같다. 다시 부산에 돌아와서는 내가 왜 장애인과 거리를 느꼈을까 돌아보게 되고, 좀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특수학교에 수업을 나갔다. 발달장애, 지적장애 아동·청소년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배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장애예술인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도 생겼고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다양한 작업을 해오면서 성장했다고 느낄 때는 언제였는가?

김선영2018년 부산국제연극제에 ‘10분 연극제’라는 시민참여 프로그램에 참가했었다. 당시 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극단 뻔데기에서 활동하던 때인데, 9시에 출근해서 사무도 하고 한 달 만에 준비하고 발표해야 했다. 동선도 외워야 하고 혼자서 모노드라마도 해야 하니 나에겐 엄청 큰 시험이었다. 무대에서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건 아닐까 걱정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예민해지기도 했는데, 새벽 서너 시까지 대사를 외우고 하다 보니 되긴 되었다. 어쨌든 10분을 완주하겠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는데, 끝날 때 박수를 받으면서 ‘내가 해냈구나’ 하는 느낌이 좋았다. (필자 주 : 김선영 배우는 이때 <어쩔 수 없이 비극 배우>라는 작품으로 은상을 받았다.) 같은 해에 이미 을숙도 시민연극제에서 <김종욱 찾기>란 작품으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을 때도 비로소 내가 얼마만큼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지를 느끼며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다짐했었다.

이재은부산 기획자들과 함께한 청년-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비 메이커즈’에서 부산의 공예 장인 네 분을 만나 리서치하고 워크숍도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때 불화장 권영관 선생님과 함께하면서 많은 공부가 되었다. 장인의 노동과 호흡에 관해 관심이 생겼고, 그 질문에 더 집중해서 교토아트센터 레지던스에 참여해 교토의 도예 장인들을 만나 <공예하는 몸>이라는 공연까지 만들게 되었다. 공연은 시간을 다루는 예술인데, 장인들에게 시간을 다루는 깊이나 자기 수련의 자세 같은 것을 많이 배웠다. 좋은 안료를 써서 1천 년을 바라보며 몇 년에 걸쳐 그림을 그리는 불화 장인을 보면서 그 정성과 시간성이 정말 감명 깊었고 지금까지 내 작업에 계속 영향을 주고 있어 그러한 관점의 작업을 시리즈로 이어오고 있다. 몸의 퍼포먼스를 넘어 영상·설치까지 표현 방법을 넓힌 계기가 될 정도로 크게 인식을 확장하게 되었다.

장애와 더불어 예술을 하다 보면 무기력해질 때도 있고 성장과 배움도 생길 것 같다.

김선영장애를 지닌 채 예술활동을 하다 보면 장애인이 장애인을 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의 실망이 더 컸다. 또 상대적으로 몸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를 가진 예술인은 솔로 파트나 비장애 예술인과 호흡을 맞추는 신이 있는 반면, 휠체어를 타거나 몸의 움직임에 제한이 있는 장애예술인은 비장애 예술인과 함께 주고받는 신이 부족하다.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자료를 찾아볼 수도 있을 텐데, 내가 가진 장애의 조건이 무대 위에서도 너무 쉽게 한계로 재현될 때 화가 난다. 그래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하는 편이다. 반대로 배우거나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기획자나 안무가가 정말 다양한 상상과 방법을 많이 연구하는 것을 보면서 참조하기도 한다. 한계를 넘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참 다양하구나 싶다.

이재은사실 장애예술 관련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부끄럽다. 아직 내세울 만한 성과를 낸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다지면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하는 입장이다. 팀을 꾸려 멤버도 생겼고 훈련하면서 어떤 길을 찾아보고 있는데, 협업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근데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소통의 과정이고, 너무 배경이 다른 삶을 살아왔으니 시간이 필요하다. 시각장애, 청각장애, 뇌병변장애 등 장애 유형이 다양해서 초반에는 소통하는 방법도 연구가 필요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서로 다른 장애까지 다 잘 알지는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은 함께한 지 3, 4년이 되어 서로에 대해서 많이 파악하기도 했고, 다행히 소통하는 데 큰 문제가 없어서 오해가 생겨도 풀어갈 수 있어서 아주 감사한 일이다. 연기를 하는 분, 시 쓰는 분, 악기 연주하는 분 등 각자 개성과 장기를 탐색해서 솔로 파트를 구성하기도 하면서 작업하는 과정이 스스로에게도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과정에서 오해가 덜 생기려면 조금 더 명료하게 나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도록 말하는 훈련도 하게 되고, 더 겸손해지고 감사함을 배우게 된다.

