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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락의 예술 시작기③

이음광장 욕망과 호기심을 창작의 에너지로

  • 김시락 다원예술 창작자
  • 등록일 2023-08-09
  • 조회수476

이음광장

내가 창작의 동력으로 삼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그중 하나는 욕망이다. 사람들은 갖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것을 위해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에도,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혹한의 날씨에도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결말을 알고 싶다는 욕망은 다음 날의 일정도 잊고 시리즈물을 밤새 정주행하게 만든다. 나 역시 해보고 싶다거나 알고 싶다는 욕망으로 기획에 몰두한다. 이러한 욕망은 성취될 때까지 지치지 않고 달려가게 해주는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다른 하나는 호기심이다. 물론 익숙한 것은 익숙한 대로 좋지만 새롭고 낯선 것을 접하면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일이 많다. 그래서 협업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과정이 마냥 신나고 즐겁다. 이 두 가지는 내 안에서 별개의 것이라기보다 뒤섞일 때가 많다. 호기심이 동하는 사건을 욕망하고, 욕망의 충족은 호기심의 충족이나 또 다른 호기심거리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작년에 진행했던
<무성한성무>도 이렇게 탄생했다.

그 시작은 참여하고 있던 프로젝트에서 진행한 컨택즉흥 워크숍에서부터였다. 공간과 인물을 구분 짓지 않고 주변을 감각하는 것도, 닿거나 멀어지거나 포개지는 등 예기치 못한 무수한 접촉과 비접촉을 통해 주고받는 에너지도, 일체의 통제를 거두고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몸이 흘러가도록 하는 것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그러나 흥미는 내가 직접 참여하고 있는 경우에만 유지되었다. 지켜보는 입장이 되자 같은 감각을 할 수 없었고 심지어 다소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몸과 몸이 닿는 소리, 마룻바닥의 울림, 숨소리와 불규칙하고 비정형적인 목과 몸을 울리는 소리가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음성해설이 있었다 해도 온전히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속도와 강도, 높이 변화 등을 직접 느낄 방법은 없을까, 해설에 기대지 않고 나의 감각으로 움직임을 느끼고 감상(鑑賞)할 수는 없을까, 더 많은 감각 정보가 주어진다면 주체적으로 움직임을 머릿속에 그리고 나만의 감상(感想)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감각으로 직접 움직임을 감상할 수 있는 워크숍의 틀을 조금씩 구상하기 시작했다.

움직임을 거리를 두고 감각하기 위해 동원한 수단은 ‘소리’였다. 비교적 거리와 방향, 높이를 구별하기 쉽고 부위별로 다른 소리로 조합해도 인지하기 용이한 데다, 연속적이거나 단속적인 동작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이것이 단지 시각장애인의 움직임 감상을 돕는 수단에 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움직임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어우러진 ‘소리춤’이라는 새로운 장르로서의 가능성도 탐구해 보고자 했다.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가장 경계했던 점은 착용한 소품들의 소리를 움직임을 통해 의도적으로 조합해 음악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 역시 또 다른 재미있는 시도이지만, ‘소리를 만드는 움직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이 만든 소리’를 듣는 것이 목적임을 잊지 않도록 주의했다. 금속, 플라스틱, 비닐, 종이 등 다양한 소재의 소품을 준비해 워크숍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충분히 재료를 탐색한 후 각자의 선택에 따라 소품을 몸에 착용했다. 손목과 발목, 목과 허리, 무릎과 팔꿈치까지 개인에 따라 선택한 소리도 착용한 부위도 천차만별이었다. 착용을 마치고 각자가 선택한 음악에 맞춰 차례로 자유로운 춤을 선보였다. 그러고 나서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장르로서의 가능성도, 음성해설의 보완적 수단으로서의 가능성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고민거리도 한 아름 생겼다. 회전할 때 연속적인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재료가 많지 않다는 점, 표정 또한 무용에서 주요한 감상 요소인데 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가 그것이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서 받아든 과제는 부담스럽기보다 오히려 반갑다.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궁리하도록 나를 채찍질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창작활동은 시민운동과 예술의 경계선 어디쯤 있는 듯도 하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에 관심을 두고 그 불편함을 나서서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그것이 정책 제안이나 제도 개선 요구의 형태가 아니라 고민한 대안을 실험적으로나마 직접 기획하고 수행해 보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마음에서 우러난 ‘심인(心因)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하반기에 진행할 전시 《동시접속》도 마찬가지다. 내가 볼 수 있는 전시가 부족해서 내가 보고 싶은 전시를 기획했다. 예술은 내게 오랜 욕망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단비와도 같다.

  • 4개의 장면이 하나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면에는 필자가 오브제를 한쪽 팔꿈치에 착용하고 두 팔을 벌리거나 수평으로 교차하며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무성한성무> 워크숍

김시락

소리와 움직임에 관심이 많은 다원예술 창작자이며, 다양한 공연의 접근성 모니터링도 활발히 하고 있다. 국립극단 [창작공감:연출] <커뮤니티 대소동>에 출연했고,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선정작 소리창작 워크숍 <상상경작>과 움직임 워크숍 <봉인해제> 공동기획·운영, 청년예술청 움직임 워크숍 <무성한성무>를 기획·운영했다.
qpseh0113@naver.com

