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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좌담] 장애 예술과 창작역량① 연극

이슈 나의 이야기를, 더 많은 무대에서, 더 다양한 역할로

  • 김지수, 강희철, 금민정, 이승규 
  • 등록일 2020-10-28
  • 조회수619

이슈

[연속 좌담] 장애 예술과 창작역량① 연극

나의 이야기를, 더 많은 무대에서, 더 다양한 역할로

김지수, 강희철, 금민정, 이승규

개요

  • 일시 2020년 9월 9일(수) 오후 2시 ~ 4시

  • 장소 온라인(zoom) 회의

참석자
좌장.
김지수(극단 애인 대표, 이음 온라인·웹진 기획위원)
패널.
강희철(극단 애인), 금민정(장애인문화예술 판), 이승규(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강희철, 금민정, 이승규, 김지수

쓰고 움직이고 표현하며 성장하기

김지수무대에서만 뵙던 배우님들과 이렇게 만나 좌담을 하게 되어 반갑고 감사하다. 2018년 웹진 [이음]에서 장애 예술 창작 활성화에 관한 설문 조사를 진행했었는데(관련기사 바로가기), 실제 현장에서 창작 활동하고 계신 예술가에게는 어떤 욕구와 바람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세 분을 모시게 되었다. 강희철 배우는 대본 작업을 하셨고, 이승규 배우는 <비엔>이라는 작품을 쓰고 연출했다. 금민정 배우도 자신만의 움직임과 에너지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계시다. 연기 외의 창작활동, 극작이나 연출을 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궁금하다.

이승규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이하 휠)에서 2016년 배우로 데뷔했다. 휠에서는 매해 ‘장애인 아카데미’라고 해서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2017년 즈음, 배우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창작활동을 하게 됐다. 작년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중 작품 몇 편을 선정해 연극으로 만들어보자고 했고 연출의 기회가 주어져서 공연을 만들게 되었다.

강희철극단 애인(이하 애인)에서 창단 때부터 활동하고 있다. 배우로서 자기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걸 토대로 극을 올리기도 했었는데, 그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가 내면에 있었던 것 같다. 그걸 마음껏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고, 애인에서 지속해서 <3인 3색 이야기> 시리즈 같은 기회들이 있었다. 자기 이야기를 쓰는 과정에서 창작해야겠다는 욕구가 생겼다.

금민정장애인문화예술 판(이하 판)에서 2013년 <이게 바로 나예요>로 처음 연극을 시작했다. 나는 연기와 움직임을 주로 하는데, 판에 와서 움직임을 처음 접했다. 장애인 단체에서는 움직임보다는 학습 위주로 역량 강화를 해왔는데, 판에서 움직임 워크숍을 하다 보니 다들 안 움직이는 몸이지만 힘들게 움직이는 그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

김지수지금 말씀해주신 것처럼 장애인 극단들은 배우의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다. 글을 쓰는 작업, 자기 특유의 움직임을 찾는 작업, 그리고 연출해 볼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 등이 있다. 구체적으로 각 극단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듣고 싶다.

강희철애인은 초창기의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부터 최근 2~3년 전의 <3인 3색 이야기> 시리즈까지 장애인 배우들이 자신의 이야기, 혹은 듣고 경험한 것을 스토리텔링 해서 작품을 만들고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 <들판에서> <전쟁터 산책> 같은 희곡작품을 장애인 몸짓이나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했고, 작년부터는 ‘1인 유망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본인이 직접 글을 쓰고 구상하고, 연출해서 공연하는 경험이 창작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승규다른 장애인 극단도 비슷하겠지만 휠의 경우는 장애인 배우를 비롯한 장애 예술가를 발굴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장애인 극단 지원제도를 활용해 매년 작품을 올리고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극단에서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면 좋겠다. 프로그램 내용 면에서는 같은 것을 계속 반복할 수는 없으니 좀 더 다양하게 접근해 보고 싶지만 그러면 깊이가 떨어지게 되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지수단기간에 창작역량이 강화될 수도 없고 꾸준한 공부가 필요한데 똑같은 프로그램을 계속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니 여러 방면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금민정판에서는 외부 연출가와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다. 대부분 우리를 알고 오시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치유한다는 말도 있듯 객원 연출가와 함께하면서 치유 받는 느낌이 들었다.

성장을 위한 교육과 협업, 따로 또 같이

김지수2018년 조사에서 장애 예술 창작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지 질문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사회참여 확대를 가장 많이 꼽았고, 장애인들은 표현 매체의 확장과 동시대 예술성, 자기 주도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장애인이 무대에 설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좋은 의견을 부탁드린다.

