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광장
- (화면해설) 00:03 가로등만 켜진 캄캄한 밤에 한 벽면에 벽화로 부조 조각이 새겨진 거리를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00:24 눈앞에 검푸른 밤의 해변이 펼쳐져 있고 잔잔한 파도가 친다. 멀리에 고층건물이 늘어선 도시의 불빛과 가로로 길게 이어진 대교에는 화려한 조명이 바다에 반사되어 있다. 화면이 가끔씩 흔들린다. 01:20 실내 헬스장에서 필자가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기구에 앉아 다리를 들어올리는 운동을 하고 있다. 01:49 필자가 철봉대를 붙잡고 위아래로 몸을 구부리고 펴는 운동을 하고 있다. 02:35 엎드려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두 발을 기구에 걸어 무릎을 앞뒤로 당기는 운동을 하고 있다. 03:18 고무공으로 받침대를 한 커다란 서핑보드 위에서 필자가 엎드려 양손과 무릎으로 균형을 잡으려 버티고 있다. 03:36 필자가 서핑보드에서 일어서서 온몸을 움직이며 힘겹게 균형을 잡으려 버티고 있다. 서핑보드는 계속 흔들리고 그에 따라 몸도 함께 움직인다. 04:55 서핑보드와 몸이 급격하게 흔들리다가 이내 바닥으로 엎어진다. 04:56 다음날, 다시 서핑보드에 오른 필자는 조금은 안정적으로 서서 버틴다. 여유를 부리며 웃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온다. (영상 자막) [영상에세이] 몸과 마음의 근육 키우기 지구별에 존재 이후 첫 PT 운동을 하다 나는 성폭력 피해생존자로서 2021년 8월 부산지역 장애인인권단체 조직 내부의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하였다. 이후 해고 종용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2년 동안 사건에만 매달리고 아무도 만나지도 무언가를 하지도 않고 집에서만 보냈다. 그해 11월쯤 나는 망미동에서 광안리 바다까지 전동휠체어를 타고 무작정 달렸다. 광안리 바다에 도착해서 파도를 하염없이 보았다. 토미 코치 - 쭉. 무릎 더 가야 되. 더 가야 되요. 무릎 닿이겠어요. 닿이겠어요. 무릎. 내가 사건 재판에만 계속 매달리다간 나의 몸과 마음이 망가져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PT 운동이라도 해야 그나마 살아 버틸 것 같아서 2023년 1월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토미 코치 - 등으로 버티면서 내려갑시다. 토미 코치 - 하나만 더 합시다. 등으로 버티면서. 운동을 하면 할수록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맨몸으로 풀업하기, 바닷가에서 서핑하기, 보디프로필 찍기, 클라이밍 도전하기. 릴리 코치 - 집중! 이렇게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우기 시작했다. 릴리 코치 - (시선) 앞으로! (고정) 무릎. 릴리 코치 – 오! (웃음) 무릎, 무릎 모여요. 릴리 코치 - 앉아 볼까요?! 토미 코치 - 어제 (운동할 때) 뭐라고 했어요? 릴리 코치 - 상체 세워요. 앞으로 쏠려요. 토미 코치 - 오른쪽. 오른쪽. 오른쪽. 오른쪽(균형). 오! 릴리 코치 – 앞에, 앞에(시선), 거울 보고! 토미 코치 – 수키님, 무슨 게임 캐릭터 같다. 그 있잖아? 서핑하는 거. 릴리 코치 - 허리 세워요. 릴리 코치 - 웃으면 안 돼. 웃으면 안 돼. 수키, 릴리 코치 - ㅎㅎㅎㅎ(웃음)
성폭력 피해생존자인 나는 2년간 사건 진행 및 법정 싸움으로 지쳐있었다.
어느 날 너무 답답한 마음에 한없이 바닷가에서 파도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있다가 정말 내가 무너져 없어질 것 같아 운동을 시작했다.
내가 헬스 운동, PT(퍼스널 트레이닝)를 선택한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중증장애인은 물리치료나 작업치료 같은 재활훈련만 해야 한다는 인식을 깨트리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운동 동작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2022년 1월 지구별에 존재하고 첫 헬스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키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그릇된 통념에 맞서 장애인권운동계의 조직적 변화를 끌어낸 젠더퀴어 장애인권활동가이자, 지금은 성폭력 피해생존자로서 성평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에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2025년 1월 『저에게도 마음이 생겼습니다』를 출간할 예정이다.
ekfslaqk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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