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지역의 필요를 바탕으로, 지역을 삶과 예술의 터전으로 삼는 장애예술은 어떻게 가능할까. 강원 지역의 장애예술 지형과 현황을 그려보고 현장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다. 춘천, 강릉, 원주에서 예술단체를 이끌거나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는 세 분과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이 만나 강원 지역 장애예술의 현안은 무엇이며, 장애예술 생태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 나눈다.
개요
-
일시2024년 10월 15일 오후 5시
-
장소아트팩토리 봄 카페
-
참석자
최보연 문화정책연구자,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조교수
최윤정 문화예술콘텐츠 맥 대표
황운기 문화프로덕션 도모 이사장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좌장)
고주영[웹진이음]에서 지역의 장애예술에 관한 정보를 더욱 자세히 파악해 보고자 마련한 권역별 기획의 첫 시작이 강원도다. 처음에는 강원도에 올 생각에 좋았는데, 취재 과정에 여러 가지 난관을 맞으며 지금은 스스로를 원망하고 있다. (웃음)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소중하다. 지역에서의 활동과 경험, 생각을 편하게 나눠주시면 좋겠다. 먼저, 하시는 일과 최근의 관심사 등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최보연2020년 9월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에 오게 되었고, 이전에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문화정책을 연구했다. 지역에 한두 번 출장 와서 몇 분 만나 인터뷰하고 대안을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간 지역 이슈에 관해서는 말을 아꼈었다. 그러다가 상지대학교에 온 이후로 조금씩 원주와 강원 지역을 밀착해서 보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장애예술 관련해서는 최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문화시설별 접근성 가이드』 제작에 공동 집필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접근성 관련 정책연구에 참여하면서 장애예술 의제에 관해 다양하고 폭넓게 배우며 작업하고 있다.
최윤정서양화가로 오랜 창작활동을 이어오던 중, 2012년 서울 성북구 ‘스페이스 캔’의 ‘오래된 집’ 프로젝트에 입주작가로 있으면서 뇌전증을 앓는 아이들을 만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전환점이 되었다. 장애를 가진 이들과의 예술적 교류에서 큰 의미를 발견하며 이후 장애예술교육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2018년에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강릉으로 내려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현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의 장애아동 창작지원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A’에서 창작 멘토로 활동하며 강릉과 서울을 오가는 과정에서 지역 내 장애예술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이를 위해 지역문화재단과 협력하기도 했는데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래서 문화예술콘텐츠 맥(이하 맥)을 설립했고,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며 장애예술 창작과 교육에 몸담고 있다.
황운기문화프로덕션 도모(이하 도모)의 시작은 극단이다. 춘천에서 극단 생활을 하다가 2000년에 극단 도모를 만들었고, 2008년에 문화예술 사회적기업으로 발전해 공연 제작을 기본으로 다양한 문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랫동안 거점이었던 춘천 시내에 있는 ‘봄내극장’을 떠나 2021년에 이곳 복합문화공간 ‘아트팩토리 봄’을 개관했다. 원래는 막걸리 공장이었던 곳으로 사무실과 공연장, 카페를 갖추고 있다. 3층에는 레지던시 공간이 있어서 타지역에서 공연하러 온 극단이나 해외팀이 머물기도 한다. 도모나 제가 하는 일 중 장애예술 관련한 영역은 미약하다. 그래도 사회적기업으로 문화예술교육과 장애 관련 일은 꾸준히 연계해 왔고, 초기 단원들은 예술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연령 구분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장애인 예술단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계속 시도하는 상황이라 오늘 이야기를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지역에서 장애와 만난 순간
고주영최근 몇 년간, 적어도 서울 중심으로는, 장애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세 분이 처음 장애인, 장애예술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떻게 관련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나?
