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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빈 소리꾼

인터뷰 소리 향한 일편단정, 곧은 마음은 원형이정

  • 박유미 미술작가
  • 등록일 2022-12-28
  • 조회수797

인터뷰

가을걷이가 끝난 작은 밭두렁 위에 서면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그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섰다. 짧은 겨울 해가 메마른 나뭇가지 사이에 걸리는 것을 보며 지는 해가 슬프다고 했다. 그리고 긴 숨을 내뱉듯 소리를 했다. 부채는 허공을 가르며 너울댔고 두루마기 자락은 흰나비처럼 곱게 날갯짓했다. 소리는 서글프다가도 경건해지고 휘몰아치다가도 아득해졌다. 푸르고 맑은 하늘을 지향하는 나선형의 소리를 한참이나 듣고 보고 느꼈다. 소리꾼 장성빈과의 첫 만남이었다.

천생 소리꾼의 일상

이달 초 서울에 있는 민속극장 풍류에서 <수궁가> 완창 발표회를 처음 가졌다. 소회가 어떤가.

스승이신 김영자 명창께 정광수제 <수궁가>를 사사했다. 두세 시간이 걸리는 완창 발표회인데, 전날까지도 호흡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고민이 많았다. 첫 완창이라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가사는 잊어버리지 않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밥 먹고 채비해서 자전거 타고 여기 연습실에 온다. 이 공간이 없었을 때는 연습할 때마다 항상 민원이 신경 쓰였는데, 여기 오고부터는 걱정 없이 마음껏 소리를 할 수 있다. 여기가 집보다 더 좋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큰외삼촌께 부탁해 ‘예성소’라는 이름도 받았다. 예술의 소리라는 뜻인데, 언젠가 멋진 현판도 만들어 걸고 싶다. 여기서는 계속 연습만 한다. 연습 외에 하는 일은 음악 감상, 가사나 악보 정리 정도다. 지금은 겨울이라 일찍 집에 가지만, 여름에는 자고 갈 때도 있다.

국악 외에는 주로 어떤 음악을 즐기는가. 혹시 또래 친구들이 즐겨 듣는 아이돌 음악도 좋아하나.

아이돌 음악보다는 1970년대, 1980년대 음악을 좋아한다. 특히 가수 김광석 님의 음악을 즐겨 듣는데 그중에서도 <이등병의 편지>를 제일 좋아한다. 요즘에는 창작국악도 많이 생겨서 이런 발라드 곡을 가야금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감성이 대단히 풍부한 것 같다.

늘 이렇게 살고 있다. 영감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시를 읊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내 상황을 창작 판소리로 만들기도 한다. “장성빈이가 뭣이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즉흥적으로 하는 거다. 그러다 이걸 악보로 만들기도 한다.

장성빈은 갑자기 떠오르는 시가 있다며, 성주 출신 시인 문인수의 <여름밤>을 읊었다. “가마솥 가득 푹 삶긴 더위, / 솥검정 같은 이 더위를 반짝반짝 먹고 있다” 한 자 한 자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장성빈의 시 낭송은 마치 노래하는 듯했다.

장성빈의 운명, 천명, 그리고 소명

소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즐거운 생활’ 교과서에 <남생아 놀아라>라는 전래동요가 있었다. 선생님께서 내가 이 노래를 곧잘 부른다며 국악을 해보라고 하셔서 집 앞에 있는 국악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거기서 처음 배운 게 <흥부가>였다. 국악학원 선생님이 소리를 잘하면 명창이 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도 명창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수많은 수상 경력과 무대 경력이 명창을 꿈꾸는 소리꾼 장성빈의 노력을 증명하는 듯하다. 그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나.

힘들지만 포기하기 싫었다. 소리는 내게 마치 운명, 천명과도 같다. 누가 나한테 “소리 하지 마” 하면 그때부터 온몸에 병이 나는 것 같았다. 최근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잠시 소리를 쉬어야 했을 때도 그랬다. 이대로 소리를 못 하게 될까 봐 겁이 나서 마음에 병이 생겼다. 그랬더니 몸도 아프더라. 다시 소리를 하니 금세 나았다.

장성빈의 운명, 판소리의 매력은 무엇인가.