사진 제공. 필자

김시락

김시락 

소리와 움직임에 관심이 많은 다원예술 창작자이며, 공연 접근성 모니터링도 활발히 하고 있다. 국립극단 [창작공감:연출] <커뮤니티 대소동>에 출연했고,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선정작 소리창작 워크숍 <상상경작>과 움직임 워크숍 <봉인해제> 공동기획·운영, 청년예술청 움직임 워크숍 <무성한성무>를 기획·운영했다.
qpseh0113@naver.com

상세내용

이음광장

내가 창작의 동력으로 삼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그중 하나는 욕망이다. 사람들은 갖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것을 위해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에도,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혹한의 날씨에도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결말을 알고 싶다는 욕망은 다음 날의 일정도 잊고 시리즈물을 밤새 정주행하게 만든다. 나 역시 해보고 싶다거나 알고 싶다는 욕망으로 기획에 몰두한다. 이러한 욕망은 성취될 때까지 지치지 않고 달려가게 해주는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다른 하나는 호기심이다. 물론 익숙한 것은 익숙한 대로 좋지만 새롭고 낯선 것을 접하면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일이 많다. 그래서 협업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과정이 마냥 신나고 즐겁다. 이 두 가지는 내 안에서 별개의 것이라기보다 뒤섞일 때가 많다. 호기심이 동하는 사건을 욕망하고, 욕망의 충족은 호기심의 충족이나 또 다른 호기심거리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작년에 진행했던
<무성한성무>도 이렇게 탄생했다.

그 시작은 참여하고 있던 프로젝트에서 진행한 컨택즉흥 워크숍에서부터였다. 공간과 인물을 구분 짓지 않고 주변을 감각하는 것도, 닿거나 멀어지거나 포개지는 등 예기치 못한 무수한 접촉과 비접촉을 통해 주고받는 에너지도, 일체의 통제를 거두고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몸이 흘러가도록 하는 것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그러나 흥미는 내가 직접 참여하고 있는 경우에만 유지되었다. 지켜보는 입장이 되자 같은 감각을 할 수 없었고 심지어 다소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몸과 몸이 닿는 소리, 마룻바닥의 울림, 숨소리와 불규칙하고 비정형적인 목과 몸을 울리는 소리가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음성해설이 있었다 해도 온전히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속도와 강도, 높이 변화 등을 직접 느낄 방법은 없을까, 해설에 기대지 않고 나의 감각으로 움직임을 느끼고 감상(鑑賞)할 수는 없을까, 더 많은 감각 정보가 주어진다면 주체적으로 움직임을 머릿속에 그리고 나만의 감상(感想)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감각으로 직접 움직임을 감상할 수 있는 워크숍의 틀을 조금씩 구상하기 시작했다.

움직임을 거리를 두고 감각하기 위해 동원한 수단은 ‘소리’였다. 비교적 거리와 방향, 높이를 구별하기 쉽고 부위별로 다른 소리로 조합해도 인지하기 용이한 데다, 연속적이거나 단속적인 동작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이것이 단지 시각장애인의 움직임 감상을 돕는 수단에 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움직임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어우러진 ‘소리춤’이라는 새로운 장르로서의 가능성도 탐구해 보고자 했다.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가장 경계했던 점은 착용한 소품들의 소리를 움직임을 통해 의도적으로 조합해 음악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 역시 또 다른 재미있는 시도이지만, ‘소리를 만드는 움직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이 만든 소리’를 듣는 것이 목적임을 잊지 않도록 주의했다. 금속, 플라스틱, 비닐, 종이 등 다양한 소재의 소품을 준비해 워크숍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충분히 재료를 탐색한 후 각자의 선택에 따라 소품을 몸에 착용했다. 손목과 발목, 목과 허리, 무릎과 팔꿈치까지 개인에 따라 선택한 소리도 착용한 부위도 천차만별이었다. 착용을 마치고 각자가 선택한 음악에 맞춰 차례로 자유로운 춤을 선보였다. 그러고 나서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장르로서의 가능성도, 음성해설의 보완적 수단으로서의 가능성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고민거리도 한 아름 생겼다. 회전할 때 연속적인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재료가 많지 않다는 점, 표정 또한 무용에서 주요한 감상 요소인데 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가 그것이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서 받아든 과제는 부담스럽기보다 오히려 반갑다.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궁리하도록 나를 채찍질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창작활동은 시민운동과 예술의 경계선 어디쯤 있는 듯도 하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에 관심을 두고 그 불편함을 나서서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그것이 정책 제안이나 제도 개선 요구의 형태가 아니라 고민한 대안을 실험적으로나마 직접 기획하고 수행해 보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마음에서 우러난 ‘심인(心因)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하반기에 진행할 전시 《동시접속》도 마찬가지다. 내가 볼 수 있는 전시가 부족해서 내가 보고 싶은 전시를 기획했다. 예술은 내게 오랜 욕망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단비와도 같다.

  • 4개의 장면이 하나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면에는 필자가 오브제를 한쪽 팔꿈치에 착용하고 두 팔을 벌리거나 수평으로 교차하며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무성한성무> 워크숍

김시락

소리와 움직임에 관심이 많은 다원예술 창작자이며, 다양한 공연의 접근성 모니터링도 활발히 하고 있다. 국립극단 [창작공감:연출] <커뮤니티 대소동>에 출연했고,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선정작 소리창작 워크숍 <상상경작>과 움직임 워크숍 <봉인해제> 공동기획·운영, 청년예술청 움직임 워크숍 <무성한성무>를 기획·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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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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