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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 <등장인물>

리뷰 극장 문을 나서는 사람들

  • 양근애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2-12-28
  • 조회수820

리뷰

  • 어두운 공연장 안에 수십개의 책상과 의자가 원을 그리며 놓여있다. 뒤쪽 큰 스크린과 무대 가에 있는 프롬프터에는, 공연장 밖을 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이 담긴 영상이 동시에 보인다.

극장 문이 열리고 관객이 입장한다. 사위가 어두워지고 소음이 잦아든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온다. 그리고 ‘누군가’가 등장한다. 연극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무대에 누군가 미리 나와 있는 연극도 있다. 그러면 관객은 그를 의식하면서 자리에 앉는다. 객석에 불이 꺼지고 나면 누군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누군가’를 우리는 등장인물이라고 불러왔다. 방법적 차이가 있겠지만 조명이 등장인물을 비출 때 비로소 연극이 시작된다는 것은 일종의 규칙이다.

<등장인물>은 이와 같은 연극의 문법을 슬쩍 바꾼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 누군가를 가리키며 시작한 연극은 이미 누군가를 등장시켜 놓았다. 그들은 또 다른 등장인물, 즉 ‘일상에서 퇴장한’ 관객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을 따로 조명하지는 않는다. ‘등장인물’로 호명된 적 없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람들과 그들을 보러 온 사람들. 모두 무대에 함께 있다. 위계도 구분도 없이, 다만 조금은 낯설고 어색해하면서.

리듬의 무늬와 감응

<등장인물>의 인물들은 ‘이야기’로 연극을 짓지 않는다. 그들은 표현한다.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린다. 그들은 그럴듯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표현하는 주체로서 무대에 있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내력을 이야기로 만들 방법도 얼마든지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언어를 빌려야 했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언어로 대신 말해지는 순간 나로부터 달아난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등장인물>은 등장인물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자기를 표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들인다.

그들은 말하는 몸이다. 누군가 높은음을 내면서 노래하면 다른 이가 허밍으로 낮은음을 보태 화음을 만들어낸다. 누군가 피아노 반주를 하고 누군가 이것을 레코딩한다. 필요하면 다시 부른다. 또 다른 이의 웃음이 노래에 달라붙는다. 그 미소를 받은 이가 몸을 들썩이면서 리듬을 만들어낸다. 노래의 부피가 점점 커진다. 악보로 다 담을 수 없는 생생한 소리가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관객이 박수로 마음을 표현한다. 이번엔 누군가 먼저 발을 구르기 시작한다. 한 동작 끝에 구령 붙이는 것을 약속으로, 어떤 사람이 움직이면 다른 사람들이 그 움직임을 따라 하며 춤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앉아서 다음에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리고 이내 자리를 이동하면서 서로를 연결하여 하나의 원을 만든다. 말하는 몸들이 그리는 리듬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박자를 타며 손뼉을 부딪는 소리, 들썩이는 다양한 몸들.

바닥에는 등장인물들이 직접 그린 드로잉이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다. 그 그림은 매끈한 동그라미가 아니라 비뚤배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곡선과 그 선 바깥으로 이탈하는 낙서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이 그린 그림 위에 출연하여 자신의 리듬으로 언어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관객이 감응한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감응’은 논리적 인식 이상의 힘이며 세계의 변화를 지각하는 능력이다.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

<등장인물>의 출연자들은 노들장애인야학의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에 고용된 노동자로 ‘탈탈탈’ 팀 멤버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장애인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준비하고 있다. <등장인물>에서 진행된 공연은 이들이 오랫동안 준비한 예술노동의 결과물이다. ‘예술’과 ‘노동’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하는 말로 여겨지고, 예술가의 노동은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돼왔다. 그러나 예술가의 작업은 시간과 능력과 에너지를 들인 노동이며, 일종의 직업 활동에 속한다. 예술이 반자본주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면, 그 역시 노동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장애인 역시 사회구성원이므로 장애인의 예술은 사회적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예술은 노동을 통해 의미를 발생시킨다. 장애인 당사자의 예술 표현은 그 자체로 사회적 메시지가 될 수 있고, 숙련도와 기예로 매겨지는 예술의 의미에 균열을 낸다는 점에서 미학적 정치성을 품고 있다.