판소리는 ‘음화(音畵)’ 즉, 소리로 그려낸 그림이다. 여러 가지 화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이야기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
<수궁가> 중 ‘범피중류’인데,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 풍경과 바닷속 풍경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이걸 부르면 바닷속 풍경이 그림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정말 멋진 곡이다. 일상에서 소통이 안 되는 것도 소리로는 다 표현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판소리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그 안에는 지금, 우리 시대가 다 있다. 가령, <심청가>와 <춘향가>, <수궁가> 안에는 현대인의 고단한 삶이 재미있고 통쾌하게 담겨있다. 특히 <춘향가>와 <수궁가>에는 억울한 사람, 희생당하는 사람, 약자의 이야기가 들어있어 더 공감이 간다. <적벽가>를 보면 우리나라 역사가 다 보이는 것 같다. <흥부가> 역시 우리 시대의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결국 다 우리의 이야기다.

연습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발음과 발성이다. 발음이 틀리면 발성이 안 되고 발성이 잘못되면 발음이 제대로 안 된다. 결국 발음과 발성이 하나인 셈이다. 발성은 호흡과 자세에서 나온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항상 어려운 마음으로 소리를 해야 한다. 소리를 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정말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소리를 냈는데, 책임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고민이 깊어진다.

연습할 때는 누구보다 치열하지만, 무대 위의 장성빈은 굉장히 여유로워 보인다.

사실 무대에 서기 전에 얼마나 떨리는지 모른다. 이번 완창할 때도 청심환을 먹고 올라갔다. 나는 한 사람 앞에서 소리를 해도 벌벌 떠는 사람이다. 늘 연습이 부족한 것 같고 준비가 덜 된 것만 같다. 실수할까 봐 항상 조마조마하다. 그래도 막상 무대에 올라가서 소리를 시작하면 서서히 긴장감이 풀어지기는 한다. 그때부터 마음 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움직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언제인가.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대회 선수단 입촌식에서 공연할 때였다. 모두 춤추고 즐겁게 어울리는데, 북한 선수들만 가만히 있더라. 그런데 나중에 그중 한 분이 와서 내가 부른 아리랑이 너무 좋았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내가 더 고마웠다. 언젠가 자유롭게 남북을 오가며 소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분을 다시 팬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소리를 할 때 장성빈은 비로소 행복하다. 혹독한 연습을 할 때도, 새롭게 어려운 곡을 배울 때도, 벌벌 떨며 무대에 설 때도 소리와 함께하기에 그는 행복하다. 그중에서도 장성빈이 가장 좋아하는 건 소리를 깨닫는 순간이다. 잘 안 되는 부분의 문제를 분석해 마침내 해결할 때, 그는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간다.

  • 소리꾼 장성빈
  • 소리꾼 장성빈
  • 소리꾼 장성빈

인간 장성빈, 소리꾼 장성빈

쉴 때는 무엇을 하는가.

태블릿으로 악보를 만들거나 창작할 소리를 생각한다.

소리를 떠나 온전히 쉴 때는 없는 것인가.

인간 장성빈이 곧 소리꾼 장성빈이다. 쉴 때도 자연스럽게 계속 소리를 생각하게 된다. 요즘에는 아리랑에 빠져있다. 흔히들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이렇게 3대 아리랑만 아는데, 사실 지역마다 매우 많다. 특히 경상도에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성주아리랑보존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구에 가면 <대구아리랑>, 문경에 가면 <문경아리랑> 요즘엔 어디를 가도 그 지방 아리랑이 생각난다.

‘장성빈TV’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공연이나 연습 영상 외에도 일상적인 콘텐츠들이 많이 있어 흥미롭다. 채널을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서울의 구립용산장애인복지관에서 진행한 크리에이터 미디어교육을 어머니와 함께 듣고 시작하게 됐다. 우리 소리를 알리고 소리꾼 장성빈을 당당히 드러내고 싶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애는 그저 불편함일 뿐이라고, 우리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요즘에는 많이 못 했지만 계속 꾸준히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생각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 <적벽가>를 배우고 있다. 흔히 <적벽가>는 남성적이고 씩씩한 소리라고들 하는데, 공부하다 보니 그보다 아프고 슬픈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열심히 해서 언젠가 <적벽가>도 완창하고 싶다. 물론 이번에 공연한 <수궁가>도 더 많이 연습해서 다시 완창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각 지역 아리랑의 흥을 한자리에 모아 펼치는 아리랑 콘서트도 해보고 싶다.

