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5년 『문학사상』 12월호에 발표된 <칼날>을 시작으로 1978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게재된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까지 단편 12편이 담긴 연작소설집이다. 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발행된 후 현재까지 ‘난장이 연작’으로 불리며 산업화시대를 고발한 문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12편 연작 소설 중 1976년 『문학과지성』 겨울호에 발표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그 중심에서 나머지 11편의 소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갈등의 시작과 끝을 빚어내며 3년여 기간 발표된 소설 전체의 문제의식을 강화하고 있어 흥미롭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저신장 장애인 주인공 ‘김불이’ 가족의 유구한 빈곤의 역사와 살아냄의 처절한 현실을 1970년대 산업화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로 확장하면서 노동자와 장애인 등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이들의 벼랑 끝 삶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장애인과 그 가족이 맞닥트린 차별과 소외의 현실은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라 ‘돈 없음’의 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가난한 이들(도시 빈민, 노동자)의 현실이기도 했음을 보여주면서 물질의 절대적 신성화에 대한 분노와 고민을 요구한다. 세 명의 서술자로 구성된 독특한 전개 방식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을 강화하는 데 역할 하며 산업화시대 ‘아웃사이더(들)’의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이제 죽은 땅에서 떠나야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난하다. 먹고 살기 고단하다. 서술자인 ‘영수’ ‘영호’ ‘영희’ 남매는 아버지 불이와 자신들 가난의 뿌리가 굵고도 질긴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상속·매매·기증·공출의 대상”이었으며, 아버지 불이가 평생 단 한 번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음에도 무허가 판잣집조차 소유할 수 없는 현실을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117cm 신장과 32kg 몸무게로 살면서 신체적 결함에 대한 선입견에 사로잡힌 이들로부터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데에 분노와 열등감을 느끼지만 이를 억제할 뿐이다. 달라질 수 없을 거란 두려움 때문이다.
이들의 열패감은 불이와 그의 가족들, 이들을 바라보는 비장애인과 불이 가족의 이웃인 낙원구 행복동에 사는 빈민들의 의식까지 합쳐져 구성된 것에서 비롯되었다. 즉, 아버지 불이에 대한 ‘시선’은 이미 타인에게 투여된 시선들, 자기에게 투사된 시선들의 복합체이며 타인과의 비교와 구별의 욕망이 촉발되고 미끄러지는 등의 역동적 속성을 가진 유기체인 것이다. 그래서 그 향방 또한 가늠하기 어렵다. 불이와 그의 가족에 대한 차별과 소외의 폭력이 곧장 그의 이웃에게로 퍼져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옆집에 사는 ‘명희’는 다방 종업원이 되고 고속버스 안내양이 되고, 골프장 캐디가 되었다가 음독자살예방센터에서 숨을 거두었다. ‘주정뱅이’는 술에 취해서 길에 누워 자다가 어린 딸에게 물을 얻어 마신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재개발이 결정된 이후 새로 들어설 아파트에 입주할 수 없다. 그들은 브로커에게 아파트 입주권을 팔면서 제집 하나 장만하지 못한 자신을 경멸하거나 연민할 수밖에 없다. 가난한 현재적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명희가 비극적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를 타자화했던 현실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실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킨 결과였다. 그러니 강 건너에 사는 지식인 청년 ‘지섭’의 말대로 ‘죽도록’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그들 모두는 “죽은 땅에서 떠나야”하는 것이다.
“일만 년 후의 세계”를 소망하며
결국, 저신장 장애인 김불이는 벽돌공장 굴뚝에서 떨어져 죽었다. 달에 도착하여 수문장 노릇을 하겠다던 그는 아파트 입주권을 브로커에 넘기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후 평소처럼 공장 굴뚝에 올라 늘 바라던 달나라로 떠났다. 그리고 ‘마침내’ 계약서를 찾아 돌아온 영희는 이웃에게 성남으로 떠난 가족 소식과 아버지의 죽음을 듣는다.
불이 가족뿐만 아니라 낙원구 행복동에 살던 가난한 이들은 대부분 그곳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난했기에 더불어 살던 그들은 돈이 집약된 새로운 ‘장소’에서 추방되었으나 ‘마침내’ 각자의 도시를 찾아서 이전처럼 다시 뿌리 내릴 것이다. 그들의 가난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고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남는 현실은 신화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또 문제를 묻고 해결을 요구할 것이다. 가늠할 수 없는 일만 년의 시간이 지난 세계에서 그들은 돈으로도, 무엇으로도 차별될 수 없는 장애적 현실 너머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향방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이들의 미래는 그리하여 기대를 품는다. 불이가 『일만 년 후의 세계』를 그토록 깊이 독서 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차희정
현대 소설 연구자로 장애인문학을 연구하고, 문예지에 장애인문학 비평을 게재하고 있다. 대구대학교 대학원에서 장애인 예술을, 경희대, 경찰대, 아주대 등에서 글쓰기와 문화예술비평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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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읽었던 난장이가 쏘아올렸던 공 소설을 다시 떠올리게 되네요. 사회에서 소외되는 계층(장애인, 노동자 등)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린 이 작품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왜 그렇게 '일만 년 후의 세계'를 '불이'가 그토록 소망하였는지에 대해 심히 공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