<등장인물>은 “먼저 등장한 사람들이 나가고 다음에 등장한 사람들도 나가면 공연이 종료된다.”라는 안내 음성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무대에서 먼저 퇴장한 사람들이 극장 문을 열고 나가 세상에 ‘등장’하는 모습이 영사되면서 비로소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 이들이 극장에 등장인물로 나온 이유도 그때 완전히 이해되었다. 극장 바깥의 세상에 그들이 등장할 때 오늘의 관객은 어떤 얼굴로 그들 옆에 있을지 궁금해졌다. 극장 안에서 본 그들의 모습은 포스터에 그려진 여러 개의 얼굴처럼 다 달랐다. 누군가는 신나 보였고 누군가는 피곤해 보였고 누군가는 에너지 넘쳤고 누군가는 부끄러워했다. 탈시설 후 지역사회로 나온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이웃과 동료로 맞이해줄 사람들이다. 상처와 실망과 기쁨과 즐거움과 고단함을 주고받으면서 이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시민들.

다시 극장에 불이 밝혀지고 관객은 머물러 있을 수도 있고 퇴장할 수도 있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머물러 있을 수도 퇴장할 수도 없는 기분으로, 광화문을 향해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내내 바라보았다. 언젠가 읽은 소설의 한 대목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행복을 택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혼자서 행복하다면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 어두운 공연장 안, 수십개의 책상과 의자가 바닥에 그려진 원을 따라, 혹은 따로 무리지어 놓여있고 몇몇 사람들이 앉아있다. 그 바깥으로 관객이 앉아있고 큰 스크린과 모니터와 화이트보드가 설치돼 있다.
  • 어두운 공연장 안, 두 사람이 마주보고 양 손을 맞잡아 위아래로 펼친 자세로 가운데에 서 있고, 몇 사람이 이를 둘러싸고 의자에 앉은 채 지켜보고 있다.
등장인물

등장인물

서울시극단 | 2022.11.16. ~ 11.20. | 세종S씨어터

‘등장인물’은 노들장애인야학 ‘탈탈탈’에 속한 노동자들로, 가려진 곳인 장애인 거주시설에 오래 살다가 지역사회로 나와, 또는 나올 준비를 하며 자신의 삶을 하나씩 창작하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이다. ‘등장인물’이 자유롭게 전하는 노래, 움직임, 춤으로 눈앞에서 만나고 함께하는 등장인물의 이야기이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극단의 창작프로젝트 ‘시극단의 시선’의 일환으로 선보였으며, 신재 연출(0set 프로젝트)이 구성하고 연출했다.

공연정보 바로가기(링크)

양근애

연극평론가,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후’의 연극, 달라진 세계』(2020)를 썼다.
rootsfly@hanmail.net

사진 제공. 서울시극단

2023년 1월 (38호)

상세내용

리뷰

  • 어두운 공연장 안에 수십개의 책상과 의자가 원을 그리며 놓여있다. 뒤쪽 큰 스크린과 무대 가에 있는 프롬프터에는, 공연장 밖을 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이 담긴 영상이 동시에 보인다.

극장 문이 열리고 관객이 입장한다. 사위가 어두워지고 소음이 잦아든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온다. 그리고 ‘누군가’가 등장한다. 연극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무대에 누군가 미리 나와 있는 연극도 있다. 그러면 관객은 그를 의식하면서 자리에 앉는다. 객석에 불이 꺼지고 나면 누군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누군가’를 우리는 등장인물이라고 불러왔다. 방법적 차이가 있겠지만 조명이 등장인물을 비출 때 비로소 연극이 시작된다는 것은 일종의 규칙이다.

<등장인물>은 이와 같은 연극의 문법을 슬쩍 바꾼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 누군가를 가리키며 시작한 연극은 이미 누군가를 등장시켜 놓았다. 그들은 또 다른 등장인물, 즉 ‘일상에서 퇴장한’ 관객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을 따로 조명하지는 않는다. ‘등장인물’로 호명된 적 없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람들과 그들을 보러 온 사람들. 모두 무대에 함께 있다. 위계도 구분도 없이, 다만 조금은 낯설고 어색해하면서.

리듬의 무늬와 감응

<등장인물>의 인물들은 ‘이야기’로 연극을 짓지 않는다. 그들은 표현한다.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린다. 그들은 그럴듯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표현하는 주체로서 무대에 있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내력을 이야기로 만들 방법도 얼마든지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언어를 빌려야 했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언어로 대신 말해지는 순간 나로부터 달아난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등장인물>은 등장인물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자기를 표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들인다.

