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정선 만화평론가
등록일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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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광장

철학자 미셸 푸코는 세상을 향해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철학에 의하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보편성이라는 것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고유한 개별성과 특수성이 존재할 뿐. 고태호 작가의 웹툰 〈펀치드렁커드〉에서도 푸코의 질문은 유효하다. 정신질환 장애인에게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은 채 높은 벽을 세워가는 사람들을 향해, 고태호 작가는 질문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유례없는 역대급 폭설로 휴게소에 고립된 사람들. 그들은 야유회에 갔다 오던 정신병원의 환자들과 의료진, 그리고 여행객들과 휴게소 주인 부부다. 무려 18명이나 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보여주는 세상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구도 속에서 점점 증폭되어 가는 갈등으로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모두가 아프지만 인정하지 않는 세상

‘일반인’ 여행객들은 같은 공간에 정신질환자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해하며, 자신들은 1층에 있고, 환자들은 2층에 격리되어 있기를 요구한다. 또 환자들이 화장실에 갈 때도 일일이 허락받고 가라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1층 사람들 역시 2층의 환자들처럼 대부분 정신적인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다. 환자들을 이끄는 의사 도민수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잘나가는 유튜버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실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 부모와 함께 여행 왔던 사춘기 소녀 민지도 마찬가지다. 팔에 자해하기 일쑤지만, 민지의 부모는 그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고태호 작가는 “정상인이 한 명도 없다. 모두가 아프다. 마음이 병들었다. 다만 인정을 안 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폭설로 인해 휴게소에 고립된 상황, 이 최악의 환경은 그동안 사람들이 저마다 숨겨왔던, 아니 들여다보려고도 안 했던 마음속 깊은 어둠을 직면하는 시간은 아니었을까? 스스로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1층 사람들 역시, 2층 환자들처럼 마음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편견이 편견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

마치 거대한 마음의 병을 집단적으로 앓는 듯한 요즘 우리 사회를 고립된 휴게소라는 공간에 압축해 펼쳐놓은 것만 같은 〈펀치드렁커드〉. 제목 ‘펀치드렁커드’가 복싱선수처럼 뇌에 많은 손상을 입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뇌세포 손상증을 가리키는 것도 상징적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날마다 쌓여가는 마음속 불안을 철저히 숨긴 채 세상이라는 냉혹한 ‘링’ 위로 끊임없이 올라가야만 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만 같아서다.

그런 연유로 〈펀치드렁커드〉는, 세상이 지정한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틀에 포박되지 않고 진정한 ‘나다움’을 향해 걸어가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출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마음에 가둬놓았던 상처와 결핍을 스스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1층 사람들이 자신 안에 있는 어둠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점이 그러하다. 그것이 궁극에는 장애와 비장애라는 경계를 허물어가며 서로를 도와주는 관계로 성장해갔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주인공 의사 도민수의 말은, 그래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편견이 병을 기피하게 하고, 기피하다 보면 병이 악화되어 또 다른 편견이 생깁니다.”

〈펀치드렁커드〉는 장애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우리 모두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고 한 어느 시구절처럼, 우리가 서로를 자세히 오래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경계선을 넘어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