도시 규모에 비해 장애문화예술 관련 관심과 지원이 척박하다.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얼마나 응원을 받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김선영서울에는 장애예술단체도 많고 교육도 많아서 재능을 키우고 공연할 기회가 많아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은데, 부산은 그런 기회가 적다. 부산이 제2도시라고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교육이나 단체 활동하는 것에 지원이 많지 않다 보니 많이 사라지는 것 같다. 나 혼자 아티스트 나 혼자 예술이 되는 것 같아 좀 아쉽다. 활발히 활동하는 곳도 경성대학교 장애인무용단 품과 이재은 안무가가 있는 ‘에어리 무브먼트’가 거의 다인 것 같다.

이재은서울에서 7년 부산에서 7년 정도 활동해서 이제 어디가 낯설다 할 시기는 아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좋은 기회를 많이 만나서 부딪혀보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곳은 부산이다. 개인적으로는 부산에 와서 좋은 기회를 많이 얻었고, 서울에서보다 더 많은 걸 시도해볼 수 있었다. 뭔가 해볼 기회조차 없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라면 아무래도 동료가 많이 없다는 점이다. 인력 풀이 작고 작업의 다양성도 부족하고 외롭기도 하다. 다른 장르라도 함께하자고 나를 좀 구워삶아 주면 좋겠는데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하나둘 기회가 더해져서 좋은 파트너가 많이 생겼다.

앞으로 어떤 예술활동이나 작품을 하고 싶은가?

김선영그냥 나의 내면을 치유하는 사람 그리고 상대를 치유하고 공감하는 사람이고 싶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꼭 어떤 조건이 맞아야 장애인이 출연하는데, 어떤 배역이든 꾸준히 연기하는 배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내가 술집 주인을 연기하면 안 되나? 관계에 의한 편견,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벗어나서 연기하고 싶다. 나 스스로도 장애로 한계 짓지 않고 역할을 해보고 싶다. 꼭 신체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장애인이 많고 비장애인이 딱 한 사람일 때는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다.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그런 인식 자체를 깨트리고 싶다.

이재은어떤 작업이나 작품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그때 집중하며 오래 하고 싶다. 무용을 시작할 때 평생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오래 활동하는 선배들과 선생님을 보면 너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근데 시대가 너무 달라져서 오래 하려면 다른 형식을 받아들이거나 변화도 필요한 것 같다. 그냥 작품만 잘하면 되는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작품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하는 데다 내 독창성도 있어야 해서 고민이 많다.

‘2021 장애예술 쇼케이스-올과 결’ 홀딩,턴 <안녕>
(사진제공. 이재은 안무가)

김선영

부산경상대학교 방송엔터테이너 모델과를 졸업하고,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에서 연극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부산에서 극단 자유바다, 장애인극단 뻔데기, 울산 장애인극단 소나무에서 활동했다. 에어리 무브먼트가 주관한 <안녕>, 대구 장애인무용단 파릇하우스 초청작 <나의 꿈이자 희망이었던 구름이에게> 등에 참여했다. 2018년 을숙도시민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부산국제연극제 10분연극제에서 은상을 받았다. 경성대학교 장애인무용단 품 단원, 부산 웹드라마 크루 태네코디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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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안무가, 무용교육가, 기획자. 현재 ‘에어리 무브먼트’ 디렉터로 ‘움직임 즉흥잼’을 운영하고, 리서치 기반의 공연 창작과 장애예술을 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서울무용센터 레지던시를 하며 장인의 호흡과 시간, 로컬리티, 손의 감각과 인지 사이 계속되는 질문을 찾아가고 있다. 대표 안무작으로 <기술이 실패할 때> <공예하는 몸> <열린 귀, 닫힌 눈> 등이 있다.
텀블러 바로가기(링크)

박진명

문화기획자. 생각하는 바다 대표. 나와 주변의 삶에서 빈틈과 씨앗을 찾아 기획하고 기록하고 관계를 엮고자 한다. 『딸아이의 언어생활 탐구』(호밀밭, 2020)를 받아썼다. 부산에서 굳이 문화로 장애를 수렴하는 사람이 적어서 ‘장애·비장애 청소년 관계 맺기 문화예술교육’(2013), ‘장애문화기획워크숍’(2019~2020)을 진행했다.
motwjm@naver.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2022년 10월 (35호)

