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애·비장애 예술인 창작공간 두구
부산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협업’하는 창작공간이 생긴다는 이야기는 작년 초부터 들었다. 이를 위한 초석 프로그램 격인 장애·비장애 예술인 협업 프로젝트 〈오픈코드_A〉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당시에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협업’하는 공간이 어떤 식으로 운영될지 머릿속에 쉽게 그리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흔히 창작공간이라 하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떠올리는데, 예술가가 일정 기간 공간에 거주하며 창작을 위한 지원을 받거나 다른 예술가와 같이 전시하는 등 예술가끼리 공간을 공유하고 교류하는 곳으로 인식된다. 이 과정에서 협업 형태를 시도하기도 하는데, 종종 단체전이나 작업 공유에 국한되어 진정한 협업의 의미보다는 교류와 소통에 조금 더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서울과 광주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용하는 창작공간이 있지만 ‘협업’을 매개로 운영하는 창작공간이 있었던가 질문해 보자면 쉽게 떠오르는 곳은 없다.
이번에 방문한 창작공간 두구는 2023년 12월에 부산 금정구 두구동 스포원파크 경륜장 내에 문을 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가의 창작, 협업 및 교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배리어프리 환경을 조성했다. 또한 두구는 포용성을 지향하고 ‘협업’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여 입주 신청 단계부터 이를 중점으로 예술가를 모집했다고 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기존 창작공간과의 차별점으로 다가왔다. 장애예술가의 창작물을 비장애인 예술가가 이차적으로 활용하거나 멘토-멘티와 같은 관계로 설정하는 등 기존의 협업 구조에 반대하고, 서로 동등한 평행선에서 창작 과정을 함께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다. “계속 해왔던 그런 것 말고 좀 더 신선한 걸 해보자”라고 설득했다는 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가 간의 상호작용을 우선시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느껴졌다.
동등한 평행선에서의 창작 과정
창작공간 두구는 올해 ‘창발 플레이’의 일환으로 ≪버그를 일으켜≫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었다. ‘창발 플레이’는 두구의 첫 협업 프로젝트 이름이자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지점으로, 전시는 단순한 공동 작업을 넘어 서로의 고유한 정체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두 사람이 하나의 물체에 색을 칠하는” 표면적 협업이 아닌, 각자의 독특한 세계가 교차하고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지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여정을 그린다. 마치 게임을 하다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버그를 찾아내는 것처럼.
전시는 각 모둠의 인터뷰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만타’, ‘세이드징’, ‘도리항’ 세 개의 팀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모둠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물어보니 “협업 과정에서 각 팀의 구성원들은 서로가 가진 관심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고유한 지점을 발견하는 대화를 나누었고, 이 과정에서 관심 주제를 중심으로 모둠을 결성”했다고 답한다. 주제나 목표에 따라 팀을 인위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관심사에서 출발해 자발적으로 모둠이 형성되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만타’는 수어연극을 창작하고 공연하는 극단 에파타, 공간을 해석하고 조형 언어로 풀어내는 노만, 독립문화기획자 최엄윤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팀은 농인 배우와 새로운 연극을 시도하고자 모였다. 빛과 그림자, 배우와 신체, 오브제 사이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예상치 못한 움직임을 실험해보고 시각적 협업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과정을 탐색한다. ‘세이드징’은 철제 조형물을 만드는 우징, 우화나 신화를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를 그리는 신현채, 인간 자아와 다른 세계로의 도달을 연구하는 이지혜가 팀을 이뤘다. “다른 소통 체계를 가진 사람과 함께 창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라는 질문처럼, 작업 스타일도 소통방식도 대조적인 듯 보이는 신현재와 우징 두 예술가가 서로의 세계로 다가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충돌, 그 속에서 서로 다른 감각이 만나 발생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도리항’은 신경다양성을 포용하는 안무그룹 무브먼트 프로젝트 도로시, 두 명의 시각예술가 김리아, 신수항, 네트워커 김보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각자가 가진 ‘신체심리’ 경험을 바탕으로 모였다. 도로시, 김리아. 신수항은 신체를 중심으로 미술과 무용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서로 완전히 융합하거나 분리하지 않는 여정으로서 보여줄 예정이다.
서로를 환기하고 세계를 확장하는 탐색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매개자’였는데, 각 모둠은 작가와 기획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모둠마다 연결된 매개자들은 단순히 감독이나 기획자의 역할을 넘어, 서로 다른 예술적 언어를 이해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위계적인 기획자라 불리지 않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매개자로 불린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영상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서로의 작업 세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버그’를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버그’는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예술적 탐구와 소통을 통해 서로를 환기하고 세계를 확장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각자의 작업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솔직하게 말하기’, ‘자발적으로 워크숍 열기’, ‘브이로그 제작하기’ 등을 시도하며 서로의 세계를 확장하고 서로가 도구가 되지 않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탐색해 간다.
이번 ≪버그를 일으켜≫ 전시는 ‘창발 플레이’의 시작이자 서로를 재발견하고 탐구하는 ‘1차 과정’이다. 최종 결과물은 연말에 공개될 예정으로, 현재 진행 중인 예술가 간 협업이 어떻게 진화할지 기대된다.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보여주기보다는 여정 자체를 드러내고 서로를 재발견하는 탐구 방식을 공개한다. 이러한 여정은 단순 협업을 넘어 서로의 정체성과 작업 방식을 이해하고 각자 고유한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협업의 흥미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창발 플레이’는 매년 이어질 협업 프로그램으로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을지 기대된다. 지속적인 실험과 발견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창작 가능성을 여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협업의 좋은 선례로 남길 바라며, 창작공간 두구가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예술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여정을 지속하는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
버그를 일으켜
부산광역시, 부산문화재단|2024.9.19.~10.10.|창작공간 두구
≪버그를 일으켜≫는 2024년 장애·비장애 예술가 창작공간 두구의 협업 프로젝트 ‘창발 플레이’의 시작을 알리는 트레일러 전시다. 이우징, 신현채 작가와 이지혜 매개자가 함께하는 ‘셰이드징’, 노만 작가와 극단 에파타, 최엄윤 매개자가 함께하는 ‘만타’, 김리아, 신수항, 무브먼트프로젝트 도로시, 김보슬 매개자가 함께하는 ‘도리항’. 이 세 모둠이 각각 기획캠프에서 어떤 버그를 일으켰는지, 어떤 빛을 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지 만나볼 수 있다. ‘창발 플레이’는 기획캠프(8.28.~8.29.), 전시(9.19.~10.10.), 탐구캠프(10.25.~10.26.), 결과공유회(11월)로 진행된다.
이봉미
예술 지속하기, 여성예술가, 지역에서 예술하기 등 삶과 밀접한 화두에서 이야기를 찾고 꺼내놓기를 시도하는 중이다. 부산시립미술관 인턴을 시작해 시각예술기반 전시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부산에서 예술공간 영주맨션을 공동 운영하고 있으며, 예술에서 내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기획 활동을 시작했다. 기획을 통해 확장되고 공유되는 지점에 매력을 느껴 독립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ybongm@naver.com
∙ 인스타그램 @mia_yi_2018
사진 제공.창작공간 두구
2024년 11월 (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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