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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최진우 창작자의 그림

이음광장 하루치의 그림

  • 밝은방 창작그룹
  • 등록일 2020-11-23
  • 조회수887

웃음

웃고 있다. 정면을 보고 입을 벌려 말을 한다. 그림을 보고 있는 당신을 보며 반갑게 말을 건넨다. 고양이라고 했다. 몇 번이나 고양이라고 들었지만 강아지와 착각해서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그림을 이루는 색 또한 명랑하고 유쾌하다. 푸른 하늘 아래 파릇파릇한 잔디밭에서 정면으로 입을 벌려 웃고 있는 회색 고양이. 최진우 창작자는 그림 그리는 것이 즐거운가 보다. 색칠하며 콧노래를 흥얼흥얼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웃고 있는 고양이를 그리며 그는 웃는다.

최진우. <고양이>,
캔버스에 아크릴, 350×275, 2019

사자와 호랑이도 웃고 있었다. 사자의 얼굴 주위에는 갈기가 있고, 호랑이의 이마에는 무늬가 있어서 다른 듯 보이지만 점 세 개로 이루어져 있는 두 눈과 코, 마름모 모양의 웃음은 형제처럼 닮았다. 이가 빠졌는데 해맑게 웃는 아이와 닮은 얼굴이라고 느꼈다. 사자의 입속에는 고기가 있어 행복한 것 같다. 그렇게 고양이와 사자와 호랑이는 잔디밭 위, 파란 하늘 아래 함박웃음 지으며 서 있다.

  • 최진우, <사자>,
    캔버스에 아크릴, 275×350, 2019

  • 최진우, <호랑이>,
    캔버스에 아크릴, 275×350, 2019

반복과 변주

사실 회색 고양이는 한 마리가 아니고, 사자와 호랑이도 한 마리가 아니다. 그들은 계속 나타난다. 비슷한 웃음과 포즈로 나타나서 같은 고양이라고 착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들은 조금씩 다른 크기와 표정과 색감으로 나무 옆에서 서 있기도 하며, 어떤 때는 구름 아래에 어떤 곳에서는 파랑새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다름이 미묘하게 그들 각각의 성격과 나이와 상황을 드러낸다.
바닷속에는 돌고래들이 산다. 새파란 바닷속에는 늠름한 미소를 띤 돌고래가 오른쪽으로 헤엄치는가 하면, 물살이 드러나는 밝은 바닷속에는 상대적으로 어리고 장난기 많은 돌고래가 반대쪽으로 헤엄친다.

최진우, <돌고래 연작>, 캔버스에 아크릴, 각 350×275, 2019

노동과 유희 사이에서

최진우 창작자가 작은 캔버스 두 개를 꺼내 연필로 스케치하고 물감이 연필선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색을 칠하는 과정을 보며 하루치의 작업에 대해 생각했다. 종이에서 캔버스로 작업을 옮겨가면서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 마치 사물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면적보다 넘치는 많은 양의 물감을 캔버스 위에 직접 짠 후 물감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붓의 일과 물감의 텍스처(질감)에 순수하게 집중하는 즐거운 놀이 그 사이에서 진우씨가 웃으며 작업한다. 시작과 끝이 있는 안전한 시간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몰입해 작업하는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한 사람을 엿본 셈인데, 그 자체만으로도 왠지 알 수 없는 위안을 받았다.

  • 최진우 창작자의 작업 모습, 2019-2020

  • 최진우 창작자의 작업 모습, 2019-2020

시간이 만든 풍경

이러한 하루의 시간이 쌓여 작업실 한쪽을 점차 채워갔다. 앞뒤로 겹쳐져 쌓여있던 캔버스를 옆으로 연결해 벽에 거는 시간을 가졌다. 푸른 들이 확장되고 바다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하나로 이어진 그 넓은 장소 안에 여러 마리의 닭과 개, 고양이, 여우, 사자, 호랑이, 홍학, 열대어, 돌고래, 거북이, 파랑새가 산다. 창작자에게도 기획자인 우리에게도 창작자의 부모님에게도 조용히 새로운 풍경이었다. 그동안의 하루들이 모이고 펼쳐져서 만들어진 시간의 풍경이자, 가만히 바라보며 상상하고 머무르고 싶은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자연의 공간이 나타난 것이다.

최진우, <밝은숲>, 2019

글. 김인경(밝은방 공동대표)
어두컴컴한 빛과 깨진 언어를 느리게 실험하는 시각예술 작업자이자,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창작그룹 밝은방의 운영자이다.

