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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광장 예술가의 여행 레시피⑤ 나의 일상을 채색하는 아차산무장애숲길과 가래여울마을

  • 황철호 배우
  • 등록일 2024-10-16
  • 조회수 117

이음광장

서울이다!
서울이 고향도 아닌 내가, 어느덧 서울에 살지 않은 날보다 살아온 날이 훨씬 많아졌다. 한편으론 그것이 지긋지긋할 법도 하지만, 그래서 또 서울만큼 익숙한 곳을 찾지 못하게 된 나는 어느새 영락없는 “서울 촌놈”으로 짙게 물들어가고 있다. 서울 광진구에 자리한 ‘아차산무장애숲길’과 강동구 ‘가래여울마을’. 서울로 입성하게 되면서 주거지를 두 번 옮기게 되었는데, 이 두 곳은 그때마다 궤를 함께해준 곳이라 나에게 접점이 되어주었다.

2005년 나는 광진구에서 처음 서울을 맞이했다. 그때부터 내 전동휠체어는 피곤해진 것 같다. 오갈 수 있는 범위가 전에 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집에서 20분 남짓 걸리는 ‘아차산’을 꼽고 싶다. 한라산 중턱에 있는 제주대학교를 졸업했지만, 학교 다닐 당시에는 거기가 물리적으로 산인지도 인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였을까. 서울에서 처음 맞이하는 아차산은 더욱 숨통을 틔워줬다.

서울에서 가장 일출이 빠른 장소로 명성이 자자한 아차산에서 나는 심리적 위안을 가질 수 있는 사찰을 만났다. 그곳과 인연을 이어가던 몇 년 후 무장애숲길이 조성되어 나무 데크 길이 생기면서 조금 더 정상과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다다를 수 있는 최대한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는 내면 깊은 심호흡으로 정신을 예열한 뒤, 서울의 강동 쪽을 내려다보며 홀로 외운 연극 대본도 몇 작품은 될 것이다. 데크 길이 조금만 더 높이 뻗어 있었더라면 훨씬 더 많은 대본을 외웠을 거라는 아쉬움을 남긴 채 말이다. 아차산무장애숲길에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고양이가 있고, 커피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휴게소가 있으며, 막걸리와 맛있는 두부의 융합이 자연스러운 손두부집도 있다.

2021년 1월에는 지난날을 청산하고 허허벌판이었던 곳에 이제 막 조성하기 시작한 대단지 아파트를 따라 생경한 강일동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사 오기 전부터 무언가 마음 한구석이 삭막하고 답답하던 차에, 새 동네에서 작은 토끼굴 하나만 지나면 마치 어린 시절 시골 동네로 회귀하는 듯한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호젓한 옛 동네는 문 씨 집성촌이었던 ‘가래여울마을’이다. 직접 가보기 전이었는데도, 한동안 지속되어 왔던 우울한 감정은 가래여울마을이 인근에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심적 위안이 되었다. 그게 뭐라고….

이사 온 다음 날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미리 알아본 그대로였다. 토끼굴 너머는 소위 아파트 천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일단 아차산을 능가하는 쾌적한 공기와 비닐하우스를 비롯한 화훼농원, 작지 않은 규모의 텃밭이 있었다. 아직 개발이 안 된 서울 한강 끝 동네. 강 건너로는 경기도 구리시가 드넓게 펼쳐졌다. 자연의 풍경 하나하나가 나의 감각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집터의 고사를 지내고 있던 어느 집에선 내게 떡과 수육을 내주었다. 이 얼마나 예스러운가. 이러한 광경은 내가 코흘리개 시절에나 경험했던 것이었으니 오죽 정감이 느껴졌겠나. 잊고 지냈던 나를 다시 생동시킨다고나 할까. 여하튼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가래여울마을의 매력은 급격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그뿐 아니라 가래여울마을에는 민물매운탕집 몇 개가 모여있다. 그중에는 연기자 하정우가 한강변을 뛴 다음 와서 먹고 갔다는 곳도 있다. 한 디저트 카페는 내가 일주일의 루틴을 보내는 곳이다. 여기는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만끽할 수 없는 풍경과 시골 내음을 덤으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 두 곳은 종종 몇몇 지인들에게도 소개하곤 한다. 가래여울마을에서 바라보는 아파트단지와 곧 들어서게 될 이케아와 JYP 신사옥을 바라보는 풍경 또한 남다르게 다가온다. 때로 이런 것들에 신물이 오를 때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아차산무장애숲길 사찰을 찾는다.

청년기의 나는 비행기로, 기차로, 버스로, 배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었다. 국토대장정은 결국 종주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천안에서 서울까지는 와보았고, 보이스카우트와 각종 연수와 여행이라는 명목하에 산과 바다 심지어 외국까지도 다녀오곤 했다. 하지만 대다수가 그렇듯 나이 들어감에 따라 일상에서 별일이 일어나기란 무척 드물다. 그런 무채색의 고루한 일상에서 나를 환기하는 두 곳을 전하였다. 소소한 무언가를 통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유채색 일상을 찾기 바라는 그 마음이다.

  • 도로 측면에 두 개의 토끼굴 터널이 있다.
  • 시멘트벽돌로 지은 작은 단층 건물 벽에 흐릿하게 신장개업이라고 쓰여 있다. 건물 옆에는 전봇대에 전선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 한강 건너편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강을 따라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가재여울마을 산책

[알아두면 좋은 정보]

아차산 무장애숲길

아차산은 해발 295.7m의 야트막한 산으로 산세가 험하지 않고 등산로가 잘 갖춰져 있다. 평강교에서 출발하여 영화사와 기원정사 뒷길을 지나 휴게데크까지 이어지는 0.8km 구간이 무장애숲길로, 대체로 평탄하지만 완만한 경사가 있다. 노면은 목재 데크가 깔려 있어 휠체어나 유아차 사용자의 활동이 가능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안내판도 마련되어 있다. 아차산 입구 공영주차장에 장애인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장애인 화장실은 생태공원 입구 쪽과 무장애숲길에 설치되어 있다.

황철호

우연히 연극을 접한 지 어느덧 20년을 향해 뉘엿뉘엿 가고 있는 중년 아웃사이더 배우다. 삼육재활학교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낸 뒤 제주대학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광고교육원에서 카피라이터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극단 다빈나오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적당한 주변 응시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뇌병변장애인이다.
1ven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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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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