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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뭉치고 떼고 주무르면②

이음광장 상어 대량 학살 사건의 전말

  • 이희원 문화예술교육사
  • 등록일 2023-07-12
  • 조회수1291

이음광장

아들 지성이가 점토로 만든 상어들이 입을 쩍 벌린 채 쓰레기봉투 속으로 던져진다. 침대 매트리스를 들어 올려보고, 연필꽂이도 헤집어본다. 갑작스러운 나의 횡포를 피해 도망간 상어들이 없는지 확인한다. 빼곡히 들어찬 봉투에서 탈출하려는지 솟은 코와 지느러미를 내미는 탓에 울룩불룩해진 봉투를 들고 쓰레기장으로 가려는데, 사두었던 미개봉 점토가 생각난다. 모조리 담는다. 그렇다. 지성이가 만든 상어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어 청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집안의 모든 점토를 없애는 중이다.

동네 아동발달센터의 감각통합치료사 선생님이 지성이가 치료실에서 점토를 만지고 싶어 하는 촉각 추구가 심하다고 한다. 선생님의 지시나 다른 교구에 전혀 관심이 없고 집중을 하지 못하니, 가정에서도 점토 사용을 중단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점토가 치료에 방해된다는 말을 들으니, 형태 없는 덩어리에서 상어로 변신한 점토들이 하루아침에 장애의 흔적으로 보였다. 끊임없이 같은 모양을 만들어내는 반복이 그러하고, 점토를 떼어 하나의 상어를 완성하기까지 같은 순서로 진행하는 그의 창작과정까지 죄다 말이다. 치료실에 성실하게 데려가야 하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상어들아, 훠이 훠이 물러가라.

하교 후 집에 돌아온 지성이는 상어와 점토가 사라진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지성이는 가족에게 상어의 행방을 물어보는 대신에, 식탁 의자를 질질 끌고 다니며 모든 수납장을 수색했다. 의자만으로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을 확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 올라갔고, 마치 그 모습은 대체 점토가 어디 있냐며 소리 없이 발악하는 듯 보였다. 그의 광적인 수색은 계속되었지만, 아들의 장애를 치료하고 싶었던 절실함만큼이나 나도 단호했다. 그렇게 상어는 우리 집에서 완전히 멸종했고, 여러 달이 흘렀다.

그러던 중, 일 년 전쯤에 예약해 두었던 대학병원의 발달검사 일정이 다가왔다. 발달검사실 안에는 다양한 장난감과 교구가 놓여있었고, 지성이만 입실할 수 있어 나는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교구 중에 언뜻 점토를 본 것 같아 기다리는 내내 불안했다, 지성이는 점토만 하려 달려들 것이고, 임상심리사에게 검사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는 말을 들을 것만 같았다. 검사를 마치고 임상심리사가 나를 안쪽으로 불러서 들어가니, 역시나 책상 위에 상어들이 나란히 누워 있다. ‘이제 감각 추구를 말씀하시겠구나’ 생각하며 앉았는데, “지성이는 상어에서 시작하면 되겠네요.”라고 말한다. 어렵고 혼란스러운 문장이었다. 임상심리사가 좀 전의 말을 다시금 풀어서 설명했다.

임상심리사는 지성이가 검사실에 들어오자마자 내부 스캔을 마치고, 일단 점토를 꺼내 상어를 다 만들고 난 후에야 기차와 자동차, 동물 피규어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관찰했다. 이를 통해 점토로 상어 만드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임상심리사가 빈 종이에 색연필로 큼직한 원을 그리고 원의 중심에 지성이가 만든 상어를 하나 놓으며 “집”이라고 말하고, 지성이에게 색연필을 주며 다른 종이에 집을 그려보라고 하자, 지성이도 동그라미를 그리고 상어를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지성이가 만든 다양한 크기의 상어를 가지고 ‘크다 작다 많다 적다’를 알려줄 수도 있고, 아빠 상어와 엄마 상어로 ‘가족’을, 한 마리 두 마리 상어를 세며 수 개념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상어를 장난감 자동차에 태우고 마트도 가고 놀이동산도 가는 놀이를 통해 아직 자발 언어가 없는 지성이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셨다. 상어에서 시작하라는 말의 의미는 당사자가 가장 좋아하는 상어를 매개로 초등학교 생활에 필요한 기초 학력과 소통의 기술을 훈련함으로써 전반적인 발달에 도움을 주자는 것이었다. 내가 쓰레기장에 버리고 온 것은 손으로 말하는 옹알이만이 아니고, ‘상어’라는 두 글자도 아니고, 내가 그토록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었던 온 세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한 명의 장애 아동에 대해 두 명의 전문가는 다른 의견을 냈다. 동네 아동발달센터 치료사의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치료사로서 수많은 장애 아동들을 경험하며 쌓인 데이터의 결괏값이며, 감각통합 치료사의 중재 역할에 충실한 의견이었다. 대학병원의 임상심리사 또한 발달심리학의 입장에서 상어를 교육의 도구로 해석했다. 장애인을 둘러싼 비장애인 관계자들은 각자의 경험치와 가치관에 따라 ‘장애’를 다르게 정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시대의 유행에 따라서도 장애는 다르게 묘사된다. 그렇다면 나는 아들의 장애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당사자인 아들에게 장애는 무엇이며,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물어봐도 답이 없다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집안의 상어를 대량 학살했던 나의 만행을 곱씹으며, 질문은 더 깊이 파고든다. 상어가 장애의 흔적이라면 버려져도 되는가? 덩어리에서 상어로 변신하지 않은 채 여전히 형태가 없는 덩어리였다면? 그래도 나는 계속 점토를 사 주고, 임상심리사는 덩어리만으로 교육의 방향을 제시했을까?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 특수학급교실에서 점토로 한글공부를 했다(2019년)

