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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프로젝트 이인 <무용수-되기>

리뷰 아무것도 구속받지 않고 존재로 드러내는 몸

  • 박성혜 무용평론가
  • 등록일 2022-01-26
  • 조회수1745

리뷰

김원영과 프로젝트 이인의 작업 <무용수-되기>는 지난 12월 초에 언더스탠드에비뉴 아트스탠드에서 진행되었다. 필자는 이본 라이너(Yvonne Rainer)의 <트리오 A(Trio A)>에서 출발한 이 작품을 진행 순서대로 크게 세 부분으로 임의로 나누어 봤다. <트리오 A>에 대한 간단한 소개, 김원영과 함께 출연한 최기섭이 선택한 이본 라이너의 작업 스코어를 따라가는 방식, 그리고 김원영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최기섭과 다시 춤추기로 말이다.

1960, 70년대 미국 아방가르드 공연예술의 한 획을 그은 이본 라이너의 작업을 소개하는 공연의 도입부는 얼핏 보면 강연 같다. 유튜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본 라이너가 직접 출연한 영상으로 재연되며, <트리오 A>에 대한 성실한 리서치 내용이 소개된다. <트리오 A>는 평범하고도 단순한 동작의 열거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무용수는 그저 움직일 뿐이고 관객 역시 볼 뿐인, 매우 미니멀한 작업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구나 언제든지 춤출 수 있다”고 했던 무용이론가 샐리 베인즈(Sally Banes)가 언급한 ‘민주적인 몸’의 실천이자 이본 라이너 자신이 제시한 「반 선언문(No Manifesto)」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작업이기도 하다.

김원영과 최기섭은 이 첫 번째 출발을 ‘누구나’라는 민주적 평등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작품 <트리오 A>에서 발췌한 매우 기본적인 동작들의 스코어를 수행해 본다. 예를 들면 “오른손 짚고 왼손 넣는다” “방향 바꾸어 구른다”와 같은 동작의 일부를 자신들의 몸을 통해 진행한다. 흥미로운 것은 김원영의 휠체어 때문에 이 동작 진행이 전혀 평등하지 않고 너무나도 그 차이가 선명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은 처음부터 그러한 차이를 인지하고 의도적으로 드러나도록 배치했다. 그리고 그러한 진행을 통해 서로 어긋나고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감지되는 것들에서 원작의 스코어에서 얼마나 벌어지는지를 다시 재현한다. 최기섭의 몸과 김원영의 움직임은 다르다 못해 김원영의 휠체어로 인해 마치 기계와 일치한 몸의 춤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일종의 ‘기계 발레’라는 인상을 받는다.

한편으로는 원래 스코어에서 움직임의 용이한 진행을 위해 원작보다 2배 느린 속도로 춤을 추었다. 이쯤에서 드는 의구심이, 속도 혹은 시간이 원래의 스코어와 달라지면 원작의 재현에서 크게 변화한 셈인데 무슨 이유로 구태여 이리도 성실하게 원작을 고집할까 하는 점이다. 움직임에서 속도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작품 소개서에도 김원영 스스로도 움직임의 흐름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원작과 다른 흐름이 당연히 동반되는 2배로 느려진 시간에 관한 새로운 흐름, 다른 흐름이 발생하는데 굳이 스코어를 밑그림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마치 트레이싱 페이퍼를 대고 그릴 거라고 천명하고 다른 그림을 그린 것인데, 그대로 따라 하지 않을 것을 왜 트레이싱 페이퍼를 대고 그릴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무용수가 구현하는 춤은 멋졌다. 물체와 신체, 몸과 몸의 시각적 효과와 무엇보다도 평등하고 나름의 관계성에서 적어도 두 무용수 간의 합의와 균형, 두 무용수가 취한 예술가로서의 상호 존중과 안배, 그리고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물체와의 관계성, 주체자로서 각각의 역할이 선명하였기에 마치 한편의 기계 발레 같았다.

논란의 여지는 세 번째 부분으로, 김원영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춤을 추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그의 불편한 몸은 춤을 추는 내내 불안하고 익숙하지 않은 그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관객 중 혹자는 이 장면에서 다소 불편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두 무용수는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아니라고 본다. 김원영 스스로도 ‘폭탄’이라고 언급했듯이 자신의 몸이 시선이 집중하는 무대에 오르는 순간 어떻게 작동될지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 부대끼는 무엇을 걷어내고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고, 그런 선택을 한 그의 의식을 좀 더 따라가 보자고 다잡게 된다.

