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을 이어나갈 수 없는 불안정한 날들,
그러나 누구도 원망할 수도 없는 답답한 날들을 지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 이후 5개월간 공동 작업실을 열지 못했다.
예술작업에 대한 소통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눈빛, 제스처, 분위기 등으로 만들어냈던 개별적이고 섬세한 소통을
전자기기를 통해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한 의심과 회의 때문이었다.

발달장애 창작자의 개별 상황들을 고려했을 때
주변 가족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 예상되었기에
부모님 등 보호자를 대상으로 온라인을 통한 워크숍에 대한 인식변화를 돕고,
실제 어플리케이션 사용방법을 알려드리는 일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다.

우려했던 대로 몇몇 창작자들은 온라인을 통한 낯선 소통방식에 피로감을 느껴 자발적으로 기기를 중단하거나
어플리케이션 사용의 어려움으로 인해 접속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경우들이 생겨났다.

몇 번의 온라인 워크숍 시도를 거치며 보호자의 도움 없이
온라인상에서 작업하고 교류하는 것이 가능한 창작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대 신화와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캐릭터, 멸종된 존재와 반물질 생명체 등을 융합시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는 작업을 하는 정진호 창작자는 그러한 이들 중 한 명이다.
우리는 캐릭터 작업의 근간이 되는 위키피디아 글과 이미지를 함께 보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는 서로가 재미있게 봤었던 영상이나
평소에 좋아하는 음악들을 공유하고 그 감상을 이야기 나눴다.

화면 너머로, 방 안에 쌓여 있어서 작업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예전부터 이면지 위에 그려왔던 그의 그림들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너무나 오래전부터 한결같이
정진호 창작자는 그가 연구해온 심상의 세계와
그 속에 사는 환수(환상의 동물)에 대해 소개하는 일을 좋아해 왔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강의 형식으로 주변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송출해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작업환경이 불안정한 가운데에도
그의 작업은 다행히 상황에 맞춰 변화하며 지속되고 있다.
그의 설명에 귀 기울이기만 한다면 그가 창조한 생명체들은
(조급하고 우왕좌왕하는 인간들과는 달라서)
이미 드넓은 디지털 세계를 포함한 다양한 세계 안에 유유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여러분 디지털 세상이라고 아시죠?
정확히 디지털 세계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시 세계의 일부예요.
그중에서도 사이버스라는 아주 고차원 된 세계가 있습니다.
여러 지구에서 사는 생물들과 대응하는 우주도 존재하고
다양한 차원들이 존재하는 정령들의 세계죠.”

글. 김인경(밝은방 공동대표)
어두컴컴한 빛과 깨진 언어를 느리게 실험하는 시각예술 작업자이자,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창작그룹 밝은방의 운영자이다.

밝은방 

밝은방은 미술을 좋아하거나 독자적인 미술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아티스트 그룹의 이름입니다. 지난 10년간 아르브뤼(Art Brut)와 에이블아트(Able-art) 분야에서 각종 예술워크숍, 전시, 출판물을 기획하고 진행해온 김효나와 김인경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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