황운기예술가의 경로를 따라가 보면 주변에 장애인이 있는 경우가 많더라. 해외 사례들을 보면서 장애예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더 깊이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2018년 평창올림픽 때 문화올림픽 감독을 맡아 패럴림픽도 하게 되었는데, 국내 장애예술인을 모으기 쉽지 않았다. 일본은 장애예술단체가 많고 활동이 활발한데, 우리나라는 왜 보기 어려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가 아트팩토리 봄을 만들면서 장애인 예술 활동에도 잘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층 공연장은 장치반입구가 무대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무대장비뿐만 아니라 휠체어도 진입할 수 있다. 도심 외곽이지만, 경춘선 김유정역이 바로 옆이라 전보다 오기 쉽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으로 장애예술에 마음이 있다고 했지만, 도모 멤버들과 본격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다. 주로 장애인 연극교육과 공연 관람을 지원했다. 사실 장애에 관해서는 연극교육을 하면서 알게 된 게 크다. 춘천에 특수학교인 동원학교와 명진학교가 있는데, 거기에서 예술강사로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중증장애인 예술교육을 할 때 처음 몇 달간은 ‘멘붕’이었다가 장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도모가 해외교류를 하는 일본의 피지컬씨어터 마임이스트는 수어 공연도 하고 도쿄올림픽 패럴림픽 주제 공연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들과 계속 연결되다 보니 우리도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었지만, 함께할 장애인 파트너를 찾기 쉽지 않았다.
최윤정서울 생활을 접고 강릉에 내려온 후 처음 2년간은 창작을 쉬려 했지만, 장애아동 미술교육을 통해 창작이 주는 힘을 다시 느끼며 자연스럽게 작업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 후 강릉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프로그램 ‘나름대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장애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프로젝트 AB–아트브리지’의 창작 멘토가 되었고, 창업하여 장애문화예술 프로젝트들을 지속하고 있다. 3년 동안 진행했던 ‘나름대로 프로젝트’는 올해 지원이 종료되었지만, 현재는 강원문화재단의 다른 지원사업들을 통해 장애아동청소년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초기에는 장애아동을 모집하는 것이 쉽지 않아 장애인부모회와 특수학교, 복지관을 직접 찾아다녔다. 그렇게 3년간 꾸준히 활동한 덕분인지 발굴한 아이들도 성장했고, 주변의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마침 대중매체에서 정은혜 작가가 부상하면서 장애예술에 대한 관심이 지역에서도 함께 높아졌던 것 같다. 그렇게 지속가능성만 생각하고 용감하게 창업했고, 지역에서 장애예술 포럼을 열고, 배리어프리 작업과 장애인 취업·진로 캠프도 운영했다. 특히 취업·진로 캠프에서는 예술가의 입장에서 가능한 진로 방향을 안내하고, 지역 사회복지사와 장애인 창업지원센터 인사가 참여해 실질적인 사례와 경험을 나누며 나아갈 시간을 함께 고민했다.
고주영장애와 관련해 뭔가 해보고 싶다고 해서 쉽게 되는 게 아니잖나. 재원도 필요하고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네트워크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기 쉽지 않다. 지역에서 밀접하게 결합하고 있는 장애 관련 기관이나 단체, 그룹 등이 있나?
황운기춘천에 소재하고 극단 정체성이 있지만, 기업이다 보니 지역보다는 오히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같은 중앙기관과 일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축제 같은 행사를 입찰받아 진행하기도 한다. 그 외에는 사실 춘천에서 협업할 만한 장애인 단체는 거의 없다. 장애인 중심 사회적기업도 있지만, 접점이 있지는 않다.
최윤정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다 보니 복지와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되었다. 창작자로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복지기관이나 지역문화재단에서는 주로 창작 멘토로서의 역할만 기대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복지와 문화예술이 함께 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게 되었고, 이를 보다 깊게 이해하고자 사회복지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이러한 과정의 경험을 통해 예술가로서 문화예술의 본질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복지관에서도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확대하려는 의지가 있지만, 예술성과 복지의 접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면이 있다. 예술가로서 예술성을 바탕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화예술기관과의 협력이 의미 있다고 느껴진다. 장애아동청소년을 위한 활동에서도 조력자를 통해 참여자들에게 접근하기보다는, 당사자와 직접 소통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하고 있다.