어떤 소리꾼이 되고 싶은가.

수많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천의 얼굴을 가진 소리꾼이 되고 싶다. 또 아쟁, 가야금, 거문고도 배워서 종합예술인으로 거듭나고 싶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소리를 할 것이다. 그저 열심히 소리를 하고 열심히 우리 음악을 사랑하고, 더 널리 국악을 알릴 것이다.

  • 제3회 서울아리랑페스티벌 아리랑경연대회 장성빈의 공연 모습.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붉은색 가슴띠를 둘렀다. 흰색 천을 든 오른손과 왼손을 각 앞쪽으로 뻗으며 소리를 하고 있다.

    대상을 수상한 ‘제3회 서울아리랑페스티벌 아리랑경연대회’(2015)

  • 수궁가 완창 발표회 모습. 여러 종류의 나뭇가지가 그려진 병풍이 세워져 있고 바닥에 화문석이 깔려 있는 무대. 왼편에 북을 잡은 고수가 있고 그 옆에는 소반에 작은 주전자와 찻잔이 놓여 있다. 오른편에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장성빈이 자리에 앉아 소리를 하고 있다.

    민속극장 풍류에서 가진 <수궁가> 완창 발표회(2022.12.1.)

장성빈

국악인. 소리꾼. 전주예술중·고등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고, 원광디지털대학교 전통공연예술학과에서 판소리를 전공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교사의 권유로 판소리에 입문해 16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2016년 ‘올해의 장애인상(대통령상)’과 2022년 제20회 무안 전국 승달국악대제전에서 대통령상(장애인부 판소리 부문)을 수상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인 김영자 명창에게 <수궁가>를 사사했다. 2022년 12월 <장성빈 판소리 완창 발표회 – 수궁가> 무대에 올랐다.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링크)

박유미

설치와 영상을 중심으로 작은 서사에 주목하는 미술작가. 2018년 개인전 《바다에서 만날까》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4년 아르코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마로니에 다방’을 기획했다. 글과 영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병행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찔레꽃>을 연출했다.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 ‘효창서담’을 운영 중이다.
gomako1983@gmail.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이근영 사진작가 studioowau@naver.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 제공. 장성빈

2023년 1월 (38호)

상세내용

인터뷰

가을걷이가 끝난 작은 밭두렁 위에 서면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그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섰다. 짧은 겨울 해가 메마른 나뭇가지 사이에 걸리는 것을 보며 지는 해가 슬프다고 했다. 그리고 긴 숨을 내뱉듯 소리를 했다. 부채는 허공을 가르며 너울댔고 두루마기 자락은 흰나비처럼 곱게 날갯짓했다. 소리는 서글프다가도 경건해지고 휘몰아치다가도 아득해졌다. 푸르고 맑은 하늘을 지향하는 나선형의 소리를 한참이나 듣고 보고 느꼈다. 소리꾼 장성빈과의 첫 만남이었다.

천생 소리꾼의 일상

이달 초 서울에 있는 민속극장 풍류에서 <수궁가> 완창 발표회를 처음 가졌다. 소회가 어떤가.

스승이신 김영자 명창께 정광수제 <수궁가>를 사사했다. 두세 시간이 걸리는 완창 발표회인데, 전날까지도 호흡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고민이 많았다. 첫 완창이라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가사는 잊어버리지 않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밥 먹고 채비해서 자전거 타고 여기 연습실에 온다. 이 공간이 없었을 때는 연습할 때마다 항상 민원이 신경 쓰였는데, 여기 오고부터는 걱정 없이 마음껏 소리를 할 수 있다. 여기가 집보다 더 좋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큰외삼촌께 부탁해 ‘예성소’라는 이름도 받았다. 예술의 소리라는 뜻인데, 언젠가 멋진 현판도 만들어 걸고 싶다. 여기서는 계속 연습만 한다. 연습 외에 하는 일은 음악 감상, 가사나 악보 정리 정도다. 지금은 겨울이라 일찍 집에 가지만, 여름에는 자고 갈 때도 있다.

국악 외에는 주로 어떤 음악을 즐기는가. 혹시 또래 친구들이 즐겨 듣는 아이돌 음악도 좋아하나.