생각을 다잡고 바라보자 이상하게 다른 춤에서 받는 긴장감과 기괴한 감정이 연상되었다. 바로 발레였다. 발끝으로 아슬아슬하게 서는 동작을 마주했을 때 오는 긴장감과 경외감, 그리고 지나치리만큼 이상화된 신체에서 오는 발레의 비현실적 모습이 <무용수-되기>에서 바닥에서 몸을 움직이는 김원영의 움직임과 묘하게 겹쳐진다. 더욱이 아무것도 구속받지 않은 두 신체, 김원영과 최기섭의 신중하고도 섬세한 움직임의 진행은 그들의 신중한 태도로 인해 더욱더 미묘하게 전달되어 신기하게도 발레 동작이 연상된다. 솔직히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질문에 정확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발레 또한 왜곡되고 이상한 몸이 등장한다는 차원에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발레에서 발견되는 경외감과 숭고미,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평범하지 않은 몸이 <무용수-되기>와 비슷한 선상에 있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의 마지막 덕목은 배리어프리 작품으로서 매우 긍정적 작업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모든 관계자의 노고와 합의가 이루어졌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작품과 별개일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문제이지 않은가. 그런 차원에서 그들의 세심함과 심사숙고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작업을 진행하는 모든 관계자의 존경받아 마땅한 가치관이 고스란히 들어있었고, 기꺼이 박수를 받을 만하다. 우리는 진작에 이런 작품을 만나야 했다.

무용수-되기

김원영×프로젝트 이인 ∣ 2021.12.4.~12.5. ∣ 언더스탠드에비뉴 아트스탠드

변호사이자 작가인 김원영과 동시대 안무의 ‘가능성’이 안무의 불가능성으로 존재한다는 역설에 주목해온 프로젝트 이인의 현대무용 공연이다. <무용수-되기>는 몸의 불완전함과 유연함을 결여나 불능이 아니라 차이 자체로 긍정하며, 누구나 가능한 존재 그 이상의 존재로서 노래하고 춤추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무용수-되기> 홈페이지 바로가기(링크)

박성혜

무용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존의 전형화된 무용 작업보다는 실험과 모색을, 춤의 확장성과 다양한 가능성을 주로 탐색한다. 열심히 보고 글쓰기가 주된 작업이며 최근 연구와 집필의 대상은 춤추는 공간의 장소성이다.
gissell@naver.com

사진 제공. 프로젝트 이인

2022년 2월 (28호)

상세내용

리뷰

김원영과 프로젝트 이인의 작업 <무용수-되기>는 지난 12월 초에 언더스탠드에비뉴 아트스탠드에서 진행되었다. 필자는 이본 라이너(Yvonne Rainer)의 <트리오 A(Trio A)>에서 출발한 이 작품을 진행 순서대로 크게 세 부분으로 임의로 나누어 봤다. <트리오 A>에 대한 간단한 소개, 김원영과 함께 출연한 최기섭이 선택한 이본 라이너의 작업 스코어를 따라가는 방식, 그리고 김원영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최기섭과 다시 춤추기로 말이다.

1960, 70년대 미국 아방가르드 공연예술의 한 획을 그은 이본 라이너의 작업을 소개하는 공연의 도입부는 얼핏 보면 강연 같다. 유튜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본 라이너가 직접 출연한 영상으로 재연되며, <트리오 A>에 대한 성실한 리서치 내용이 소개된다. <트리오 A>는 평범하고도 단순한 동작의 열거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무용수는 그저 움직일 뿐이고 관객 역시 볼 뿐인, 매우 미니멀한 작업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구나 언제든지 춤출 수 있다”고 했던 무용이론가 샐리 베인즈(Sally Banes)가 언급한 ‘민주적인 몸’의 실천이자 이본 라이너 자신이 제시한 「반 선언문(No Manifesto)」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작업이기도 하다.

김원영과 최기섭은 이 첫 번째 출발을 ‘누구나’라는 민주적 평등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작품 <트리오 A>에서 발췌한 매우 기본적인 동작들의 스코어를 수행해 본다. 예를 들면 “오른손 짚고 왼손 넣는다” “방향 바꾸어 구른다”와 같은 동작의 일부를 자신들의 몸을 통해 진행한다. 흥미로운 것은 김원영의 휠체어 때문에 이 동작 진행이 전혀 평등하지 않고 너무나도 그 차이가 선명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은 처음부터 그러한 차이를 인지하고 의도적으로 드러나도록 배치했다. 그리고 그러한 진행을 통해 서로 어긋나고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감지되는 것들에서 원작의 스코어에서 얼마나 벌어지는지를 다시 재현한다. 최기섭의 몸과 김원영의 움직임은 다르다 못해 김원영의 휠체어로 인해 마치 기계와 일치한 몸의 춤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일종의 ‘기계 발레’라는 인상을 받는다.