금민정예전에 잠깐 지상파 TV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장애 예술을 편성하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승규공연 기회가 적은 이유 중 하나가, 장애인 극단이 비장애인 극단에 비해 일반 대중들의 인지도와 관심이 낮은 측면이 큰 것 같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이왕이면 비장애인 극단에서 하는 조금 더 유명하고 퀼리티 있는 작품을 선호하다 보니 그렇지 않을까 한다. 거기에 대한 한 가지 대안으로 장애인 극단과 비장애인 극단 간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연할 때 장애인 배우와 비장애인 배우들의 비중을 맞추거나, 협업해서 같은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한다면 관객이 ‘장애인 배우들도 저렇게 움직일 수 있구나’ ‘저런 공연을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장애인 극단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

강희철창작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연출하기 위해서는 연출에 대한 것을 배워야 하고, 움직임을 하기 위해서는 움직임의 언어를 느끼고 경험하는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창작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장애 예술가들은 이런 걸 배우고 경험할 기회가 사회 통념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장애예술대학 같은 곳이 있어서, 온라인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예술 활동을 꿈꾸는 장애인 누구에게라도 교육을 지원하고, 그들의 언어나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갖추면 좋겠다. 장애인 극단에서는 보통 1, 2년짜리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하면서 발표를 통해 배우거나 습득한다. 그런 프로젝트 기회가 많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극작, 연출, 움직임 등을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배울 수 있도록 장애예술대학과 같은 국가지원이 들어가는 전문적인 교육 기관이 필요하다. 그런 시스템 속에서 장애인이 배우고 창작활동을 계속하다 보면 공연 기회도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한다.

이승규장애 예술인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 기관이 없어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주변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장애인 배우가 있지만, 교육 방식이 비장애인 중심이고 그 안에서도 서로 협력관계가 형성되지 않아 동떨어진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나도 처음에 일반학교에 다녔는데 대다수의 비장애인을 위한 교육 시스템이다 보니 거기서 생기는 문제로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같은 맥락에서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없이 함께하자는 건 좋은 의도지만 장애인 배우들이 적응을 못 하거나 효율적인 교육 지원을 받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시각, 청각 등 특성이 다른 장애인에게 맞는 적절한 시스템이 있다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리라 생각한다.

김지수많은 분이 공감하실 거로 생각한다. 연결된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극단 내부의 창작역량 강화 프로그램 외에 극작, 움직임, 연출론 등 외부 창작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나, 혹은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면 말씀해달라.

금민정동네 주민센터에서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 요가 교실에는 장애인이 나밖에 없었다. 내 몸과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는 시스템에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고 재미없어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 장애인 요가 교실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승규극단 내부 프로그램을 통해 우연찮은 기회에 연출까지 하게 되면서 극작과 연출 공부에 관심이 생겼다. 앞으로는 그런 수업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프로젝트는 단기로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장기적으로 극작, 연출 등을 할 수 있는 체계가 중요하다. 강희철 배우 말씀처럼 나의 밑바닥에 깔린 내용이 있어야 그걸 발판으로 딛고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인 역량 강화를 위한 체계적 교육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탕이 되면 창작활동에서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강희철영화에 관심이 있어서 올 초에는 영화 제작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나는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면 항상 전화를 걸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임을 밝히고, 접근할 수 있는지, 교육 장소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지 등 사전에 문의한다. 비장애인들과 섞여 교육을 받을 때 대부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나 혼자였는데 그들이 너무 친절하게 배려해서 흡수되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의 창작물을 만들려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배려하거나 반대로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장소를 섭외하는 등 너무 배려가 없는 극단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만의 배움 공간도 필요하지만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려서 작업하는 공간이나 커리큘럼, 프로젝트 등도 상시로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창작의 기쁨과 어려움

김지수글을 쓰고 싶거나 움직임으로 표현해 보고 싶거나 작품을 만들고 싶은 창작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

금민정극단에서 집까지 오는 길, 특히 지하철에서 많이 얻는다. 나는 경증장애인이라 걸음이 그나마 편한 편인데,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다 보면 어르신들한테 많이 혼난다. 세 칸짜리 장애인석에 앉아서 졸다가 지팡이로 맞은 적도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장애가 있을 수 있고 아플 수 있다는 내용의 연극을 만들어보고 싶다.