  • 집에서 만든 상어로, 구름 점토 위에 놓여 있다(2020년)

이희원

결혼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가 10년간 거주한 후 한국에 돌아와 8년째 살고 있다. 세 자녀 중 둘째의 발달장애를 알게 되면서 ‘인간의 다양성’이라는 광활함의 면면을 관찰 중이다.
hiwoni12@gmail.com
▸ 인스타그램

사진 제공. 필자

이희원

이희원 

결혼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가 10년간 거주한 후 한국에 돌아와 8년째 살고 있다. 세 자녀 중 둘째의 발달장애를 알게 되면서 ‘인간의 다양성’이라는 광활함의 면면을 관찰 중이다.
hiwoni12@gmail.com

상세내용

이음광장

아들 지성이가 점토로 만든 상어들이 입을 쩍 벌린 채 쓰레기봉투 속으로 던져진다. 침대 매트리스를 들어 올려보고, 연필꽂이도 헤집어본다. 갑작스러운 나의 횡포를 피해 도망간 상어들이 없는지 확인한다. 빼곡히 들어찬 봉투에서 탈출하려는지 솟은 코와 지느러미를 내미는 탓에 울룩불룩해진 봉투를 들고 쓰레기장으로 가려는데, 사두었던 미개봉 점토가 생각난다. 모조리 담는다. 그렇다. 지성이가 만든 상어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어 청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집안의 모든 점토를 없애는 중이다.

동네 아동발달센터의 감각통합치료사 선생님이 지성이가 치료실에서 점토를 만지고 싶어 하는 촉각 추구가 심하다고 한다. 선생님의 지시나 다른 교구에 전혀 관심이 없고 집중을 하지 못하니, 가정에서도 점토 사용을 중단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점토가 치료에 방해된다는 말을 들으니, 형태 없는 덩어리에서 상어로 변신한 점토들이 하루아침에 장애의 흔적으로 보였다. 끊임없이 같은 모양을 만들어내는 반복이 그러하고, 점토를 떼어 하나의 상어를 완성하기까지 같은 순서로 진행하는 그의 창작과정까지 죄다 말이다. 치료실에 성실하게 데려가야 하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상어들아, 훠이 훠이 물러가라.

하교 후 집에 돌아온 지성이는 상어와 점토가 사라진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지성이는 가족에게 상어의 행방을 물어보는 대신에, 식탁 의자를 질질 끌고 다니며 모든 수납장을 수색했다. 의자만으로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을 확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 올라갔고, 마치 그 모습은 대체 점토가 어디 있냐며 소리 없이 발악하는 듯 보였다. 그의 광적인 수색은 계속되었지만, 아들의 장애를 치료하고 싶었던 절실함만큼이나 나도 단호했다. 그렇게 상어는 우리 집에서 완전히 멸종했고, 여러 달이 흘렀다.

그러던 중, 일 년 전쯤에 예약해 두었던 대학병원의 발달검사 일정이 다가왔다. 발달검사실 안에는 다양한 장난감과 교구가 놓여있었고, 지성이만 입실할 수 있어 나는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교구 중에 언뜻 점토를 본 것 같아 기다리는 내내 불안했다, 지성이는 점토만 하려 달려들 것이고, 임상심리사에게 검사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는 말을 들을 것만 같았다. 검사를 마치고 임상심리사가 나를 안쪽으로 불러서 들어가니, 역시나 책상 위에 상어들이 나란히 누워 있다. ‘이제 감각 추구를 말씀하시겠구나’ 생각하며 앉았는데, “지성이는 상어에서 시작하면 되겠네요.”라고 말한다. 어렵고 혼란스러운 문장이었다. 임상심리사가 좀 전의 말을 다시금 풀어서 설명했다.