장애예술의 현안과 현재
고주영복지와 예술이 완전히 분리된 것은 강원뿐만 아니라 서울도 마찬가지다. 예술에 대한 인식이 다르고 경험치가 다르다 보니 각 영역이 원하는 게 다른 것 같다. 한편, 복지 쪽에서는 예술을 직업이나 창업과 연결해서 고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장애인이 예술가라는 ‘직업’을 갖기 바라는 거다. 수요도 다르지만, 정책이나 주무 부처도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예술가들이나 예술 현장에서는 통합적인 접근을 해보려 하지만, 부딪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최보연자립해야 한다는 의제가 너무 강하다 보니 부딪치는 것 같다. 정책적으로도 애매하게 들어가 있다. 5년 전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 기본계획’ TF팀에 정책연구자로서 참여했는데, 장애예술인으로 한정할 것인지 장애예술로 폭넓게 접근할 것인지에서부터 여러 이해관계와 관점이 부딪히면서, 먼저 장애를 가진 예술가의 권리를 주요 의제로 담아낼 필요가 있었다. 장애예술가들이 예술가로서 존중받고 각자의 삶을 존중받으며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공감한다. 하지만 현재 장애예술과 관련한 다양한 지원 안에서도 여전히 자립이나 직업과의 연결 이슈가 주요하게 맞물려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장애예술인 자립 혹은 고용이 얼마나 가능한가로 접근하는 거다. 그런데 사실 국가 기관이나 공공 문화예술기관에서도 제대로 안 되는 장애인 의무고용을 장애예술에 대한 지원정책 틀에서 시혜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게 태생적인 문제이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고주영기본적인 생활이 해결되어야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야 문화를 체험하고 그다음에 창작의 단계에 이른다. 그런데 지금의 장애예술 지원제도는 이 단계를 다 무시하고 갑자기 창작자가 되라고 계속 밀어붙이는 셈이다. 창작 영역에서 장애를 다루면 이야기가 뭉뚱그려진 채 앞으로 내닫고 있는 느낌이다.
최보연공공 지원사업 심사를 가보면 문화예술교육이 문화적 권리 측면보다는 엘리트 교육, 예술가 발굴로 접근하는 것을 자주 본다. 그런 자리에서는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니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지원사업의 목표에 맞춰 논의를 진행하고 합의를 끌어내기가 어렵더라.
최윤정2023년 강릉시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강원형 일자리 사업이 시작되었다. 제가 운영하는 ‘맥’에서는 2022년에 장애문화예술 포럼과 장애인 취업·진로 캠프를 진행하며 지역의 기관과 협력하여 순수한 창작 일자리로 발전할 가능성을 엿보았다. 그 결과, 복지관의 니즈에 맞춘 최중증장애인 일자리가 생겼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새로운 직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업의 지속성과 참여자들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창작 멘토와 심사, 자문 역할을 맡으며 사업 세팅에 힘썼던 만큼, 이 사업이 오래도록 지속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장애창작자들에게 지속적인 창작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이해하고 있기에, 이 기회가 단기로 끝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고주영중증장애인에 의한 다양한 일상적인 문화예술 활동이 이뤄지던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사업’도 시의 의지로 완전히 사라졌다. 탈시설 예산도 마찬가지고. 이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행정의 의사결정에 의해 장애인의 일상은 물론 장애예술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최윤정올해 강릉문화재단은 조직구조와 인력이 크게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문화소외계층 사업과 문화다양성 사업은 기존의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강릉은 문화예술보다는 축제와 행사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무장애 관광도시’를 지향하고 있지만, 장애인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황운기춘천은 강릉이나 원주만큼 영향을 받지는 않은 것 같지만, 문화예술 영역은 모두 어려워지고 독립영화관도 문을 닫았다. 그래도 춘천문화재단은 비교적 건강한 편이다. 타 기초문화재단에 비해 인력도 많고 활동도 활발하다. 그런데 장애예술 지원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직은 큰 의제가 아닌 것 같다. 한편으로 춘천 문화도시가 2025년에 5년 차로 종료되면 변화가 클 것 같다.
지역의 장애·장애예술 접근성
고주영강원도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문화, 여가에 대한 지원제도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끝맺음하더라. 창작이나 문화예술교육 외에, 향유를 위한 접근성 이슈도 있지 않나. 강원도는 장애인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 1% 더 높다. 면적 대비 밀도가 떨어져서일 수도 있지만, 이동성 문제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산악지대가 많고 지역에 산재해 있어서 이동이 어렵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공연장이나 전시장도 장애인의 문화향유나 접근성에 대한 고민이 잘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다. 현장에서는 어떻게 체감하는지 궁금하다.