이승규일상생활이 영감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여러 가지 시선에 대해 어려서부터 쌓여 온 다양한 경험과 기억이 있다. 그런 걸 차곡차곡 정리하면 그게 영감이 되는 것 같다. 휠에서 극작 프로그램할 때도 의견을 내었는데 너무 짧아서 초단막극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경험과 기억을 모아서 잘 다듬고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

강희철생활 속에서나 과거에 있었던 사건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에서 비장애인들이 먼저 타고 나는 바깥에서 바라볼 때, 저분들은 왜 내 눈빛을 피할까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그렇게 영감을 얻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려 메모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금민정그림을 그리면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일상에서 사람들은 같아야 한다는 일반화의 편견을 갖지만 그림 속에서는 일상과 다르고, 달라도 상관없다 보니 그림을 그리면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김지수금민정 배우 SNS를 보면 재미있는 그림을 많이 올려주어 행복해진다. (웃음) 한편, 이승규 배우가 쓰고 연출하고 출연까지 한 <비엔>을 보고 정말 놀랐다. 실행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강희철 배우도 <3인 3색 시리즈>에서 글을 쓰고 출연하면서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금민정 배우도 객원 연출가와 작품 연습 등 창작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란다.

이승규작년 극작 프로그램에서 30분 이내의 짧은 작품으로 <비엔>을 썼다. 당시에 큰 그림은 연출님이 잡아주시고 세부적인 움직임과 내용은 배우들과 내가 함께 만들어 작품을 올렸다. 이 작품을 올해 정기공연에서 좀 더 다듬어 올리면서 내가 연출을 맡았고, 내 역할을 대신할 만한 배우를 찾기 어려워 출연도 한다. 연기하면서 동시에 연출하는 어려움이 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크게 볼 수 없어 어렵고 아쉬운 게 많고, 연출의 입장에서 내가 너무 소홀한 것 같기도 하다. 어느 하나에 매진하지 못해 놓치는 부분이 많을까 봐 고민이 크다.

강희철‘1인 프로젝트’를 통해 스탠드업 코미디를 준비하고 있다. 개인 창작자로서 글을 쓰고 연출하고 공연을 하는 데 있어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관객이 받는 재미와 감동이 다를 때 창작자로서 능력이 부족한 느낌이다. 그럴 때 오는 괴리감을 줄여가는 게 제일 어렵다.

금민정올해로 배우 활동 8년 차가 되는데, 내 시선에는 다른 장애인 배우들이 아름답다. 사회에서는 장애인이 연극을 한다고 하면 굉장히 신기하게 보거나 대단하고 특별하게 여기지만 나에게는 그냥 아름다운 몸, 그냥 연기, 그냥 사람 그 자체의 느낌이다. TV나 언론에 장애인 배우의 모습이 비칠 때 안타깝고 불쌍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아는 현실의 장애인 대부분은 엄청나게 멋있고 활발하다. TV나 언론에서 현실과 다른 장애인을 보여줘서 불편함과 어려움을 느낀다.

김지수강희철 배우는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있고 이승규 배우도 수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연출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이승규전문적으로 연출 과정을 밟은 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연출들이 하는 걸 보고 듣고 느낀 것만 가지고 처음 연출을 하다 보니 너무 막연했다. 내가 연출로서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스스로 주눅이 들기도 하고 주변에서 불편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이라는 걸 모두 아니까, 내가 실수하거나 다른 사람을 잘 이해시키지 못할 때, 동료들이 한 번 더 물어봐 주고 확인하면서 신뢰도 쌓이고 서로 이해하는 부분이 생겼다.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함께 결정하는 과정에서 서로 돈독해지기도 하면서 힘든 작업이지만 재미있었다. 주변에서 조언도 많이 해주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물어보라고 먼저 말해 주기도 한다. 나는 경험을 통해 알을 깨고 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으로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강희철작년과 올해 1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으며 창작자로서 내가 하고 싶은 언어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 흔들릴 때가 있었다. 대부분 그분들의 조언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나의 신념과 목적을 지켜내기가 힘들 때 창작자로서의 고민이 컸던 것 같다.

금민정저는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판은 지금 성북마을극장이 있지만, 우리 극장이 없었을 때는 극장을 이용할 때 접근성의 어려움이 많았다. 장애인 배우들은 어디 가서 공연하고 싶어도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계단으로 되어 있거나, 지하에 있어 접근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승규공감한다. 대부분의 연습실이 거의 지하에 있다 보니 휠체어 타는 분들은 접근 기회조차 없는 경우를 자주 봤고 그런 현실이 마음 아팠다. 공간에 대한 접근성이 가장 기본인데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힘들다.

강희철애인에서 공연할 때마다 고민하는 것이 극장의 접근성과 함께 연습실에 대한 접근성이다. 그게 참 힘들다.

김지수상 공연장 후보에 올라 있는 곳이 성미산마을극장, 이음센터, 성북마을극장이다. 판에서 성북마을극장을 만들었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이 기뻤다.

