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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시락의 예술 시작기①

이음광장 타고난 재능도 기교도 없이,
더 넓은 예술을 만나다

  • 김시락 다원예술 창작자
  • 등록일 2023-06-14
  • 조회수570

이음광장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은 1년 후는 고사하고 바로 내일조차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자신은 미래에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기도 하고 어떤 일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확신하기도 한다. 나 역시 평생 할 리 없을 거라 생각한 일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예술’이었다. 예술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어려서부터 독서와 음악 감상은 좋아했지만, 한 명 걸러 한 명이 가지고 있을 만한 흔하디흔한 취미일 뿐이었고, 특별한 재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균 수준의 예술적 표현 역량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글쓰기로 상을 받은 건 초등학교 3학년 때 교내 백일장이 유일했다. 음악 부문도 처참했다. 교내 동요제 예선도 통과해 본 적이 없는 데다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왜 노래를 하랬더니 염불을 외냐”고 타박을 들을 정도로 자타 공인 음치였다. 악기 역시 소리의 정확성은 차치하고, 불기만 하면 어떤 소리든 나기는 하는 리코더나 오카리나 같은 친절한 녀석들을 제외하고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이 필요한 악기는 단소를 비롯해 어떤 것도 내 손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시력이 있던 일곱 살 때 일반 학교에 다니면서 자화상을 그린 적이 있다. 반 아이들 모두의 그림이 교실 뒤편 게시판에 걸렸는데 내 그림은 내가 봐도 단연 뒤에서 1등이었다. 그림이라기보다 기호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참 창피했었다. 예술 작품 감상을 즐기는 것과 표현을 잘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인 걸까. 덕분에 내 장래 희망이 예술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반면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단순 활동에는 능숙해서 컴퓨터 타자 대회나 맞춤법 교정 대회 등에서는 여러 번 상을 탔다. 반복적인 단순 활동과 예술창작 능력은 물과 기름처럼 동시에 가질 수 없는 재능으로 여겨졌다. 타자 대회와 교정 대회에서의 수상은 내게 예술적 감각 부재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내가 예술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활동을 하게 되어 무척 즐겁지만,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일말의 아쉬움도 있다. 처음에는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앞으로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물론 여전히 앞일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이어가 보려 한다. 그만큼 예술은 이제 내 삶에서 놓고 싶지 않은 중요하고 큰 부분이다.

예술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진 건 2020년 하반기에 팝업 식사담 〈카오스토어〉를 진행하면서부터였다. 한 다원예술가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활동에서 기획이라는 무거운 역할 의식 없이 툭툭 던졌던 말과 함께 나누었던 고민이 모여, 작고 소박하지만 재미있는 워크숍이 되었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이야기 나누며 서로 격려와 응원을 했고, 너무도 낯설게 느껴지는 시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기도 했다. 또, 시각을 배제한 채 비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어울려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먹으며 왁자지껄 웃음바다를 펼쳐놓기도 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이야기와 활동을 고민하고 결정하는 시간, 실제로 만나서 만들어가는 시간과 경험이 참 좋았다. 이런 활동을 더 해보고 싶었다. 나의 상상과 호기심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는 다원예술이라는 분야에 대해서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나도 할 수 있는 예술 분야를 찾은 것이다. 예술이라는 건 일정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훈련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믿었었다. 물론 재능과 많은 연습이 필요한 예술 분야도 있다. 그리고 그런 건 여전히 내게 감히 넘볼 수 없는 머나먼 영역이다. 하지만 예술은 그렇게 협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타고난 재능과 뛰어난 기교가 없더라도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상 속 찰나의 순간도 상상을 자극하고 감정을 추동할 수 있음을, 특별하지 않은 나의 이야기도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나 자신을 예술인이라 소개할 때면 쑥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다만 해를 거듭하면서 예술인이라는 자각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아니,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진행했던 경험이 쌓일수록 ‘예술인으로서의 역할과 책무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점점 더 무겁게 느끼고 있다. 예술을 꼭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일기를 예술이라고 하지 않듯, 대개의 예술 작품이나 활동은 관객을 필요로 하고 관객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단순히 재미만을 생각하고 기획하고 만들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식으로든 타인에게 유무형의 영향을 끼치고자 한다면 그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내 안에 질문이 많아지고 있다. 스스로 던지는 질문도 있지만, 주위에서 들리는 질문에도 더욱 예민해졌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등의 거창한 목표는 없지만, 앞으로 어떤 작품이나 활동을 하든 두 가지는 꼭 지켜나가고 싶다. ‘결코 해악을 끼치지 않기’ ‘질문을 멈추지 않기’가 바로 그것이다.

  • 시력이 있던 일곱 살 때 그린 자화상을 재현한 그림

  • 시각장애인 대상 실험적 미술치료 과정에 참여해 만든 흙으로 빚은 자소상

김시락

소리와 움직임에 관심이 많은 다원예술 창작자이며, 다양한 공연의 접근성 모니터링도 활발히 하고 있다. 국립극단 [창작공감:연출]
<커뮤니티 대소동>에 출연했고,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선정작 소리창작 워크숍 <상상경작>과 움직임 워크숍 <봉인해제> 공동기획·운영, 청년예술청 움직임 워크숍 <무성한성무>를 기획·운영했다.
qpseh0113@naver.com