황운기다문화나 장애인 대상 예술 활동을 할 때 참여자를 모집하기가 어렵다. 주변에 수소문하고 협회나 학교를 통해 섭외하기도 하지만, 신규 참여자를 발굴하기 어렵다. 공공극장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공공극장의 경우 민간 시설보다는 배리어프리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분이 얼마나 될까.
고주영정보 접근성 확보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경사로를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장애인이 문화예술을 관람하러 오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데도 지역 커뮤니티, 공연장, 전시장에서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딘가에 모여 살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에는 68개 장애인 거주시설에 약 1천5백 명 정도의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황운기집 안에서만 머무는 것일 수도 있다. 일본의 수어 공연 극단을 초청했을 때, 춘천의 청각장애인들에게 수어 연극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역시나 관객을 찾기 너무 어려웠다. 관련 장애인협회에서도 소극적이었다.
고주영강원도 장애인 지원정책에서 장애예술과 관련될 만한 것은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정도인 것 같다. 기본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할 고용이 심각한 문제인데, 일하지 못해 돈을 못 버니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고, 이게 악순환처럼 모든 곳에 적용되어 돌아가는 것 같다.
최윤정기업 후원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후원 대상자가 되더라도 조력자와 동반해야 하는 상황이라 참여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장애미술 영역에서도 수도권과 지방 간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또한, 지역 내 장애아동청소년이 단체로 이용할 수 있는 민간 교육시설과 문화예술공간이 부족하며, 대체로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이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고주영중앙 정책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다. 장애인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다. 강원도의 이 넓은 면적 안에 너무 산재해 있다. 이번에 여러 자료를 보면서 실태조사만이라도 제대로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운기일단 정보 전달만이라도 잘 되면 좋겠는데, 공공기관에서는 개인 정보여서 제공할 수 없다는 얘기만 한다. 오히려 정보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정보를 받고 본인이 그걸 택할지 말지 자유를 주면 되는데, 아예 처음부터 정보를 차단해 놓는다.
장애예술 공공지원
고주영강원문화재단과 토지문화재단 두 군데가 장애예술 관련한 지원사업이 눈에 들어온다. 강원문화재단은 2022년도에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사업’이 생겼고, 올해 ‘장애예술인 창작활동 지원사업’으로 명칭을 바꿨다.
최보연강원문화재단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사업은 도내 장애예술인 대상으로 1인 3백만 원 규모였다. 2023년부터는 3백만 원에서 4백만 원까지 차등 지급하고, 조력자에게 1백만 원이 지원된다. 2024년에는 예비 장애예술인 제도를 도입했고, 전문가 컨설팅과 재단 사업담당자의 현장 모니터링이 추가되었다. 지원 규모도 2022년 15명, 2023년 31명, 2024년 36명으로 매년 조금씩 증가했다. 특히 2024년 2월에는 조직체계에 강원예술인복지지원센터를 신설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장애예술인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고주영조금 의아했던 게, 선정자가 다 개인 예술가였다. 공연 분야가 없고 문학, 시각, 서예, 전통 등이었다.
황운기강원도의 경우 광역문화재단이 다른 곳에 비해 일찍 만들어졌다. 도 차원에서 예술창작지원과 국제교류 지원사업을 한다.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사업은 2022년에 처음 생겼다. 장애예술인의 경우 단체를 만들지 않고 개인으로 작업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예산이 적어 예술단체가 접근할 마음도 안 생길 것 같다. 공연 분야는 오히려 일반 예술창작 지원사업에 신청한다.
최윤정‘프로젝트 AB’를 통해 발굴한 지역의 발달장애 창작자가 올해 성인이 되어 ‘장애예술인 창작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12월에 강릉에서 개인전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 지원사업에서는 조력자 지원이 가능하며, 조력자나 기획비로 예산을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지원은 장애예술가에게 더욱 의미 있는 전시를 마련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될 거로 생각한다.