박진명

박진명 

문화기획자. 생각하는 바다 대표. 나와 주변의 삶에서 빈틈과 씨앗을 찾아 기획하고 기록하고 관계를 엮고자 한다. 『딸아이의 언어생활 탐구』(호밀밭, 2020)를 받아썼다.
motwjm@naver.com

상세내용

인터뷰

  • (왼쪽부터) 이재은 안무가, 김선영 배우

부산에서 장애를 가진 예술인이 창작하는 과정에서 일원이 되고, 연습이나 준비를 거쳐 무대에 서는 것은 아직도 귀한 일이다. 2021년 귀한 발표의 자리가 있다고 해서 보고 왔던 <안녕>도 그중 하나다. 부산문화재단 ‘2021 장애예술 쇼케이스-올과 결’에서 선보인 그 무대에 섰던 뇌병변장애를 가진 김선영 예술가와그 공연을 안무한 이재은 안무가를 인터뷰했다. 비슷한 질문에 대한 두 사람의 응답을 교차해서 읽어보면서, 척박한 지역 여건 속에서 장애를 수용하며 예술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떤 의미라도 읽히기를 기대하며 정리했다.

두 분의 예술관이 궁금하다. 예술을 하는 동기 중에 표현의 기쁨도 있고, 과정이나 결과물을 통해 인정받는 것일 수도 있다. 예술가나 기획자로 활동을 하게 되는 동기는 무엇인가?

김선영학창시절에 소외를 당했다. 긍정적이고 당당한 모습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 보니 집에서 할머니한테나 학교에서 끼를 드러내려고 했던 것 같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사람은 누구나 주인공이고 싶고 자기 가치와 존재를 인정받고 행복해지고 싶어 하지 않나. 사회로 나오면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학교 다닐 때와 달리 장애와 비장애를 특별히 구분 짓지 않아서 더 냉혹했다.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상처가 반복되는 것 같고, 그때마다 발버둥 치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자꾸 예술을 통해서 토해내려고 하는 것 같다. 상처를 주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이나 나처럼 상처를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며 마음을 어루만지는 예술을 하고 싶었다.

이재은20대까지는 무용을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여 신체표현을 해왔다. 그런데 30대로 넘어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몸의 움직임조차도 인간관계 안에서 더 성숙하고 변화하는 것 같아서 조금 더 인문학적으로 무용과 예술을 보려고 했던 것 같다. 무용을 직접 하는 나의 언어로 기획해야 전달력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직접 기획까지 나서게 되었다. 사실 기획자가 되겠다기보다는 ‘춤을 어떻게 나누지?’ ‘어떻게 해야 몸을 가진 누구나 다 무용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스스로 기획까지 하게 된 거다. 그냥 창작만 열심히 하는 것에 한계 같은 걸 느꼈다. 예술교육이나 워크숍 등을 통해서 전문가가 아니어도 함께하는 기회를 만들고, 무용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내 작업도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경로를 따라 예술활동을 해오고 있는지 궁금하다. 장르나 역할을 넓혀온 배경은 어떻게 되나?

김선영연극을 먼저 시작했고, 그다음에 무용과 퍼포먼스를 했다. 음반 준비도 하고 있고 그림도 그리고 있다. 욕심도 많고 열정도 많아 무엇이든 도전해보면서 한계를 계속 뛰어넘어 보고 싶다. 연극과 무용, 그림과 노래, 각각의 장르나 형식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의 느낌이 다 다르다. 그중에서도 연극은 대사와 동선이 정해져 있는 규칙이 있다면, 퍼포먼스는 즉흥적인 이끌림에 의지할 수 있어서 다른 것 같다. 자유롭고 틀에 갇히지 않아서 퍼포먼스가 조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재은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활동했을 때, 지금은 장애예술의 최전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케인앤무브먼트가 트러스트무용단에서 분화되기 전인 당시에도 이미 장애인들과 협업 공연이 있었고 나도 함께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워서 보조를 맞추는 정도였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장애인을 만날 기회도 없었고, 장애와 함께하는 것에 관해 교육받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멋모르고 따라 하다 보니 무용은 이런 일을 해야 하는구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것 같다. 다시 부산에 돌아와서는 내가 왜 장애인과 거리를 느꼈을까 돌아보게 되고, 좀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특수학교에 수업을 나갔다. 발달장애, 지적장애 아동·청소년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배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장애예술인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도 생겼고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다양한 작업을 해오면서 성장했다고 느낄 때는 언제였는가?

