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필자가 홍세진의 작업을 처음 본 것은 그가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있을 때였다. 그는 미디어를 주로 하는 입주작가들 사이에서 거의 드문 회화 작가였다. 그의 작업실에는 작업 중인 회화작품과 설치작품이 널려있었다. 그의 작업 주제는 ‘청각의 시각화’였다. 작가는 인공와우를 통해 세상의 소리를 들을 때, 울림을 통해 전달되는 공감각을 평면과 설치로 보여주고자 했다. 기계장치를 통해 변환되는 신체감각의 반응을 은유한 특정한 공간과 사물의 이미지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체육관, 온실 등 거대한 공간의 소리가 몸 안에서 전율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실제 공간과 기본 조형을 병치시킨 그의 작업은 ‘듣다’와 ‘보다’의 감각이 공명하는 지점을 대담한 필치로 보여주었다.
이후 홍세진 작가의 작업을 만난 것은, 미술잡지 [퍼블릭 아트]에 ‘뉴히어로’로 선정된 작가의 작품세계를 소개할 때였다. 주목할 만한 신진작가를 소개하는 지면에서 필자는 홍세진의 작품에 관해, 순간적으로 지나간 자신의 경험을 붙잡아 평면에 옮겨 물질과 감각 사이의 관계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라고 설명했었다. 돌이켜보면, 많은 이야기 속에서 필자는 그에게 ‘왜’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했다. 그는 어째서 이미 존재하는 물리적 세계와 자신의 주관적 세계의 차이를 보여주고 싶어 할까?
그 차이가 사실은 구별 짓기가 아니라 공감을 위한 연결임을 필자가 명확히 알게 된 것은 전시 《공명하는 그리드》에 관한 글을 쓰면서였다. 올해 11월 13일부터 12월 5일까지 ‘갤러리 플래닛’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그의 작업 세계의 성장과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만난 그의 작업은 구상성이 축소되고 추상성은 높아졌다. 기법의 변화도 있었다. 붓의 필치보다는 평평한 도구를 사용해 긁어내는 형식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했다. 금방 상상할 수 있는 특정 장소보다는, 그의 특정한 감각을 떠올릴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하는 구성을 추구했다. 이전의 강한 색채감의 대비는 다양한 톤의 배색으로 변했다. 나는 그동안의 변화가 궁금했다.
작가는 추상성이 높아진 화면 구성을 통해 소리의 파동을 옮기고자 했다. 우리의 뇌에서 작동하는 모든 감각이 형언하기 어려운 형태로 인지된다면, 단순한 도형은 우리 인식의 불확실성을 흥미로운 미적 경험으로 치환시키는 시작점이 된다. 〈가려진 커튼〉(2025)은 작가의 이전 작업과 최근 작업의 특징을 모두 담고 있는 작품이다. 건축이 가진 정확성과 대비되는, 공간을 부수는 크랙들이 인상적이다. 작은 창문의 커튼 뒤 공간은 여전히 텅 비어 있고 무척 견고해 보인다. 슬며시 가려진 요새의 안쪽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작가는 작업방식에서도 납작한 표면을 긁어내 밀려나는 힘으로부터 발생하는 소리가 마치 프린터의 소리 같아 흥미를 느꼈다고 했다. 다양한 덧칠을 통해 필터링하는 모든 과정을 기계적으로 치환하는 그의 작업은 새로운 형태의 기술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어느 도시에서〉(2025)와 〈거울에 비친 모습〉(2025)에서 두드러진다. 마치 공간을 연속사진으로 찍은 뒤 콜라주하듯 납작하게 구성한 장면들은 시간의 병렬감이 삭제된 모습이다. 이러한 작업적 시도는 우리가 연속기록장치를 사용한 이후, 3D의 세계를 찌그러뜨리는 2D적 실험과 유사하다. 이 작업 과정에서 오류와 노이즈로 긁힌 감각의 표면이 잘 드러난다. 특히 톤온톤의 색감 변화는 작업 전반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어딘가 나타나는 소리〉(2025)에서 두드러진다. 과감한 화면 배치와 시간성, 기법의 변화를 통한 작업적 전환은, 그가 경험하는 감각 세계의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필자는 인공와우를 착용해 본 적이 없다. 공기의 소리를 의식해 본 적도 없고, 내가 듣는 소리가 진짜 존재하는 소리와 다를 거로 의심한 적 없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러한 의심은 근시안적이다. 누구나 완벽히 같은 경험 세계를 가졌다는 확신은 어디에도 없다. 모두의 감각은 나름의 완전함이고, 기술의 도움을 받아 증강된 감각은 독특한 특징을 가진 또 다른 완전함이다. 그가 듣는 세계는 작가만이 가진 고유한 경험이고, 기계와 함께 확장된 새로운 우주다. 우리가 홍세진과 동시대를 살고 그의 감각적 실험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전혀 몰랐던 세계의 파편을 얻게 된 행운이다. 작가와 전시를 통해, 나는 내 세계의 그리드를 한 칸 더 얻었다. 그리고 그의 회화는 현재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적합한 언어다.