이승규홍대에 있는 소극장도 있지만, 대관료가 비싸다. 올해 2월에 문래예술공장에서 공연했는데 대관료도 다른 극장에 비해서 저렴하고 괜찮았다. 찾아보면 몇 군데 괜찮은 곳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부족한 실정이다. 이음센터 같은 곳이 한두 곳만 더 생겼으면 좋겠다. 이음센터가 장애인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고 대관료가 싸다 보니 대관 잡기가 어렵다. 그리고 연말이나 9, 10월에 공연이 몰리다 보니 이음처럼 접근성 좋고 대관료도 저렴한 공간이 두어 개 더 생겨서 마음의 부담이 없었으면 좋겠다.

당사자라는 공감의 축

김지수이승규 배우가 이야기한 것처럼 배우와 스태프가 같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공동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장애인 극단만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강희철 배우의 경우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가진 확신과 생각이 사라지는 어려움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이런 과정이 창작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애인 극단에서 장애 당사자가 글을 쓰고 연출하는 것에 대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 궁금해졌다.

이승규최근 장애를 주제로 한 영화나 연극이 늘어나고 있지만 장애를 관찰하여 보여주는 것과 장애 당사자가 직접 나타내는 것의 간극은 크다고 생각한다. 관찰자로서는 당사자의 기분이나 속마음, 느낌 등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장애인이 자신의 입장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휠은 학교로 찾아가 장애인식 개선 공연을 하는데 학생들이 이해하고 공감해 줬을 때 기쁨이 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점점 내 목소리를 내고, 공감대를 불러 일으킬만한 내 안의 이야기를 많이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가감 없이 혹은 오히려 더 과장되거나 풍자적으로, 겉으로는 재미있어도 속에는 뼈가 있는 이야기를 비장애인들에게 문화예술로 풀어낼 수 있다면 장애 인식개선의 효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금민정판에서 공동 창작을 할 때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야 한다. 아이디어 도출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나는 기존의 희곡보다 공동 창작을 더 선호한다. <이 동네 개판 5분 전>도 공동 창작으로 만들었는데 배우로 출연하면서 너무 재미있게 작업했었다.

강희철극단에서 처음으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올렸던 건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였다. 배우들의 다섯 가지 이야기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장애인으로서 사회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내가 스토리텔링 작업을 통해 삶의 주인공이 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스토리텔링하고 관객들 앞에서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감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딸하고 둘이 살고 있는데 그동안 딸과 대화가 잘 안 됐었다. 어떨 때는 나를 너무 배려해주고, 어떨 때는 귀찮고 부담스럽지 않을까 해서 표현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작품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공감이 좀 더 쉬웠던 것 같다. 당사자로서 이야기하고 작품을 올린다는 건 창작자에게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관람하는 관객에게도 큰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좀 더 많은 장애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경험을 많이 하면 좋겠다. 장애 예술가들이, 혹은 예술을 표현하고 싶은 장애인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창작의 장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 자기 이야기를 쓰거나 말할 수 있는 장, 문화예술로 폭넓게 표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장애인들이 사이트에 접속해서 나는 이렇게 작품을 쓰고 싶다든지, 경험하고 싶다고 했을 때 언제든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는 장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등에서 마련해 주면 좋겠다.

김지수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어떤 창작자로 자리매김하고 싶은지 여러분의 꿈과 기대, 바람을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이승규배우로든 극작가로든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오롯이 장애 예술인들만의 힘으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연출, 극작, 배우, 조명, 음향 등 장애 당사자들이 모여 작품을 잘 만들어 비장애 관객에게 ‘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 하는 기대치를 심어주고 싶다. 우리가 서로 협력하여 성과물을 낸다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장애인 문화예술도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금민정장애 연극인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다 똑같이 사람인(人)을 쓰는데 서로 배제하고 차별하지 않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강희철나는 예술가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장애 예술가가 되고 싶다. 나는 장애인 연극을 잘 만들어서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하고 그 관람료로 걱정 없이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김지수여러분의 바람이 이뤄질 날이 곧 올 것으로 생각한다. 좋은 창작자로서의 성장을 기대하면서 행복한 관람객이 되고 싶다.

김지수 기획위원

2007년부터 극단 애인 대표를 맡고 있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교육,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강희철

극단 애인 창단 멤버로 2007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전쟁터 산책> 등 다수 작품에 출연했고 <3인 3색 이야기> 중 <조건만남>을 쓰고 출연했다.

금민정

2013년부터 장애인문화예술 판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이게 바로 나예요> <이웃> <러브러브> <추신>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역전만루홈런> <이 동네 개판 5분 전> 등 다수 작품에 출연했다.

이승규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부단장, 장애인식개선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부터 <숲속 작은 집> <가장 보통의 존재> <헬로. 오즈!> <하늬바람> <옥상 위를 부탁해> <내 친구 상훈이> <언제나 맑음>에 출연했으며 창작극 <비엔(Bien)>을 쓰고 연출하고 출연했다.

