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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비장애 예술가가 함께 예술 작업을 해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남은 어떻게 이뤄지고,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떻게 이어질까? 작업 동료로서 함께 일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서로에게 어떤 예술적 시너지를 주고받았는지 서면 인터뷰에 담아본다.
두 분이 함께 작업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디서 어떻게 만나셨나요?
김지수2007년 가을이었어요. 극단 창단 초기에 극단 산 윤정환 연출의 소개로 예슬 님이 극단에 왔어요. 예슬 님은 ‘장애인’을 만나본 적도 없다고 했어요. 저는 그때 극단을 만들고 돈을 벌기 위해 취직했던 시기라 극단 모임에 자주 가지 못했는데, 예슬 님은 단원들과 매우 친해졌죠. 아마 예슬 님이 생각하기에 저는 가끔 와서 밥 사주고, 회의 같은 걸 하고 가는 ‘대표라는 사람’이었을 거예요. 저는 학생 아닌 학생이 극단에 와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처음에는 좀 서먹했고, 극단을 창단할 때 ‘장애인’으로만 구성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어느새 예슬 님은 단원으로서의 소속감을 느끼고 있었고, 다른 단원들과도 대등한 관계를 맺는 것 같아서 극단 애인의 유일한 비장애인 단원이 되었죠.
강예슬2007년 극단 애인이 창단하던 시점에 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집에 있었어요. 사촌오빠의 제안으로 극단 애인의 모임에 나가게 되었죠. 그때 지수 언니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매번 모임에 참여하진 못해, 가끔 오시는 대표님으로서 만났죠. 그 시기에 저는 새로운 소속감과 활동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고, 애인의 활동도 재미있어 극단에 입단하게 되었어요. 2012년쯤 지수 언니가 극단 활동에 전념하면서 장애학 스터디도 주최하고, 라이프스토리도 썼어요. 삶에 관한 대화도 많이 나누고 앞으로 우리가 올릴 공연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누면서 본격적으로 함께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동료로 함께 작업한 것이 좋은 작품이나 성취로 돌아왔나요?
강예슬저에게는 큰 성취로 돌아왔어요. 왜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지난한 과정을 함께 해왔기 때문에요. 지수 언니와 저는 극단 대표와 단원, 작가와 연출, 연출과 연출 등 다양한 관계로 연극 작업을 지속해 왔어요. 어떤 관계로 함께하든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부터 만드는 과정, 결과물로 나오는 그 순간까지 서로를 응원하고,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조언을 구하면서 만들어요. 장애배우를 캐스팅할 경우, 특정 장애 유형에 맞는 배우를 찾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러면 지수 언니가 동료상담 하면서 만났던 많은 분을 소개해 주죠. 배우들과 소통이 어려워질 때, 글 쓰는 게 힘들 때, 무엇이 힘든지 말하면서 정리될 때도 많았죠. ‘극단애인의 삼인삼색 이야기’ 시리즈는 단원들이 직접 쓰고 출연하고 연출하는 단막극으로,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시즌 4가 공연되었는데요. 대본을 집필하다 어려우면 언니랑 대화를 해요. 그러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저의 생각이 정리가 되죠. 또 말하고자 하는 바에 다가갈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제안해 주시기도 해요. 지수 언니와 함께하는 작업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가 성장하게 돼요. 그래서 저에게는 큰 성취예요.
김지수극단에서 18년 동안 함께 작업해왔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이 함께 얻은 성취였는데요. 기억에 남는 일 몇 가지가 있어요. 2014년에 예슬 님이 ‘연출’로 데뷔했는데, 첫 연출을 앞두고 두려워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나서는 정말 꿋꿋하고 야무지게 역할을 해냈어요.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셨던 이연주 연출님이 애인의 배우와 예슬 님을 위해서 작품을 써 주셨고, 예슬 님이 연출하고 백우람·하지성 님이 주인공이었는데, 그때의 작업이 큰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에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단편소설 『무무』를 제가 각색하고 예슬 님이 연출했어요. 그때 3개월 정도 연습하고 3주 동안 공연했는데 무대기술팀 외에 홍보와 진행 등의 일을 외부 인력의 도움 없이 거의 다 극단에서 진행했어요. 관객이 너무 없었고, 정말 추웠고, 고생을 많이 했고, 쓸쓸했지만, 하고 싶은 공연을 올렸다는 성취감이 컸던 것 같아요.
또 하나의 기억은 2017년 극단 창단 10주년을 맞아 〈극단애인의 삼인삼색 이야기 1.5〉를 올렸는데, 예슬 님이 제가 연출한 작품에 출연도 하고 다른 작품 연출도 했었어요. 예슬 님과 제가 연출이니까 같이 상의하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는데, 침착하게 정리해 가면서 하고 있더라고요. 둘 다. 그때, 예슬 님과 제가 ‘연습과 공연의 모든 과정이 익숙해졌구나, 우리가 연극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척 뿌듯했습니다. 2018년에는 거의 두 달에 한 편씩 공연을 올렸는데, 저는 중간에 병이 나고 말았지만 예슬 님은 한 번도 아프지 않고 여러 공연을 해내는 걸 보면서 성취를 넘어 존경스러웠어요.