아이돌 음악보다는 1970년대, 1980년대 음악을 좋아한다. 특히 가수 김광석 님의 음악을 즐겨 듣는데 그중에서도 <이등병의 편지>를 제일 좋아한다. 요즘에는 창작국악도 많이 생겨서 이런 발라드 곡을 가야금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감성이 대단히 풍부한 것 같다.

늘 이렇게 살고 있다. 영감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시를 읊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내 상황을 창작 판소리로 만들기도 한다. “장성빈이가 뭣이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즉흥적으로 하는 거다. 그러다 이걸 악보로 만들기도 한다.

장성빈은 갑자기 떠오르는 시가 있다며, 성주 출신 시인 문인수의 <여름밤>을 읊었다. “가마솥 가득 푹 삶긴 더위, / 솥검정 같은 이 더위를 반짝반짝 먹고 있다” 한 자 한 자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장성빈의 시 낭송은 마치 노래하는 듯했다.

장성빈의 운명, 천명, 그리고 소명

소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즐거운 생활’ 교과서에 <남생아 놀아라>라는 전래동요가 있었다. 선생님께서 내가 이 노래를 곧잘 부른다며 국악을 해보라고 하셔서 집 앞에 있는 국악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거기서 처음 배운 게 <흥부가>였다. 국악학원 선생님이 소리를 잘하면 명창이 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도 명창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수많은 수상 경력과 무대 경력이 명창을 꿈꾸는 소리꾼 장성빈의 노력을 증명하는 듯하다. 그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나.

힘들지만 포기하기 싫었다. 소리는 내게 마치 운명, 천명과도 같다. 누가 나한테 “소리 하지 마” 하면 그때부터 온몸에 병이 나는 것 같았다. 최근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잠시 소리를 쉬어야 했을 때도 그랬다. 이대로 소리를 못 하게 될까 봐 겁이 나서 마음에 병이 생겼다. 그랬더니 몸도 아프더라. 다시 소리를 하니 금세 나았다.

장성빈의 운명, 판소리의 매력은 무엇인가.

판소리는 ‘음화(音畵)’ 즉, 소리로 그려낸 그림이다. 여러 가지 화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이야기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
<수궁가> 중 ‘범피중류’인데,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 풍경과 바닷속 풍경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이걸 부르면 바닷속 풍경이 그림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정말 멋진 곡이다. 일상에서 소통이 안 되는 것도 소리로는 다 표현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판소리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그 안에는 지금, 우리 시대가 다 있다. 가령, <심청가>와 <춘향가>, <수궁가> 안에는 현대인의 고단한 삶이 재미있고 통쾌하게 담겨있다. 특히 <춘향가>와 <수궁가>에는 억울한 사람, 희생당하는 사람, 약자의 이야기가 들어있어 더 공감이 간다. <적벽가>를 보면 우리나라 역사가 다 보이는 것 같다. <흥부가> 역시 우리 시대의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결국 다 우리의 이야기다.

연습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발음과 발성이다. 발음이 틀리면 발성이 안 되고 발성이 잘못되면 발음이 제대로 안 된다. 결국 발음과 발성이 하나인 셈이다. 발성은 호흡과 자세에서 나온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항상 어려운 마음으로 소리를 해야 한다. 소리를 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정말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소리를 냈는데, 책임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고민이 깊어진다.

연습할 때는 누구보다 치열하지만, 무대 위의 장성빈은 굉장히 여유로워 보인다.

사실 무대에 서기 전에 얼마나 떨리는지 모른다. 이번 완창할 때도 청심환을 먹고 올라갔다. 나는 한 사람 앞에서 소리를 해도 벌벌 떠는 사람이다. 늘 연습이 부족한 것 같고 준비가 덜 된 것만 같다. 실수할까 봐 항상 조마조마하다. 그래도 막상 무대에 올라가서 소리를 시작하면 서서히 긴장감이 풀어지기는 한다. 그때부터 마음 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움직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언제인가.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대회 선수단 입촌식에서 공연할 때였다. 모두 춤추고 즐겁게 어울리는데, 북한 선수들만 가만히 있더라. 그런데 나중에 그중 한 분이 와서 내가 부른 아리랑이 너무 좋았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내가 더 고마웠다. 언젠가 자유롭게 남북을 오가며 소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분을 다시 팬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소리를 할 때 장성빈은 비로소 행복하다. 혹독한 연습을 할 때도, 새롭게 어려운 곡을 배울 때도, 벌벌 떨며 무대에 설 때도 소리와 함께하기에 그는 행복하다. 그중에서도 장성빈이 가장 좋아하는 건 소리를 깨닫는 순간이다. 잘 안 되는 부분의 문제를 분석해 마침내 해결할 때, 그는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간다.

