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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백지윤 무용수·배우 통통 튀는 매력쟁이 잘하고 싶은 욕심쟁이

  • 고권금 안무가
  • 등록일 2024-07-24
  • 조회수 517

인터뷰

어느 날, 이 세상에는 고유의 이름을 가진 사람과 ‘장애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5월에 공연했던 연극 〈젤리피쉬〉에서의 “다운증후군이 켈리의 전부는 아니에요”라는 대사가 다시금 이름에 관한 생각에 불을 지폈다. 장애가 한 사람의 전부는 아니지만, 전부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일반명사가 개인을 대신해서 쓰일 때, 개인의 역사가 묻힐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아야 한다.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부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투명한 뿔테안경을 쓰고, 자신의 등판만 한 하늘색 가방을 멘 채 “권금 씨!!”라고 외치며 등장했다. 우리의 대화는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조금은 어색하게 시작됐다.

지윤 님, 오랜만이에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태권도랑 헬스 해요. 체력 단련을 하면서 새로 시작할 일들을 알아보는 중이에요. 저는 유단자라 2단을 따려고 품새를 외우고 있어요. 헬스는 건강이 걱정돼서 하고 있어요. 나이가 점점 많아지기도 하고, 자기 전에 약도 먹어야 하고. 아무래도 건강 문제가 있어서요. 몸이 나빠지거나 그러면 더 괴롭고 그렇잖아요. “엄마처럼 늙으면 안 되니까.” (웃음)
(필자: “엄마처럼 늙으면 안 되니까.”는 〈젤리피쉬〉 극 중 해변을 산책하던 딸 켈리(백지윤)가 엄마 아그네스(정수영)에게 한 말이다.)

저와 처음 만났을 때는 무용수로 소개하셨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세요?

(머리를 긁적이며) 제가 지금 긴장이 돼서요.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볼까요? 음,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한번 해볼게요. (목을 가다듬고)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백지윤이고요. 제 나이는 33살 아줌마이고요. (웃음) 그리고 〈젤리피쉬〉에서 켈리 역을 맡았어요. 엄친딸이 되고 싶어요. 엄마랑 친한 딸.

엄친딸이 되고 싶은 지윤 님, 소개 고마워요. 먼저 최근에 막을 내린 연극 〈젤리피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참여를 결정하기까지 지윤 님에게 어떤 마음의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아는 지인한테 소개를 받아서 하게 됐어요. 추천을 받아서 했는데, 대본을 본 순간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생각을 했어요. 이거를 해야 하나, 징그러운 게 있는데. 키스도 나오고. 말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이게 쉬운 말인데, 저는 어렵잖아요. 내 또래들은 자주 쓰는 말인데. 그렇지만 해보고 싶다,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본 봤을 때 자극됐던 게 ‘아그네스!’였어요.

더 설명해 주세요.

저한테 〈젤리피쉬〉의 의미는 약간 그런 것 같아요. 친구는 아니고 대중이 나를 보는 이미지라고 생각해요. 대중한테 딱 보여줄 수 있는 내 색깔에 맞는 켈리 역을 맡게 됐는데, 그 이미지에 대한 관객의 시선이 좀 두렵기도 하고. 뭐라고 해야 하지. 아 어렵다. (웃음) 그냥 〈젤리피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거.

대중의 시선이 어떨 거로 생각했어요?

안 보고 싶다? 관객들이 피할 것 같고, 안 보고 싶어 할 것 같고. 보다가 그냥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처음에는 그랬던 것 같아요. 대본 받았을 때는 좋았는데, 대본 내용이 다운증후군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서 걱정했어요. 아직은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는 현실이니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엄마도 괜찮다고 한번 해보라고 해서.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을 때 좀 힘들었다고 했었는데, 그래도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이겨내 보려고. 새로운 도전이니까, 어렵지만 해보자!
(공연할 때)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관객들 반응이 어떨까도 생각해봤어요. 관객들의 반응이 있을 거고. 이 이는 과연 무대에 올라갈 수 있을까? 아니면 포기할까? 내려올까? 생각하겠구나.

그렇군요. 복잡한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연습 과정은 어땠어요? 연습하면서 좋거나 힘들었던 기억이 있으면 나눠주세요.

제일 좋았던 게 있어요. 민새롬 연출님이 제가 어려워할 때마다 항상 신경 써주고 체크해주고 숙제도 내주고 하다 보니 나도 달라지고. 그러니까 조금씩 기대면서, 저도 달라진 모습이 보이고 민새롬 연출님을 보면서 많이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체력이 없으면 힘들어하는 게 있는데. 나만 힘든 게 아니니까, 다 힘든 거니까. 그래도 맞추려고 했어요. 〈젤리피쉬〉를 통해서 엄마랑 좀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었어요.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엄마한테 되게 못되게 굴었던 생각이 확 들어와서.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엄마가 이렇게 오랫동안 고생했구나. 엄마한테 미안함도 있고. 근데 다이어트가 더 힘들어요. (웃음) 그리고 안 되는 발음 때문에 힘들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게 발음이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대본 봤을 때 제가 잘 안 되는 발음이 있어요. 연습 중에 제가 바깥에서 울었을 때 권금 씨가 왔었잖아요. 사실 왜 울었냐면, 발음 때문에….