밝은방

밝은방 

밝은방은 미술을 좋아하거나 독자적인 미술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아티스트 그룹의 이름입니다. 지난 10년간 아르브뤼(Art Brut)와 에이블아트(Able-art) 분야에서 각종 예술워크숍, 전시, 출판물을 기획하고 진행해온 김효나와 김인경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s://brightworkroom.modoo.at
brightworkroom@gmail.com
필자 블로그 바로가기 : https://brightworkroom.modoo.at

밝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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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방은 미술을 좋아하거나 독자적인 미술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아티스트 그룹의 이름입니다. 지난 10년간 아르브뤼(Art Brut)와 에이블아트(Able-art) 분야에서 각종 예술워크숍, 전시, 출판물을 기획하고 진행해온 김효나와 김인경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s://brightworkroom.modoo.at
brightworkroom@gmail.com
필자 블로그 바로가기 : https://brightworkroom.modoo.at

상세내용

웃음

웃고 있다. 정면을 보고 입을 벌려 말을 한다. 그림을 보고 있는 당신을 보며 반갑게 말을 건넨다. 고양이라고 했다. 몇 번이나 고양이라고 들었지만 강아지와 착각해서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그림을 이루는 색 또한 명랑하고 유쾌하다. 푸른 하늘 아래 파릇파릇한 잔디밭에서 정면으로 입을 벌려 웃고 있는 회색 고양이. 최진우 창작자는 그림 그리는 것이 즐거운가 보다. 색칠하며 콧노래를 흥얼흥얼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웃고 있는 고양이를 그리며 그는 웃는다.

최진우. <고양이>,
캔버스에 아크릴, 350×275, 2019

사자와 호랑이도 웃고 있었다. 사자의 얼굴 주위에는 갈기가 있고, 호랑이의 이마에는 무늬가 있어서 다른 듯 보이지만 점 세 개로 이루어져 있는 두 눈과 코, 마름모 모양의 웃음은 형제처럼 닮았다. 이가 빠졌는데 해맑게 웃는 아이와 닮은 얼굴이라고 느꼈다. 사자의 입속에는 고기가 있어 행복한 것 같다. 그렇게 고양이와 사자와 호랑이는 잔디밭 위, 파란 하늘 아래 함박웃음 지으며 서 있다.

  • 최진우, <사자>,
    캔버스에 아크릴, 275×350, 2019

  • 최진우, <호랑이>,
    캔버스에 아크릴, 275×350, 2019

반복과 변주

사실 회색 고양이는 한 마리가 아니고, 사자와 호랑이도 한 마리가 아니다. 그들은 계속 나타난다. 비슷한 웃음과 포즈로 나타나서 같은 고양이라고 착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들은 조금씩 다른 크기와 표정과 색감으로 나무 옆에서 서 있기도 하며, 어떤 때는 구름 아래에 어떤 곳에서는 파랑새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다름이 미묘하게 그들 각각의 성격과 나이와 상황을 드러낸다.
바닷속에는 돌고래들이 산다. 새파란 바닷속에는 늠름한 미소를 띤 돌고래가 오른쪽으로 헤엄치는가 하면, 물살이 드러나는 밝은 바닷속에는 상대적으로 어리고 장난기 많은 돌고래가 반대쪽으로 헤엄친다.

최진우, <돌고래 연작>, 캔버스에 아크릴, 각 350×275, 2019

노동과 유희 사이에서

최진우 창작자가 작은 캔버스 두 개를 꺼내 연필로 스케치하고 물감이 연필선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색을 칠하는 과정을 보며 하루치의 작업에 대해 생각했다. 종이에서 캔버스로 작업을 옮겨가면서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 마치 사물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면적보다 넘치는 많은 양의 물감을 캔버스 위에 직접 짠 후 물감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붓의 일과 물감의 텍스처(질감)에 순수하게 집중하는 즐거운 놀이 그 사이에서 진우씨가 웃으며 작업한다. 시작과 끝이 있는 안전한 시간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몰입해 작업하는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한 사람을 엿본 셈인데, 그 자체만으로도 왠지 알 수 없는 위안을 받았다.

  • 최진우 창작자의 작업 모습, 2019-2020

  • 최진우 창작자의 작업 모습, 2019-2020

시간이 만든 풍경

이러한 하루의 시간이 쌓여 작업실 한쪽을 점차 채워갔다. 앞뒤로 겹쳐져 쌓여있던 캔버스를 옆으로 연결해 벽에 거는 시간을 가졌다. 푸른 들이 확장되고 바다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하나로 이어진 그 넓은 장소 안에 여러 마리의 닭과 개, 고양이, 여우, 사자, 호랑이, 홍학, 열대어, 돌고래, 거북이, 파랑새가 산다. 창작자에게도 기획자인 우리에게도 창작자의 부모님에게도 조용히 새로운 풍경이었다. 그동안의 하루들이 모이고 펼쳐져서 만들어진 시간의 풍경이자, 가만히 바라보며 상상하고 머무르고 싶은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자연의 공간이 나타난 것이다.

최진우, <밝은숲>, 2019

글. 김인경(밝은방 공동대표)
어두컴컴한 빛과 깨진 언어를 느리게 실험하는 시각예술 작업자이자,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창작그룹 밝은방의 운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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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방은 미술을 좋아하거나 독자적인 미술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아티스트 그룹의 이름입니다. 지난 10년간 아르브뤼(Art Brut)와 에이블아트(Able-art) 분야에서 각종 예술워크숍, 전시, 출판물을 기획하고 진행해온 김효나와 김인경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s://brightworkroom.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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