사진 제공. 필자

김시락

김시락 

소리와 움직임에 관심이 많은 다원예술 창작자이며, 공연 접근성 모니터링도 활발히 하고 있다. 국립극단 [창작공감:연출] <커뮤니티 대소동>에 출연했고,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선정작 소리창작 워크숍 <상상경작>과 움직임 워크숍 <봉인해제> 공동기획·운영, 청년예술청 움직임 워크숍 <무성한성무>를 기획·운영했다.
qpseh01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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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광장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은 1년 후는 고사하고 바로 내일조차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자신은 미래에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기도 하고 어떤 일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확신하기도 한다. 나 역시 평생 할 리 없을 거라 생각한 일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예술’이었다. 예술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어려서부터 독서와 음악 감상은 좋아했지만, 한 명 걸러 한 명이 가지고 있을 만한 흔하디흔한 취미일 뿐이었고, 특별한 재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균 수준의 예술적 표현 역량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글쓰기로 상을 받은 건 초등학교 3학년 때 교내 백일장이 유일했다. 음악 부문도 처참했다. 교내 동요제 예선도 통과해 본 적이 없는 데다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왜 노래를 하랬더니 염불을 외냐”고 타박을 들을 정도로 자타 공인 음치였다. 악기 역시 소리의 정확성은 차치하고, 불기만 하면 어떤 소리든 나기는 하는 리코더나 오카리나 같은 친절한 녀석들을 제외하고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이 필요한 악기는 단소를 비롯해 어떤 것도 내 손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시력이 있던 일곱 살 때 일반 학교에 다니면서 자화상을 그린 적이 있다. 반 아이들 모두의 그림이 교실 뒤편 게시판에 걸렸는데 내 그림은 내가 봐도 단연 뒤에서 1등이었다. 그림이라기보다 기호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참 창피했었다. 예술 작품 감상을 즐기는 것과 표현을 잘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인 걸까. 덕분에 내 장래 희망이 예술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반면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단순 활동에는 능숙해서 컴퓨터 타자 대회나 맞춤법 교정 대회 등에서는 여러 번 상을 탔다. 반복적인 단순 활동과 예술창작 능력은 물과 기름처럼 동시에 가질 수 없는 재능으로 여겨졌다. 타자 대회와 교정 대회에서의 수상은 내게 예술적 감각 부재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내가 예술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활동을 하게 되어 무척 즐겁지만,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일말의 아쉬움도 있다. 처음에는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앞으로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물론 여전히 앞일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이어가 보려 한다. 그만큼 예술은 이제 내 삶에서 놓고 싶지 않은 중요하고 큰 부분이다.

예술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진 건 2020년 하반기에 팝업 식사담 〈카오스토어〉를 진행하면서부터였다. 한 다원예술가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활동에서 기획이라는 무거운 역할 의식 없이 툭툭 던졌던 말과 함께 나누었던 고민이 모여, 작고 소박하지만 재미있는 워크숍이 되었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이야기 나누며 서로 격려와 응원을 했고, 너무도 낯설게 느껴지는 시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기도 했다. 또, 시각을 배제한 채 비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어울려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먹으며 왁자지껄 웃음바다를 펼쳐놓기도 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이야기와 활동을 고민하고 결정하는 시간, 실제로 만나서 만들어가는 시간과 경험이 참 좋았다. 이런 활동을 더 해보고 싶었다. 나의 상상과 호기심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는 다원예술이라는 분야에 대해서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나도 할 수 있는 예술 분야를 찾은 것이다. 예술이라는 건 일정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훈련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믿었었다. 물론 재능과 많은 연습이 필요한 예술 분야도 있다. 그리고 그런 건 여전히 내게 감히 넘볼 수 없는 머나먼 영역이다. 하지만 예술은 그렇게 협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타고난 재능과 뛰어난 기교가 없더라도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상 속 찰나의 순간도 상상을 자극하고 감정을 추동할 수 있음을, 특별하지 않은 나의 이야기도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나 자신을 예술인이라 소개할 때면 쑥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다만 해를 거듭하면서 예술인이라는 자각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아니,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진행했던 경험이 쌓일수록 ‘예술인으로서의 역할과 책무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점점 더 무겁게 느끼고 있다. 예술을 꼭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일기를 예술이라고 하지 않듯, 대개의 예술 작품이나 활동은 관객을 필요로 하고 관객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단순히 재미만을 생각하고 기획하고 만들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식으로든 타인에게 유무형의 영향을 끼치고자 한다면 그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내 안에 질문이 많아지고 있다. 스스로 던지는 질문도 있지만, 주위에서 들리는 질문에도 더욱 예민해졌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등의 거창한 목표는 없지만, 앞으로 어떤 작품이나 활동을 하든 두 가지는 꼭 지켜나가고 싶다. ‘결코 해악을 끼치지 않기’ ‘질문을 멈추지 않기’가 바로 그것이다.

  • 시력이 있던 일곱 살 때 그린 자화상을 재현한 그림

  • 시각장애인 대상 실험적 미술치료 과정에 참여해 만든 흙으로 빚은 자소상

김시락

소리와 움직임에 관심이 많은 다원예술 창작자이며, 다양한 공연의 접근성 모니터링도 활발히 하고 있다. 국립극단 [창작공감:연출]
<커뮤니티 대소동>에 출연했고,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선정작 소리창작 워크숍 <상상경작>과 움직임 워크숍 <봉인해제> 공동기획·운영, 청년예술청 움직임 워크숍 <무성한성무>를 기획·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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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8 17: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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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객관화에 진심인 혼란스런 마음과 유머로 버무린 글에 피식 웃음이 나네요. 음악선생님의 평가에 좌절하며 한동안 노래시험에 공포증을 느꼈던 기억도 나고. 흙으로 빚으신 자소상을 보며, 역시 기승전 재능이었음을... 서서히 예술에 스며드는 작가님을 응원하며,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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