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광장
나는 2022년부터 한국문학에 관심 있는 영국 문인 및 연구자와 교류하고 있다. 내가 국제교류 사업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아직도 나의 역량을 의문시하는 차별적인 시선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다시금 고통받았다. 내가 고난 속에서도 도전하고 성취해 온 것들조차 쉽게 저평가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한 곳의 강의를 그만두게 되었다.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지만, 무엇인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했다. 2022년 초에 온라인 사이트에서 여러 지원사업을 검색하게 된 계기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의 지원사업도 그 시기에 알게 되었다. 마침 그때 영국의 한국 현대문학 웹진 [나빌레라]에서 연락이 왔다. 나의 시 6편을 번역하여 소개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나빌레라]는 비영리로 운영되어 재정적으로 저작권료나 번역료를 감당하기도 어려움이 있는 소규모 웹진이지만, 젊은 연구자와 번역자들이 협업해 운영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중에는 한국인 유학생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제안을 받고 번역수록을 허락했다. 먼 곳에서 내 시를 찾아 읽어준 그들에게 감사했다. 순간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나빌레라]에서 정식으로 초청장을 보내주면 장문원 국제교류 사업에 지원신청할 수 있다고 답했다. [나빌레라] 편집진은 그 제안에 매우 기뻐하며 며칠 지나지 않아 초청장을 보내주었다. 그들은 또 주영국 한국문화원에도 강연 제안을 해두었다고 전해왔다. 더불어 지원사업에 선정되기를 자신들도 간절히 바란다고 답신해 왔다.
내가 제안한 주제는 ‘소수자의 목소리: 한국문학의 새로운 관점: 집중조명 섹션-장애’였다. 한국문학에서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장애문학의 특징을 내 시를 통해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다행히 지원사업이 선정되어 [나빌레라]에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나빌레라]에서는 킹스턴대학 KLS(Kingston Language Scheme) 학장인 로사 로드리게즈 교수가 특별히 관심을 보인다고 전해왔다. 영국 방문 시에 킹스턴대학에서도 강연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방학 중에 일정을 잡은 나의 첫 국제교류 사업은 런던의 한국문화원과 킹스턴대학에서의 강연으로 진행되었다.
2022년 8월 15일 출국하여 영국까지 15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야 했다. 첫날은 숙소에 도착하고 바로 쉬어야 할 정도로 피곤했다. 다음날 행사 준비 원고를 검토하다가 점심도 먹을 겸 숙소에서 나와 근처를 산책했다. 런던탑이 가까이 있어서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길이었다. 그 거리에서 처음 누군가 나를 향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빌어먹을 동양인(fucking china)!” 내가 평범한 런던시민으로부터 들은 첫 마디가 차별의 표현이라니, 마음이 아팠다. 이곳에도 차별과 혐오가 일상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내세운 내 강의에 평범한 영국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해 올지 조금 걱정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철도버스운송노조의 파업에도 주영국 한국문화원에 모인 40명 가까운 참여자들은 ‘장애’를 주제로 한 나의 강연에 뜨겁게 호응해 주었다. 내 시 「벽화」를 감명 깊게 읽었다는 한 독자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벽에 가로막혀 고립되었다는 것을 코로나19를 통해 느꼈다”며 오히려 ‘장애’라는 주제를 통해 평범한 우리도 여러 차별적 시선과 편견으로 인해 고립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소감을 전해주었다.
다음날은 철도버스운송노조 파업이 더 격렬해졌다. 그 때문에 런던 외곽의 킹스턴대학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난했다. 겨우 도착한 킹스턴대학 강연장에 모인 사람은 로사 학장, 시 창작을 가르치는 알버트 교수를 포함하여 8명 남짓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강연 제목이 ‘소수자의 목소리’ 아닌가. 강연을 즐겁게 듣고 나서 로사 학장은 자신의 동생도 장애가 있지만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며 화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의 장애예술인은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고 좋은 성과를 거두면 종신지원을 받는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영국 사회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편견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 내가 숙소에서 나와 산책할 때 들었던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다만 국가 시스템이 보호해 주고 있기에 한국에 비해 조금 더 안정적으로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의 역량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시스템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개인은 자기의 역량을 발휘하는 일에 온전히 몰두하기 힘들 것이다. 장애예술인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새로운 예술적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 시스템이 그들을 지지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장애예술가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국 장애예술가의 활동에 대한 편린을 들을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도 시스템이 장애예술가를 더 안정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해 주는 정책을 편다면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는 장에서 차별과 배제의 시선을 덜 겪을 것이다. 사실 시스템은 그렇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장애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더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김학중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창세』(문학동네, 2017), 『바닥의 소리로 여기까지』(걷는사람, 2022), 청소년 시집 『포기를 모르는 잠수함』(창비교육, 2020), 소시집 『바탕색은 점점 예뻐진다』(스토리코스모스, 2021)가 있다. 제18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진 제공.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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