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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소규모 프로덕션에서의 접근성 실천 사례③ 많은 티끌들과 함께

  • 다이애나랩 
  • 등록일 2025-09-17
  • 조회수 33

이슈

접근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어려움 중에는 공간, 예산, 인력의 한계가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적은 예산과 인원으로도, 작은 극장이나 전시장에서도, 여러 한계를 창의적으로 뒤집으며 접근성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어떤 생각과 태도가 이러한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지 자세히 들어보자.

다이애나랩은 소수자 접근성을 고려한 기획이나 예술작품 창작을 한다. 그간 많은 시도를 해왔지만, 접근성과 작품 프로덕션에 관해 쓰려고 보니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너무 멀리 와버린 느낌이다. 하면 할수록 무언가 더 복잡하게 얽혀든다. 그렇지만 그 모든 순간이 너무 즐거웠기 때문에 우리가 작품을 만들면서 그간 어떤 과정과 맥락을 거쳐왔는지 이야기해 볼까 한다.

우리가 왜 이런 작업을 하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항상 막막한 순간이 있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 주변에는 늘 사회적 소수자의 범주에 속하거나, 여러 범주에 겹친 정체성을 가지고 있거나, 그 경계에 있는 존재들이 있었다. 사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왜 이렇게까지 힘들까 싶을 때가 있었다. 접근성이라는 단어는 누군가에게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는 말일 수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강한 감정의 격랑에 빠져들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접근할 수 없었던 경험이 많을수록 그럴 것이다. “나중에”, “기다려”라는 말 앞에 가로막히는 순간들. 그런 시간이 쌓여 화 또는 무기력, 우울 같은 덩어리로 굳는다.

접근성을 고려한 예술작품의 창작 혹은 기획에는 먼저 예산과 시간과 전문적인 인력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있는 예산이나 상황에 맞추어서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것들이 한 번도 충분했던 적이 없다. 그런데 만약 아예 없거나 너무 적은 상황이라면… 안 된다. 할 수가 없다. 슬프게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아쉽지만 예산이 없어 휠체어 출입이 불가능한 자리가 되었다는 말, 혹은 시간이 모자라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는 말은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하나 마나 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무언가 없거나 채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 훨씬 더 익숙하다. 그런데 굳이 그걸 갑자기 사과하거나 여의치 않은 다른 상황들의 문제로 못 박아버리는 건 뭐랄까, 처음으로 이런 종류의 배제와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해결 방법은 당장 찾을 수 없어서 미안함이라도 최대한 표현해 보려는 시도랄까? ‘마음은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바꾼다는 게 쉽지 않았어’ ‘나도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해 봤는데 너무 아쉬워’ 비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그랬다. 서로에게 미안해지는 상황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고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미안한 마음조차 없다면 그것 또한 문제겠지만,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지는 사과도 별로다. 우리는 언제까지 서로 미안해하기만 해야 하나? 무언가 실제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그런 절박함을 늘 한 손에 쥐고, 그렇지만 당장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닌 예술이라는 걸 해왔던 것 같다. 정말로 그게 최선이었냐고 스스로에게 묻는 방식으로.

접근성을 고려한 예술작품의 창작에는 빈틈이나 흠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그게 괜찮은 건 아니다. 시도에 박수할 수는 있지만 실패는 실패다. 거기에서부터 다시 무언가 만들어야만 한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것일까?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걸까? 아니. 오히려 그간 우리는 너무 허술하고 사람 좋게 그 계단, 그 벽, 그 경계와 선 앞에서 마치 그것들이 없는 것처럼 그냥 넘기며 살았던 것 같다. 전혀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하면서. 때로는 진짜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면서. 이제 그런 건 좀 하기가 싫어졌다.

우리는 작품을 만들면서 그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분명한 선들을 하나씩 다시 찾아 그어본다. 선은 누가 예전에 그어놓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계속해서 긋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선이 없다고 하거나, 우리는 그런 선 긋기와는 무관하다고 하거나, 이 정도로 선을 흐리게 만든 것이라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뭐랄까, 아닌 것 같다.

접근성을 고려하며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이것과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가장 바깥에 있을 것 같은 존재들을 생각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무엇이 ‘되고’ 무엇이 ‘되지 않는지’를 끝없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과정이다. 이쪽에 작은 틈을 새로 벌리면, 다른 쪽에 예상치 못한 틈이 생기거나 너무 꽉 끼어 비틀어지는 부분이 생기지 않는지를 살펴야 한다. 전체를 잘 작동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외계에서 무언가가 작고 날카로운 것이 날아와 폭발한다.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서 나름대로 매끈해진 부분들이 서로 부딪치는 일은 드물다. 예를 들어 계단에 경사로를 놓는 수준에서는 그렇게 큰 이견 없이 모두가 환영할 만한 무언가가 완성된다. 그게 수어통역이라든지 음성해설처럼 다른 ‘접근성’이라 불리는 것들과 부딪치는 일도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너무 작아서 알아차리기 쉽지 않고, 생각할수록 복잡하고 도저히 풀리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또 그런 것들은 대부분 형식이나 보조적인 수단인 것이 아니라 작품의 핵심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되고’ ‘되지 않는’ 선들이 촘촘하게 얽혀있는 그 앞에서 계속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새로운 걸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젊은 모색 2025》에서 전시 중인 신작에는 너무 작아서 알아채기 쉽지 않지만 꽤 복잡하고 중요한 부분이 많다.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몇 마디로 알아듣기 쉽게 정리해서 대답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그냥 우리가 예전에 계속해 왔지만 점점 명확한 한계로 느껴져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생각하게 되는 부분을 바꾸어보려고 했다. 그걸 바꾸기 위해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형식이 필요했다. 하나의 예술작품이라는 원본이 이미 존재하고, 그것을 설명하거나 보충하거나 번역하는 갖가지 접근성 장치들이 보조적으로 붙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완성된 원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운드, 한영 자막이 있는 2채널의 영상, 음성해설, 한국수어로 각각의 작품을 만들고, 이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게 했다.