김선영2018년 부산국제연극제에 ‘10분 연극제’라는 시민참여 프로그램에 참가했었다. 당시 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극단 뻔데기에서 활동하던 때인데, 9시에 출근해서 사무도 하고 한 달 만에 준비하고 발표해야 했다. 동선도 외워야 하고 혼자서 모노드라마도 해야 하니 나에겐 엄청 큰 시험이었다. 무대에서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건 아닐까 걱정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예민해지기도 했는데, 새벽 서너 시까지 대사를 외우고 하다 보니 되긴 되었다. 어쨌든 10분을 완주하겠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는데, 끝날 때 박수를 받으면서 ‘내가 해냈구나’ 하는 느낌이 좋았다. (필자 주 : 김선영 배우는 이때 <어쩔 수 없이 비극 배우>라는 작품으로 은상을 받았다.) 같은 해에 이미 을숙도 시민연극제에서 <김종욱 찾기>란 작품으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을 때도 비로소 내가 얼마만큼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지를 느끼며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다짐했었다.

이재은부산 기획자들과 함께한 청년-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비 메이커즈’에서 부산의 공예 장인 네 분을 만나 리서치하고 워크숍도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때 불화장 권영관 선생님과 함께하면서 많은 공부가 되었다. 장인의 노동과 호흡에 관해 관심이 생겼고, 그 질문에 더 집중해서 교토아트센터 레지던스에 참여해 교토의 도예 장인들을 만나 <공예하는 몸>이라는 공연까지 만들게 되었다. 공연은 시간을 다루는 예술인데, 장인들에게 시간을 다루는 깊이나 자기 수련의 자세 같은 것을 많이 배웠다. 좋은 안료를 써서 1천 년을 바라보며 몇 년에 걸쳐 그림을 그리는 불화 장인을 보면서 그 정성과 시간성이 정말 감명 깊었고 지금까지 내 작업에 계속 영향을 주고 있어 그러한 관점의 작업을 시리즈로 이어오고 있다. 몸의 퍼포먼스를 넘어 영상·설치까지 표현 방법을 넓힌 계기가 될 정도로 크게 인식을 확장하게 되었다.

장애와 더불어 예술을 하다 보면 무기력해질 때도 있고 성장과 배움도 생길 것 같다.

김선영장애를 지닌 채 예술활동을 하다 보면 장애인이 장애인을 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의 실망이 더 컸다. 또 상대적으로 몸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를 가진 예술인은 솔로 파트나 비장애 예술인과 호흡을 맞추는 신이 있는 반면, 휠체어를 타거나 몸의 움직임에 제한이 있는 장애예술인은 비장애 예술인과 함께 주고받는 신이 부족하다.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자료를 찾아볼 수도 있을 텐데, 내가 가진 장애의 조건이 무대 위에서도 너무 쉽게 한계로 재현될 때 화가 난다. 그래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하는 편이다. 반대로 배우거나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기획자나 안무가가 정말 다양한 상상과 방법을 많이 연구하는 것을 보면서 참조하기도 한다. 한계를 넘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참 다양하구나 싶다.

이재은사실 장애예술 관련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부끄럽다. 아직 내세울 만한 성과를 낸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다지면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하는 입장이다. 팀을 꾸려 멤버도 생겼고 훈련하면서 어떤 길을 찾아보고 있는데, 협업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근데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소통의 과정이고, 너무 배경이 다른 삶을 살아왔으니 시간이 필요하다. 시각장애, 청각장애, 뇌병변장애 등 장애 유형이 다양해서 초반에는 소통하는 방법도 연구가 필요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서로 다른 장애까지 다 잘 알지는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은 함께한 지 3, 4년이 되어 서로에 대해서 많이 파악하기도 했고, 다행히 소통하는 데 큰 문제가 없어서 오해가 생겨도 풀어갈 수 있어서 아주 감사한 일이다. 연기를 하는 분, 시 쓰는 분, 악기 연주하는 분 등 각자 개성과 장기를 탐색해서 솔로 파트를 구성하기도 하면서 작업하는 과정이 스스로에게도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과정에서 오해가 덜 생기려면 조금 더 명료하게 나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도록 말하는 훈련도 하게 되고, 더 겸손해지고 감사함을 배우게 된다.