  • 소리꾼 장성빈
  • 소리꾼 장성빈
  • 소리꾼 장성빈

인간 장성빈, 소리꾼 장성빈

쉴 때는 무엇을 하는가.

태블릿으로 악보를 만들거나 창작할 소리를 생각한다.

소리를 떠나 온전히 쉴 때는 없는 것인가.

인간 장성빈이 곧 소리꾼 장성빈이다. 쉴 때도 자연스럽게 계속 소리를 생각하게 된다. 요즘에는 아리랑에 빠져있다. 흔히들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이렇게 3대 아리랑만 아는데, 사실 지역마다 매우 많다. 특히 경상도에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성주아리랑보존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구에 가면 <대구아리랑>, 문경에 가면 <문경아리랑> 요즘엔 어디를 가도 그 지방 아리랑이 생각난다.

‘장성빈TV’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공연이나 연습 영상 외에도 일상적인 콘텐츠들이 많이 있어 흥미롭다. 채널을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서울의 구립용산장애인복지관에서 진행한 크리에이터 미디어교육을 어머니와 함께 듣고 시작하게 됐다. 우리 소리를 알리고 소리꾼 장성빈을 당당히 드러내고 싶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애는 그저 불편함일 뿐이라고, 우리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요즘에는 많이 못 했지만 계속 꾸준히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생각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 <적벽가>를 배우고 있다. 흔히 <적벽가>는 남성적이고 씩씩한 소리라고들 하는데, 공부하다 보니 그보다 아프고 슬픈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열심히 해서 언젠가 <적벽가>도 완창하고 싶다. 물론 이번에 공연한 <수궁가>도 더 많이 연습해서 다시 완창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각 지역 아리랑의 흥을 한자리에 모아 펼치는 아리랑 콘서트도 해보고 싶다.

어떤 소리꾼이 되고 싶은가.

수많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천의 얼굴을 가진 소리꾼이 되고 싶다. 또 아쟁, 가야금, 거문고도 배워서 종합예술인으로 거듭나고 싶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소리를 할 것이다. 그저 열심히 소리를 하고 열심히 우리 음악을 사랑하고, 더 널리 국악을 알릴 것이다.

  • 제3회 서울아리랑페스티벌 아리랑경연대회 장성빈의 공연 모습.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붉은색 가슴띠를 둘렀다. 흰색 천을 든 오른손과 왼손을 각 앞쪽으로 뻗으며 소리를 하고 있다.

    대상을 수상한 ‘제3회 서울아리랑페스티벌 아리랑경연대회’(2015)

  • 수궁가 완창 발표회 모습. 여러 종류의 나뭇가지가 그려진 병풍이 세워져 있고 바닥에 화문석이 깔려 있는 무대. 왼편에 북을 잡은 고수가 있고 그 옆에는 소반에 작은 주전자와 찻잔이 놓여 있다. 오른편에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장성빈이 자리에 앉아 소리를 하고 있다.

    민속극장 풍류에서 가진 <수궁가> 완창 발표회(2022.12.1.)

장성빈

국악인. 소리꾼. 전주예술중·고등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고, 원광디지털대학교 전통공연예술학과에서 판소리를 전공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교사의 권유로 판소리에 입문해 16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2016년 ‘올해의 장애인상(대통령상)’과 2022년 제20회 무안 전국 승달국악대제전에서 대통령상(장애인부 판소리 부문)을 수상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인 김영자 명창에게 <수궁가>를 사사했다. 2022년 12월 <장성빈 판소리 완창 발표회 – 수궁가> 무대에 올랐다.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링크)

박유미

설치와 영상을 중심으로 작은 서사에 주목하는 미술작가. 2018년 개인전 《바다에서 만날까》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4년 아르코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마로니에 다방’을 기획했다. 글과 영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병행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찔레꽃>을 연출했다.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 ‘효창서담’을 운영 중이다.
gomako1983@gmail.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이근영 사진작가 studioowau@naver.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 제공. 장성빈

2023년 1월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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