설치 방식과 형식을 먼저 정했다. 지문 없이 3명의 대화로만 된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것이 완성되기 전에 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시나리오가 완성된 후에는 감수를 받았다. 그다음 박하늘, 백소정 배우와 한국어 음성을 녹음하고 TTS(텍스트 음성변환)를 활용해 〈티끌0422〉라는 사운드 작품을 만들었다. 김보석 수어통역사가 이 시나리오를 한국수어로 번역하고, 농예술 단체인 누비스의 배우 김우경·김지연·우지양의 시나리오 감수와 수정을 거쳐 한국수어로 된 작품 〈티끌1104〉를 촬영했다. 사운드 작품에서 나온 러닝타임 88분에 맞추어 영상 작품 〈티끌0403〉 〈티끌0627〉을 재편집하고, 주변음으로 쓸 사운드를 만들면서 그것을 영상에 자막으로 넣고, 음성해설을 녹음했다. 작품을 모두 설치하고, 〈티끌1104〉 모니터 앞에 수어를 할 때 나는 소리와 주변음을 지향성 스피커로 설치하고, 바닥 시트지로 어떤 소리인지 설명을 붙였다. 전시실 내부에는 흰지팡이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을 고려해 바닥에 질감을 다르게 한 유도선과 벽면 점자 안내를 설치했다. 그리고 은분으로 벽에 드로잉을 해서 〈티끌0816〉을 만들었다. 시나리오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유빙 조각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무진동사’가 디자인한 스툴을 두고, 그 위에 작품 감상에 필요한 정보를 담은 점자와 묵자 리플렛을 비치했다. 전시장에서 안내와 조력을 해주는 이들과 안내데스크 직원들이 참고할 수 있게 작품과 접근성에 대한 긴 정보와 소수자 관람객 가이드를 적어 공유했다. 그리고 이 가이드에는 시각장애인이 전시장에 방문했을 때 필요시 현장에서 1대1 음성해설을 할 수 있도록 작품의 시각정보에 대한 해설을 포함하고 있다.

이 모든 접근성 프로덕션은 작품의 내용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가지고 작동한다. 작품 제목 뒤에 붙는 숫자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자립한 실제 인물들의 생일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A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오래 살다 자립해 이동권 투쟁에 합류한다. B는 아시아 최대의 댐을 짓는 한겨울 공사 현장에서 강제노동을 하다 탈출해 유빙이 밀려오는 북쪽으로 간다. C는 현재 서울에서 평범하게 사는 30대 여성으로, 우연히 지하철에서 A의 ‘티끌’을 만나 큰 변화를 맞는다. A,B,C는 각자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이 다르지만 같은 부족이다(이 시나리오의 장르는 SF다). 영상 촬영 장소는 2016년에 폐쇄된 중증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송전원, 시설에서 자립한 중증장애인 신승연과 신승미의 그룹홈, 소양강댐, 한강 난지지구, 금화터널, 서울대공원, 혜화역 승강장, 일본 홋카이도의 시베츠, 토도와라, 우토로, 시레토코 국립공원, 아바시리 강, 쇄빙선 오로라호 등이다.

복잡하고 긴 내용이라 간단히 소개하기가 어렵지만,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우리 주변의 어떤 빛나는 한계점들에 대한 것이다. 그것을 위해 이번에는 필연적으로 이런 형식이 등장했다. 다음 작품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 작품에도 ‘이건 안 된다’ 싶은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과정이 분명히 즐거우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 어두운 전시장 안, 큰 스크린에 눈 덮인 숲길 풍경 영상이 상영되고, 화면 하단에 자막이 있다. 한 관람객이 흰색 스툴에 앉아 영상을 보고 있다. 왼쪽 벽에는 작은 모니터 세 개가 설치되어 있고, 가운데 화면에서 수어를 하는 사람이 보인다.

    영상과 한영자막, 음성해설로 감상할 수 있는 〈티끌0403〉과 한국수어로 감상할 수 있는 〈티끌1104〉

  • 전시장 벽에 다섯 개의 헤드셋이 걸려 있고, 그 아래로 작은 은색 의자가 일렬로 놓여 있다. 바닥에는 구획선이 표시되어 있으며, 벽에는 은색의 불규칙한 선으로 티끌을 형상화한 모양과 유빙 조각들이 그려져 있다.

    한국어 음성과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는 〈티끌0422〉와 은분으로 그린 월 드로잉 〈티끌0816〉 ⓒ우에타 지로.
    바닥에는 유도선이 설치되어 있다.

다이애나랩

다이애나랩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표현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그룹이다. 미디어아트, 사운드아트, 텍스타일, 사진, 영상 등 개인 작업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콜렉티브(collective)로 물리적인 공간부터 순간, 보이지 않는 공기까지 전체를 섬세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dianalab00@gmail.com
∙ 인스타그램 @fragments_1444

사진 제공. 다이애나랩

2025년 9월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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