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5년 8월 14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린 〈선택의 시간〉은 제10회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KIADA, 이하 키아다)의 기획작으로, 지난 6년간 이어진 교류와 협업의 결실이었다. 영국의 안무가 아담 벤자민과 키아다의 인연은 2019년 ‘심플리시티 앤드 컴플렉시티’ 워크숍에서 시작되었다. 2023년 즉흥컨택 워크숍을 거쳐, 2024년 ‘키아다 콜라보레이트 레지던시’로 공동창작의 기초를 다졌고, 마침내 이번 10주년 무대에서 그 여정은 완성의 순간을 맞이했다.
규칙과 자유 사이에서 피어난 다름
무대 위에는 서로 다른 국적의 무용수들이 섰다. 그들의 나이와 몸은 제각각이었고, 휠체어를 탄 무용수도 있었다. 누군가는 천천히 몸을 기울였고, 또 다른 이는 바닥을 굴렀으며, 손끝을 떨리는 리듬으로 내밀기도 했다. 휠체어 바퀴가 바닥을 가르는 소리와 그 옆에서 팔을 크게 휘두르는 무용수의 호흡이 겹치며 순간마다 다른 결을 만들었다. 숨을 고르듯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이는 장면에서는 관객의 시선마저도 따라 멈추고 다시 흐르는 듯, 무대와 객석 사이에 보이지 않는 호흡이 교차했다. 다름은 경계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연결의 시작이었다.
더욱 눈에 띈 것은 음악과 안무, 무용수들 간의 약속, 공간의 사용과 조명이 모두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순간의 즉흥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반복된 연습과 명확한 구조 위에서 움직임이 쌓였기에 작품은 완성도 높은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규칙과 자유가 충돌하면서도 결국 다시 균형을 찾아가는 장면은, 치밀한 준비와 순간의 에너지가 동시에 빚어낸 아름다움이었다.
특히 극장의 벽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하나의 무대 위에서 다른 공간과 시간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내며 관객에게 새로운 상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공연 초반, 객석의 관객을 말이 아닌 손의 리드로 무대로 끌어내 무용수들과 함께 교감하게 만든 장면은 작품의 제목과 시놉시스에 내포된 ‘선택’의 의미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강렬한 시작의 인상을 남겼다.
무대를 마주한 나의 질문
작품은 ‘스코어(Score)’라는 규칙에서 출발했다. 같은 흐름이 이어지던 순간, 누군가 규칙을 깨뜨렸다. 그러나 그것은 혼란이 아니라 또 다른 가능성이 되었다. 다른 무용수들은 거부하지 않고 그 틈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조율을 만들어냈다. 규칙은 우리를 지키기 위해 있지만, 때로는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역설이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40분 동안 이어진 공연 속에서 음악, 조명, 움직임, 무용수들 간의 호흡은 수많은 생각을 스쳐 가게 했다. 과거의 향기, 관계, 추억의 장소, 소리까지 불러내며 내가 지나온 선택의 순간들, 그리고 앞으로 선택해야 할 시간을 차분히 떠올리게 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과연 우리는 ‘정상’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나누고 있었을까. 말로는 다름을 포용하자고 하면서도,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살아왔던가. 무용수들의 진지한 시선과 몸짓은 내 안의 안일한 마음을 흔들어 깨웠다. 공연이 끝난 뒤, 남은 것은 제목 그대로 “선택의 시간”이라는 여운이었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이전에 중요한 것은 오늘, 지금 이 순간 나의 상태와 행동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 작은 선택들이 선이 되고, 면이 되고, 결국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형태를 만들어간다.
극장을 나오며 생각했다. 아마도 ‘선택의 시간’은 거창한 결단의 순간이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갈림길 속에 숨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다름을 대하는 태도, 자신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그 순간의 마음을 어떤 쪽으로 기울일지 결정하는 일. 공연은 그 모든 일상의 선택들이 모여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빛깔이 된다고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선택의 순간이 쌓여 삶을 만들고
〈선택의 시간〉은 장애예술을 특별한 영역에 가두지 않고, 동시대 무용이 묻는 근본적인 질문 속으로 끌어올렸다. 작은 틈 속에서 시작된 연결, 다름 속에서 피어난 연대, 그리고 오늘 내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
무대에서 본 문장 하나가 오래 남는다.
“손은 잡기 위해 있고, 심장은 흔들리기 위해 뛴다.”
이 간단한 문장이 공연을 본 내 하루에도 파문처럼 번졌다. 결국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의 순간이 쌓여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을 만든다. 〈선택의 시간〉은 그 단순하지만 깊은 진실을 몸으로 전해준, 따뜻하면서도 묵직한 무대였다.
키아다 × 아담 벤자민 〈선택의 시간〉

선택의 시간
(사)빛소리친구들|2025.8.14.|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제10회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2025.8.11.~8.17.) 기획작으로,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무용수들이 규칙과 자유 사이에서 진정한 소통을 모색하고, 움직임과 호흡을 통해 규칙의 의미를 재구성하며 연대와 연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키아다와 아담 벤자민은 2019년 ‘심플리시티 앤드 컴플렉시티’ 워크숍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협업을 이어왔다. 2023년 한국에서 즉흥컨택 워크숍을 통해 협업형 레지던시 구상을 구체화했고, 2024년에는 키아다 콜라보레이트 레지던시를 이끌며 공동창작의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2025년에 협업 공연을 올렸다. 안무 아담 벤자민, 출연 김원영, 김종현, 로라 델라 파스콰, 모니카 모셀리, 박준섭, 신고 요시자와, 아담 벤자민, 윤수경, 이은성, 정승호.
∙ 공연정보 :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홈페이지 kiada.co.kr

김혜연
여니스트 대표, 안무가. 생성 AI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안무가이자 예술 콘텐츠 기획사 ‘여니스트’ 대표.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것은 춤'이라는 모토를 담은 안무작과 무용 콘텐츠를 선보인다. 공연뿐만 아니라 예술, 인문을 중심으로 한 강연과 공간 등을 기획하고 브랜딩한다. 주요작품으로는 메타버스와 생성형 AI 시대의 예술을 그린 프로젝트 <예술래잡기술>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국제 레지던시 공연 분야 선정작인 <경우의 도시>, 현대자동차 제로원 보스턴다이나믹스
사진 제공. (사)빛소리친구들
2025년 9월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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