도시 규모에 비해 장애문화예술 관련 관심과 지원이 척박하다.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얼마나 응원을 받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김선영서울에는 장애예술단체도 많고 교육도 많아서 재능을 키우고 공연할 기회가 많아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은데, 부산은 그런 기회가 적다. 부산이 제2도시라고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교육이나 단체 활동하는 것에 지원이 많지 않다 보니 많이 사라지는 것 같다. 나 혼자 아티스트 나 혼자 예술이 되는 것 같아 좀 아쉽다. 활발히 활동하는 곳도 경성대학교 장애인무용단 품과 이재은 안무가가 있는 ‘에어리 무브먼트’가 거의 다인 것 같다.

이재은서울에서 7년 부산에서 7년 정도 활동해서 이제 어디가 낯설다 할 시기는 아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좋은 기회를 많이 만나서 부딪혀보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곳은 부산이다. 개인적으로는 부산에 와서 좋은 기회를 많이 얻었고, 서울에서보다 더 많은 걸 시도해볼 수 있었다. 뭔가 해볼 기회조차 없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라면 아무래도 동료가 많이 없다는 점이다. 인력 풀이 작고 작업의 다양성도 부족하고 외롭기도 하다. 다른 장르라도 함께하자고 나를 좀 구워삶아 주면 좋겠는데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하나둘 기회가 더해져서 좋은 파트너가 많이 생겼다.

앞으로 어떤 예술활동이나 작품을 하고 싶은가?

김선영그냥 나의 내면을 치유하는 사람 그리고 상대를 치유하고 공감하는 사람이고 싶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꼭 어떤 조건이 맞아야 장애인이 출연하는데, 어떤 배역이든 꾸준히 연기하는 배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내가 술집 주인을 연기하면 안 되나? 관계에 의한 편견,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벗어나서 연기하고 싶다. 나 스스로도 장애로 한계 짓지 않고 역할을 해보고 싶다. 꼭 신체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장애인이 많고 비장애인이 딱 한 사람일 때는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다.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그런 인식 자체를 깨트리고 싶다.

이재은어떤 작업이나 작품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그때 집중하며 오래 하고 싶다. 무용을 시작할 때 평생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오래 활동하는 선배들과 선생님을 보면 너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근데 시대가 너무 달라져서 오래 하려면 다른 형식을 받아들이거나 변화도 필요한 것 같다. 그냥 작품만 잘하면 되는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작품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하는 데다 내 독창성도 있어야 해서 고민이 많다.

‘2021 장애예술 쇼케이스-올과 결’ 홀딩,턴 <안녕>
(사진제공. 이재은 안무가)

김선영

부산경상대학교 방송엔터테이너 모델과를 졸업하고,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에서 연극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부산에서 극단 자유바다, 장애인극단 뻔데기, 울산 장애인극단 소나무에서 활동했다. 에어리 무브먼트가 주관한 <안녕>, 대구 장애인무용단 파릇하우스 초청작 <나의 꿈이자 희망이었던 구름이에게> 등에 참여했다. 2018년 을숙도시민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부산국제연극제 10분연극제에서 은상을 받았다. 경성대학교 장애인무용단 품 단원, 부산 웹드라마 크루 태네코디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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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안무가, 무용교육가, 기획자. 현재 ‘에어리 무브먼트’ 디렉터로 ‘움직임 즉흥잼’을 운영하고, 리서치 기반의 공연 창작과 장애예술을 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서울무용센터 레지던시를 하며 장인의 호흡과 시간, 로컬리티, 손의 감각과 인지 사이 계속되는 질문을 찾아가고 있다. 대표 안무작으로 <기술이 실패할 때> <공예하는 몸> <열린 귀, 닫힌 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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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명

문화기획자. 생각하는 바다 대표. 나와 주변의 삶에서 빈틈과 씨앗을 찾아 기획하고 기록하고 관계를 엮고자 한다. 『딸아이의 언어생활 탐구』(호밀밭, 2020)를 받아썼다. 부산에서 굳이 문화로 장애를 수렴하는 사람이 적어서 ‘장애·비장애 청소년 관계 맺기 문화예술교육’(2013), ‘장애문화기획워크숍’(2019~2020)을 진행했다.
motwjm@naver.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2022년 10월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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