최보연강원문화재단 ‘장애인 문화예술 아카데미’ 사업도 2023년에 시작되었는데, 11월에 나흘간 2회로 구성해 서울시립대학교 강촌수련원에서 진행했다. 2024년에는 시각과 공연 분야 운영단체를 선정해 ‘장애인 예술입문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시각예술은 문화예술콘텐츠 맥, 공연예술은 트러스트아트프로덕션이 선정되었다. 기간이 짧아 계획했던 것을 성취하기 어렵고 참여자 모집도 힘들었다고 들었다. ‘아카데미’라는 사업명에서의 용어가 주는 고정관념이 있기에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지원단체들이 좀 더 유연한 시도를 하기에는 근본적인 제약이 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장애인 예술입문’이라는 명제 아래 너무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도록 구조화되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윤정강릉문화재단의 지원을 통해 발굴한 지역 장애아동청소년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자, 올해는 강원문화재단 강원예술인복지지원센터의 아카데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6월에 사업이 선정된 후 7월에 교부 절차를 밟으며 진행 중인데, 가장 큰 어려움은 결과 발표를 위한 전시공간을 찾는 것이었다. 전시를 계획했으나 미술관 대관이 이미 모두 차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복지 관련 사업이다 보니 수혜자 수, 운영 횟수, 참여율 등을 체크했는데, 이러한 요소들이 사업 진행에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되는 것 같았다.
최보연「강원특별자치도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 조례」가 2019년에 만들어졌고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장애예술인지원법」)이 2020년에 만들어졌다. 조례를 만들었더라도 장애인을 위해서 뭔가 해본 것이 대부분 복지 지원밖에 없고 복지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경험도 학습 기회도 없었으니까. 지금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장애예술가들이 활발히 활동하면서 현장을 바꿔나가고 있지만, 지방은 그런 편차가 훨씬 크다.
황운기문화예술 향유와 직업인을 양성하는 것 사이에서 다양한 경험을 충분히 할 수 있어야 한다. 배우든, 스태프든, 작가든, 연출이든,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최보연중앙정부에서 지역으로 예산과 사업이 내려올 때는 지역에 맞게 자체적으로 대상을 정하고 선정방식도 정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가 직접 고민하고 실험해 보면서 부딪혀 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지역 상황에 맞춰서 운영할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하다. 심사에 가면 딜레마를 느낀다. 예를 들어, 우수성으로 선정할 것인지, 가능성을 보고 선정할 것인지. 중앙에서 내려오는 장애예술 관련 사업의 경우, 접근성 관련된 부분은 개인 예술가보다는 기관이나 시설, 혹은 단체 중심의 지원이 주도적이다. 근데 지역 상황은 너무 힘들잖나. 장애·비장애를 막론하고 장애예술의 폭넓은 틀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게 유연하게 접근해야 지역의 예술 생태계에 씨앗을 뿌릴 수 있지 않을까. 계속 격차와 수준 이야기만 하다 보면, 서울에서 경험을 많이 하고 내려온 이주 예술가만 지원받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아직 장애예술에 경험이 적거나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지역 예술가들은 안착이 안 되는 거다. 그런데 이주 예술가도 지역 상황이 녹록지 않고 계속 부딪치다 보니 다시 떠난다. 그냥 관계 인구로 남거나 자신의 예술활동이 가능한 곳으로 가버리면 결국 지역 생태계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거다. 그런 딜레마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 지역에서 장애예술의 장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갈등이 생긴다.
황운기장애예술을 일반 창작지원과 똑같이 공모로 진행하는 게 맞을까? 지역에서는 장애예술 분야를 개발하고 장애・비장애를 어떻게 융화할 것인지에 좀 더 집중하는 게 맞지 않을까? 지역문화재단의 경우 근무 여건이 부실하고 담당자도 계속 바뀌고 이직률도 높다. 그런 상황에서 지역의 예술, 장애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한계가 있다. 전시는 잘 모르겠지만, 공연은 혼자 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장애예술인 창작지원금 300만 원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면 또 사정해야 하고, 그것이 반복된다. 범접하지 말라는 태도가 아니라 누구든지 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장애 당사자가 있으면 가점이 되거나 장애인이 주최가 아니더라도 협력・협업 파트너와 함께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
최보연어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개최한 ‘접근성 포럼’에 발제자로 참여했는데, 그중 한 분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법 준수에 대해서 케네디센터 접근성/VSA 사무국장인 베티 시겔이, “다 잘 되어 있다고 미니멈에서 타협할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법이 정한 것을 준수하는 데서 머무르면 안 되고,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어떻게 하면 이들에 대한 것으로 갈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중앙에서 내리는 대로 따른다는 거다. 중앙은 지역이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유연하게 풀어주고, 지역은 상황에 맞게 이러한 요건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위해 여러 가능성을 탐색하여 절충안을 찾아낼 수 있는 환경이 함께 조성되어야 한다.