정리.프로젝트 궁리 최엄윤 PD omyunchoi@hanmail.net

2020년 10월 (14호)

상세내용

이슈

[연속 좌담] 장애 예술과 창작역량① 연극

나의 이야기를, 더 많은 무대에서, 더 다양한 역할로

김지수, 강희철, 금민정, 이승규

개요

  • 일시 2020년 9월 9일(수) 오후 2시 ~ 4시

  • 장소 온라인(zoom) 회의

참석자
좌장.
김지수(극단 애인 대표, 이음 온라인·웹진 기획위원)
패널.
강희철(극단 애인), 금민정(장애인문화예술 판), 이승규(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강희철, 금민정, 이승규, 김지수

쓰고 움직이고 표현하며 성장하기

김지수무대에서만 뵙던 배우님들과 이렇게 만나 좌담을 하게 되어 반갑고 감사하다. 2018년 웹진 [이음]에서 장애 예술 창작 활성화에 관한 설문 조사를 진행했었는데(관련기사 바로가기), 실제 현장에서 창작 활동하고 계신 예술가에게는 어떤 욕구와 바람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세 분을 모시게 되었다. 강희철 배우는 대본 작업을 하셨고, 이승규 배우는 <비엔>이라는 작품을 쓰고 연출했다. 금민정 배우도 자신만의 움직임과 에너지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계시다. 연기 외의 창작활동, 극작이나 연출을 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궁금하다.

이승규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이하 휠)에서 2016년 배우로 데뷔했다. 휠에서는 매해 ‘장애인 아카데미’라고 해서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2017년 즈음, 배우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창작활동을 하게 됐다. 작년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중 작품 몇 편을 선정해 연극으로 만들어보자고 했고 연출의 기회가 주어져서 공연을 만들게 되었다.

강희철극단 애인(이하 애인)에서 창단 때부터 활동하고 있다. 배우로서 자기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걸 토대로 극을 올리기도 했었는데, 그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가 내면에 있었던 것 같다. 그걸 마음껏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고, 애인에서 지속해서 <3인 3색 이야기> 시리즈 같은 기회들이 있었다. 자기 이야기를 쓰는 과정에서 창작해야겠다는 욕구가 생겼다.

금민정장애인문화예술 판(이하 판)에서 2013년 <이게 바로 나예요>로 처음 연극을 시작했다. 나는 연기와 움직임을 주로 하는데, 판에 와서 움직임을 처음 접했다. 장애인 단체에서는 움직임보다는 학습 위주로 역량 강화를 해왔는데, 판에서 움직임 워크숍을 하다 보니 다들 안 움직이는 몸이지만 힘들게 움직이는 그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

김지수지금 말씀해주신 것처럼 장애인 극단들은 배우의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다. 글을 쓰는 작업, 자기 특유의 움직임을 찾는 작업, 그리고 연출해 볼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 등이 있다. 구체적으로 각 극단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듣고 싶다.

강희철애인은 초창기의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부터 최근 2~3년 전의 <3인 3색 이야기> 시리즈까지 장애인 배우들이 자신의 이야기, 혹은 듣고 경험한 것을 스토리텔링 해서 작품을 만들고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 <들판에서> <전쟁터 산책> 같은 희곡작품을 장애인 몸짓이나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했고, 작년부터는 ‘1인 유망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본인이 직접 글을 쓰고 구상하고, 연출해서 공연하는 경험이 창작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승규다른 장애인 극단도 비슷하겠지만 휠의 경우는 장애인 배우를 비롯한 장애 예술가를 발굴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장애인 극단 지원제도를 활용해 매년 작품을 올리고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극단에서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면 좋겠다. 프로그램 내용 면에서는 같은 것을 계속 반복할 수는 없으니 좀 더 다양하게 접근해 보고 싶지만 그러면 깊이가 떨어지게 되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지수단기간에 창작역량이 강화될 수도 없고 꾸준한 공부가 필요한데 똑같은 프로그램을 계속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니 여러 방면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금민정판에서는 외부 연출가와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다. 대부분 우리를 알고 오시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치유한다는 말도 있듯 객원 연출가와 함께하면서 치유 받는 느낌이 들었다.

성장을 위한 교육과 협업, 따로 또 같이

김지수2018년 조사에서 장애 예술 창작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지 질문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사회참여 확대를 가장 많이 꼽았고, 장애인들은 표현 매체의 확장과 동시대 예술성, 자기 주도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장애인이 무대에 설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좋은 의견을 부탁드린다.

