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광장
2024년 12월, 풍경놀이터에서 교육받은 다섯 명의 농·청각장애 청년이 각자의 단행본을 출간하며, 정식 작가로 데뷔했다. 시인 옥지구, 한재희, 소설가 한송희, 최유경, 이주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책은 연합뉴스TV, 서울책보고 큐레이션, 김미옥 선생과 이승하 선생의 책 추천, 파주페어_북엔컬처 낭독회, 동작문화재단 수어시 전시와 공연 등 다양한 매체와 행사를 통해 주목받고 있으며, 전자책과 오디오북 제작 지원에도 선정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와 만날 예정이다.
다섯 농인·청각장애 청년 작가들의 책(출판사 핌, 2024)
(왼쪽부터) 옥지구 시집 『어느 누구에게도 다정함을 은폐하기로』, 한재희 시집 『네가 슬퍼서 참 다행이다』, 한송희 소설 『여기는 안녕시 행복동입니다』, 최유경 소설 『경계의 푸른 얼굴들』, 이주형 소설 『초파리』
풍경놀이터의 농·청각장애인 문학작가 양성 전문 교육
2021년에 활동을 시작한 장애문화예술단체 ‘풍경놀이터’는 문학 창작과 향유 경험에서 소외된 분들을 만나고 싶다는 내 소망과, 농·청각장애인에게 문화예술 복지가 더 필요하다는 구본순 대표의 바람이 만나 설립한 단체다. 둘 다 작가인 우리는, 제일 잘할 수 있는 ‘글쓰기 수업’을 주요 사업으로 정했다. 또 구본순 대표가 농인과 결혼하여 코다(CODA) 가정을 꾸리고 있었기에, 그가 제일 잘 이해하는 농·청각장애인만을 대상으로 강의를 열었다. 강의에는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제공됐고, 구본순 대표가 소통의 장벽 없이 문자와 화상 수어통화로 모든 문의에 응대했다. 풍경놀이터의 활동은 금세 전국의 농·청각장애인에게 소문이 났다. 서울에서 꾸려진 강의에, 서울·경기, 인천, 오산은 물론 천안, 세종, 경북, 전북 등에서 KTX를 타고 수강생이 찾아왔다.
청년들의 욕구에 귀 기울이기
처음 시작은 글쓰기 경험 혹은 향유에 목적을 두었다. 수업이 끝나면 늘 후기를 받는데, 유독 청년 수강생들이 “글쓰기 경험을 넘어서 작가가 되기 위한 심화 교육을 받고 싶다.”라는 바람을 많이 남겼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우리는 일단 해보기로 했다. 이들의 욕구가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 작가 양성’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두고 참 많이 고민했다. 우리의 목표는 무엇일까? 작가로 데뷔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하는 것? 데뷔 자체를 돕는 것? 데뷔 작가가 자립할 수 있도록 후속 지원을 하는 것?
우리가 내린 답은 ‘모두 다’였다. 강사의 역할이 중요했다. 농·청각장애인은 농학교를 나왔는지, 인공와우를 했는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도는 어떠한지에 따라 글쓰기 배경 지식이 천차만별이다. 그러다 보니 기본 개념부터 정확히 배우고 가야 하는데, 강사가 전문가가 아니면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써보세요.’ 방식의 수업이 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강사는 전공자일 것, 출간 경험이 있을 것, 현업 작가일 것, 업계에서 끌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것이라는 까다로운 기준을 세웠다. 이 기준에 따라 시는 시인이자 평론가인 이영숙 선생이, 소설(동화)은 필자가, 그림책은 공은혜 작가가 수업을 맡았다.
꼭 겪어야 했던 좌충우돌의 시간
지금이야 농·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 노하우가 누구보다 많다고 자부하지만, 초반에는 미숙한 점도 많았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 깜빡 잊고 마스크를 쓴 채로 수업을 하기도 했고(농·청각장애인들은 강사의 입 모양을 봐야 한다), ‘문학’과 ‘시’의 수어가 같다는 것을 모르고 사전 설명 없이 문학 개념어를 남발하기도 했으며(수어에는 문학 용어가 세세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통역의 속도를 고려하지 않고 빨리 말하는 일도 많았다. 결국은 수강생에 대한 이해와 소통의 문제들이었다.
2년 차부터는 메인 강사와 운영 강사의 투톱 시스템을 도입했다. 메인 강사가 수업하는 동안 운영 강사를 맡은 구본순 대표가 실시간으로 수강생의 이해도를 살피고, 쉬는 시간에 메인 강사에게 피드백을 주면, 메인 강사는 이를 바로 강의에서 보완하는 방식이다. 운영 강사는 필요에 따라 수업 도중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도 있어서, 수강생이 자신의 난이도에 따라 수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물론 특정 단어를 어떻게 통역할지 함께 고민해 준 수어통역사들과 수강생들의 진심 어린 피드백은 우리의 자산이자 힘이라는 것도 늘 잊지 않고 있다.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제공되는 강의 현장
입 모양과 표정은 언제나 크고 분명하게

맹현
작가, 출판사 핌 대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장애문화예술단체 풍경놀이터에서 5년째 교육과 행사를 기획하고 글쓰기 지도를 하고 있다. 도덕 토론 드라마 〈어쩌지, 어떡하지〉, KBS2에서 방영한 애니메이션 〈파파독2〉의 각본을 썼다. 쓴 책으로는 『영화를 알면 논술이 보인다』(공저), 『아기자두와 아기호두의 시』, 『쓰레기 위성의 혜나』, 『쓰레기 위성의 혜나2_알리올라 행성의 비밀』, 『거울 가면』이 있다.
sirens77@naver.com
∙ 풍경놀이터 홈페이지 pgplayground.co.kr
사진 제공.필자
2025년 9월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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