발음이 왜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을까요?

남들보다 다른 건, 다운증후군은 발음에 약하단 말이에요. 특히 저는 ‘ㅎ’ 발음이 잘 안돼요. 이런 발음이 들어가면 되게 힘들더라고요. 정확한 발음을 내고 싶은데 가끔 안 될 때가 있잖아요.

저는 암기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어요.

아, 저는 아니에요. 암기하는 건 별로 스트레스 받지 않아요. 암기는 그냥 쉽게 쉽게 하는 편이어서.

외울 게 많아서 힘들다고 했잖아요!

(웃음) 맞아요. 그래도 재밌었어요. 여러 번 하다 보면 나아지니까.

켈리의 대사 중에서 가장 공감되는 대사나 장면이 있었어요?

“이건 누구 일도 아니야. 나는 권리가 있어. 그리고 나는 대박이야.” 이거요. 저도 짜증 날 때가 있잖아요. 이 대사는 100% 아빠한테 하고 싶어요. 너무 간섭하다 보니까. (한숨)

공연을 한 번 더 하게 된다면 ‘이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 하는 게 있어요?

사실 저는 아그네스 역을 하고 싶어요. 켈리는 (도미닉 역을 맡았던) 범진 오빠가 하고. 제가 엄마 역할을 진짜 잘하거든요. (웃음) 근데 켈리를 하게 되면 프롬프터 없이 하고 싶어요. 프롬프터 배우가 가끔씩 제가 대사 까먹을 때 도와주잖아요. 근데 제가 보니까 프롬프터 배우가 힘들어 하더라구요. 그래서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
(필자: 본 공연에서는 켈리의 대사 공백을 조력하는 프롬프터 배우가 함께 무대에 등장했다.)

공연에서 프롬프터의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지윤 님과 프롬프터가 어떤 관계성을 가져야 하는지,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연극을 하기 위해서는 암기 능력이 필수일까요?

제 생각에, 몸은 기억해요. 무용을 했을 때는 몸으로 다 기억이 나는데, 연극은 다르다 보니까 외우는 게 좀 힘들었던 것 같긴 해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암기에 대한 스트레스는 줄이되, 연극을 할 수 있는 방법이요.

방법이요? 글쎄요. 저도 몰라서 유튜브를 찾아봤는데 ‘멍때리기’가 있더라고요. 대사가 안 외워질 때는 멍때리라고. 멍때리다가 다시 하면 될 때도 있고. 전 그런 스타일인 것 같아요. (침묵) 멍때리면서 공연하기? (웃음)

재밌는 방법이네요. 듣다 보니 〈젤리피쉬〉가 지윤 님에게 전환점이 되어준 느낌이 들어요. 이제 화제를 돌려볼게요.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하셨는데 발레의 매력은 뭐였어요?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저는 잔잔한 클래식을 좋아해요. 〈탈리스만〉,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같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 오로라 역도 했었어요. 저는 특히 〈돈키호테〉가 좋았던 것 같아요. 통통 튀는 게 있어서. 토슈즈 신고 하는 건 늘 좋았어요. 통통 튀는 느낌이 좋았어요. 이제 무용은 조금 벗어나고 싶어요. 너무 오랫동안 했어요. 다른 일을 하고 싶어요. 연극, 국악, 뮤지컬! 저 노래 잘하거든요. 뮤지컬은 노래 부르고 재밌잖아요. 저 가사 외우기 천재거든요. 연극은 진짜 재밌는 게 되게 많아 해보고 싶어요. 〈파우스트〉도 재밌을 것 같아요. 수영 선배님이 수녀복 입고 공연하셨던 것도 해보고 싶어요. 수녀님 역할은 자신 있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냐면, 경험자가 있어요. 저희 고모가 원래 수녀님이었거든요. 불편한 경험도 있지만, 한 번 그런 고통을 겪어보고 싶어서.

공연은 지윤 님에게 어떤 의미에요? 왜 공연을 하세요?