금민정예전에 잠깐 지상파 TV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장애 예술을 편성하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승규공연 기회가 적은 이유 중 하나가, 장애인 극단이 비장애인 극단에 비해 일반 대중들의 인지도와 관심이 낮은 측면이 큰 것 같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이왕이면 비장애인 극단에서 하는 조금 더 유명하고 퀼리티 있는 작품을 선호하다 보니 그렇지 않을까 한다. 거기에 대한 한 가지 대안으로 장애인 극단과 비장애인 극단 간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연할 때 장애인 배우와 비장애인 배우들의 비중을 맞추거나, 협업해서 같은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한다면 관객이 ‘장애인 배우들도 저렇게 움직일 수 있구나’ ‘저런 공연을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장애인 극단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

강희철창작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연출하기 위해서는 연출에 대한 것을 배워야 하고, 움직임을 하기 위해서는 움직임의 언어를 느끼고 경험하는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창작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장애 예술가들은 이런 걸 배우고 경험할 기회가 사회 통념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장애예술대학 같은 곳이 있어서, 온라인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예술 활동을 꿈꾸는 장애인 누구에게라도 교육을 지원하고, 그들의 언어나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갖추면 좋겠다. 장애인 극단에서는 보통 1, 2년짜리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하면서 발표를 통해 배우거나 습득한다. 그런 프로젝트 기회가 많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극작, 연출, 움직임 등을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배울 수 있도록 장애예술대학과 같은 국가지원이 들어가는 전문적인 교육 기관이 필요하다. 그런 시스템 속에서 장애인이 배우고 창작활동을 계속하다 보면 공연 기회도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한다.

이승규장애 예술인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 기관이 없어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주변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장애인 배우가 있지만, 교육 방식이 비장애인 중심이고 그 안에서도 서로 협력관계가 형성되지 않아 동떨어진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나도 처음에 일반학교에 다녔는데 대다수의 비장애인을 위한 교육 시스템이다 보니 거기서 생기는 문제로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같은 맥락에서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없이 함께하자는 건 좋은 의도지만 장애인 배우들이 적응을 못 하거나 효율적인 교육 지원을 받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시각, 청각 등 특성이 다른 장애인에게 맞는 적절한 시스템이 있다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리라 생각한다.

김지수많은 분이 공감하실 거로 생각한다. 연결된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극단 내부의 창작역량 강화 프로그램 외에 극작, 움직임, 연출론 등 외부 창작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나, 혹은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면 말씀해달라.

금민정동네 주민센터에서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 요가 교실에는 장애인이 나밖에 없었다. 내 몸과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는 시스템에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고 재미없어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 장애인 요가 교실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승규극단 내부 프로그램을 통해 우연찮은 기회에 연출까지 하게 되면서 극작과 연출 공부에 관심이 생겼다. 앞으로는 그런 수업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프로젝트는 단기로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장기적으로 극작, 연출 등을 할 수 있는 체계가 중요하다. 강희철 배우 말씀처럼 나의 밑바닥에 깔린 내용이 있어야 그걸 발판으로 딛고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인 역량 강화를 위한 체계적 교육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탕이 되면 창작활동에서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강희철영화에 관심이 있어서 올 초에는 영화 제작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나는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면 항상 전화를 걸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임을 밝히고, 접근할 수 있는지, 교육 장소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지 등 사전에 문의한다. 비장애인들과 섞여 교육을 받을 때 대부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나 혼자였는데 그들이 너무 친절하게 배려해서 흡수되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의 창작물을 만들려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배려하거나 반대로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장소를 섭외하는 등 너무 배려가 없는 극단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만의 배움 공간도 필요하지만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려서 작업하는 공간이나 커리큘럼, 프로젝트 등도 상시로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창작의 기쁨과 어려움

김지수글을 쓰고 싶거나 움직임으로 표현해 보고 싶거나 작품을 만들고 싶은 창작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

금민정극단에서 집까지 오는 길, 특히 지하철에서 많이 얻는다. 나는 경증장애인이라 걸음이 그나마 편한 편인데,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다 보면 어르신들한테 많이 혼난다. 세 칸짜리 장애인석에 앉아서 졸다가 지팡이로 맞은 적도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장애가 있을 수 있고 아플 수 있다는 내용의 연극을 만들어보고 싶다.

이승규일상생활이 영감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여러 가지 시선에 대해 어려서부터 쌓여 온 다양한 경험과 기억이 있다. 그런 걸 차곡차곡 정리하면 그게 영감이 되는 것 같다. 휠에서 극작 프로그램할 때도 의견을 내었는데 너무 짧아서 초단막극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경험과 기억을 모아서 잘 다듬고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

강희철생활 속에서나 과거에 있었던 사건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에서 비장애인들이 먼저 타고 나는 바깥에서 바라볼 때, 저분들은 왜 내 눈빛을 피할까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그렇게 영감을 얻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려 메모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금민정그림을 그리면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일상에서 사람들은 같아야 한다는 일반화의 편견을 갖지만 그림 속에서는 일상과 다르고, 달라도 상관없다 보니 그림을 그리면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김지수금민정 배우 SNS를 보면 재미있는 그림을 많이 올려주어 행복해진다. (웃음) 한편, 이승규 배우가 쓰고 연출하고 출연까지 한 <비엔>을 보고 정말 놀랐다. 실행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강희철 배우도 <3인 3색 시리즈>에서 글을 쓰고 출연하면서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금민정 배우도 객원 연출가와 작품 연습 등 창작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란다.