이번 전시에 대한 글을 준비하면서, 내가 읽었던 수많은 기계와 인간의 공존에 관한 이론들을 복기했다. 그러다가 그것들이 갖는 필연적 피상성을 생각했다. 예술은 언어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겠지만, 예술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감정을 전달할 수는 없다. 예술적 경험은 특히 그렇다. 필자가 아는 철학들은 모두,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멀리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홍세진의 작업을 직접 보길 권하고 싶다. 작가의 전시를 찾아가 작업을 마주하길 바란다. 그의 화면 앞에서 느끼는 감각과 감정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당신의 견고한 그리드에 금을 내고, 마침내 조금 더 넓은 면적을 마련해줄 것이라 확언한다. 어떤 작업은 수많은 문장보다 한 번의 만남이 더 강렬한 힘을 갖는다.
필자가 근무하는 한양대학교에는 본지와 동명인 ‘이음’ 까페가 있는데, 퇴근길에 종종 이용한다. 이번 학기 초, 까페가 있는 건물 1층에서는 성동복지관이 개최한 페인팅 전시가 있었다. 나는 운 좋게 그곳에서 작가들의 친절한 작품 설명을 들었고, 그림을 담은 멋진 엽서도 받았다. 한 작가에게 “미술은 언제부터 배우셨어요?”라고 물으니, “미술이 아니라 ‘그림’이에요”라고 대답한다. 그 후 한동안 나는 벽에 붙여놓은 엽서를 보며 미술과 그림의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필자의 잠정적 결론은, 현대미술이 거창함에 빠져 등한시했던 그림의 본질, 나의 세계와 타자의 세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창이자 거울이라는 점이다. 홍세진의 ‘그림’은 그만의 우주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서로의 경험세계의 다름을 이해하면서,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그는 우리가 서 있는 그리드가 예술을 매개로 늘 함께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의 전시와 함께 나의 그리드 또한 한 칸 더 확장되었다.
홍세진 〈가려진 커튼〉, 112×162cm, Oil on canvas, 2025
홍세진 〈어느 도시에서〉, 73×53.5cm, Oil on canvas, 2025
홍세진 〈어딘가 나타나는 소리〉, 45.5×38cm, Oil on canvas, 2025
홍세진 〈거울에 비친 모습〉, 100×80cm, Oil on canvas, 2025

공명하는 그리드
홍세진 | 2025.11.13.~12.5. | 갤러리 플래닛
작가는 주변 세계 속에서 발생하는 방해, 오류 그리고 비언어적 불확실성을 그리드의 구조 안에 포섭하고,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는 새로운 시각적 질서를 구축한다. 《공명하는 그리드》는 기술 환경 속에서 변화한 지각의 구조를 회화의 언어로 재구성하며 구조와 감각, 기술과 지각이 교차하는 오늘의 시각 환경 속에서 회화가 여전히 새로운 사유의 언어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질서와 불확실성이 맞물리며 생성되는 진동은, 감각이 세계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또 다른 방식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관람자에게 시각적 경험을 넘어 감각의 조건과 인식의 구조를 다시 사유하게 하고, 감각이 울리는 리듬을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할 것이다.
∙ 전시정보 :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천미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학부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일반대학원 철학과에서 미학과 도덕철학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동 대학원에서 미학과 기술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 과학철학교육위원회 조교수이자 HY-CELPST(한양대학교 과학기술윤리법정책센터)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예술철학과 과학기술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예술의 초학제적 시도와 관련하여 인간과 과학기술의 상호관계로부터 발생하는 문제의식을 조형적으로 탐구하고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관심이 있다.
untersein@hanyang.ac.kr
사진 제공.갤러리 플래닛
2026년 1월 (71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이전글 보기
다음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