임상심리사는 지성이가 검사실에 들어오자마자 내부 스캔을 마치고, 일단 점토를 꺼내 상어를 다 만들고 난 후에야 기차와 자동차, 동물 피규어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관찰했다. 이를 통해 점토로 상어 만드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임상심리사가 빈 종이에 색연필로 큼직한 원을 그리고 원의 중심에 지성이가 만든 상어를 하나 놓으며 “집”이라고 말하고, 지성이에게 색연필을 주며 다른 종이에 집을 그려보라고 하자, 지성이도 동그라미를 그리고 상어를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지성이가 만든 다양한 크기의 상어를 가지고 ‘크다 작다 많다 적다’를 알려줄 수도 있고, 아빠 상어와 엄마 상어로 ‘가족’을, 한 마리 두 마리 상어를 세며 수 개념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상어를 장난감 자동차에 태우고 마트도 가고 놀이동산도 가는 놀이를 통해 아직 자발 언어가 없는 지성이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셨다. 상어에서 시작하라는 말의 의미는 당사자가 가장 좋아하는 상어를 매개로 초등학교 생활에 필요한 기초 학력과 소통의 기술을 훈련함으로써 전반적인 발달에 도움을 주자는 것이었다. 내가 쓰레기장에 버리고 온 것은 손으로 말하는 옹알이만이 아니고, ‘상어’라는 두 글자도 아니고, 내가 그토록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었던 온 세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한 명의 장애 아동에 대해 두 명의 전문가는 다른 의견을 냈다. 동네 아동발달센터 치료사의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치료사로서 수많은 장애 아동들을 경험하며 쌓인 데이터의 결괏값이며, 감각통합 치료사의 중재 역할에 충실한 의견이었다. 대학병원의 임상심리사 또한 발달심리학의 입장에서 상어를 교육의 도구로 해석했다. 장애인을 둘러싼 비장애인 관계자들은 각자의 경험치와 가치관에 따라 ‘장애’를 다르게 정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시대의 유행에 따라서도 장애는 다르게 묘사된다. 그렇다면 나는 아들의 장애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당사자인 아들에게 장애는 무엇이며,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물어봐도 답이 없다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집안의 상어를 대량 학살했던 나의 만행을 곱씹으며, 질문은 더 깊이 파고든다. 상어가 장애의 흔적이라면 버려져도 되는가? 덩어리에서 상어로 변신하지 않은 채 여전히 형태가 없는 덩어리였다면? 그래도 나는 계속 점토를 사 주고, 임상심리사는 덩어리만으로 교육의 방향을 제시했을까?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 특수학급교실에서 점토로 한글공부를 했다(2019년)

  • 집에서 만든 상어로, 구름 점토 위에 놓여 있다(2020년)

이희원

결혼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가 10년간 거주한 후 한국에 돌아와 8년째 살고 있다. 세 자녀 중 둘째의 발달장애를 알게 되면서 ‘인간의 다양성’이라는 광활함의 면면을 관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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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31 09: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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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2023-07-14 14: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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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문구가 너무 마음에 와닿습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자기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 못하는 아이를 내가 보고싶은 틀안에 가둬서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바로보고 있는것은 아닌가 많은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3-07-14 0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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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한마디에 마음이 훅 휩쓸리고 걱정이 추가되는 상황이 너무나 공감되는 글 이였습니다 아직 덩어리에 머물러있는 제 아이를 보며 마지막 문구가 떠나질 않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2023-07-13 16:4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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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와닿는 글이예요. 아이가 말하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는거부터 시작해보려합니다. 내가 생각했던것들이 과연 아이가 원하는 것인지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2023-07-13 1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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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장에 버리고 온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부분에서 저도 같이 울었네요. 저도 발달장애아이를 키우며 도대체 이 아이의 한 부분인 장애라는 정체성을 누가 정의내릴 수 있는지 늘 의문입니다. 엄마이지만 타자인 나라서,, 참 어렵네요. 사회는 제멋대로 장애에 대해 정의하고 구분하고, 그러면서 내 아이에게 장애다움을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슬프게도 내 자신에게도 드는 의구심이고요. 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7-13 11: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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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구..우리가 보고싶은대로 보는것은 아닌가?에서 멈추어 생각이 깊어집니다. 공명이 있는 글이라 생각하게 만듭니다.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2023-07-13 09: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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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떤 가치관과 삶의 경험이 현재의 관점에도 작용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는 소중한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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