이승규작년 극작 프로그램에서 30분 이내의 짧은 작품으로 <비엔>을 썼다. 당시에 큰 그림은 연출님이 잡아주시고 세부적인 움직임과 내용은 배우들과 내가 함께 만들어 작품을 올렸다. 이 작품을 올해 정기공연에서 좀 더 다듬어 올리면서 내가 연출을 맡았고, 내 역할을 대신할 만한 배우를 찾기 어려워 출연도 한다. 연기하면서 동시에 연출하는 어려움이 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크게 볼 수 없어 어렵고 아쉬운 게 많고, 연출의 입장에서 내가 너무 소홀한 것 같기도 하다. 어느 하나에 매진하지 못해 놓치는 부분이 많을까 봐 고민이 크다.

강희철‘1인 프로젝트’를 통해 스탠드업 코미디를 준비하고 있다. 개인 창작자로서 글을 쓰고 연출하고 공연을 하는 데 있어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관객이 받는 재미와 감동이 다를 때 창작자로서 능력이 부족한 느낌이다. 그럴 때 오는 괴리감을 줄여가는 게 제일 어렵다.

금민정올해로 배우 활동 8년 차가 되는데, 내 시선에는 다른 장애인 배우들이 아름답다. 사회에서는 장애인이 연극을 한다고 하면 굉장히 신기하게 보거나 대단하고 특별하게 여기지만 나에게는 그냥 아름다운 몸, 그냥 연기, 그냥 사람 그 자체의 느낌이다. TV나 언론에 장애인 배우의 모습이 비칠 때 안타깝고 불쌍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아는 현실의 장애인 대부분은 엄청나게 멋있고 활발하다. TV나 언론에서 현실과 다른 장애인을 보여줘서 불편함과 어려움을 느낀다.

김지수강희철 배우는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있고 이승규 배우도 수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연출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이승규전문적으로 연출 과정을 밟은 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연출들이 하는 걸 보고 듣고 느낀 것만 가지고 처음 연출을 하다 보니 너무 막연했다. 내가 연출로서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스스로 주눅이 들기도 하고 주변에서 불편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이라는 걸 모두 아니까, 내가 실수하거나 다른 사람을 잘 이해시키지 못할 때, 동료들이 한 번 더 물어봐 주고 확인하면서 신뢰도 쌓이고 서로 이해하는 부분이 생겼다.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함께 결정하는 과정에서 서로 돈독해지기도 하면서 힘든 작업이지만 재미있었다. 주변에서 조언도 많이 해주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물어보라고 먼저 말해 주기도 한다. 나는 경험을 통해 알을 깨고 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으로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강희철작년과 올해 1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으며 창작자로서 내가 하고 싶은 언어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 흔들릴 때가 있었다. 대부분 그분들의 조언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나의 신념과 목적을 지켜내기가 힘들 때 창작자로서의 고민이 컸던 것 같다.

금민정저는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판은 지금 성북마을극장이 있지만, 우리 극장이 없었을 때는 극장을 이용할 때 접근성의 어려움이 많았다. 장애인 배우들은 어디 가서 공연하고 싶어도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계단으로 되어 있거나, 지하에 있어 접근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승규공감한다. 대부분의 연습실이 거의 지하에 있다 보니 휠체어 타는 분들은 접근 기회조차 없는 경우를 자주 봤고 그런 현실이 마음 아팠다. 공간에 대한 접근성이 가장 기본인데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힘들다.

강희철애인에서 공연할 때마다 고민하는 것이 극장의 접근성과 함께 연습실에 대한 접근성이다. 그게 참 힘들다.

김지수상 공연장 후보에 올라 있는 곳이 성미산마을극장, 이음센터, 성북마을극장이다. 판에서 성북마을극장을 만들었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이 기뻤다.

이승규홍대에 있는 소극장도 있지만, 대관료가 비싸다. 올해 2월에 문래예술공장에서 공연했는데 대관료도 다른 극장에 비해서 저렴하고 괜찮았다. 찾아보면 몇 군데 괜찮은 곳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부족한 실정이다. 이음센터 같은 곳이 한두 곳만 더 생겼으면 좋겠다. 이음센터가 장애인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고 대관료가 싸다 보니 대관 잡기가 어렵다. 그리고 연말이나 9, 10월에 공연이 몰리다 보니 이음처럼 접근성 좋고 대관료도 저렴한 공간이 두어 개 더 생겨서 마음의 부담이 없었으면 좋겠다.