혹시 작업 과정에 어려움을 느꼈던 적이 있나요? 어떻게 돌파하셨나요?
강예슬연출 의도와 배우·스태프의 해석이 달라 조율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어요. 제 방식은 계속 대화로 접근하는 것인데, 이게 때로는 상대를 압박하는 방식이 되더라고요. 몇 번의 갈등을 겪으면서 소통 방식을 점검하게 되었어요. 이제는 의견 충돌이 생기면 지수 언니에게 조언을 구해요. 지수 언니는 연출 외적인 맥락, 이를테면 배우의 컨디션, 제작 여건 등을 폭넓게 고려해서 조언해 주기 때문에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돼요.
김지수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올리고, 마무리하는 일에는 언제나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어려운 일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기도 해서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일이 막 떠오르진 않네요. 그보다는 예슬 님과 제가 작업을 같이 하게 될 때, 배우나 스태프에게 신체적·심리적으로, 혹은 예상치 못한 사정이 생기면 가장 먼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는 게 예슬 님이나 저였어요. 배우에게 사정이 생기면, 작품에 대해서 알고 있고 연습 과정을 보아온 사람이 저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대신 하게 되고, 스태프에게 사정이 생겼을 때 예슬 님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대체하게 되는 거죠. 서로의 장점과 취약함도 잘 알고 있으니까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대책을 마련하기 수월했던 것 같아요.
두 분은 ‘일로 만난 사이’를 넘어 뭔가 함께 도모할 만한 관계가 되었나요? 어떻게 해야 서로 좀 더 신뢰할 만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요?
강예슬이미 ‘일로 만난 사이’를 넘어선 지 오래된 것 같네요. 언제부터였을까요? 우리는 극단을 운영하니까 극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시작이었겠죠. 우리가 앞으로 어떤 공연을 할 것인지, 단원들과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점차 개인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하는 거죠. 지수 언니와는 여행도 다니고, 좋은 전시나 연극, 영화가 있으면 같이 보러 가요.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제가 인식하지 못했던 저의 생각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들이 많아요. 이런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그 시간 안에서 갈등을 함께 해결해 가면서 계속 같이하고 싶은 관계가 된 것 같아요. 좀 더 신뢰할 만한 관계를 만든다는 것은 서로 솔직하게 말하고, 이해하고 계속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 아닐까요?
김지수예슬 님과 저는 극단 작업 외에 많은 일을 함께하는 편이에요. 평소에는 예슬 님이 저의 활동지원을 하고, 함께 공연 보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여행도 같이 가고요. 특히 여행 갈 때는 제가 사전에 준비할 것들을 챙겨요. 예를 들면 이동 수단과 숙소 등을 고려해서 갈 곳, 볼 것, 먹을 것 등의 계획을 짜는 거죠. 출발 이후부터는 예슬 님이 애플리케이션을 보고 검색해서 효율적인 여행을 하는 식으로 각자 할 일을 하죠. 그리고 발달장애인분들과 하는 연극도 10년 넘게 함께 해와서 동네에서 연극교실을 해보고 싶고요. 앞으로의 일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극단 애인의 활동이 아니더라도 각자 하고 싶은 작업이 있을 때 도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작업하면서 서로에게 배운 점이나 함께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지수예슬 님은 본인의 생각을 밀고 나가는 힘이 있어요. 연출가에게 꼭 필요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평소에는 선택과 결정을 잘하지만, 공연 과정에서는 좀 많이 망설이는 편이에요. 반면 예슬 님은 빠르게 결정하고, 결정한 대로 끝까지 이루어 가요. 그래서 저를 이끌어 줄 때가 많아요. 그리고 장애배우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그리고 비장애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신중하게 고민하면서 매개자로서 중간 역할을 잘해 나갈 때, 저를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많이 배웁니다.
강예슬지수 언니는 주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보고 모두가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요. 모든 참여자가 동등하게 의사표현을 하고 불편함을 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죠.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정말 쉽지가 않아요. 각 배우와 스태프의 상황을 관찰하고, 접근 가능한 소통 방식을 찾고, 모두 같이 할 수 있도록 독려도 해야 해요. 이런 세심한 환경 설계가 작품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래서 너무나 어렵지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언니가 있어 잘 보고 배우려고 합니다. 하하. 함께 해보고 싶은 작업은, 뭐든 다 함께하고 싶은데요. 이렇게 과정을 돌아보니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지수 언니와 저의 관계를 보여주는 연극을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
극단 애인 〈무무〉(2015) 출연진, 제작진과 함께
극단 애인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2023)

강예슬
극단 애인에서 연출부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너는 나다〉 연출작으로 데뷔했고, 극단 애인에서 〈무무〉 〈극단애인의 삼인삼색 이야기〉 〈우리, 여기 있어요〉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제4의 벽〉 〈없던 공연-어느 장애연극인들의 욕망에 대한 기록〉 등 다수의 작품을 연출했다. 장애배우가 나오는 공연을 연출하고 싶다.
mylove-90@hanmail.net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부터 연극을 시작했고, 2007년 극단 애인을 창단했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고도를 기다리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한달이〉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음온라인 1기 기획위원, 장애인문화예술활동지원위원회 1기 위원으로 활동했다.
auleala@daum.net
사진 제공. 강예슬, 김지수
2025년 10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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