삶에 스며드는 유연한 확장을 위해
고주영예술계 전반이 정치의 구조, 정책과 연결되어 있다. 장애, 장애예술과 관련해서 동료 예술가 혹은 시민, 관객에게 바라는 점이나 기대하는 변화는 무엇일까?
황운기결국 예술은 스며든다고 생각한다. 직접 예술을 경험해 보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때, 스스로 예술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생략된 상태에서의 지원사업은 사실상 임시적이고 단기적일 수밖에 없다. 장애 혹은 장애예술 지원사업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포럼이나 공청회, 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단순히 실태조사로 장애인 몇 명, 장애예술인 몇 명, 이런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장애인 예술단을 고민하는 것도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공공지원도 필요하고, 삶 속에 스며들어 공존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히 교육이나 보상 차원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최윤정장애예술 사업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양적 평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며, 문화예술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과의 정의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현재는 과정도 챙기고 완결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어 장애예술 활동이 조심스럽고 어려운 상황이 많다.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과 이를 향유하는 사람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지역에서 매개 인력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이 문제 역시 제도와 과정에 중점을 두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보연다 중요하고 공감되는 이야기다. 저는 장애인・장애예술과 관련한 사업이나 인력도 너무 수도권 중심인 것 같다. 그런 중에 지역에서의 작지만 의미있는 시도들이 고무적이라고 본다. 중앙도 마찬가지이지만, 지역의 경우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연결되어야 문화예술의 장을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어우러지면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고정관념으로 판을 축소하지 않으려면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고주영강원도의 장애예술에 대한 자료조사를 하면서, 장애예술 활동이 너무 적은 것은 아닌가, 약간 절망했었다. 그런데 오늘의 이야기 자리를 통해, 엉성한 레이더나 공표된 정보에는 걸리지 않지만 실질적인 움직임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게 너무 반가웠다. 다들 원점으로 돌아가 장애예술이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장애를 둘러싼 제도도 우리의 활동도 결국 다 같이 어울려 잘 살아가기 위한 것인데, 목표와는 점점 멀어지는 방법론을 택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결국 지역의 장애인 당사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같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예술이, 지원제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되물었으면 좋겠다.
최보연
예술행정과 문화정책을 공부한 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일하면서 정책연구자로서 이력을 갖게 되었다. 정책과 현장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에 관심을 가지며, 균형을 상상해보려고 노력한다. 『문화시설별 접근성 가이드: 총론』(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4)을 공동집필했다.
philoarts@gmail.com
최윤정
서양화가. 2012년 서울 성북구 스페이스 캔에서 입주작가 활동과 아트버스 프로젝트, 잠실창작스튜디오 장애아동 창작지원 ‘프로젝트A’ 창작 멘토로 참여하면서 장애아동과의 문화예술교육으로 이어졌다. 고향 강릉에서 문화예술콘텐츠 맥을 설립하고 미술교육공간을 운영하며 발달장애 아동 문화예술교육 활동과 전시기획을 하고, 연령과 대상 구분 없이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제공한다.
maec2022@naver.com
∙ 문화예술콘텐츠맥 블로그
황운기
문화기획자, 연극연출가, 축제감독. 공연예술학 박사. 연출 겸 기획자의 길에 들어설 무렵 일본에 건너가 연극계를 경험하고 돌아와 극단 도모를 창단하면서 공연창작뿐만 아니라 기획, 홍보마케팅, 축제운영, 국제교류, 문화여행사 등 전방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평창문화올림픽 제작감독 등을 비롯해 다수의 축제감독을 역임했고, 2024 필리핀 세부 국제연극제 예술감독에 선임되었다.
artdomo@naver.com
∙ 문화프로덕션 도모 홈페이지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연극의 확장과 새로운 연극의 발생을 시도하는 ‘연극연습 프로젝트’(2018~현재), 발달장애인 연극 프로젝트 등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연극과 연극 아닌 것, 극장과 극장 아닌 것,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에 있고자 한다. 2023년부터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을 맡고 있다.
breeeeze@naver.com
정리.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콘텐츠제작 PD suna.choe@gmail.com
사진.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2024년 11월 (58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