그들은 말하는 몸이다. 누군가 높은음을 내면서 노래하면 다른 이가 허밍으로 낮은음을 보태 화음을 만들어낸다. 누군가 피아노 반주를 하고 누군가 이것을 레코딩한다. 필요하면 다시 부른다. 또 다른 이의 웃음이 노래에 달라붙는다. 그 미소를 받은 이가 몸을 들썩이면서 리듬을 만들어낸다. 노래의 부피가 점점 커진다. 악보로 다 담을 수 없는 생생한 소리가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관객이 박수로 마음을 표현한다. 이번엔 누군가 먼저 발을 구르기 시작한다. 한 동작 끝에 구령 붙이는 것을 약속으로, 어떤 사람이 움직이면 다른 사람들이 그 움직임을 따라 하며 춤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앉아서 다음에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리고 이내 자리를 이동하면서 서로를 연결하여 하나의 원을 만든다. 말하는 몸들이 그리는 리듬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박자를 타며 손뼉을 부딪는 소리, 들썩이는 다양한 몸들.

바닥에는 등장인물들이 직접 그린 드로잉이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다. 그 그림은 매끈한 동그라미가 아니라 비뚤배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곡선과 그 선 바깥으로 이탈하는 낙서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이 그린 그림 위에 출연하여 자신의 리듬으로 언어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관객이 감응한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감응’은 논리적 인식 이상의 힘이며 세계의 변화를 지각하는 능력이다.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

<등장인물>의 출연자들은 노들장애인야학의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에 고용된 노동자로 ‘탈탈탈’ 팀 멤버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장애인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준비하고 있다. <등장인물>에서 진행된 공연은 이들이 오랫동안 준비한 예술노동의 결과물이다. ‘예술’과 ‘노동’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하는 말로 여겨지고, 예술가의 노동은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돼왔다. 그러나 예술가의 작업은 시간과 능력과 에너지를 들인 노동이며, 일종의 직업 활동에 속한다. 예술이 반자본주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면, 그 역시 노동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장애인 역시 사회구성원이므로 장애인의 예술은 사회적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예술은 노동을 통해 의미를 발생시킨다. 장애인 당사자의 예술 표현은 그 자체로 사회적 메시지가 될 수 있고, 숙련도와 기예로 매겨지는 예술의 의미에 균열을 낸다는 점에서 미학적 정치성을 품고 있다.

<등장인물>은 “먼저 등장한 사람들이 나가고 다음에 등장한 사람들도 나가면 공연이 종료된다.”라는 안내 음성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무대에서 먼저 퇴장한 사람들이 극장 문을 열고 나가 세상에 ‘등장’하는 모습이 영사되면서 비로소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 이들이 극장에 등장인물로 나온 이유도 그때 완전히 이해되었다. 극장 바깥의 세상에 그들이 등장할 때 오늘의 관객은 어떤 얼굴로 그들 옆에 있을지 궁금해졌다. 극장 안에서 본 그들의 모습은 포스터에 그려진 여러 개의 얼굴처럼 다 달랐다. 누군가는 신나 보였고 누군가는 피곤해 보였고 누군가는 에너지 넘쳤고 누군가는 부끄러워했다. 탈시설 후 지역사회로 나온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이웃과 동료로 맞이해줄 사람들이다. 상처와 실망과 기쁨과 즐거움과 고단함을 주고받으면서 이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시민들.

다시 극장에 불이 밝혀지고 관객은 머물러 있을 수도 있고 퇴장할 수도 있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머물러 있을 수도 퇴장할 수도 없는 기분으로, 광화문을 향해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내내 바라보았다. 언젠가 읽은 소설의 한 대목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행복을 택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혼자서 행복하다면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 어두운 공연장 안, 수십개의 책상과 의자가 바닥에 그려진 원을 따라, 혹은 따로 무리지어 놓여있고 몇몇 사람들이 앉아있다. 그 바깥으로 관객이 앉아있고 큰 스크린과 모니터와 화이트보드가 설치돼 있다.
  • 어두운 공연장 안, 두 사람이 마주보고 양 손을 맞잡아 위아래로 펼친 자세로 가운데에 서 있고, 몇 사람이 이를 둘러싸고 의자에 앉은 채 지켜보고 있다.
등장인물

등장인물

서울시극단 | 2022.11.16. ~ 11.20. | 세종S씨어터

‘등장인물’은 노들장애인야학 ‘탈탈탈’에 속한 노동자들로, 가려진 곳인 장애인 거주시설에 오래 살다가 지역사회로 나와, 또는 나올 준비를 하며 자신의 삶을 하나씩 창작하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이다. ‘등장인물’이 자유롭게 전하는 노래, 움직임, 춤으로 눈앞에서 만나고 함께하는 등장인물의 이야기이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극단의 창작프로젝트 ‘시극단의 시선’의 일환으로 선보였으며, 신재 연출(0set 프로젝트)이 구성하고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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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애

연극평론가,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후’의 연극, 달라진 세계』(2020)를 썼다.
rootsfly@hanmail.net

사진 제공. 서울시극단

2023년 1월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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