당사자라는 공감의 축

김지수이승규 배우가 이야기한 것처럼 배우와 스태프가 같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공동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장애인 극단만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강희철 배우의 경우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가진 확신과 생각이 사라지는 어려움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이런 과정이 창작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애인 극단에서 장애 당사자가 글을 쓰고 연출하는 것에 대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 궁금해졌다.

이승규최근 장애를 주제로 한 영화나 연극이 늘어나고 있지만 장애를 관찰하여 보여주는 것과 장애 당사자가 직접 나타내는 것의 간극은 크다고 생각한다. 관찰자로서는 당사자의 기분이나 속마음, 느낌 등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장애인이 자신의 입장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휠은 학교로 찾아가 장애인식 개선 공연을 하는데 학생들이 이해하고 공감해 줬을 때 기쁨이 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점점 내 목소리를 내고, 공감대를 불러 일으킬만한 내 안의 이야기를 많이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가감 없이 혹은 오히려 더 과장되거나 풍자적으로, 겉으로는 재미있어도 속에는 뼈가 있는 이야기를 비장애인들에게 문화예술로 풀어낼 수 있다면 장애 인식개선의 효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금민정판에서 공동 창작을 할 때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야 한다. 아이디어 도출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나는 기존의 희곡보다 공동 창작을 더 선호한다. <이 동네 개판 5분 전>도 공동 창작으로 만들었는데 배우로 출연하면서 너무 재미있게 작업했었다.

강희철극단에서 처음으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올렸던 건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였다. 배우들의 다섯 가지 이야기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장애인으로서 사회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내가 스토리텔링 작업을 통해 삶의 주인공이 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스토리텔링하고 관객들 앞에서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감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딸하고 둘이 살고 있는데 그동안 딸과 대화가 잘 안 됐었다. 어떨 때는 나를 너무 배려해주고, 어떨 때는 귀찮고 부담스럽지 않을까 해서 표현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작품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공감이 좀 더 쉬웠던 것 같다. 당사자로서 이야기하고 작품을 올린다는 건 창작자에게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관람하는 관객에게도 큰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좀 더 많은 장애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경험을 많이 하면 좋겠다. 장애 예술가들이, 혹은 예술을 표현하고 싶은 장애인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창작의 장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 자기 이야기를 쓰거나 말할 수 있는 장, 문화예술로 폭넓게 표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장애인들이 사이트에 접속해서 나는 이렇게 작품을 쓰고 싶다든지, 경험하고 싶다고 했을 때 언제든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는 장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등에서 마련해 주면 좋겠다.

김지수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어떤 창작자로 자리매김하고 싶은지 여러분의 꿈과 기대, 바람을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이승규배우로든 극작가로든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오롯이 장애 예술인들만의 힘으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연출, 극작, 배우, 조명, 음향 등 장애 당사자들이 모여 작품을 잘 만들어 비장애 관객에게 ‘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 하는 기대치를 심어주고 싶다. 우리가 서로 협력하여 성과물을 낸다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장애인 문화예술도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금민정장애 연극인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다 똑같이 사람인(人)을 쓰는데 서로 배제하고 차별하지 않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강희철나는 예술가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장애 예술가가 되고 싶다. 나는 장애인 연극을 잘 만들어서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하고 그 관람료로 걱정 없이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김지수여러분의 바람이 이뤄질 날이 곧 올 것으로 생각한다. 좋은 창작자로서의 성장을 기대하면서 행복한 관람객이 되고 싶다.

김지수 기획위원

2007년부터 극단 애인 대표를 맡고 있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교육,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강희철

극단 애인 창단 멤버로 2007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전쟁터 산책> 등 다수 작품에 출연했고 <3인 3색 이야기> 중 <조건만남>을 쓰고 출연했다.

금민정

2013년부터 장애인문화예술 판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이게 바로 나예요> <이웃> <러브러브> <추신>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역전만루홈런> <이 동네 개판 5분 전> 등 다수 작품에 출연했다.

이승규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부단장, 장애인식개선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부터 <숲속 작은 집> <가장 보통의 존재> <헬로. 오즈!> <하늬바람> <옥상 위를 부탁해> <내 친구 상훈이> <언제나 맑음>에 출연했으며 창작극 <비엔(Bien)>을 쓰고 연출하고 출연했다.

정리.프로젝트 궁리 최엄윤 PD omyunchoi@hanmail.net

2020년 10월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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