관객. 저는 관객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가 제일 궁금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평가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이 평가하잖아요. 그래서 연습한 대로 올라가서 관객들한테 완벽하게 보여줘야 하잖아요. ‘우리 이만큼 만들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관객이 있을 때는 외우는 게 빨라져요. 그리고 호흡이 잘 맞아서 그게 더 재밌고, 기운이 나고. 우리가 〈젤리피쉬〉 연습하는 과정에서 외우는 게 제일 많잖아요. 그래서 외울 때까지 외워보자, 결심했죠. 답이 어디 있겠어요. 관객들한테 있잖아요. 관객들이 ‘할 수 있어. 괜찮아’라고 해주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에너지고 힘인 것 같아요. 연결되어 있어요.

지윤 님이 공연을 만든다면 어떤 공연을 올리고 싶어요?

저는 양평에 있는 별장에서 공연해보고 싶어요. 야외랑 안에서. 밖에서는 재밌게 놀고 안에서는 그냥 편안하게 잠옷 바람으로 있고. 제가 생각하는 공연은, (침묵) 약간 놀러 가는 느낌. 연극은 되게 요란하게 꾸며놓잖아요. 저는 그러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그냥 간단하게 꾸민 연극을 해보고 싶어요.

잘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하신데, 지윤 님에게 잘한다는 건 어떤 거예요?

다른 배우들은 외워서 쉽게 말하듯이 하잖아요. 범진 오빠나 바다 씨나 수영 선배님은 말하듯이 편하게 그냥 하는데, 저는 뻣뻣해요. 평상시 말투를 써야 하는데. 그렇게 좀 잘하고 싶긴 해요. 자꾸 비교돼요. 주눅이 들어요.

그런 마음이 안 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참 어려운 숙제예요. 그렇죠?

마지막으로, 앞으로 같이 작업하게 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성숙해졌다, 달라졌다? 이런 공연을 경험해 보고 나니 인내심도 생겼고. 귀엽고. 매력 포인트는 운동. 운동하는 걸 좋아해요. 태권도도 잘하고. 가족 중에 운동신경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제가 물려받았어요. 연극 섭외가 많이 들어오면 좋겠어요. 어떤 역이든 소화할 수 있고. 어떤 역할이든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환영해요. 내가 맡은 역을 자신 있게 소화해 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 딸 켈리와 엄마 아그네스가 마룻바닥에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동그란 빛 안에 앉아 있다. 어둠 속에 수어통역사가 서 있다.
  • 서 있는 켈리와 낮은 자세의 남자친구가 거의 닿을 듯한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다. 어둠 속에 수어통역사가 서 있다.

모두예술극장 작품개발 쇼케이스 〈젤리피쉬〉 ©옥상훈

  • 백지윤 무용수가 하늘거리는 노란색 한복 치마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는 족두리와 망사를 쓰고,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든 채 두 팔을 위로 쭉 뻗고 있다.

    빛소리친구들 〈품바, YA!〉

  • 무용수들이 나란히 서서 서로의 팔을 연결해 45도로 뻗고 있고, 백지윤 무용수가 연결된 팔 위를 손가락을 세워 걷듯이 움직인다.

    29동 댄스씨어터, 〈炳(밝을 병) 身(몸 신): 넘어서는 의지〉 (촬영. Oframe)

백지윤

초등학교 때 〈호두까기 인형〉을 보고 발레리나의 꿈을 꾸며 무용을 시작했고, 서울문화예술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 평창패럴림픽 개막공연 〈지젤〉 솔로 공연을 했다. 주요 출연작으로 무용 〈바다에 뜬 별〉(2020), 〈바디하모니〉(2020), 〈열 두 개의 문〉(2021), 〈품바, YA!〉(2021), 〈세 사람의 이야기〉(2022), 〈炳(밝을 병) 身(몸 신): 넘어서는 의지〉(2023) 등이 있다. 연극 〈젤리피쉬〉(2024)에 출연했다. 그밖에 드라마 〈고고송〉, 유튜브 피플지 TV배우로 활동했다.

고권금

무용가이자 안무가이다. 몸과 장소가 맺고 있는 관계를 탐구하는 ‘버티는몸 프로젝트’를 2020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다. 이동하는 공간으로서의 몸에 관심이 있으며 상상과 물질의 이동, 감각과 의식의 이동이 만들어내는 역동을 좋아한다. 노들장애인야학 공연팀 ‘노들 버티는몸’ 등에 함께하고 있다. 〈젤리피쉬〉에 창작조력자로 함께했다. 공저로 『몸의 말들』이 있다. 최근에는 텃밭 일과 달리기에서 기쁨을 느낀다.
gokk212@gmail.com

사진.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자료사진.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9동 댄스씨어터, 백지윤

2024년 8월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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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17: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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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을 하다가 연극 무대에 선다는 게 멋집니다. 무용은 몸으로 기억하지만 연극은 대사 외우기부터 보다 많은 것을 표현하고 관객과 상호작용한다는 면에서 또 다른 도전일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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