한편으로는 원래 스코어에서 움직임의 용이한 진행을 위해 원작보다 2배 느린 속도로 춤을 추었다. 이쯤에서 드는 의구심이, 속도 혹은 시간이 원래의 스코어와 달라지면 원작의 재현에서 크게 변화한 셈인데 무슨 이유로 구태여 이리도 성실하게 원작을 고집할까 하는 점이다. 움직임에서 속도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작품 소개서에도 김원영 스스로도 움직임의 흐름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원작과 다른 흐름이 당연히 동반되는 2배로 느려진 시간에 관한 새로운 흐름, 다른 흐름이 발생하는데 굳이 스코어를 밑그림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마치 트레이싱 페이퍼를 대고 그릴 거라고 천명하고 다른 그림을 그린 것인데, 그대로 따라 하지 않을 것을 왜 트레이싱 페이퍼를 대고 그릴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무용수가 구현하는 춤은 멋졌다. 물체와 신체, 몸과 몸의 시각적 효과와 무엇보다도 평등하고 나름의 관계성에서 적어도 두 무용수 간의 합의와 균형, 두 무용수가 취한 예술가로서의 상호 존중과 안배, 그리고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물체와의 관계성, 주체자로서 각각의 역할이 선명하였기에 마치 한편의 기계 발레 같았다.

논란의 여지는 세 번째 부분으로, 김원영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춤을 추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그의 불편한 몸은 춤을 추는 내내 불안하고 익숙하지 않은 그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관객 중 혹자는 이 장면에서 다소 불편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두 무용수는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아니라고 본다. 김원영 스스로도 ‘폭탄’이라고 언급했듯이 자신의 몸이 시선이 집중하는 무대에 오르는 순간 어떻게 작동될지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 부대끼는 무엇을 걷어내고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고, 그런 선택을 한 그의 의식을 좀 더 따라가 보자고 다잡게 된다.

생각을 다잡고 바라보자 이상하게 다른 춤에서 받는 긴장감과 기괴한 감정이 연상되었다. 바로 발레였다. 발끝으로 아슬아슬하게 서는 동작을 마주했을 때 오는 긴장감과 경외감, 그리고 지나치리만큼 이상화된 신체에서 오는 발레의 비현실적 모습이 <무용수-되기>에서 바닥에서 몸을 움직이는 김원영의 움직임과 묘하게 겹쳐진다. 더욱이 아무것도 구속받지 않은 두 신체, 김원영과 최기섭의 신중하고도 섬세한 움직임의 진행은 그들의 신중한 태도로 인해 더욱더 미묘하게 전달되어 신기하게도 발레 동작이 연상된다. 솔직히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질문에 정확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발레 또한 왜곡되고 이상한 몸이 등장한다는 차원에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발레에서 발견되는 경외감과 숭고미,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평범하지 않은 몸이 <무용수-되기>와 비슷한 선상에 있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의 마지막 덕목은 배리어프리 작품으로서 매우 긍정적 작업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모든 관계자의 노고와 합의가 이루어졌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작품과 별개일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문제이지 않은가. 그런 차원에서 그들의 세심함과 심사숙고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작업을 진행하는 모든 관계자의 존경받아 마땅한 가치관이 고스란히 들어있었고, 기꺼이 박수를 받을 만하다. 우리는 진작에 이런 작품을 만나야 했다.

무용수-되기

김원영×프로젝트 이인 ∣ 2021.12.4.~12.5. ∣ 언더스탠드에비뉴 아트스탠드

변호사이자 작가인 김원영과 동시대 안무의 ‘가능성’이 안무의 불가능성으로 존재한다는 역설에 주목해온 프로젝트 이인의 현대무용 공연이다. <무용수-되기>는 몸의 불완전함과 유연함을 결여나 불능이 아니라 차이 자체로 긍정하며, 누구나 가능한 존재 그 이상의 존재로서 노래하고 춤추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무용수-되기> 홈페이지 바로가기(링크)

박성혜

무용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존의 전형화된 무용 작업보다는 실험과 모색을, 춤의 확장성과 다양한 가능성을 주로 탐색한다. 열심히 보고 글쓰기가 주된 작업이며 최근 연구와 집필의 대상은 춤추는 공간의 장소성이다.
gissell@naver.com

사진 제공. 프로젝트 이인

2022년 2월 (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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